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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수준을 의심한다.
"문학동네의 수준을 의심한다." 내용보기
지금까지 문학동네의 수상작품을 빠지지 않고 보아왔다. 또 그 인연으로 작가의 행보를 지켜보고, 후속작을 사보는 재미를 느꼈다. 그런데 최근의 수장작들은 경합을 벌여 당선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올해의 수장작은 터무니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상을 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가벼움을 속도감 있다고 말하고, 익지않은 문장을 신선하고 쿨하다고 평하고 있
"문학동네의 수준을 의심한다." 내용보기
지금까지 문학동네의 수상작품을 빠지지 않고 보아왔다. 또 그 인연으로 작가의 행보를 지켜보고, 후속작을 사보는 재미를 느꼈다. 그런데 최근의 수장작들은 경합을 벌여 당선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올해의 수장작은 터무니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상을 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가벼움을 속도감 있다고 말하고, 익지않은 문장을 신선하고 쿨하다고 평하고 있으니. 교내 백일장이라면 모르겠지만, 국내 소설 생산의 중심에 서 있는 출판사의 수상작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은 한국문단의 미래마저 염려케 한다. 수준이 안되면 당선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마지못해 수상작을 선정하며, 현재보다 미래를 지켜보자는 신경숙,성석제씨의 처사도 탐탁치 않다. 고작해야 150page 분량의 소설에 가격을 8000원씩이나 매겨놓은 것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망스러울 뿐이다.
c******k 2004.07.09. 신고 공감 3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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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고 계십니까?
"통하고 계십니까?" 내용보기
서로 통한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말이 잘 통하는 경우와 마음이 잘 통하는 경우.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그러나 깊이는 없다.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깊이도 있으며, 든든하기도 하다.당신에게는 당신과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십니까?<어느덧 일주일>은 사람 사이의 소통을 소재로 씌어진 소설이다.우리는 타인과 한없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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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통한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말이 잘 통하는 경우와 마음이 잘 통하는 경우.
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깊이는 없다.
후자의 경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깊이도 있으며, 든든하기도 하다.
당신에게는 당신과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십니까?

<어느덧 일주일>은 사람 사이의 소통을 소재로 씌어진 소설이다.
우리는 타인과 한없이 가까워지길 원하면서도, 또 반대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원한다.
사실상,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은 그전 순수하게 받아 들여졌던 일도, 어른이 되면 자꾸만 거리를 두게 된다.
이해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그만큼 거리가 생긴다.
그렇다고 거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상대를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준태와 기연은 사실 불륜 커플이다.
기연의 남편이 남도로 떠난 일주일동안 이 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어차피 가지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기연은 남편이 있는 여자이니까.
또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준태와 기연은 겁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자신의 영역 깊숙히 끌어들인다는 행위 자체는 자신을 그만큼 드러내고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준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의 소통을 어려워하고, 기연은 남편과의 소통이 어렵다. 자연스레 서로 결핍되어 있는 부분이 톱니처럼 딱 맞아 떨어져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새로운 소통 관계의 출발을 암시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어떻게 보면 소설 전반적인 내용에 비해 급선회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준태와 기연의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그외에도 세상은 수없이 많은 소통의 단절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노숙자 아저씨의 상대없는 고함과 삿대질, 일부 빗나간 종교인들의 외침, 조합원들의 농성...
이 모든 것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행위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메아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은 완전히 소통이 단절되는 것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준태는 기연의 오빠와 조금이나마 소통을 하게 된다. 대학 입학 후 스스로의 울타리에 갇혀 버린 한 남자와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해 무거운 마음을 가진 남자의 소통. 이것은 두 남자가 아버지란 존재와의 사이에서 느끼는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결핍에 대한 상처 핥아주기로 보인다.
기연의 오빠는 지나친 기대를 하는 아버지로 인해 마음을 닫아 버렸고, 준태는 아버지와의 나이 차이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가족들과의 소통이 가장 원할할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다.

