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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박사 과정 중퇴자의 빈곤 운동 [덤벼라, 빈곤]
"도쿄대 박사 과정 중퇴자의 빈곤 운동 [덤벼라, 빈곤]" 내용보기
서민경제라는 말.   정치인들은 서민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말한다. 도대체 서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돈이 그닥 없는 평범한 사람을 말하는 거다. 서민 경제라는 말이 등장한 것부터 이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서민이 아닌 돈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나빠지지 않았고, 서민만 죽어 나고 있다. G20로 인한 경제 효과가 몇 십조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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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라는 말.

 

정치인들은 서민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말한다. 도대체 서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돈이 그닥 없는 평범한 사람을 말하는 거다. 서민 경제라는 말이 등장한 것부터 이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서민이 아닌 돈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나빠지지 않았고, 서민만 죽어 나고 있다. G20로 인한 경제 효과가 몇 십조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 효과를 서민들이 누릴 수 있을까?

 

<덤벼라, 빈곤>은 동경대 법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다, 중퇴한 유아사 마코토 라는 일본 빈곤 운동 활동가가 쓴 책이다. 저자는 지금의 사회는 의자 뺏기 게임이라고 비유를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의자를 차지 해 앉으려고 아둥바둥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의자 수는 점점 줄어든다. 소수만이 의자를 앉을 뿐이다. 하지만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더 열심히 할걸'

 

몇년전 김수행 선생의 강연회에 간적이 있는데, 공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자리가 없어서 여러분이 청년 실업이 심화 된 것이니, 청년인 여러분들이 잘못한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취업이 안되는 일은 꼭 내 책임인 것만 같다.

 

하지만, 모두들 알다 시피 출발점이 다르다. 유아사 마코토는 이런 출발점을 밑천이라고 표현한다. 크게, 돈, 마음가짐, 인간관계 거기에 각자가지고 있는 능력을 밑천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것들에 의해 우리가 높은 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가 이렇게 자본가에게 죽어 나는 현상황은 NO라고 하지 않기 떄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두들 NO라고 주장하지 못하니 점점 임금이 낮아 진다는 것. 그래서 빈곤은 점점 악순환으로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빈곤도가 높으면 국민경제가 건전하지 못하다. 누가 소비 할 것인가? 안정 없는 사회에 활력도 없다.

 

그럼 유아사 마코토의 해결책은 뭘까?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자신의 이익을 남들에게 말하고 서로 발언을 해가며 이익을 조정하라는 것이다. 못 살겠다고 대중앞에서 말하고 시스템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 그것 까진 알겠는데, 사람들을 어떻게 말하게 하지? 거기까지는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두들 겁을 집어 먹고 개인에 몰두해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시스템을 바꾸려고 서로 모여서 조직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손석춘도 말했고, 우석훈도 말했다.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게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세상이 바뀔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냉소주의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떠도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바뀔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냉소적이거나 겁을 너무 집어 먹고 있다. 혼자 하지 말고 조직하라는 것이 정답인것 같은데,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수 있게 만들며, 겁을 집어 먹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YES마니아 : 로얄 b*****y 2010.10.2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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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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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놀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잽싸게 앉아야 한다. 의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게임의 패배자들은 점점 늘어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의자 뺏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은 10명인데 의자 갯수는 9개다. 10사람 모두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한 명은 의자를 차지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점점 더 심해져 의자는 5개고 사람은 10명이다. 아무리 노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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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놀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잽싸게 앉아야 한다.

의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게임의 패배자들은 점점 늘어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의자 뺏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은 10명인데 의자 갯수는 9개다.

10사람 모두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한 명은 의자를 차지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점점 더 심해져 의자는 5개고 사람은 10명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5명은 패배자가 되는 구조다.

이런 현상이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심해진다.

 

이젠 쓸만한 의자는 1~2개 뿐이고 나머진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의자가 5~6개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언제 의자를 빼앗아 가버릴지 모른다. 비정규직이 우리나라는 남자가 49.8%, 여자는 63.5%다. 게다가 정규직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압력을 가해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대기발령을 낸 다거나 지방으로 발령 내는 형태로 말이다.

 

갈수록 직장에 충성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충성하지 말고 충실하라고 한다. 자기계발서들이 대 인기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건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인 것 같다. 지금도 힘들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자기계발서를 보면 더 그렇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했다고? 더 열심히 해야지. 네가 한 건 열심이 아니야.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쓸 때 쓰면 언제 부자 되고 언제 성공하냐? 잠을 줄이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나를 위해 투자를 해야지.

 

다 좋다. 다 좋은 말이고 실천하면 약이 될 것이다. 근데 이마져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적어도 3년은 가난하더라도 먹고 잠 잘 곳은 있어야 한다. 근데 이마져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빈곤층이라 말하는 이들이다. 빈곤층을 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산 입에 거미줄 치고 있는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라고 말한다. 뭐라도 하면 먹을 수 있고 잠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는 건 오직 그들 개인의 책임감 부족 때문이라고...

 

빈곤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단순히 돈이 없는 건 그냥 가난한 거다. 빈곤하다는 것은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나 '할 수 있다'는 밝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킨다. 갖기 어려운 상태라는 거다.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들이라곤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이라고 열심히 해 보려 하지 않았겠는가. 했는데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거듭된 실패에 좌절했고 더이상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빈곤층이 된 것이다. 빈곤층을 봤을 때 우리가 봐야 하는 건 지금 상태가 아니라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역사다. 때문에 사회가 동아줄을 내려줘야 한다.

 

중산층 이상으로 풍요롭게 자라 도쿄대 법과대학을 나온 저자는 말한다.

 

밑천이 적은 사람이 100의 노력을 해서 이루는 것과 밑천이 많은 사람이 100의 노력을 해서 이루는 것은 결과의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노력의 양은 똑같다.

