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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땅 '엘 도라도'를 찾아가는 길...[아귀레, 신의 분노]
"황금의 땅 '엘 도라도'를 찾아가는 길...[아귀레, 신의 분노]" 내용보기
1. 그냥 술술 읽히는 책처럼 보기 쉬운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고 어렵기만 한 책처럼 보아도 쉽게 와닿지 않는 영화가 있다.   도이칠란트 사람인 베르너 헤르조크 감독이 1972년에 만든 <아귀레, 신의 분노 Aguirre, der Zorn Gottes / Aguirre: The Wrath of God>는 쉽지 않은 영화다. 헛된 꿈을 꾸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천천히
"황금의 땅 '엘 도라도'를 찾아가는 길...[아귀레, 신의 분노]" 내용보기

1.

그냥 술술 읽히는 책처럼 보기 쉬운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고 어렵기만 한 책처럼 보아도 쉽게 와닿지 않는 영화가 있다.

 

도이칠란트 사람인 베르너 헤르조크 감독이 1972년에 만든 <아귀레, 신의 분노 Aguirre, der Zorn Gottes / Aguirre: The Wrath of God>는 쉽지 않은 영화다.

헛된 꿈을 꾸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천천히 미쳐가는 사내의 모습을 그렸다.  

 

2.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1519년에 병사 600명을 이끌고 멕시코 베라크루즈에 올라 아즈텍 왕국을 무너뜨렸다.

스페인은 다시 피사로를 보내 남아메리카 쪽 잉카 왕국을 차례로 쓰러뜨리는데, 

1560년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마존강의 기슭에 닿았을 때 원시림이 펼쳐진 곳에 이르렀다.

 

대장인 피사로는 병사들에게 말한다.

"먹을거리도 다 떨어져 가고, 땅은 더 험악해졌다. 이러다간 사람이 사는 곳에 닿기 어렵다. 

계획을 바꿔 마흔 사람이 뗏목을 타고 가서 먹을 것과 원주민을 찾고,

황금의 땅 '엘 도라도'가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수색대는 이레 안에 돌아와야 하며, 안 오면 길을 잃은 것으로 알고 두고 간다고 미리 말한다.

(그런데 피사로는 1548년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 열두 해가 지나 영화 속에서 나타날 수가 없다고 한다.) 

수색대의 대장은 귀족인 돈 페드로 드 우루수아(루이 구에라)가 맡고,

부대장은 돈 로페 드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한테 맡겼다.

 

3.

원주민들이 지어낸 황금의 땅 '엘 도라도'를 찾아 나선 스페인 수색대는 강을 따라 간다.

흙탕물이고 물살은 빨라 뗏목 가운데 하나는 소용돌이를 만나 꼼짝도 못한다.

더 나아가지도 못 하고, 뒤로 가지도 못한 채 빙빙 돌다가 끝내 그 뗏목에 탄 사람들은 다 죽게 된다.

마치 수색대의 앞날을 미리 알려주는 듯하다. '엘 도라도'를 찾지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일이 풀리지 않자 수색대장인 우루수아는 돌아가자고 아랫사람들한테 말한다.

그런데 부대장인 아귀레는 콧방귀를 뀐다. 끝내는 힘으로 우루수아를 가둔다.

 

"우린 피사로가 없어도 이 땅을 정복할 수 있어!

코르테스는 돌아오라는 명령을 어기고 멕시코로 가서 땅을 빼앗았어. 그래서 큰 돈을 벌고 이름도 났어.

엘 도라도를 찾으면 우리 모두 돈과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어리석은 귀족인 뚱보 돈 페드로 드 구즈만(피터 베링)을 다시 수색대장으로 뽑는다.

그런데 구즈만은 한 술을 더 떠서 아예 황제로 부르도록 한다.

이제 스페인을 벗어나 제 마음대로 이 땅에서 황제 노릇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아랫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아귀레가 있으니 그의 꼭두각시밖에 더 할 게 없다.

 

4.

영화를 보면서 놀란 대목이 있다.

우루수아가 죽은 뒤 아내인 도나 이네즈(헬레나 로조)가 보인 모습이다.

아름답게 잘 차려 입고는 강가의 원주민 마을의 숲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숲만 보고 걸어가는데 앞 모습이나 뒷 모습이 그렇게나 당당할 수가 없다.