가족이란 작은 울타리, 그리고 사회라는 큰 울타리를 아우르며 사람들 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느덧 일주일>은 가볍게 읽히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담아낸다. 하지만 암시적으로 드러난 결말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든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서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y*****5 2010.0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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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소외된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내용보기
일단 책이 얇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빨리 읽게 되고 그래서 다 읽고 나서 허무함도 조금 있긴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유부녀인 연상의 여인과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쁘게만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소통의 단절'이라는 상처를 갖고 있고,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
"소외된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내용보기
일단 책이 얇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빨리 읽게 되고 그래서 다 읽고 나서 허무함도 조금 있긴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유부녀인 연상의 여인과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쁘게만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소통의 단절'이라는 상처를 갖고 있고,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 두 사람 외에도 영화로 보면 조연급에 속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낄 수 없는 이들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외로워하기 마련이다. 왜냐면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계속에서 그들은 자아를 찾을 수 있고,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전수찬씨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본다.
p******i 2005.01.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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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소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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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최선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 씁쓸한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지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김영하, 포스트잇 p116 중 - 소설을 읽는 동안 느끼는 안타까움, 아쉬움 같은 것의 결론으로 떠오른 구절이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진정한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을 원한다.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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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최선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 씁쓸한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지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김영하, 포스트잇 p116 중 - 소설을 읽는 동안 느끼는 안타까움, 아쉬움 같은 것의 결론으로 떠오른 구절이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진정한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을 원한다. 어쩌면 '조폭의 카리스마'도 마다하지 않을 이들이 대중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은 터무니 없는 기대일 때가 많고 이 세상은 그렇게 많은 카리스마가 필요하지도 않다. 물론 진부한 소재에 별다른 문체의 강렬함이나 신선함도 없는 이 글이 독자를 매혹시키기엔 역부족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대해 혹평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일상의 진부한 단면을, 작가가 신호씨의 입을 빌려 말하는 ‘살아가면서 자연히 얻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 삶은 많고 많은 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 되고, 그런 표현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진부한 대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투며 화해하며 살아간다. “현재 잘못된 건 현재의 문제라는 거야.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 사실이야. 살다보니 어느 순간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후략)” “ 그런데 그것조차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그런 원망 속에서 그걸 핑계 삼아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내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때가 왔던 거야.” “ 그냥 길을 걷다 느끼게 되었어.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었지만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그날 받아들이게 된 거야. 내가 말했잖아, 살다보니.......” (p98 ~p99) 이야기란 작가나 독자 모두 자신의 소망을 투사할 때가 있다. 특히 사랑이야기는 말이다. 더구나 그 사랑이 선남선녀가 아닌 불륜이라거나 외도일 경우 그 외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또는 그 부도덕성을 지적하기 위해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지닌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독자는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얻고..... 작품 속 주인공 기연과 준태는 불륜을 감행하는 인물치고는 밋밋하다. 남편이 없는 토요일에서 다시 토요일을 지내는 시간 동안 일기 형식으로 쓴 이 글에서 둘이 만나 몇 번 몸을 섞는 것 외에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다. 불륜커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일상을 오래 공유한 커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물론 노숙자의 죽음이라든가, 신호씨의 실직과 같은 조금은 극적인 장면이 삽입되지만 자살, 실직은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 속에 버젓이 자리한 지 오래된 현대인들에겐 오히려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마치 길거리로 나선 종교가 일상의 고통은 외면한 채 사람들을 행해 호통치고 협박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 것처럼. 물론 노숙자의 죽음 부분은 준태의 일상에 비친 에피소드로 처리하기엔 소설 전체와 연결부분이 헐거워 유기성도 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혹평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되풀이되는 문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성실한 성찰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술을 먹고도 끄떡하지 않는가 하면 술 한 잔에 까버리는 사람도 있다. 맷집 좋은 사내는 스트레이트, 훅에도 넘어가지 않지만 어떤 사내는 서너 차례의 잽에도 넘어간다. 각자 몫의 고통은 각자에게는 어쩌면 대개는 비슷한 질량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남의 염병만큼 심각한 것이 내 곳뿔(鼻火)이다. 오래 아버지에게 억눌린 기연씨 오빠는 정신을 픽~~ 놓아버렸다. 일방적으로 기대를 걸고 지시하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돌봐야 하고 세상과 단절된 아들의 의사 소통을 대신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일방적이긴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느꼈던 소통 불가능의 답답함을 알기에 기연씨나 준태는 그런 오빠를 두고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또 다른 벗인 신호씨 역시 소통이 어려운 전력으로 인해 귀를 다쳤고 또 그 귀로 인해 더욱 세상과 소통이 어렵다. 그의 고용주인 횟집 주인은 자진 사표를 유도한다. 실은 일방적 해고다. 부부가 아닌 두 사람, 남편의 부재를 틈탄 삼십 대 후반의 여자인 기연과 서른 살의 남자인 준태의 만남은 욕망의 은밀한 교환이 아니다. 남편이나 아버지 같은 가까운 사람과 소통에서 좌절을 느낀 두 사람이 일 주일간 소통을 간절하게 소통을 원하면서 작품은 소통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김영하 같은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역대 수상작에 비해 함량이 부족하지만 권투 선수가 어찌 호쾌한 스트레이트나 훅으만 승리를 나꿔채든가? 또 스퀴즈에 도루까지 부지런한 작전이 승수를 쌓기도 한다. 야구가 홈런 같은 장타로만 승부를 결정짓던가?