 

우리는 결과만 보고 노력의 양은 애써 무시한 건 아닐까. 결과만 보고 넌 노력이 부족해, 책임의식이 그렇게 부족해셔야, 이러면서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버린 건 아닐까.



n****5 2012.05.08.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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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놈의 사회 구조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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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게을러서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분명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다시 말해, '토목건설' 붐이 일어나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금새 부를 축적할 수 있을 만큼 벌 수 있었던 '경제호황 시대'에는 틀림없이 그랬다. 부지런히, 성실히, 열심히만 살면 돈이 넉넉해졌고, 그 돈을 모아 호화롭지는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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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게을러서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분명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다시 말해, '토목건설' 붐이 일어나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금새 부를 축적할 수 있을 만큼 벌 수 있었던 '경제호황 시대'에는 틀림없이 그랬다. 부지런히, 성실히, 열심히만 살면 돈이 넉넉해졌고, 그 돈을 모아 호화롭지는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예전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하였으며, 진짜 쉴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넉넉한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분명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예전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서 좌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아졌다. 특히 요즘에는 더욱 더...

 

  이 책을 쓴 이는 그 원인을 <의자 뺏기 놀이>로 빗대었다. 참가한 이가 모두 10명이라고 치자. 다양한 성격과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처음에는 의자가 8개 놓여 있다. 그들은 노래가 들리는 동안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고, 놀이를 진행하는 사람의 구령에 맞춰 재빨리 능력 껏 자리를 차지해 앉는다. 그렇게 2명이 탈락한다. 그러다 차츰차츰 '의자 갯수'는 줄어 들고, 마지막 한 사람이 우승을 차지하는 그런 놀이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10명 가운데에서 8명이 의자를 차지하고 나머지 2명이 탈락하였다면, 그 탈락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떨어졌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능력이 뒤떨어진, 다시 말해, 게으르거나 조금 더 부지런 떨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볼 것이다. 그렇지만 '의자 갯수'가 점점 줄어 들어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탈락하는 사람들도 역시 게으르고 부지런하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일까? 8명 가운데 5명만이 살아남는 것, 또 5명 가운데 2명만이 살아남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2명 가운데 1명만 살아남는 것에서도 탈락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에 비해 얼마나 무능력하길래 탈락하고 만 것일까?

 

  자, '의자 갯수'를 '안정적인 일자리(정규직)'로 바꾸어 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 그런 마당에 1등과 2등, 아니 3, 4, 5등까지도,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 6, 7, 8등까지도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 보아도 더 실력이 월등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직 1등만이 살아남고, 2등부터 8등까지는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한 채 '안정적인 일자리'는커녕 길거리로 내몰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일자리(비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심지어 아르바이트 등등)'를 전전하게 된다. 이른바 <무한경쟁 시대>의 씁쓸한 모습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하긴 우리 나라만 이런 모습이지는 않다. 온누리가 <세계화>란 이름으로 '글로벌 경쟁 체제'를 구축하고서 상대를 짖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짖밟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기에, 우리만 고상한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송을 탄 첫 꼭지부터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으나, 이명박 정부의 외압 때문이었는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때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한 개그맨이 외쳤던 취중진담이 온 국민을 웃기게 만들었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한마디가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해주었기에 속이 다 후련하여서 아낌없이 박수를 쳤노라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죽자살자 열심히 노력하지만, 오직 1등만이 빛을 보고 그 나머지는 어둠 속으로 내몰리고 만다. 과연 이런 사회에 밝은 미래,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글쓴이는 말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따위를 좀 바꾸어서, 예전처럼 열심히 한 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 즉, 누구나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보자고 말이다. 그래야 좀 살맛이 나지 않겠냐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뒤에는 이런 희망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서술하였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공감이 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 공감하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누구라도 자기가 바라는 세상, 원하는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들어줄 수 있는 너그러운 또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회 풍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내 맘에 쏙 들지 않고, 불만인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 다 가지고, 또 누리고 사는 데, 나는 왜 무엇이 모자라서 가지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가 말이다..라는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그런 불만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한다. 왜냐면 그런 불만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걸 꼭 말로 표현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차에 그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라도 나올라치면, 뭘 그까짓 것으로 유세를 떠냐고 핀잔만 들을 뿐이고, 자신은 더 심한 처지에 몰렸는데도 잠자코 있으니 어서 찌그러지라고 구박 받기 십상이다. 이렇게 경직된 사회에서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으며,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까? 그저 불만만 가득한 채, 바꾸려는 시도조차 상실하고서 꾸역꾸역 버틸 수밖에 없다. 설령 사람이 죽어나가더라도 눈길조차 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경직된 사회가 문제라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고작 <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바뀔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글쓴이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쉽사리 바뀔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꾸준히 <제 목소리>를 내고, 또 들은 준비가 되어 있으면 세상은 반드시 원하는 쪽으로 바뀌기 마련이라고 강조하였다.

 

  공감한다. 또 바뀔 수 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허나 왜 동해바다에 돌맹이 하나 던지면서 언젠가는 바다를 메울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일까? 분명 이 책을 읽고서 내 '실천의지'가 샘 솟는 것을 느낀다. 할 수 있다는 의욕도 넘친다. 그런데 왜 그런 상상이 떠올라 힘이 쭉 빠지고 마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게 남은 <젊음>이 사그라져 가고 있기 때문일까? 나이를 먹어야만 생긴다는 <연륜>이 내게 남은 패기와 열정을 사그라지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 관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인 걸까?

 

  이 책은 일본인이 썼으며, 일본의 현실과 오늘날에 대해서 진단한 책이다. 허나 '일본'을 '대한민국'으로 바꾸어도 그닥 어색함을 찾아볼 수가 없는 책이다. 거기에 우석훈 교수는 글쓴이 유아사 마코토가 '도쿄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서도 '빈곤 퇴치 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다면서, 우리 나라로 치면 '서울대 법학부 졸업생 출신' 박사님이 출세길을 멀리하고 '운동권'으로 활약한 셈이라며 글쓴이를 높이 평가하였지만, 적어도 난 그 따위 것에는 전혀 관심 없다. 다만 글쓴이의 외침이 나의 생각과 일치함에 반가움을 느꼈을 뿐이다.