 

저 숲에 들어가면 원주민한테 무슨 짓을 겪을지 모르는데도,

목숨을 버릴 생각이었으므로 아귀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온갖 욕이라도 내뱉으며 갈 수 있을 텐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걷기만 한다. 사내도 할 수 없는 몸짓이다.

본디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 모습은 더 아름답다. 이 땅의 서글픔을 한 몸에 지고 가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안타까운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네즈한테 부끄러운 대목이다.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바꾸게 하려고 따라 간 가스파르 드 카바잘 수도사(델 네그로)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힘 앞에는 어쩔 수가 없다.

아귀레가 우루수아를 힘으로 몰아서 수색대장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

이를 나무라는 우루수아의 아내 이네즈한테 말한다. "교회는 언제나 힘센 사람의 편이라오..."

예나지나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인가 보다. 돈과 힘, 이름 앞에 꼼짝을 못하는 믿음은 있으나 마나다.

 

이젠 돌아가자며 뒤에서 쑥덕거리는 병사의 목을 댕강 자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목이 잘려진 얼굴에서 헤아리던 숫자가 끝까지 나온다. 이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혀를 차야 할지...

 

5.

그냥 지어냈을 뿐인, 황금으로 가득찬 땅인 엘 도라도를 마구잡이로 찾아가려고 애쓰는 아귀레를 맡은

클라우스 킨스키가 돋보이는 영화다. 

두툼한 입술에 큰 이빨을 드러내면서 헛된 꿈을 좇는 눈길은 영화에 딱 맞는 얼굴이다.

 

그런데 클라우스 킨스키가 왼손잡이라 칼을 오른쪽에 차고 다니는데 원주민과 싸울 때 잘 뛰지도 못한다. 

앞장 서서 칼을 휘두르며 내달리는 대장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째 이렇게 찍었는지...

게다가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갈 때 카메라에 물이 튀어 뿌옇게 보이는 것이나,

영화를 찍는 다른 뗏목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눈에 거슬린다.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고 오로지 엘 도라도를 찾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만 가는 사내.

아귀레는 그냥 영화 속에만 나오는 사람이 아니다. 

감독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도이칠란트에서 세상을 제 발 아래 두려한 히틀러를 가리키는 듯하고,

이 땅에서도 일만 잘 하면 된다며 백성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밀어붙이는 푸른 기와집 임자 같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혼자 꿈을 꾸다가 그냥 깨면 다치는 사람이라도 없을 텐데,

제가 꾼 헛된 꿈을 같이 이루자고 미친 듯이 덤비는 탓에 여러 사람들이 혼쭐이 난다.

나로서는 반겨주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을 영화로 그려낸 감독의 솜씨는 그저 부럽다.

 

프랑스 사람인 장 피에르 멜빌 감독같이 베르나 헤르조크 감독의 이 영화도 말이 적다.

아버지를 따라 나선 열다섯 살의 플로레스는 두 마디쯤 내뱉고는 끝이다. 일어나는 일을 쳐다보기만 한다.

우루수아의 아내인 이네즈도 마찬가지다.

아귀레가 우루수아를 막 대할 때 한 마디 하고, 플로레스와 한 마디 하고는 끝이다.

 

6.

아무리 대포와 말, 총, 칼을 가진 스페인 군대라 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잘 싸울 수 없다. 

강가의 아마존 원주민들이 야금야금 화살과 창을 날리는데 무슨 수로 버티랴.  

강은 길기만 하고 먹을 거리는 모자라며 엘 도라도는 보이지도 않는데...

 

아귀레가 뗏목 위에서 혼자 울부짖어 보았자 헛된 꿈은 한 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나, 신의 분노는 내 딸과 혼인하여 지구 상에 나타난 적이 없는 가장 깨끗한 왕조를 이룰 것이다...

함께 이 대륙의 전부를 다스릴 것이다...나와 함께 할 사람은 누구인가?"

 

영화가 만들어진지 마흔 해가 지난 탓에 디브이디는 만날 수 있는 것만 해도 반가웠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디브이디 화면이나 소리는 괜찮다.

덤으로는 예고편밖에 없어 텔리비전을 보는 것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아쉽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영화를 만들 때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b******g 2011.02.10. 신고 공감 4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