[인상깊은구절]
“ 그냥 길을 걷다 느끼게 되었어.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었지만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그날 받아들이게 된 거야. 내가 말했잖아, 살다보니.......” p99
l******r 2004.1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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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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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전수찬 장편소설 2. 가격: 8000원 3. 서평 이책은 제 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작품이다. 큰 타이틀을 달고 출간된 이 책의 테마는 불륜! 소재는 그럴듯한 파격적인 로맨스가 그려질듯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2가지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첫번째는 '에~게' 이게 설마 수상작품이야?"라는 소리가 나올만큼 신선하지도 파격적이지 않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다.
"어느덧 일주일" 내용보기
1. 작가: 전수찬 장편소설 2. 가격: 8000원 3. 서평 이책은 제 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작품이다. 큰 타이틀을 달고 출간된 이 책의 테마는 불륜! 소재는 그럴듯한 파격적인 로맨스가 그려질듯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2가지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첫번째는 '에~게' 이게 설마 수상작품이야?"라는 소리가 나올만큼 신선하지도 파격적이지 않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다. 두번째는 남녀의 불륜을 무겁지 않고 가볍고 경쾌하게 그릴 수 있음에 신선할 수 있으며,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불륜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만큼 인물간 캐릭터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공감대를 형성케 한다. 공대졸업후 술집을 운영하다 소설을 썼기에 문장이 아직 미진하지만, 미사여구 가득한 글 없이 깔끔하게 끌어가는 힘이 있으며,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무생각없이 뭐가 읽고 싶다 할때 읽으면 좋을듯.
w****0 2004.1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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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주일 -전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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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어느덧 일 주일'을 읽었다30살 남자 주인공 나 (준태)와 37살 여자 주인공 유부녀 (기연)의 일주일에 관한 내용이다여자 주인공의 남편의 출장으로 인해 남녀주인공의 일주일을 그려낸 작품이다한마디로 불륜을 한 소설인데 책 마지막의 추천평에서 나오듯쿨내가 진동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거 같다비밀스럽고 은밀하며 숨기려는 불륜이 아니라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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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어느덧 일 주일'을 읽었다

30살 남자 주인공 나 (준태)와 37살 여자 주인공 유부녀 (기연)의 일주일에 관한 내용이다

여자 주인공의 남편의 출장으로 인해 남녀주인공의 일주일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마디로 불륜을 한 소설인데 책 마지막의 추천평에서 나오듯

쿨내가 진동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거 같다

비밀스럽고 은밀하며 숨기려는 불륜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랑하는 연상연하 커플 같은 느낌을 준다


둘의 대화나 가족사 이야기를 하는 장면만 보고 있으면 전혀 불륜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종일관 소설은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내용은 조금은 모오하고 결말은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인 작가 다운 간결하고도 속도감있는 문체는 마음에 든다


수상소감에서 명문대를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소설을 쓰고 싶어서 3년간 생계를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와이프에게 미안함을 가진채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소통의 단절'은 작가가 어린 시절 부터 줄곧 가진 생각인지

명문대를 거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느낀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겪는 어려움을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잘 풀어준거 같았다

c*********g 2017.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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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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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부터 나는 이상하게 나이들기를 소망했다.바보처럼....지금 나이가 들어서 그때 내가 열망했던 것은 아마도 나이들면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때문이었던 것 같다.그러나 나이들어도 난 똑같다.좀더 진중해질 줄 알았는데,좀더 삶을 성숙하게 바라볼 줄 알았는데 빌어먹게도 똑같다.질풍노도의 시기를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보냈듯이 중년이란 나이도 인생이 보이질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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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부터 나는 이상하게 나이들기를 소망했다.바보처럼....지금 나이가 들어서 그때 내가 열망했던 것은 아마도 나이들면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때문이었던 것 같다.그러나 나이들어도 난 똑같다.좀더 진중해질 줄 알았는데,좀더 삶을 성숙하게 바라볼 줄 알았는데 빌어먹게도 똑같다.질풍노도의 시기를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보냈듯이 중년이란 나이도 인생이 보이질 않는다. <어느덧 일 주일>을 읽고 나면 가벼운 듯 보이는 이 소설이 결코 가볍지 않게 태클을 건다는 것이다.내 삶에 대한 태클을 .......

