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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도그빌(dogville)..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졸아가면서 보기는 했지만, 예상이 가능했던 결말 부분이 우스꽝스럽게도 참 마음에 든다.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폭력적이기도 한 마지막 반전은 제법 섬찟하면서도 나른한 영화 전반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강렬하다고 생각한다.
로키 산맥의 구석진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갱에게 쫓기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숨어들게 되고, 엉성한 이상주의 소설가인 톰의 제의로 사람들은 2주의 한도를 주어 '그레이스'를 시험하고 마을에 받아들이게 된다.
천사와 같은 그레이스는 도그빌에 행복을 가져오고, 그녀는 톰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이 집요해지고, 갱의 위협이 가중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그레이스에게 노동 혹은 성적 착취를 일삼게 되고, 그레이스의 고통은 나날이 가중된다.
결국 그레이스는 나중에 목에 개목 죔쇠같은 형구까지 차게 되고, 결국 톰에 의해서 갱단에게 넘겨지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레이스는 갱 보스의 딸임이 밝혀지고, 도그빌의 사람들과 스스로의 이상에 실망한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처참하게 몰살할 것을 부친에게 청한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행해진다. 종국에 톰은 끝까지 헛소리를 하다가 그레이스의 손에 살해당한다.
이것이 개략적인 도그빌의 줄거리라 할 만하다. 다른 자료를 접하지 못했고, 그냥 내 기분으로 본 영화인 만큼 아래의 서술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종교에 대해 무지한 내가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겠으나, 나는 이 영화에서 기독교적 모티브를 읽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모티브'일 뿐이고, 기독교가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희망을 완전히 거꾸로 부숴서 차용한 것이 이 영화이다.
원죄를 지은 인간.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받는 구세주. 그리고 최후의 심판까지. 나의 과도한 해석인지는 모르나, 도그빌은 어처구니 없게도 이러한 모티브를 잘 지키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는 인간을 두들겨야 말을 듣는 '개'와 같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의견 충돌을 보이고, 갱단 보스의 후계자적 위치를 버리고 도그빌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도그빌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하나, 하지 않는 일'들을 맡아서 하게 된다. 도그빌의 사람들은 그레이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도 그런 일을 하려 들지 않았고, 아무런 책임이 없어도 좋을 그레이스가 그런 일들을 한다. 즉, 사람들이 받아야 할 '책임'을 대신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마워 할 줄 모른다. 오히려 그녀는 사방으로 착취 당하고, 심지어는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톰'마저도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보이며 그녀를 저버린다. 그녀는 톰의 죄를 대신 받아 목에 개목을 죄는 철족쇄 같은 형구까지 하고 다니는 신세까지 되고, 결국 가장 그녀가 헌신하여 보살폈던 사람들의 손, 특히 사랑한다고 믿었던 톰(가롯 유다?)이 저지른 밀고에 의해 '죽음'을 의미하는 갱들에게 넘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 부근의 장면들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그 '뻔뻔함'과 '추악함'은 정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끊임 없이 그레이스에게 폭력과 기만이 행해지고, 그것을 끝까지 포용하려는 그레이스의 노력과 헌신은 정말로 어이없을 정도로 답답하기만 하다. 이러한 측면이 나로 하여금 '그레이스'에게서 '구세주'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뻔뻔함은 톰에 의해 벌여진 회의(이것도 해석하면 법정에서의 재판 같다.)에서도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비난당하고 감금당하는 것은 그레이스이다.
하지만 '도그빌'이 그저 종교적 모티브의 차용일 뿐이며, 인간에 대한 처절한 불신을 품고 있다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반전 부분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The Judgment. 바로 심판이다.
희생의 제단에 올려진 '그레이스'는 애초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그리고 '힘을 가진 존재'인, '갱단의 보스' 아버지와 대면하게 된다. 즉, '그레이스'가 갱단의 보스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마을에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다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애를 쓰는 그레이스였지만 '톰'과 '마을사람'들에게서 추악함을 확인하게 되고, 결국 그녀의 내심은 분노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력과 책임을 이어받아 실로 처참하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심판을 '도그빌'에 가하게 되는 것이다.
멋대로의 해석이기는 하나, 도그빌은 인간세상이다. '개들의 마을'이 곧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잔인하고 냉소적인 비아냥거림이 이 영화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신에게서 권력을 허용받은 인간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보다 모자란 존재에게 그 권력을 남용하고, 잔인하게 다룬다. 그러나 한층 높은 존재의 눈에 인간도 그 역시 '개'와 다를 바가 없고, 권력에 의해 희생될 수 있고, 잔혹한 심판을 당할 수 있는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말도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요사이 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인간에 대한 치열한 불신을 읽게 된다. 근대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낙관 속에서 싹튼 불안의 씨앗이 점점 세상을 비관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에 대한 실망. 이러한 바탕 속에서 결국 신은 갱단이 되어 애초부터 인간을 불신하고, 희생을 자처한 구세주도 결국 인간을 저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에 남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걱정스러움이다. 지난 번 매드헌터라는 영화를 볼 때도 느꼈지만, 내 마음 속에 잠재된 '악함'을 요사이 자주 감지하게 된다. 나는 이 도그빌을 전적으로 '그레이스'(니콜 키드만 분)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았는데, 답답한 심정으로 영화를 보다가, 결말 부분의(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 있다.) 상황에 가서 끝내 희열과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레이스의 선택이 감정적으로 절대 옳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실망하였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산간의 조용하고, 건실한 기운이 가득할 것 같은 '도그빌'이 잡놈, 변태, 쓰레기 등, '개'들의 마을이듯 세상조차 그렇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 이 영화를 의아스러울 정도로 즐겁게 보고도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못한 것은 그런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서운 심판을 향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스스로는 그것이 가장 현명했다고 착각까지 해가면서.
앞서 말했듯이 꾸벅꾸벅 졸아가면서 내가 본 도그빌이란 영화는 상징 투성이의 영화인 듯 하다. 배경이 과감하게 무시된 세트나, 여러 사건, 사물들이 무엇인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도 나에게 의문으로 남는 것이 유일한 진짜 개인 모세(Moses)의 존재이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대홍수처럼.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총탄 세례를 받고, 심지어 갓난 애까지 죽어가는 상황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 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끝까지 짖어댄 개. 그레이스가 처음 등장해서 배고픔에 밥그릇의 뼈를 빼앗았던 그 개.
출애굽의 인도자였던 모세처럼 세상을 인도할 것은,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말인지. 남은 희망을 간직한 '방주'로서의 의미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남는 희망의 의미라도 되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냉소적인 작자의 뜻없는 장난이었을지. 제법 생각할 거리가 남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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