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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과 중심을 극복하는 주변의 눈, 그 시작
"주변과 중심을 극복하는 주변의 눈, 그 시작" 내용보기
중심과 주변, 자기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전 지구적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화는 전 지구적 통합과 지역적 소 공동체의 부각이라는 상반된 두 방향을 동시에 이끌고 있다. 세계화 자체는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희구를 강화시킴으로써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기고 있으며 그 폭력성과 위험성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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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과 주변, 자기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전 지구적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화는 전 지구적 통합과 지역적 소 공동체의 부각이라는 상반된 두 방향을 동시에 이끌고 있다. 세계화 자체는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희구를 강화시킴으로써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기고 있으며 그 폭력성과 위험성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어적 진지, 경제적 블록으로써 지역주의, 지역주의 안에서 중심을 확보하려는 국가적 관점 등을 비판하면서 근대적 사유인 중심과 주변을 극복하고 세계화를 넘어서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중심과 주변은 상대적 관점이다. 따라서 동아시아는 미국(서구) 중심에서 주변부에, 중, 일에 비해 여타 동아시아 국가는 그 주변부에, 국가란 이름에서 탈락된 수많은 민족과 공동체는 다시 동아시아 국가의 주변부에 위치한다.


여기에는 수많은 난제가 숨어 있다. 현실적 실재로서 존재하는 국가의 틀을 그리 간단히 넘을 수는 없다는 문제점, 더 나아가 은폐된 국가 중심주의 시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동시에 정체성이라는 복병도 무시할 수 없다.


동아시아 시각 자체가 어떤 역사적 상황 하에서는 실은 또 다른 대국의 꿈이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 만일 동아시아 시각에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기능이 있다면 동아시아 시각이란 누가 중심이며 무엇을 기초로 할 것인가? 민족주의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다국적 자본에 의해 세계화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불평등한 경제 관계의 시대에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시각 사이엔 정말 상호 견제의 작용이 있는가?  (p 273)


동아시아를 주변은 주변이로되 세계 체제를 흔들 충분한 가능성을 품은 역동적 지역이며 그 패권국으로 일본과 중국을 주목한 후, 패권국의 교체 이상의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한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한국 학자의 견해는 중국, 일본에게는 한국중심주의 시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일면 타당한 우려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이 어디에 발을 딛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한국학자의 출발점을 단순히 국가적 관점으로 폄하할 수만은 없다. (중국이나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논의 역시 똑같은 한계와 비판에 직면한다.)  


한편 국가, 중심을 넘어서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중심이 늘 국가로 국한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근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타자로 규정되어 중심부에 강제적으로 포섭됐던 수많은 민족들, 티벳트, 신장지구 위구르족, 일본 아이누와 류큐 그리고 재일한국인과 화교 등, 그야말로 주변의 주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발언은 어떻게 가능한가? 


거대한 국가에 기초한 시스템의 검증이라는 ‘과거의 번역’에서는, 과거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공통의 인식에 의해서 형성된다.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역사적 현재’에 소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가공할만한 해석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역사적 현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문명’의 카테고리에 포함된 어떤 특정한 성질을 해당 사회 또는 해당 공동체의 생활 양식이 소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겨진다. 이 같은 ‘문명’의 카테고리에 속할 수 있는 특정한 성질이 결여된 ‘미지’의 사회 시스템은 지리상에서뿐만 아니라, 연대기에서도 ‘석기 시대’ 또는 ‘유사 이전’이라는 유물을 표현하는 기호에 의해서 정의된다. 그리고 ‘타자’로 규정되고, 근대의 지리로부터 소거된다. ......먼 과거의 화석화한 잔존물로서 묘사하고 있다. (p 158-159)


광범위하고 다양한 폭의 문제제기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중심의 해체인지 다중심의 공존인지, 중심에 대비되는 주변의 수준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 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상이한 주변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무엇이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며 인간의 뿌리 깊은 귀속성, 즉 정체성을 해체하거나 대신할 수 있는지, 아직 분명한 것은 없다.


끝없이 중심을 해체하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가장 극단적인 주변은 결국 개인이 되지 않을까? 중심과 주변, 자기와 타자의 경계설정과 배제, 포섭의 논리를 인식의 근본 틀로 장착한 근대적 인식을 근대인인 우리가 과연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세계와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유의미한 문제제기임에는 틀림없다. 설령 느리고 개별적이고 심지어 대립적인 진행일지라도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07.04.2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