서른 일곱살의 기연씨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고 있고 까페를 운영하고 있다.어느 날 남편이 일주일동안 여행을 가게 되면서 그녀에게 사랑할 수 있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주어진다.가게에 자주 오는 서른 살의 준태.남편의 부재로 준태를 집에 부르고 둘은 서로에 대한 대화가 시작된다.

기연씨에게 저능아인 오빠에 대한 존재,그리고 남편과는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로 기연씨에 대한 이해가 전혀없는 남편의 가족들 사이에서 단절을 느끼고 있는 기연씨와 늦둥이로 태어나 아버지와 항상 40살차이라는 나이차를 극복못해 가족간의 소통의 단절을 느끼고 있는 준태는 타인과 소통하며 이해하는 것에 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삶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소통하고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에는 아무것도 섞여있지 않다.꿈과 미래,목표라는 그 어느것도......그리고 회사앞에서 늘 있던 노숙자아저씨가 준태가 미술관에 간 날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준태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누군가가 죽기에는 날씨가 너무나 화창한 날이었기에 ......

기연씨가 부부라는 것을 사회적 관계로 명시하는 것을 보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여성이 결혼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남편과 사회적 관계로 밖에 이해관계가 되지 않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늦둥이 아들인 준태를 항상 어린나이로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소통의 어려움에서도 소통의 중요함을 말해준다.이야기를 단순하게 연상녀와 연하남의 불륜으로 본다면 가볍기 그지없는 소설이지만 준태와 함께 월화수목금토일을 걸어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물론 소통과 함께 이야기가 도덕적이라면 더 바랄게 없지만 인생이란 것이  마음먹은 대로 계획대로 되지않듯이......그럼 이들을 불륜으로 볼까 로맨스로 볼까 .....



 

YES마니아 : 로얄 k********2 2011.04.24. 신고 공감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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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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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쁘다. 작고 아담하다.       작가는 남자인데, 여성작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또 딱히 여성작가라고 말할만큼 섬세한 문체를 지닌 것은 아니다. 뭐랄까, 그냥 부드러운 문체라고나 할까.       같은 상인 것 같은데 이신조 작가의 [기대어 앉은 오후]와 문체의 느낌은 비슷하다. 심사위원들은 쉽게 읽힌다고 했는데  난 솔직히 이 정도 쉽게 읽히는 작품은 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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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예쁘다. 작고 아담하다.

      작가는 남자인데, 여성작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또 딱히 여성작가라고 말할만큼 섬세한 문체를 지닌 것은 아니다. 뭐랄까, 그냥 부드러운 문체라고나 할까.

      같은 상인 것 같은데 이신조 작가의 [기대어 앉은 오후]와 문체의 느낌은 비슷하다. 심사위원들은 쉽게 읽힌다고 했는데  난 솔직히 이 정도 쉽게 읽히는 작품은 흔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문장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했다.

      왜 자꾸,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문체만 얘기하는 가. 솔직히 할 얘기가 그것 밖에 없다. 내용? 내용 그냥 동네 사람사는 얘기이다. 이 작품과 결부지어서 개인적인 주관을 한 번 피력해 볼까...

 

      한국 소설. 죽어가는 이유가 무거움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 예전에는 일단 그것 하나만 얘기했었다. 당시에는 콧방귀도 안뀌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 둘씩 그래, 한국 소설은 좀 무거워라며 찬성하기 시작하고 또 그러면서 점차 재미있는 소설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그로 인해 한국 소설의 부흥기니 르네상스니 하는데, 아니 책 깨나 읽는 양반들이 책팔아 먹으려고 광고하는 카피를 흐름이라고 여긴단 말인가!

