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누스 푸디카 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시집을 샀다
* 표제시를 읽고 비너스를 주제로한 그림들을 찾아 보기도 했다 아름다웠다
*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련하달까
* 시집 디자인 훌륭하다
*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사랑, 이라고 믿었지만
* 어떤 여름은 영원 속을 지나간다
* 있어야 할 빛과 모르고 태어나는 빛은 어떻게 섞일까 |
|
![]() 그러고보니 하안동을 아는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차라리 옆에 밑바닥을 기어다니던 독산동을 아는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은 있더만, 어중간하게 가난해서 그랬는지... 아무튼 친가가 거기에 있어서 옛날 대학 다닐 땐 자주 들르고 했다. 거기서 이불 털다 자살하려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동차에 머리부터 박힌 사람 눈동자도 봤고, 교복 입은 채로 놀이터에서 검은 비닐봉지로 본드를 흡입하는 듯 하다가 경찰서로 끌려간 청소년도 봤다. 옛날엔 눈치가 없어서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했는데, 전전전전남친은 자기도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죽고 싶다며 허세를 떵떵 부리더라. 실습 같이 하던 학생들은 믿어주질 않았고. 그나마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던게 첫사랑이었다. 비행기 정비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오토바이에 탄 두 커플이 육교 다리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헬멧 덕분에 골절만 입은 것 같았지만, 여자는 헬멧을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뒤로 날아가 머리부터 떨어졌고 뇌수를 쏟았다 한다. 그걸 평지에서 정면에서 목격한 자신은 사흘간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나. 그녀는 당시 안양 1번가 부근에 살고 있었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건 지지리 가난한 지역에서 살았다는 징표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 유달리 이별에 관련된 시가 많다. 사람은 살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이별의 기억이 강렬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 웃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건 상대방 본인의 기억력 문제. 헤어질 때까지 웃는 얼굴을 보여달라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 이 시만 읽으면 되게 감성적이란 느낌이 있는데, 이 전에 가라앉은 방이라고 되게 노골적으로 세월호와 촛불시위에 대해 가차없이 쓴 시가 있어서 지금 너무 무섭다;; 그나저나 관점이 굉장히 특이한데, 시인은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지 않을 거라면서 그걸 이슈화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었으나 학생들이 당한 고통에는 매우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구제역에 대한 시도 올려져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채식과 관련된 시를 쓰는 시인도 흔치 않을 듯 싶다.
![]()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시 하나 올려본다. 하이바네 연맹은 현재 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보자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비슷한 점을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
|
*Venus Pudica. 비너스상이 취하고 있는 정숙한 자세를 뜻하는 미술용어. 한 손으로는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음부를 가리는 자세를 뜻함.
때로는, 가슴 깊이 느껴지는 아픔들이 있어. 그 아픔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니,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그저, 그 상처를 살짝 쓰다듬어주기만 할게.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면 말이지.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 견디지 못하면 / 지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 증발하는구나 // 후에 책상 위에서 하는 몽정이 시, 라고 생각했다가 /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 사랑, 이라고 믿었지만 // 일곱살 옥상에서 본 펄럭이는 잠옷만큼은 / 무엇도 더 슬프진 않았고 //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 나는 모든 면에서 가난해졌다" - <베누스 푸디카> 일부
그래, 마음의 가난도 가난이지. 그 슬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겠지만, 그래도 살짝만 말해줄 수 있을까. 너의 아픔을. 그러면, 조금이나마 네 마음의 짐이 덜어질 테니까.
"시계추에 매달려 도망가는 리듬 // 높이를 낚아챈 비행선 // 가볍게 흘러내리는, 레이스 // 오늘 행운이 찾아왔다면 // 열지 마세요 / 열릴 거에요" - <고양이> 일부
그래, 재주를 넘듯이 조금만 열면 좋으련만, 굳이 열기 위해 애쓰지 않을게.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아 / 얼굴을 내밀어보렴 / 수면 위로 / 수면 위로 // 네가 // 떠오른다면 // 나는 가끔 눕고 싶은 등대가 된다" - <서랍>
네게 나도 등대가 될 수 있다면. 네가 가는 길이 위험하지 않도록,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
"잘리지 않았다면 걸을 수 없었을 / 유년 // 몸을 밀치고 태어나는 다리들 / 수줍고 냄새나고 미끄러운 // 빠져나가는 / 분사되는 / 흡수되는" - <베누스 푸디카 2 - 비밀의 자세> 일부
그래, 수줍고 냄새나고 미끄러운 것들이 빠져나가고 분사되고 흡수되는 기적 같은 일이 너에게 일어나고 있지.
