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일러 <천자문>을 쉽다고 했는지... 생각해보니 아무도 쉽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저 너댓살이 되면 공부의 첫걸음으로 배우는 초급 교재라고 말했을 뿐. 너댓살에 천자문이라... 내 나이 서른 하고도 한참이 넘어서버렸지만, 천자문은 쉽지 않았다. 천자문에는 우주의 진리와 치국의 도가 있다. 역사와 지리가 있다. 그리고 개인의 바람직한 생활상이 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까지는 나도 너댓살에 이미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 첫마디부터 말도 안되는 소리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니. 땅이 누런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멀쩡하게 푸른 하늘이 검다니, 밤하늘을 뜻함인가? 그 뜻인즉, "하늘은 아아하라게 멀어 어두우며", 즉 "하늘은 그 이치가 깊구 그윽해서 헤아리기 어려"운 탓이란다. 느낌이 올랑말랑한다. 나같은 머리나쁜 학생들을 위해서 후학들이 새로운 뜻풀이를 더했다. '검을 현'보다도 '아득할 현'으로 풀이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늘은 아득하다는 뜻이다. 검을 현이라고만 알고 있으면 욕부터 나올 법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천자쯤이면, 나도 그쯤은 알 법 한데, 그게 글자를 안다고 해석이 가능한게 아니다. 천자문의 거의 첫부분인데, 이런 말이 있다. 龍師火帝, 鳥官人皇. 내 아무리 무식해도 이 정도 글자들은 다 안다. 용 용, 스승 사, 불 화, 임금 제, 새 조, 벼슬 관, 사람 인, 임금 황. 그러면 해석도 해볼까? 백날 들여다봐도 알 길이 없다. 용사, 화제, 조관, 인황은 각각 전설 속의 중국 임금들 신농, 복희, 소호, 황제를 뜻한다. 고대 삼황오제의 멤버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더 익숙한 무식쟁이들로서는 알 재간이 없다. 기본적으로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천자문은 읽을 수 없다. 차라리 중국 고전을 읽는 쪽이 더 쉬울런지도 모른다. 천자문에 垂拱平章(수공평장)이라는 구절이 있다. (옷자락을) 늘어뜨리고(垂) 팔짱만 끼고 있어도(拱) 평안하고(平) 밝다(章)는 말이다.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다. 누가 팔짱만 끼고 있다는 것인지, 뭐를 평안하고 밝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원문은 <서경>에 있다. 惇信明義 崇德報功 垂拱而天下治. '신용을 두텁게 하고 의리를 밝히며 덕을 높이고 공로를 갚는다면 옷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도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천자문은 8언시의 나열이다. 8글자 안에 하나의 의미 덩어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동시에 책 한권에 똑같은 글자를 두 번 쓰면 안된다. 당연히 무지막지한 생략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의미전달이 어렵더라도 글자 바꾸기를 강행할 수 밖에 없다. 무지랭이들은 읽을 수가 없다. 그러고보면 참 시골훈장 노릇도 쉬운게 아니었을 법 하다.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친 할아버지들도 참 대단한 할아버지들이었던듯 싶다. 천자문 한 권 떼고 나면 걸판치게 책걸이 했을 법도 하다. 한 사람의 교양인으로서 기초를 마무리한 셈인 탓이다. 하지만 그 교양인이라는 것도 퍽 좋은 것만은 아니다. 資父事君이라고 한다. '어버이 섬기는 것을 바탕삼아 임금을 섬기'라는 것이다. 효가 있고 나서 충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실천전략도 차이가 있다. 孝當竭力 忠則盡命이라고 했으니, '효도는 마땅히 그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을 다해야만' 한단다. 목숨을 다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니, 결국 충성은 멀고 효도가 가깝다. 나라는 나몰라라 해도 집안부터 챙기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그 수많은 부패의 시원이 어딘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른바 교양인이란, 이런 썩어빠진 생각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한 인간이라니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더구나 천자문에서 가르치는 역사와 지리라는 것이 중국의 역사와 지리일 수 밖에 없음에 생각이 미치면 더더욱 한심해진다. 천자문 첫머리부터 금의 특산지 옥의 특산지를 소개하더니, 1000자 중에 88자를 동원해서 궁궐과 황제의 행차 풍경을 묘사한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주위의 온갖 '오랑캐들이 신하가 되어 엎드려(臣伏戎羌) 멀고 가까운 데가 다 한 몸이 되어(遐邇壹體) 거느리고 와서 천자에게 기대고 굽실거린(率賓歸王)'단다. 이런 책을 읽은 사람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구조의 사회에서 사대(事大)란 너무도 당연한게 아니었을런지. 더구나 배우는 모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너댓살에 읽는 책이 이 모양인데. 김성동의 천자문은 할아버지의 일화로 얘깃거리를 이끌어낸다. 읽다보면 나도 지은이와 함께 할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앉아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반가운 느낌이다. 어린 시절 과감하게 도망다닌 후회를 뒤늦게 만회하는듯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천자문 자체보다도 또다른 단상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독서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본문과 별로 상관도 없는 에세이를 읽고나면, 반드시 앞구절이 뭐였는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다행히 또다른 천자문을 읽고 있다. 좀더 두껍고, 그래서 비싸지만, 심청적인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렇게 천자문에 깊이 빠지다 보면 나 역시 썩어빠진 '교양인'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나이 서른이 넘었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닌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썩어빠진' 교양서적에서 황금같은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言辭安定. <예기>의 安定辭 安民栽를 다시 쓴 구절이라고 한다. '말을 안정되게 해야만 백성을 편안히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란다. 이 나라의 대통령도 이 썩어빠진 책에서 배울건 배웠으면 좋으련만...예기>서경>천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