      나는 가벼운 작품 몇 개가 당선작이 되고 또 독자들이 그 책을 흔퀘히 봐준다고 해서 르네상스 따위가 왔다고 생각지 않는다. 진작 그렇게 되었어야 했고 가야할 길을 가고 있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조금 뭐가 달라졌다고 부흥기니 르네상스니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과거 나와 같은 입장에서 한국 소설은 너무 무거워서 문제야 라고 말했던 이들이 아니, 이제 재미있는 게 많이 나오고 있는데 원하던 대로 바뀌고 있는 거 아냐? 라고 물을 수 있겠다. 맞다. 원하는 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균형을 바랐던 것이지,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완승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박쥐같은 태도라고 할 것인가? 천만에 오히려 나는 한쪽으로만 몰고 가려는 인간들에게 공산당같은 자식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 그럼 이 작품과 결부해서 무엇을 말하려는가 하면 소재의 한계이다. 최근 다양한 소재의 소설들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외국에 비하면 턱없다. 동네, 동네. 그것도 자기동네. 만날 같은 것만 고민하고. 이젠 슬슬 지친다. 두 번째 도약해야 할 한국 소설의 가야할 길은 바로 소재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자가 한국은 독자에 비해 작가가 너무 많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이 한국 소설 시장을 말아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많은 게 무슨 상관인가? 작가가 많아서 자기네 책이 더 안 팔리는 거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들 기준에서의 하찮은 작품때문에 한국소설이 독자로부터 외면당한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그 쪽 전공을 한 자들만 작가가 되어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춘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우물안에 올챙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외를  통틀어 훌륭한 작가는 그쪽 전공이 아닌 자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생각엔 뭔가 반대로 되어있다. 충분한 인성과 경험과 균형감각을 갖춘 뒤에 수단으로서 창작의 기법을 배우는 게 순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외국 작가의 경우, 철학을 전공하거나 기타 전문분야에서 일하다가 작가도 데뷔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다양한 소재를 가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 가. 

      우리는 순문학, 순문학 그러면서 깊이도 없이 무겁고 어려운 읊조림만 양산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히 나는 문창과나 국문과를 다니면서, 또 전업 작가의 꿈을 안고 있으면서 외국 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인문철학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본 것도 아니다. 대체 그들은 어떤 공력으로 글을 쓰려는지 이해가 안된다. 등단한다고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닐텐데, 아는 것도 없이 뭘 쓰려는지 말이다.

      그런 결과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만날 같은 소재의 소설들만 그득하니까 말이다. 

 

      전수찬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에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주관적으로 뻔한 동네 얘기에는 이미 지쳐있는 상태라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조곤한 분위기를 즐기는 독자라면 마음에 들수도 있다. 나도 평소에는 이런 부류의 작품에 좋은 점수를 주긴 하는데 재수 없게 이 작품이 걸린 걸수도 있다. 좀 질려가니까.