 

  암튼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임을 밝혀주는 책이라서 '빈곤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휴~그래 내가 가난한 것이 내 문제만은 아니었어...라는 위안을 주는 책이었다. (--)썩을...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2.05.03.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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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빈곤: 우리 사회의 빈곤에 맞서는 통쾌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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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전 전 잡지 "PAPER" 신간 코너에 소개된 책인데 굉장히 호평을 했기에 꼭 한 번 읽고 싶어서 리스트에 넣어 두었다. 구입할 기회가 없어 못 읽고 있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구입하고 싶은 책 신청할 때 같이 신청했더니 이번에 들어왔다. 이미 누군가 읽고 있었는지 책 표지가 중간에 꼽혀 있었다. 생각난 김에 빌려서 금방 읽기 시작했다.   저자 유아사 마코토는 도쿄대 법학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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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전 전 잡지 "PAPER" 신간 코너에 소개된 책인데 굉장히 호평을 했기에 꼭 한 번 읽고 싶어서 리스트에 넣어 두었다. 구입할 기회가 없어 못 읽고 있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구입하고 싶은 책 신청할 때 같이 신청했더니 이번에 들어왔다. 이미 누군가 읽고 있었는지 책 표지가 중간에 꼽혀 있었다. 생각난 김에 빌려서 금방 읽기 시작했다.

 

저자 유아사 마코토는 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 대학원을 다니던 엘리트였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회 문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말처럼 기본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정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지냈던 기억도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이전에 저자가 성인을 대상으로 어렵게 썼던 빈곤에 대한 책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쓰려고 노력한 책인 것으로 보인다. 빈곤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성인이 읽기에도 무난한 듯하다. 아니 그냥 성인이 읽어도 전혀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서도, 쉽게 풀어 썼기에 술술 잘 읽힌다.

 

저자는 '가난'과 '빈곤'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면 가난= 절대적 빈곤, 빈곤= 상대적 빈곤 으로 범위가 좀 다르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가난이 생존에 위협이 될 정도로 최소한의 물자조차 부족한 상태라면 저자가 줄곧 이야기하는 빈곤은 사회 구조 문제 때문에 그 사회 안에서의 타인과의 상대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이라고 나는 정리했다.

 

아무튼 저자는 노숙인들과 생활하면서 위의 두 개념을 분명히 구분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풍경이듯, 어떤 사람은 빈곤은 본인이 게으르기 때문이므로(자기 책임론) 사회 보장 제도 등을 통해 도와주는 일은 세금 낭비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 개인이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해도 사회 모두는 불필요한 긴장과 경쟁 상태에 빠졌으면서도 대다수가 빈곤 상태에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전자와 같은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후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한다. 해제에서 우석훈님도 쓰셨듯 이 책의 입장은 빈곤의 원인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는 "88만원 세대"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NO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되면 노동 조건이 너무 열악한 곳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게 된다. 즉, 노동 조건 악화에 제동이 걸린다. 그러면 빈곤이 줄어들고,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노동자 또한 줄어들게 되어, '빈곤의 악순환'을 뿌리까지 잘라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체의 노동 조건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110쪽

나는 교사이니 교사에 대한 이야기만을 할 수 있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이고 복지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직업군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할까봐 말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을 것 같다. 요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정주행하면서 부쩍 우리 사회는 교사를 점점 정서 불안으로 만드는 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실수에도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쉽게 말해 교사를 점점 찌질하게 만든다. 그리고 '너희는 안정적이고 복지가 비교적 잘 되어 있으니 더 안 좋은 사람들을 보며 입 다물어라'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각 직업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직업의 고충을 가장 잘 안다는 점에서 힘들지 않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직업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만이나 어려운 점을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거나 공유하지 못하게 하고 노동자 스스로 내면화하게 하는 방식은 참 교묘하고도 위험하다.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해 모두 다 같이 보이콧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배신하고 그러한 조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부주의한 행위가 사회 전체의 노동 조건을 열악하게 하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학교, 대학원에 다닐 때 '시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명쾌하게 정의하기 참 애매한 구석이 있고, 실제로 "시민교육의 역사"라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을 만큼 시민에 대한 정의는 시대, 사회에 따라 다양했다. 저자는 쉽고도 명쾌하게 아래와 같이 시민, 사회를 설명해준다.

"'시민'이라는 말은 참 독특하다. 개인을 가리키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부모나 아이는 가족 중의 개인을 칭하는 말이다. 국민은 나라 안의 개인을 가리키고, 사원은 회사 안의 개인을 가리킨다. 학생은 학교 안의 개인을 일컫는 말인데 시민은 무엇인가? 어디에 속한 개인을 가리키는 말일까?

그것은 '사회'가 아닐까? 시민이란 사회 속의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사회란 무엇인가? 시민이 만들고 누구나 살기 좋고 지내기 편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말한다. 국민이 만드는 공간인 나라나, 부모와 자녀가 만드는 공간인 가정, 학생과 선생님이 만드는 공간인 학교와도 다르다. 시민이 만드는 공간인 사회를 '시민 사회'라고 한다.

'시민 사회'는 다소 거창한 말이 되겠지만 활동가 또는 활동가다운 사람들(작은 활동가)이 모인 공간이라는 뜻도 된다...

아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성가신 자들의 모임, 시끄러운 무리가 모여 있는 것이 바로 '시민 사회'다." 196-197쪽.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와 "참여하라"라는 구호처럼 우리 사회가 좀 더 시끄러워져서 부당함, 불평등과 착취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청소년과 성인들이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활동가가 되어 해야할 말을 하며 산다면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누구나' 살기 좋고 지내기 편한 곳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자기 책임론적 질문에는 대답할 도리가 없다. 노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너무 나약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때도,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은 바닥도 끝도 없어, 자기가 부족한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문제를 끊임없이 자기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자기 책임론은 그렇게 사회에 던질 질문을 애당초 막아버린다. 겉으로 불만이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뚜껑을 꽉 덮는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질문을 자기 안으로 밀어 넣게 한다. 스스로 자기를 아프게 하도록, 의문이 밖으로 사회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봉인해 버린다.

