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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이 새 부대로 들어간다 로버트 웨버의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죠이, 2010)”을 읽고 이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는 우리 딸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단순히 아이의 치아에 대한 배려만이 아니라, 들어가야 할 초등학교와 교육, 만나야 할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펼쳐질 소중하고 더욱 진지하며 본질적인 문제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의 소중함 때문이다. 이가 빠지면서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복음이라는 “존재 가치의 소중함”을 다시 불러 일으켜준 너무나 귀한 기회를 준 책이다. 죠이선교회의 대표 목사님이신 이윤복 목사님께서 번역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어떤 책일까? 기대를 가졌는데, 정말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솔직히 한 10년만 빨리 이 책을 내가 알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다. 이제 젊은 복음주의자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복음주의적 가치를 가진 모든 건강한 교회와 성도가 꿈꾸는 젊고 신선한 진리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젊음”이 무엇인지부터 이 책의 시작을 열고 있다. 저자는 젊음이 단순히 나이의 문제만이 아닌, 건강하고 신선하며, 새로운 가치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이전것의 반발에서 시작된 반항적이거나 무조건적인 새것이 아니라, 복음이 가진 시초적이며 성경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로 돌아가는 새로움이다. 책은 단순히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으니, 모든 것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삶과 컨텍스의 상황에 초대교회와 16세기가 일구어 낸 정신과 가치를 심자고 말한다. 바로 고대-미래 교회(Ancient-Future Church)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게서 새술을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 새 술의 “새것” 이었다. 진리의 복음이 가진 총 14가지의 주제에 대해서 저자는 아주 시대적인 분석과 현장성 넘치는 사역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젊은 복음주의자의 가치를 던지고 있다. 처음에 나는 단순한 이론을 접할 줄 알았지만, 저자의 작은 인용에서조차 강력한 호소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활자의 인쇄에서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 과거와는 단절된 현실중심적인 삶에서 과거의 가치를 살리는 역사, 명제와 교리에 집중하는 논리에서 이야기와 삶이 되는 신학, 이성적 답변으로서 자기를 지키기만 했던 보수에서 삶으로 보여지는 진정한 가치로서의 변증, 숨어지내는 비가시적인 존재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교회, 개인의 유익과 문제해결만을 위해 모이는 장소에서 미시오 데이를 이루는 교회, 권력적이고 상부하달적인 지배구조에서 섬김으로 변화되는 리더십의 목회자, 파티와 엔터테이먼트에 물든 모임에서 진정한 기도의 가치로 업그레이드 되는 청소년 사역, 수많은 정보의 제공만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가치에서 정보의 기준을 형성하는 교육, 율법적 틀만을 추구하는 억압된 형식에서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는 영성형성, 프로그램 중심의 집회에서 이야기로 친밀해지는 예배, 수많은 제약에서 의미있는 전달의 표현으로 승화되는 예술, 단순한 일회성 집회에서 관계중심인 예배, 그리고 이론만 무수한 이념과 정책에서 손과 발로 이어지는 섬김과 봉사의 활동을 이 책은 매우 적실하고 일목 요연하게(표를 사용한 것이 너무 좋았다) 전개된다.
간단하게 몇 개의 예를 들어본다면, 113페에서 “기독교의 진정한 메시지는 이성적인 명제가 아니라,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다” 또한 223페이지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깨달음, 삶이 모든 영역에서 구현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제자도와 사역에 헌신하는 급진적인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임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몇 장은 20세기와 21세기로 이어지는 단순한 복음주의(전통적 복음주의, 실용적 복음주의, 그리고 젊은 복음주의)에 대한 개론서가 아닐까 하며, 염려를 했었지만, 몇장을 넘어가면서,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줄을 치게 되었고, 이미 수많은 교회와 성도, 그리고 목회자들이 고민했던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매우 감격적인 문장이 수없이 많았고, “이것이 정말 진정한 복음의 삶이구나”라고 도전받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젊은 복음주의자의 삶을 일부 살면서 그것에 대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매우 겸손하다. 최근에 나오는 기독교 서적들은 비판하고 까는 것으로 자기를 드러내지만, 이 책은 정말 겸손하다. 그 겸손한 도전이 더 강력했고 의미있었다.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책을 읽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모든 부분을 동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성상의 사용이라든가, 성례전적 회복을 거의 캐톨릭의 수준으로 변형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도전을 준다. 단순히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거기서 발단된 다른 가치들과 사고들이 지금 내가 “바르게 하고 있는가?” 혹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점검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치를 위해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배울 수 있다. 나는 이 책이 그러리라 생각된다. 책을 마치면서 우리 아이가 없어진 이 때문에 가지는 허전함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리를 듣는다. 본질로 가고자 한다면, 젊은 복음주의자가 가진 이 소중한 가치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다. 물론 녹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노력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넘어가는, 그리고 복음의 더욱 근본적인 진리를 실현해 내기 위해서 덜 본질적인 것을 포기하고 더 본질적인 것을 위해 용기를 내는 대가 지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또한 긴급한 책이다. 다른 책을 덥고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한다. 지금 적실한 책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책을 번역하고 출간해 준 죠이 선교회에 감사드린다(아주 심플하지만 가치가 투영된 표지와 거의 오탈자를 찾아볼 수 없었던 편집팀의 수고, 그리고 책을 홍보하느라 고생할 영업팀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이 진정한 복음이 이 작은 책의 활자에서 일어나 우리의 삶으로 옮겨 심기워지게 될 미래를 기대하게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복음은 위대하다!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새 술이 새 부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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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는 성경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들이다. 신학적으로는 성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고, 초대교회 신조(니케아 신조 : 삼위일체, 칼케돈 신조 : 예수의 신성과 인성)가 복음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는 역사적 기독교의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 시도한 모든 운동이며 문화적으로는 특정한 사고체계에 뿌리박힌 독특한 복음주의 모두를 포괄한다. 20세기 복음주의를 지배한 세 가지 사상 근본주의 : 반지성주의, 반에큐메니컬, 반사회참여 신복음주의 : 반지성주의에 대한 도전, 반에큐메니컬에 대한 도전 다원적 복음주의 : 지적 다양성, 에큐메니컬 확대, 사회적 관심의 확장 복음주의에 대한 명쾌한 규정과 함께 시작한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특성과 활동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특성은 여러가지로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것은 내 정체성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는 묘한 상실감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새로운 힘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가슴이 뛴다. 아직 기독교는 죽지 않았다.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있는 한. 신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20110317 추가 이머징 처치에 대한 개론서와도 같은 책. 개인적으로는 한국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 면에서 내 생각이 들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지가 많다는 용기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아직 한국교회는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의 어느 사이에 방점이 찍혀있다. 하지만 곧 다원적 복음주의, 이 책에서 말하는 젊은 복음주의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잠시. ...오늘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한국교회는 아직 근본주의 쪽에 위치한다는 다수의 의견. 내가 속해 있는 교회가 그나마 깨어있는 교회라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거였을까? 괜히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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