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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으로 정해진 남자를 만나야한다고 믿는 운명론입장의 여자 vs 별다른 선택이 없는 할일없고 시간많은 백수입장의 남자 1978年 5月 16日 밤 11時 생인 '사주팔자四柱八字'인 남자였었던 것이다. 이 승원은 과거 경마장에서 기수로 활약하다 현재는 특별히 일을 하지 않는 '백수'건달같은 존재였다! 반면 태랑은 서울의 잘나가는 청담동에서 '사주까페'를 운영하는 '보살(무당)'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부富와 명예를 누리는 성공한 '사업가'같은 커리어 우먼이었다! 백수와 보살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지만, 이 능력많은 보살은 백수에 '대시'아닌 '대시'를 하게 되고==자신이 신봉하는 '사주팔자'의 남자였기에 외모ㆍ능력가릴 것없이 '매달려야는' 자의반타의반의 결정==얼떨결에 굴러온 '호박넝쿨'에 약간 당황한 백수는 그나름대로 연애에 응하게 된다. 적극적인 여자와 소극적인 남자의 '스토리'....이렇게 태랑은 무당으로서 성공은 뒷전으로 한 채, 자기가 바라는 '사주팔자'를 가진 남자와의 연애에 집착하게 되고, 대부분의 여자와 남자들이 연애가 그렇듯이 서로의 실제 모습에 환호와 실망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그러나 승원의 본가에 방문하게 된 태랑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와의 '결별'을 택하게 된 것은 승원이 바로 1978年 5月 16日 밤 11時 생인 '사주팔자'가 아닌 같은 해 다른 날짜 다른 시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였다!! 승원의 아버지('양택조')의 말로 원래 1978년 한겨울에 태어났는데 그 '사주'가 되면 풀린다는 무당 말을 듣고 출생신고를 '거짓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운명을 믿고 따르려하던 '여자'와 첫눈에 반해 자기 능력과 걸맞지 않은 '퀸카'를 바라고 있던 '남자'는 애초부터 부자연스러웠으며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산물이었고 불가능한 '러브스토리'였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태랑이 운명을 하나의 공식으로 생각치 않고 운명이 변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된다는 식으로 자세를 바꾸면서 이 두 어색 '남녀' 커플의 화해가 성립된다. 개연성면에서 본다면 두 남녀 커플은 러브스토리에서 보이는 열렬한 동기,특별한 과정,엇갈린 운명등의 요소는 결여된채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끌고 있는 형국이라서 좀 어색해 보이는 듯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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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했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녀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용기만 필요한게 아니라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의욕만 앞선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조건을 충족시킨 상태에서 발휘하는 용기만이 진정한 용기로 인정받을 수 있는게 현실이다.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용기부터 낼게 아니라 다른 조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용기를 발휘해야만 한다. 그게 순서다.
물론 그러지 않고도 미녀를 차지한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주위의 수근거림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남자가 능력이 좋나 보다고 하는 말이 대표적이다. 그 능력이란게 재산이나 교양 혹은 지식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육체적인 힘을 말하기도 한다. 여자를 만족시켜 준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리고 또 있다. 운명적인 상대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산이나 교양 혹은 지식 뿐만아니라 육체적인 힘이 없어도 미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하기 때문이다. 거부할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고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수 밖에는 없다. 흔히 말하는 팔자란게 그런것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에서 찌질이 역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가 바로 임창정이다. 가수로도 활약하며 11집까지 출시한 중견 가수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의 임창정은 순정남 보다는 찌질남이 어울리는 캐릭터의 소유자다. 그가 지난해 이맘때 박예진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가 '청담보살'이었다. 강남에서 잘 나가는 처녀 무당 태랑이 볼품없는 남자 승원을 만나면서 꼬여가는 모습을 그렸다. 무당으로서 "꼬인 팔자 풀어준다"는 태랑이 정작 자신의 꼬인 팔자는 어쩌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를 코믹하게 그렸었다.
예쁘고 실력있는 태랑의 입장에서 보면 그 운명이라는게 악몽과도 같겠지만 백수에 별 볼일 없는 승원의 입장에서 보면 운명이란게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게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운명이 맺어준 배필로 받아들이고 팔자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거부하고 과감히 팔자를 개척할 것인가. 만일 현실이라면 전자를 택하는 여성보다는 후자를 택하는 여성이 대부분이겠지만 영화는 언밸런스한 두 사람을 커플로 맺어두고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들을 만들어 간다. 정신 병원에 입원해있는 태랑의 엄마(김수미)가 승원을 보고 "여보, 어디갔다 이제왔져?"라며 부부상봉을 감격해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그 중의 하나다.
영화에서 승원을 자꾸 밀어내기만 하던 태랑이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그의 순수한 마음과 진심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다분히 신파적인 이 결론은 모두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 헤어질듯 하다가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면서 끝을 맺게 된다. 결국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찌질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미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결론인 것이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가진게 없으면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거니와 용기를 낸다고 하더래도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도 운명이라면? 도저히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고 도망갈래야 도망 갈 수 없는 운명으로 연결된 상대라면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기대를 안고 살아갈 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안된다고 미리 포기하기 보다는 될거라는 믿음으로 사는 편이 훨씬 마음도 편하고 당당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같은 마법은 그런 당당함을 통해서 일어나게 될테니 말이다. 영화가 주는 교훈도 바로 그 점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