결국 "불평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124쪽.

지난 학기에 중학교 2학년들과 서술형 평가에 대비한 모의 시험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국가가 국민에게 하는 일과 관련해서 사회 보장 제도가 필요한지 묻는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빈곤은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게을렀거나 일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상황으로 본인의 책임이니 국가에서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실패가 왔을 때 자신의 생활을 재정비하고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으면 점점 더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점, 그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점,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아지면 사회 전체의 노동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지기만 하리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사회의 경제 구조 문제로 인한 빈곤을 방치하는 일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살아야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구입하도록 신청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직업 세계에 뛰어들어야 할 청소년들이 꼭 읽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3.08.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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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개수를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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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하나는 게으르고 무능하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가난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구조적으로 가난이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후자의 논리를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여러 명 있다. 의자가 또 여러 개 있다. 하지만 사람의 비해서 의자가 부족하다. 아마 지금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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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하나는 게으르고 무능하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가난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구조적으로 가난이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후자의 논리를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여러 명 있다. 의자가 또 여러 개 있다. 하지만 사람의 비해서 의자가 부족하다. 아마 지금의 형편으로 보면 전체적으로는 사람 숫자에 반 정도 밖에 없다. 즉 열 명의 사람이 있고, 라섯 개의 의자가 있는 것이다. 누가 의자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아마 의자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즉 부모가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유리할 것이다. 의자에 멀리 떨어져있지만 의자로 달려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의자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다.

 

저자의 개인 경험인 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형이 장애인이고 그래서 일반인들이 홈쳐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이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가 빈곤 퇴치 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노숙자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공짜로 얻어 먹는 것을 싫어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들도 참여하고 기여하기를 원하지 세금을 축내는 기생충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 놀랍도록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신고용이 보장되고 그것이 일본의 특징이라고 알고 지냈지만, 일본의 경우에도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비정규직 비율과 양극화 정도가 조금 더 높다는 차이 정도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이 사회 안전망이 없는 것이다. 당장 해고가 된다면 그 밑에서 받쳐주는 안정망이 없다. 해고는 그대로 사회에서 아웃되는 것이다. 이것의 해결책이 부모나 형제 등의 가족이 되거나, 아니면 없는 것이다.

 

책을 사는 방법의 4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자기 돈으로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친구에게 빌리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학교 도서관에서 사게 만드는 방법이고, 네 번째는 포기하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쉽지만 돈이 없으면 세 번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소리를 내서 주장하고 이것을 옹호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다.

 

책 말미에 소설가와의 대담에서, 소설가가 여성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 이슈를 제기한다. 몇 가지 이유로, 여성은 드러나지 않는 문제, 끈질기게 붙어 사는 이유, 등등의 이유로 여성의 빈곤 문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우석훈 박사의 해제를 통해, 저자인 유아사 마코토가 도쿄 법학부 박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문 엘리트 출신이 빈곤 퇴치 운동에 뛰어들어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 민주당 정권 참여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실패한 사례를 들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다음 정권에 어떤 형태로 이런 운동이 벌어질까 궁금하기는 하다.

 

결론으로 이 책은 자기책임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이것을 사회책임론으로 이슈를 옮기고 있다. 즉 의자의 개수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의자 개수를 늘려야 한다.

z******g 2011.12.11.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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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기는 줄, 비정규직=지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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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줄 = 정규직, 지는 줄 = 비정규직   어릴 때 의자뺏기 게임을 한 적이 누구나 있다.  사람은 10명, 의자는 9개.  한 번 진행될때마다 의자는 1개씩 줄어들고, 그에따라 사람도 1명씩 탈락하는 게임이다.  경제는 풍요로워졌지만 여전히 빈곤층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에서 비정규직은 루저로 취급된다.  자본가와 가진자들의 게임에 노동자들이 앉을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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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줄 = 정규직, 지는 줄 = 비정규직

 

어릴 때 의자뺏기 게임을 한 적이 누구나 있다.  사람은 10, 의자는 9.  한 번 진행될때마다 의자는 1개씩 줄어들고, 그에따라 사람도 1명씩 탈락하는 게임이다.  경제는 풍요로워졌지만 여전히 빈곤층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에서 비정규직은 루저로 취급된다.  자본가와 가진자들의 게임에 노동자들이 앉을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 자리마저도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 책 저자는 도쿄대(?) 법학과(?) 출신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대(?) 법학과(?).  수재들이 가는 학교다.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국가의 최고대학 최고학과라면 상식적으로 인생은 하이퍼 고속도로쯤 생각하기 쉽다.  부와 권력의 사닥다리 위를 점령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 쉬운길을 포기하고 빈민층과 상담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저자는 빈곤에 맞설것을 주장한다.

 

비극적이지만 한국은 일본과 많이 닮았다.  프로그램 개편철만 되면 일본 프로그램을 베끼고, 법률과 제도등 일본 것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를 저질렀다.  일본이란 단어만 빼버리면, 거의 90% 이상은 한국과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수도권 중심의 블랙홀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지역, 부동산, 교육, 경제 등 대부분의 분야가 그러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빈곤층 역시 마찬가지다.  2010 6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828만명, 정규직은 833만명으로 50%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과거보다는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의 비정규직은 유럽과는 달리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심하다. 

 

도덕책에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귀천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웨덴의 청소년에게 장래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벽돌공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벽돌공은 이어폰을 통해 즐겁에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벽돌공의 임금과 대학교수의 임금차이가 별로 없다.  그래서 진짜 공부할 사람만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한다고 한다.  물론 극히 일부분의 사례를 든 것일지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한국은 끝없는 의자뺏기 경쟁을 통해 직업에 따른 임금계급이 생기는 반면 유럽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공부가 부와 계급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유일한 통로처럼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사교육비 증가를 막을 순 없다.  일본 도쿄대와 한국 서울대 신입생의 부모 직업과 소득을 보더라도 직업과 소득수준이 점차 높아진다는 사실이 증명해 준다.

