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잠깐씩이었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보낸이 있다. 논가에 있는 뱀을 가방끈으로 알고 집었다가 놀라 집을 달려갔던 기억-그 때문에 지금도 뱀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이기지 못한다-이며 재너머 작은 집으로 내달리며 오르락내리락하던 기억도. [선들내는 아직도 흐르네]를 읽으며 선재의 눈과 귀를 통해 접하는 시골의 풍경은 참 뚜렷하게 내 흐릿한 기억의 자락들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정경이며, 또래인 을구와의 싸움도 ... 그렇지만 그런 풋풋한 정겨움을 가진 선들내조차도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가 배여있음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아직 어리다싶은 아이들에게도 각인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무동할배의 웃는 듯한 주름살 속에 감춰진 슬픔을 통해 우리는 일제식민지하 조선의 젊은이들이 탄광으로 위안부로 끌려가야했던 역사적 사건을 돌이켜보게 된다. 형수가 되어야 했을 처녀가 바로 그 형에 의해 위안부로 팔려가야 했던 가족사.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팔려간 쳐녀를 찾아 평생을 떠돌다 처녀의 고향인 범실골에서 노년을 쓸쓸히 보내는 무동할배. 봉사활동을 왔다가 무동할배를 알게 된 채영을 통해 팔려간 처녀, 점남의 소식을 알게되고 이미 땅에 묻힌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생의 마지막을 보낸 무동할배를 보내면서 아이들은 사과서리를 사죄하는 용기있는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어쩌면 작가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픈 우리 역사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 이제 초등 4학년에 오르는 딸 아이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까? (이 책은 문지아이들의 초등5~6학년 권장도서다) 어쩌면 채영으로부터 무동할배와 점남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선재의 가슴 속에서 울렸던 것처럼 딸 아이의 가슴 속에도 어떤 울부짖음이 남게 될 것같다. 범실골의 풋풋한 정겨움만큼이나 강하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