"내가 귀신이었을 때 / 보았니 // 밤을 틀면 쏟아지는 잡음들 / 사이에서 수를 놓다 / 까무룩 잠든 혼령들 // 어둠 속에서 실패에 실을 감으면 / 고개를 뱅뱅 돌리며 구경하다, 시뜻해져 / 없는 발을 비비며 / 없는 목을 떨구며 / 한시간 두시간, 자고 갔단다" - <내가 귀신이었을 때> 일부
그래, 그런 일도 있었구나. 너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그게 첫 동굴이었지 // 스물아홉의 젊은 아버지가 술 취해 나를 찾고, / 나는 다섯살 // 신은 내게 이불을 덮어주고 사라졌다 / 울면서, 남자는 아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지만 // 나는 웅크린 채 아늑했지 / 그러고는 주문을 걸었다 // 당신은 결코 나를 가질 수 없을 거예요 / 미끄러운 건 쉽제 잡히지 않으니까요 / 나는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 <베니스 푸디카 3-기억의 탄생>
너의 마음을 보여줘서, 너의 마음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이제 비로소 네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 같아서, 기쁘다고 해야 하나.
"당신이 꽃을 주시는데 / 테이블에 던져놓고 잊어버린 밤 // 사라진 것은 밤이 아니라 빛의 다른 이름이다 // 일회용 컵 뚜껑을 깨물다 / 입술을 베인다 / 가벼운 것에 베이면 상처가 숨는다 / 틈으로 들어오는 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 허공을 더듬는 거미의 열기인지 / 허방, 이라는 계단인지" -<발등에 내리는 눈> 일부
세상에 나온 너의 혼란, 그래 그렇게 시작되겠지. 너의 절망 극복기.
"봄의 식물들은 기다리는 게 일이다 / 자기 순서를 // 날아가는 새의 힘 뺀 발등 / 그 작게 뻗은 만세, / 아래로 / 날들이 미끄러진다 // 소복이 쌓이는 새봄" - <증발 후에 남은 것>
새봄이 왔어. 너는 잘 견뎌왔고, 잘 자라왔어. 너는 앞으로도 모든 걸 잘 극복할거야. 네가 가는 길은 험난하겠지만, 네가 가는 길가에 핀 꽃 때문에 네 마음은 평온할 거야. 오늘 아침, 태양은 보이지 않지만, 신선한 공기가 나를 반기네. 너도 이 공기를 마음껏 느껴봤으면 좋겠어. 조금 있으면, 햇살이 너를 따스하게 내리쬘 거야. 그 햇살을 마음껏 느껴 보겠어? 네 마음이 느껴질 때까지.
|
|
신미나*박연준 시 낭독회
詩누이_신미나 베누스 푸디카_박연준 그리고 유희경
사연을 읽고, 그 사연에 대한 시인님의 생각과 조언을 듣고, 그 사연을 보내준 이에게 들려줄 시를 읊는다. 그리고 시인님의 추천곡이 나오고 자유롭게 쉰다. 이런 형식의 시 낭독회는 처음인데, 마냥 어려웠던 시가 사연과 함께 하니, 시인이 그 시를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그리고 사연을 보내준 이에게 그 시를 왜 들려주고 싶은지... 알 수 있었고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시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시...라 하면 어렵고 무겁고 정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이번 시 낭독회는 팟캐스트 형식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때론 찡하게 진행되어서 "시 낭독회"에 대한 여러 가지 어려운(?) 부담스러운(?) 경직된(?) 마음들이 좀더 편안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다섯 가지 사연들, 그리고 열 편의 시. 신미나 시인과 박연준 시인이 읊어준 시들 모두 좋았다.