 

재능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학교에 다니도록 무상교육을 제도화하고, 병원에 다닐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의 확대는 절실하다.  인내천 사상처럼 재능이 부모들의 밑천 없이도 꽃필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는 좋지만, 과연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사실 막막하다.

 

유아사 마코토처럼 활동가들이 한국에도 있다.  활동가가 될수 없다면 활동가를 지원하면 된다.  부산에도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http://happylog.naver.com/bansilup.do)가 있다.  그 외에도 시민단체는 찾아보면 많이 있다.  한달에 1만원이상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다.  작은 시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내가 담은 빗물 한방울이 모인다면 거부할 수 없는 물줄기가 될 수 있다.

 

집단지성이 모여 위키피디아를 이루었고,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가 탄생했다.  디지털 혁명시대에는 수평적 연대를 통해 익명의 집단행동이 활동가의 밑거름 역할을 해야한다.  한 두곳의 시민단체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불행이다.  그렇다고, 빈대 한두마리 때문에 초가삼간을 태울 순 없다.  내가 활동가가 될 수 없다면, 활동가를 위해 돌멩이 하나라도 옮겨야 한다.  수평적 집단연대와 행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



b******6 2010.11.02.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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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빈곤] 빈곤, 고개를 돌린다고 사라지지 않아.
"[덤벼라, 빈곤] 빈곤, 고개를 돌린다고 사라지지 않아." 내용보기
시게마츠 : 성실함만 강조한다면 너무 힘들고 괴롭잖아요. 아니, 지나치게 성실하면 나중에는 지쳐 버리지요. 그러니까 활동도 이를테면 나는 매일은 할 수 없지만 주말만 활동한다든가 하는 식이면 좋겠지요. 편안하면서도 진지하게 말이죠.     유아사 : 작은 활동가는 정말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야만 사회도 훨씬 더 품이 넉넉해질 것이고 살기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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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마츠 : 성실함만 강조한다면 너무 힘들고 괴롭잖아요. 아니, 지나치게 성실하면 나중에는 지쳐 버리지요. 그러니까 활동도 이를테면 나는 매일은 할 수 없지만 주말만 활동한다든가 하는 식이면 좋겠지요. 편안하면서도 진지하게 말이죠.

 

  유아사 : 작은 활동가는 정말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야만 사회도 훨씬 더 품이 넉넉해질 것이고 살기 좋은 사회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232p, 본문 중에서-

 

 
 

 

 

# 구조적 빈곤, 고개를 돌린다고 외면할 수 없다.

 

 

  88만원 세대, 공무원에 대한 열망, 불안한 미래. 청년들에게, 그리고 삶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빈곤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지금도 내일의 꿈을 위해서, 많은 이가 공무원 시험 및 각종 시험과 대기업, 취업의 꿈을 꾸지만..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면, 취업 컷트라인이 올라가지, 모두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의자 뺏기 게임',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적은데, 앉으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치열한 경쟁위주 사회다. 도태된 이에게는, '니가 노력하지 못해서 그렇다'라는 냉소와 '자기책임론'만을 강조하는 사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노력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 한다는 비판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빈곤은 외면되어 왔다.

 

  일본에서 빈곤문제가 큰 전환점을 맞이한 건, 도요타 자동차처럼, 대기업 파견사원이 대량회고를 당하면서, '자기책임론'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나서부터이다. 한국 역시, 서브프라임과 여러가지 문제들이 직면했을 때, 관리자와 실제 책임자는 책임을 지지 않고, 가장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구조조정 되면서, 피해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서브프라임으로 인해 취업의 기회조차 받지 못한 취업재수생들, 이때가 아니면 취업하기 힘들다는 보이지 않는 나이로 인한 장벽, 능력이면 다 된다는 사회분위기가 한국의 현실이다. 공부할 수 없는 여건에 있는 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은, 삶을 꿈꾸기보다, 절망과 비탄을 응시하게 만든다.

 

 

# 모두가 자신의 불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다.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하는 이는 지식인들이다. 언론과 학자, 교수들은 사회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분노와 괴로움, 힘겨움, 절망의 이유를 대신 말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올림픽이라는 큰 이슈, 경제극복이라는 큰 이슈만을 선점한 채, 파업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이 없다. 실질임금은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는데도, 공공요금은 올라가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없고, 데이터요금제 폐지라던지, 기업의 이윤을 위한 정책에 대한 논의는 많은 언론들을 통해 다양하게 이슈화된다. 자본이 언론과 정치까지 통제하는 사회, 기업사회에서 노동자가 취약계층이 일어설 공간은 부족하다.

 

  '밑천'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목표가 그리 높지 않지만, '밑천'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 목표라는 것이 엄청나게 높아 보일 수 있다. - 40p.

 

  '똥돼지' 사건이 사람들에게 큰 이슈를 나은 것도, 주어진 혜택이 많은 사람들이 그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하게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위가 아니더라도, 상류층이나 부모의 지위와 경제력이 의해, 자식의 직업의 선택의 폭이 선택되어지는 한국의 현실에서, '대부분 니가 잘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되잖아'라는 외침 뿐,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도쿄대 법대 대학원까지 나온 저자의 경력이 아닌, 모두가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외침이 좋았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풍경, 모두가 익숙하다고 느끼지만, 누군가가 먼저 그 벽을 깼기에, 그 다음에 좋아지는 사회적 관용의 벽을, 빈곤까지 넓히자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활동가의 모습이 좋았다.