b******k 2008.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논의 역설, 따라잡을 수 없는 어른되기 레이스...
"제논의 역설, 따라잡을 수 없는 어른되기 레이스..." 내용보기
소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제논의 역설이 떠올랐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거북이가 먼저 출발한 상태에서 아킬레스가 다음에 출발하면 아킬레스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 거북이가 아무리 느릿하게 전진하더라도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는 자리에 도달할 즈음이면 거북이가 멈춰 있지 않은 한 거북이는 원래 있던 지점에서 멀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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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제논의 역설이 떠올랐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거북이가 먼저 출발한 상태에서 아킬레스가 다음에 출발하면 아킬레스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 거북이가 아무리 느릿하게 전진하더라도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는 자리에 도달할 즈음이면 거북이가 멈춰 있지 않은 한 거북이는 원래 있던 지점에서 멀어지게 되고, 다시금 아킬레스가 박차를 가하여 달려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도달하게 되어도 거북이는 어느 정도 전진하게 되니, 결국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 소설의 주인공 준태는 이제 서른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칠십 세 생일을 맞았다. 아버지와의 많은 나이 차이로 서먹한 부자관계를 유지했던 준태는 다른 친구들처럼 나이가 들고 크면 그 간극이 줄어들리라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준태야, 넌 나랑 얘기하기에는 너무 어리구나.” 라고 말했던 이십년 전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 이십년 전의 준태와 지금의 준태는 여전히 멀고 먼 이방인처럼 그 사이를 좁히지 못했다. 정년 퇴임을 하고 집에서 화초를 돌보며 거북이처럼 걷고 있는 아버지이지만 서른 살의 청년 준태는 그런 아버지를 절대로 따라 잡지 못한다. 그는 제논의 역설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것 대신 잘 짜여진 가설에 갇혀 살아가는 것 같다. 소설은 그런 서른 살의 준태가 단골 술집 Up&Down의 안주인인 서른 일곱의 기연과 나누는 일주일 동안의 사랑 이야기이다.(토로하자면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영 시원치 않지만은...) “기연씨는 어떨 것 같아요? 자궁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으면?” “나야 얼씨구나, 하고 죽어버리겠지.” 어른에 이르지 못했음에 순진무구한 어른인 준태와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의 굴레 속을 마치 감옥처럼 생각하는 어른인 기연은 술집 바깥 주인이 지리산으로 산행을 떠난 사이 얼씨구나, 하고 그들만의 시간을 만끽하지만 어딘지 후련하지 않다. 정신없이 달리고, 맘껏 섹스도 하고, 원없이 술을 마시고, 술친구를 만나고, 퇴행성 질환의 어른아이인 기연의 오빠와도 친해지지만 속시원하지 않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 준태에게 기연이 말한다. “현재 잘못된 건 알고 보면 대체로 현재의 문제라는 거야.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에 이르지 못한 어른보다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못 견뎌 하는 어른이 역시 한 수 위이다. 하지만 어른에 이르지 못한 어른에게도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나는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중얼거려보았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다. 뭐가 어떻게 되든,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하지만 준태는 노숙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기연의 손을 쓰다듬다 기연의 남편인 경수에게 멱살을 잡혀 쫓겨나고, 낯선 자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기연과의 쓸쓸한 일주일을 마감한다. 그래서 낙담스럽냐고? 아니다. 폭행 당해 퉁퉁 부은 얼굴의 준태는 기연을 불러내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거북이를 좇는 아킬레스처럼 준태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향한다. 제논의 역설은 역설일 뿐, 결국 거북이는 아킬레스에게 따라잡히게 마련인 것이다. ps. 소설의 뒷부분에 다다랐을 즈음, 사년전쯤인가 신사동의 점집에 찾아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젊은 점술가는 내게 피터팬과 같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사주라고 했다. 나이를 먹지 않으면 뭘 먹고 크란 말이야, 쳇... 그리고 연이어 사주랑 피터팬이라니 크하하, 점 따위는 믿지 않는 나는 한바탕 코웃음을(물론 속으로만) 쳤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내 나이또래의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점집을 찾은 나를 향해 그런 말쯤은 심봉사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두 눈 환한 점술가가 그런 말쯤 보태는 것이 무어 대수랴. 하지만 점집을 나선 나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위해 배위에 자리를 잡은 심청이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이 나이에 피터팬 소리나 듣다니, 이거 그저 유쾌하지만은 않은 걸... 그리고 동시에 소설 속의 준태처럼 혼잣말을 했던 것도 같다. (“살다보면” 나는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중얼거려보았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다. 뭐가 어떻게 되든,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시간이 흘렀고 점술가의 예언은 이것저것 맞는 것보다 틀린 것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일을 하니 얼치기 피터팬일 뿐이고, 삼년 안에 문명을 떨친다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서 밥을 빌어먹고 있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쓰고 있으며 즐기기까지 한다. 준태든 기연이든 결국 그렇게 걷다보면 어떻게든 어디에든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닐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6.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약간은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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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유치하다. 설정이 그렇고 그렇다. 유부녀와 총각, 남편이 떠난 공간에 청년이 개입한다. 물론 그 전부터 개입했다. 총각도 유부녀 남편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일주일 간 일어난 유부녀와 총각 사이의 일 가운데 몇몇이 개입한다. 신호, 기연씨 오빠, 과장, 노숙자 아저씨. 일주일 동안 일어난 그네들의 사건 속에 개입된 이들을 다 설명하고자 하니 단조롭다. 왜 그 자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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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유치하다. 설정이 그렇고 그렇다. 유부녀와 총각, 남편이 떠난 공간에 청년이 개입한다. 물론 그 전부터 개입했다. 총각도 유부녀 남편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일주일 간 일어난 유부녀와 총각 사이의 일 가운데 몇몇이 개입한다. 신호, 기연씨 오빠, 과장, 노숙자 아저씨.

일주일 동안 일어난 그네들의 사건 속에 개입된 이들을 다 설명하고자 하니 단조롭다.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들이 준태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도지 모르겠다.

요즘 소설은 다 이런가? 그저 생각없이 읽을 수있게 하는 것이 글쓰는 이들의 일상인가? 독자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글이란 구로와 같다. 구로하는 여인의 경험을 통한 글이 아니고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k****e 2007.01.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