꺾은 꽃이 아까워서 손에 쥐고 있었는데 줄기가 미지근하도록 오래 쥐고 있었는데 왜 여태 그걸 버리지 않았냐고 했다
신미나_무르다는 말 중에서
도망가봤자 소용없어, 아름다운 그늘!
박연준_술래는 슬픔을 포기하면 안된다 중에서
|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7.25. 노래책시렁 505 《베누스 푸디카》 박연준 창비 2017.6.19. 남들이 안 쓰거나 모를 만한 어려운 낱말을 골라서 슬쩍 넣어야 ‘글’이라고 여기는 분이 꽤 있습니다. 워낙 중국글을 받아들이던 지난날부터 ‘글’이란 “어렵게 꼬아서 아무도 못 읽도록 감춘 그들잔치”이곤 했습니다. 중국글만 ‘글’로 삼던 그들(남성가부장권력·마초)은 아예 중국글을 ‘수글’이라는 이름으로 자랑했습니다. 훈민정음이 태어났어도 훈민정음은 ‘암글’일 뿐이요, 순이(여성)는 수글(중국글)이 아닌 암글(훈민정음)만 익히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베누스 푸디카》를 읽는 내내 우리는 아직 지난날 ‘그들잔치’를 고스란히 이으면서 글담을 쌓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저 삶을 노래하면 될 텐데, 자꾸 어려운 중국글이나 일본글이나 영어를 끼워넣어야 하나요? 그대로 살림을 노래하면 넉넉할 텐데, 구태여 먼나라 그들잔치를 채워야 하는가요? 발을 바로 이 땅바닥에 붙일 적에 삶이 태어나고, 이 삶을 그리는 말이 깨어납니다. 수글도 암글도 모르는 채, 종이에 붓에 먹에 벼루도 까맣게 모르는 채, 그렇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볼 줄 알던 지난날 수수한 흙지기 숨결을 가만히 살리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오늘사람’을 찾지 말아야 하려나 궁금합니다. 말을 잊거나 등진 곳에는 노래가 없이 ‘틀’만 있습니다. ㅍㄹㄴ 곧, 곧, 들릴 것 같은데 / 회색이 될 것 같은데 / 다하기 전에는 움직일 수도 없는데 // 붉은 궤적을 따라 신경이 쏟아지고 / 주황, 아니면 빨강이겠구나 너는 / 막돼먹은 바람처럼 달렸겠구나. (침대/16쪽)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는데 대관절 / 아름답게 죽은 별이란 게 무슨 소용일까? / 살아나면 어쩌지 / 이 많은 생의 궁극들, / 피어나면 어쩌지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37쪽) 꿈속에서 아버지가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흠향歆饗/44쪽) + 《베누스 푸디카》(박연준, 창비, 2017)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 내 일곱살 샅 → 내 일곱살 밑 10쪽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래지는 생각 → 버드나무 밑에서 길어가는 생각 → 버드나무 곁에서 긴긴 생각 14쪽 허방과 실패로부터 도망가는 지네의 붉은 등 → 허방과 쓴맛을 달아나는 붉은등 지네 14쪽 허밍으로 비밀을 발설하는 무희들 → 콧노래로 속내를 들려주는 춤아씨 → 입술노래로 숨은말 하는 나풀꽃 22쪽 먹이를 발견한 짐승이 세상을 압인(壓印)하는 동작으로 → 먹이를 찾은 짐승이 둘레를 찍어누르듯이 → 먹이를 본 짐승이 온누리를 내리누르듯이 28쪽 밤의 이적수(耳赤手)로 죽음에 성공한 귀신들 → 밤이 살려서 죽어버린 깨비 → 밤이 도와서 죽은 도깨비 37쪽 여기가 백회(百會)인가, 무구한 풀들이 모여 기도하는 백회인가 → 여기가 온빛인가, 고운 풀이 모여 비는 온빛인가 → 여기가 빛인가, 깨끗한 풀이 모여 비손하는 빛인가 46쪽 시작도, 선언도, 기억도 없이 깊어진 것들 → 처음도, 말도, 생각도 없이 깊어간 길 50쪽 봄의 식물들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자기 순서를 → 봄풀은 제자리를 기다린다 → 봄꽃은 제때롤 기다린다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