 

  일할 때의 기초상식, 일본의 교육비, 부의 재분배, 넷카페 난민, 파견 노동과 파견 해고, 홈리스, 생활보호, 세계 대불황, 사회보장의 역사, 글로벌 경쟁까지. 구조적으로 혼자서 버텨야 하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진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책이 가장 멋진 책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작은 손이라도 나도 도와볼까 하는 작은 행동을 이끌어 내는 책, 이 책이 그렇다. 빈곤은 나의 문제가 아닌걸 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어떤 사람도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지, 그렇구 말구'라며,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 무얼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

 

  마코토의 외침을 조용히 듣다보면, 한국의 외곽지대에서 다른 사람들의 나은 생활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활동가의 모습이 보인다. 어쩌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그들의 작은 노력에 의해, 새벽에 첫 차로 출근하는 환경미화원 분들의 숨은 노력에 의해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경계는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우리의 세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어떻게 사용하는게 가장 좋은지, 언론이 말하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우리의 눈높이에게 말을 계속 꺼내는 일이, 용기도 없고, 시위를 할 자신도 없는 이에게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자꾸 말하다 보면, 용기도 생기고 행동도 시작된다. 그 말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깨어있는 한 사람이 시작하면 된다. 소심해서 용기가 없는 지인에게 좀 더 힘내자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보자고 권유할까 생각을 했다.

 

  딱딱하고 경직된 운동이 아닌, 자유롭게, 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자신의 불만과 대안을 말하는 사회를 꿈꾼다. 이 책은, 자민당 장기집권의 몰락과 민주당의 변화를 만들어냈던 한 사람의 진지한 고민의 기록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진 않지만,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나아진다 생각한다. 그 변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귀찮다고, 피곤하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 일. 부담스럽고, 무겁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시작의 방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7******e 2011.07.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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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과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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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던 어떤 진실들과 맞닥뜨리게 만든다. “노력하지 않으니까 빈곤한 것 아냐?” “죽을 각오로 덤비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유아사 마코토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의자는 몇 개나 있을까?”(28쪽) “‘당신은 밑천이 적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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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던 어떤 진실들과 맞닥뜨리게 만든다.

“노력하지 않으니까 빈곤한 것 아냐?”

“죽을 각오로 덤비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유아사 마코토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의자는 몇 개나 있을까?”(28쪽)

“‘당신은 밑천이 적으니까 포기해라’라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밑천을 더 늘리기 위해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41쪽)

“빈곤은 밑천이 없는 상태, 즉 단순히 돈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나 할 수 있다는 밝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킨다. 반대로 돈이 없어서 빈곤하더라도 주위에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스스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빈곤이 아니다. 그것은 가난일 뿐이다… 그래서 가난과 달리 ‘빈곤하지만 행복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54, 55쪽)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이중의 잘못을 저질러 왔다. 돈 때문에 인간다운 생활을 등한시한 주객전도의 사고방식이 우선 잘못이다. 그리고 돈이 든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비용을 삭감한 탓에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돈이 더 드는 사태를 낳은 것이 두 번째 잘못이다.”(67쪽)

“위기의식이 부족했던 것은 오히려 사회가 아닐까?”(77쪽)

“빈곤 상태에 방치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5가지밖에 없다. 가족에게 의지하거나, 자살을 선택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홈리스 상태가 되거나,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되는 것.”(96쪽)

“결국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기분이 아니라 밑천이다… 밑천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늘릴 수 없다.”(143쪽)

“노력의 양으로만 따지면 밑천이 적은 사람이 훨씬 더 노력하고 있다… ‘그 사람 나름의’란 말 속에 있는 ‘그 사람의 밑천’을 볼 수 있어야 한다.(161쪽)

“절대적 빈곤이 없으니까 빈곤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면 우리 주위에 있는 부조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아이들, 병원에 제때 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점점 사회의 한구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178쪽)

“‘빈곤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 빈곤은 물론이고 상대적 빈곤도 ‘허락할 수 없다’.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 허용할 수 없는가? 결정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몫이다.”(179쪽)

불편한 진실.

“결정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진실. 배곯는 아이들에게 꼭 눈칫밥을 먹여야겠다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된 투명인간들도 결국 우리의 “결정”, “우리의 몫”에 따라 “사회의 한구석으로 내몰리는 사람”도, 이웃도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한 노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그가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기아로 또는 전쟁으로 세계에서 단 한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난 언제나 자유롭고 싶다. 그러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그러려면 힘든 일이겠지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유아사 마코토가 미국의 언론인 그린하우스의 말을 인용해 하고 싶었던 말처럼.

“무관심은 무시로 이어지고 관심은 존중으로 연결된다.”(181쪽)

 

사족... 일본 번역서(다른 언어권의 번역서에선 잘 보지 못했던 대목이어서)를 읽다 보면 굳이 이래야 하나 하는 의문점이 들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의견을 밝힌다. “의자가 2개 부족한 이상, 설사 게임에 참여한 10명이 모두 외야수 이용규나 프로 골퍼 최경주처럼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반드시 두 사람은 앉지 못한다”(26쪽)에서 보듯 일본사람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국사람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 편집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일본 사람 이름을 그대로 두고 그에 대한 소개 글을 옮긴이 주나 편집자 주 등을 통해 설명해주는 편이 독자들(그 대상 독자가 청소년이든 설사 어린이든 간에)에게도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새로운 정보를 하나 더 알 수 있다는 점에서라도.

k*****8 2010.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아사 마코토] 덤벼라 빈곤 _ '가난'만 하다면 제대로 달려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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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어려운 세상이야. 소위 현대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려운 세대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은 이런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면서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어.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잘 알려져 있는 책이지. 이 책 <덤벼라 빈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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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어려운 세상이야. 소위 현대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려운 세대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은 이런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면서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어.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잘 알려져 있는 책이지. 이 책 <덤벼라 빈곤>은 이 <88만원 세대>의 일본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야. 저자인 유아사 마코토는 일본의 가난한 세대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벗어 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있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가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 주어야 한다는 점이야. 이 책을 읽으면 가난빈곤이라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단어를 접하게 돼.

 

가난빈곤? 뭐가 다른 건데? 둘 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뜻 아냐?

그래 맞아. 가난빈곤은 둘 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념은 큰 차이를 가지고 있어. 우리들은 흔히 가난하다라는 상태를 돈이 없는 상태,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태를 표현하는데 사용 하곤 하잖아. 그런데 빈곤가난보다는 더 하위에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데 사용해.

빈곤이라는 개념이 가난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기에 좋은 예가 하나 있어.

바로 달리기야.

우리가 경제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달리기로 표현해 보자구.

우리들은 경제적인 자립이라는 결승점을 목표로 달려가기 위해서 모두 출발점에서 달리 준비를 하며 몸을 풀고 있어. 그런데 이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 보니까 이상한 점들이 보여.

 

이상한 점이 보인다고?

그래, 이 사람들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하다구.  어떤 사람은 깁스를 하고 있고 맨발인 사람도 있어.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이 창백하고 곧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어. 도무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아.

이 사람들의 등에는 빈곤이라고 적혀있어. 이들 빈곤한 부류의 주자들과 다르게 가난이라고 적혀있는 다른 주자들은 잘 갖추어진 옷과 신발을 입고, 혈색도 좋아 보여. 출발선에서 껑충꺼충 뛰면서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어.

 

 

그럼 제대로 된 달리기를 할 수 없잖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수많은 젊은 이들은 동일한 조건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게 아냐. 빈곤한 주자들이 신발도 없이, 깁스를 한채로 가난한 주자들을 앞지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구. <덤벼라 빈곤>은 이들 빈곤한 주자들을 최소한 가난한 상태로 만들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해 주어야 한 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

사람들은 대개 빈곤이나 가난이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 둘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어. 가난한 주자들은 빈곤한 주자들 보다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더 많은 밑천을 가지고 있어. 빈곤한 주자들도 이러한 밑천을 갖출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해볼만한 시합이 될거야.

 

아직 잘 이해가 되질 않아. 밑천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해줘.

밑천이라는 건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어. 이 밑천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 될 수 있는데,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 좋은 친구들, 든든한 애인, 정규 교육의 이수, 화목한 가정 환경과 미래에 대한 긍정과 같은 것들 말이야. 더불어 나도 열심히만 하면 할 수 있어라는 긍정적인 생각까지도 포함될 수 있어.

사람들에게 이런 모든 것들이 밑천이 될 수 있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한 밑천이 같춰지지 않으면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출발조차 할 수 없어. 이런 밑천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동안 사회는 <자기 책임>만을 강요했다고 이야기 해.

 

<자기 책임>이라고?

그 동안 우리는 이런 밑천들이 부족한 이유와 그것들을 채워나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어.

가령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불평을 했을 때 <자기 책임>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건 내가 좀더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결과로서 벌어진 일인거야. 오랜 시간동안 개인들과 사회는 경쟁에서 뒤쳐진 이들에게 <자기책임>만을 운운해 왔어. 그런데 유아사 마코토는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빠져있는 이유는 <자기 책임> 떄문이 아니라 <사회 책임>때문이라고 이야기 해. 우리가 가난한 것은 사회가 최소한의 밑천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유아사 마코토는 우리가 가난에 허덕이는 것은 <자기 책임>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일정정도의 <사회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 한단말야.

 

<사회 책임>이라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것들을 사회가 제공해 줘야 한다? 그런거지?

그래 맞아. 사회는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빈곤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밑천을 만들어 줘야해. 빈곤한 그들에게 <자기 책임>만을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그런 이 책은 <자기 책임>과 <사회 책임>만 이야기 하고 있어?

<의자 뺏기 게임>이라는 개념도 등장해 . 가령 일자리의 숫자를 의자의 숫자로 간주해 보자구. 의자에 앉으려는 사람의 숫자는 10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나는데 의자의 숫자는 5개 밖에 안되는 거야.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 그런데 심지어 5개 밖에 되지 않았던 의자의 숫자가 4개로, 더 심하게는 3개로 줄어 들고 있어. 사회는 빈곤구제를 위한 밑천을 제공해 줌과 동시에 이 의자의 숫자를 늘리는데 노력해야 해.

 

글쎄. 이해가 되긴 하는데,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우선 바뀌어야 할 것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바꿔야 할거야. 우린 그동안 내가 좀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만 이야기 해 왔으니까말야. 이런 <자기 책임>의 사고에서 <사회 책임>을 요구하는 사고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어. 그리고 <사회 책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공분의 과정을 통해 공론으로서 발전시켜야 할거야. 우리는 사회의 리더들에게 리더십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었잖아. 때문에 사회의 지식인들과 리더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구. 그들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거야. 우리들의 공분이 무엇인지, 어떤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 더 크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어. 우리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뽑고 지지하는 진정한 리더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말이야.

 

대중과 소통하는 리더들이 빈곤퇴치와 사회책임, 그리고 의자뺏기 게임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게 될거야.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선물한 리더십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다시 돌려주어야 할걸?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구?

신자유주의의 경제 시스템에서 세계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이야기야.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 책임론을 이야기 할 수 있을거야.

 

이 책 읽어 볼까?

경제적 자립을 고민하는 우리들 모두가 읽어 봤으면 좋겠어. 흔히 내가 뭘 바꿀 수 있다고 라는 패배의식과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라는 식의 자기책임론의 한계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통해저 작은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을거야.

 

희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는 20대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어 보기를 권할게.

 

 

 

m*****2 2012.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기 책임론과 밑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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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책임론과 밑천에 대하여[안철수, 박경철 그리고 김제동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들은 남들과 비교하기를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남들과 남들을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 비교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은 도 싫다.  자신의 본질과 현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는 소극적이고, 남들을 객관적으로 재고 비교하는 것은 즐기면서, 때로는 박수를 보내기도, 은근히 비난하기도 하며 청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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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책임론과 밑천에 대하여









[안철수, 박경철 그리고 김제동의 이야기 중에서]

 


리들은 남들과 비교하기를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남들과 남들을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 비교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은 도 싫다.  자신의 본질과 현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는 소극적이고, 남들을 객관적으로 재고 비교하는 것은 즐기면서, 때로는 박수를 보내기도, 은근히 비난하기도 하며 청중의 상태로 있기를 즐긴다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들은 질문하는 것, 요구하는 것 그리고 암묵적인 합의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질문하는 것이 나만 모르는 것이면 창피를 당할까 무섭고 질문에도 옳고 그른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들이 모두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고 내가 모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르고 있다라는 평범한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기 대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질문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는 그다지 튀고 싶지도 않고,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이 틀린 것일까봐 겁이 난다.




내가 바뀌어야 하나?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바뀌어야 한담?

이책에서는 자기책임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기 책임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동안 이런식으로 이야기해 왔다.


 노력하지 않으니까 빈곤한거 아냐?

무슨 소리야! 열심히 하면 일자리 정도는 찾을 수 있다고.

잠깐,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것 아냐?

그렇게 나약하니가 성공할 수 없는 거야!

글쎄, 그 맘은 알겠는데, 옛날에는 다들 가난해도 열심히 살았어. 근데 요새 젊은이들은 누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고 안이하게 있는 것 아냐?

죽을 각오로 덤비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위기 의식이 부족한게 아닐까?



위와 같은 사고의 방식이 자기 책임론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만약 당신이 "나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잘 될거야.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치자.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남들'이란 누구를 의미할까? 나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니까 나 처럼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만 '남'으로서 여기며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비교선상에서 잰다면 충분히 우리는 자기책임론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남'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더 생각해 봐야 한다. 





  the others에 대한 정의의 오류

무관심은 무시로 이어지고 관심은 존중으로 연결된다._그린하우스/미국언론인



[홈리스, 정치인, 회사원, 장애우들이 서로서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자신의 준거집단에 비춰 남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경쟁상대와 동지를 의식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집을 잃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홈리스 상태의 사람들과 장애우들을 두고 '나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이미 경쟁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밑천이 없는 집단들은 배제하고 나와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를 하고 있다. 우리가 공감을 해야 하는 대상의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모두 남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가난하다.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없다. 때문에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이 삶을 살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빈곤하지는 않다. 잘곳이 없고 내일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과 빈곤의 의미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가난한 우리들은 빈곤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 공감하고 최소한의 밑천을 제공해 우리와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진정한 남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밑천에는 무엇이 포함될까?




공정한 출발선 , 밑천



[나의 밑천맵, 균형이 잡힌 형태인 것이 중요하다.]



빈곤을 넘어 가난을 이야기 하기 위한 몇가지의 밑천들이 있겟지만

나의 밑천은 돈, 건강, 미래에 대한 비전, 인간관계(가족, 배우자, 친구 등), 교육, 마음가짐 등 이다.

여기에 외모나 꿈, 주거환경등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밑천이 무엇이든지 한 축이 될 수 있겠다.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나의 밑천맵은 위와 같았다. 


빈곤은 밑천이 없는 상태, 즉 단순히 돈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의지 할 수 있는 인간관계나 '할 수 있다'는 밝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갖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킨다. 어차피 나 같은 건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여러분에게 '밑천'이 없기 때문이지, 게으르거나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든가 '긍정적으로'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기분 자체가 밑천의 영향을 박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목표라도 밑천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은 목표에 대한 거리가 다르다. 그렇다면 밑천이 적은 사람은 높은 목표 같은 것은 쉽게 포기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낮은 목표를 가져야 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럼 너무 불공평 하다! 집에 돈도 없고, 인간관계의 덕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사회가 대신 밑천이 되어 주면 된다. 




잠깐! 의자 뺏기 게임을 알고 있니?



[의자보다 앉으려는 사람이 더 많다]


무리가 있지만 우리 모두가 빤빤한 밑천을 가지고 경쟁을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모든문제가 해결된것일까?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앉을 수 있는 의자의 숫자보다 앉으려는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자기책임론이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경쟁하는 사람이 10명인데 그들이 앉을 자리는 5자리에 불구 하다면 어떨까? 사실 어떨까?가 아니라 이미 그렇다!


때문에 사회적 구조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네가 조금더 노력 했다면 의자를 차지할 수 있었다. 책임은 너에게 있다.라고만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제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에 존재하는 의자의 수를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내가 아닌 사회가 바뀌어야 할 차례이다.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



[책임 의식의 분산이 문제다]


이 책의 저자인 유아사 마코토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부른다.  활동가들은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보고 불씨를 찾아가 불을 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그 우리들에 내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뭘 바꿀수가 있다고 이런 일들을 한담?


사회의 기득권층인 10%가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들 대중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감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지지라는 선물을 그들에게 건네 준다. 그러나 우리들과 기득권 층들도 마찬가지로' 'the others 정의에 대한 오류'에 빠져 있다. 그들이 둘러보고 공감하는 '남'의 범주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그들도 알게 모르게  '너희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줘야 한다. 

'불평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불평은 내 운명을 남에게 맞기지 않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올바른 불평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첫째 현 상황에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 둘째로는 지금을 박차고 나가는 과감성도 요구된다. 


이를 통해서 책임의식의 분산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나 하나가 바귄다고 무엇이 바뀌겠느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 하나의 문제제기로서도 사회 문제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의 문제 인식과 불평이 틀릴까봐 질문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입밖으로 끌어낼 수 있고 공유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대안없이 불평하고 비판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안은 정치인을 비롯한 기득권 층에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그들을 믿고 리더십과 권력을 쥐어 주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문제를 공유하고 제기할때 함께 참여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나와 남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게 보며 사회의 밑천을 늘리고 의자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가들을 기다린다. 



약속이라는 것은 자심없음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서민과 상생, 공생을 주장하는 이야기 들을 잘 지켜보면 알수가 있다. 문제는 수반되는 행동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가를 원하는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나의 삶->가치 있다. ->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a*****4 2011.10.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