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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건축가 오영욱이 충칭[重慶], 청두[成都], 베이징[北京], 칭다오[靑島], 난징[南京], 마카오[澳門],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뤄양[洛陽], 시안[西安], 홍콩[香港]라는 11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일종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관심이 갔던 화제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에 대한 건축가의 입장에서의 해석이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상현 교수가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에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의 말을 변형하여 “그들이 건물을 빚어내고, 건물은 우리를 빚어낸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즉, 건축물과 인간은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관계를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천천히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신분제가 사라진 건 1894년의 일이지만 1990년대 초까지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는 으레 식모를 위한 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상 외로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식모를 위한 방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신분제의 의식에서 자유로워지기란 쉽지 않다. 계급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되어 유지될 뿐[p. 66]” 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구조의 집에서 살며, 그 영향을 받고 있을까 대표적인 가옥 양식 가운데 하나가 베이징을 중심으로 화북(華北) 지방에서 발달한 북방계 사합원(四合院)이다. 북방계 사합원은 대문을 따로 빼고, 가운데 있는 마당[中庭]을 담장과 건물로 둘러싼, ‘ㅁ’자 형태의 집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대문을 열면 바로 안쪽에 영벽(影壁)이 자리잡고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 옆에 길을 따라 길게, 도방(倒防)이 늘어서 있다. 하인이 거처하는 한옥의 행랑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 가장 안쪽에 배치된 건물이 집의 중심이 되는 정방(正房)이다. 집안의 어른이 거주한다는 점에서 한옥의 사랑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정방 앞쪽 좌우에 상방(廂房)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자녀 등이 사는 곳이다. ‘영벽(影壁)’이라는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사합원(四合院) 주택 양식은 내향적이고 폐쇄적이다. 그곳에 살면 담장 밖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제 가족만 중히 여기고 타인을 경계하며 배척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p. 66]” 어쩌면 이런 구조가 ‘꽌시[關係]’ 문화를 잉태한 것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폐쇄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개방적인 사합원과 라오펑유[老朋友]라는 의사(擬似) 가족이 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p. 256]” 이런 익숙함은 아파트의 구조마저 사합원 스타일로 변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것을 전통의 현대화라고 말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한반도의 오랜 조상들이 구들을 덥혀보니 살기에 좋아 계속 사용해왔던 것처럼, 담을 높게 둘러보니 그런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중국에 사는 사람들의 습성까지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높은 장벽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은 이러한 도시구조에 불편을 먼저 느끼지만 반대로 중국인들이 사방이 트인 곳에 놓인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256]”
아마도 그렇기에 폐쇄 공간인 사합원의 DNA가 아닌 열린 공간인 한옥의 DNA를 가진 저자도 “중국 도시는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것은 문화나 경제력의 차이가 주는 이질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민감한 문제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중국에선 잠시 머물러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p. 284]”고 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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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프라인 서점(특히 동네 작은 책방)이 갖는 의미를 다룬 책을 몰아 읽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손쉽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지금, 여전히 사람인 서점원이 존재하는 오프라인 서점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도가 아니라 우연히 인생 책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를 위해 서점에 가기도 하지만, 예스블로거이므로 취미 생활처럼 '랜덤블로그'를 타고 돌아다닌다. 곧 파워문화블로거 14기도 선정하던데, 예스이십사가 인터넷 서점이 갖는 보편적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다른 인터넷 서점에 비해 사람 냄새 나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다면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테다. 몇 년 열혈 블로거로서 여기에서 지내본 바 잘 되어가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최근에 친구블로그에서 건축가 오기사 신간이 나왔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여행을 즐기며 한국의 빌브라이슨처럼 내향적으로 소심하게 글로 투덜거리기를 잘하는 그의 책을 몰아서 찾아 읽고 신간이 나오면 구입해 읽던 때가 있었다. 이번 신간은 게다가 '중국' 여행기이다!! 당장 구해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중국에 다녀와 '동이 서생 오기사'라는 부제를 붙일 수 있는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이라니!! 건축가가 갖추기 쉽지 않은 듯해보인다. 가이드북이 아니라 고지도와 한국에서 가져간 구글맵(중국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검색을 막아 두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촉과 방향 감각을 바탕으로 옛 성터와 물길, 골목들을 걷고 또 걷고 있다. 전작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6817313 에서 서울 곳곳을 걸었고, "오영욱 지도그림책 인생의 지도 : 오기사가 그리는 불행의 미학과 치유의 여정": http://blog.yes24.com/document/7837507 에서 지도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그다.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동아시아에 있다는 사실 말고는 서로 너무 다른 한국과 중국, 일본 문화와 사람들 성향을 그 나라 특유 건축, 공간 특성과 함께 풀고 있는 점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 책 속 오기사처럼 중국 이곳 저곳을 혼자 여행하고 싶다. 가능하면 교환 교사나 학생 신분으로 일정 기간 생활하고 싶기도 하다. 97년에 부모님 따라 강제로 끌려가듯 베이징에서 1년을 살았다. 삶의 모습과 문화는 다양하므로 내가 사는 삶 방식 만을 진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 일은 노력해도 내 마음되로 되지 않는다, 풍족과 부족이라는 건 상대적이어서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지도 모르니 마음의 문제다 같은 생각을 어린 중학생 나이에 배워 나갔다. 그리고 중국어가 남았다. 지금은 전처럼 중국을 싫어하지 않으니, 그리고 언어를 할 줄 아는데 썩히기 아까우니 어른이 된 지금 다시 가고 싶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오기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중국 구조와 문화적 특성, 중국인 성향을 읽을 때마다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 알겠었고 공감했다. 혼자 가는 이유는 같이 갈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풍문으로 들은 바대로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오기사가 경험한 (안 좋은) 기억들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매우 넓은 마음이 없다면 이해하고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다.
왜 근현대를 지나온 중국 사람들은 보통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무개념하고 느리고 꼼꼼하지 않다는 편견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게 되었을까. 내가 경험한 중국인들은 (특히 베이징 대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무엇을 빼앗기거나 자신이 피해를 볼까봐 항상 초조한 상태였다. 오기사가 경험한 새치기 같은 문화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생활 속에서 매우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예다.
오기사는 건축학적인 가설을 세운다. 이 지점에서 ㅂㄷ 교수님께서 제기하셨던 '자기 중심, 타자 중심'이 다시금 떠올랐다. 대학원 강의를 들을 때 자신의 철학적 이론을 말씀해주시면서 한국인과 중국인, 서양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바는 내가 아는 중국인들은 장사꾼 특유 자신이 손해보지 않을 정도로 내줄 수 있는 건 쉽게 포기하고 내줄 수 있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집스럽고 이기적일 만치 지킨다는 생각이었다. 중국인에게는 그게 자본인 듯하다. 교수님께서도 사회주의 공동체를 강요하면서도 사실 몹시 개인주의적인 면도 공존하는 중국 특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오기사는 자신이 직접 걷고 보면서 중국 전통 가옥 구조 특징 중 하나로 자신의 집 둘레에 벽돌로 튼튼하게 벽을 높게 쌓았음을 발견한다. 아마도 중국인들이 시끄러운 이유는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누구 목소리인지 알아채고 말을 알아들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근본적으로는 땅덩어리 넓고 평지가 많은 중국에서 외적 침입을 자주 받다보니 튼튼한 성벽을 쌓아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컸기 때문에 중국 건축이 벽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아니면 그런 생각은 후세에 이유를 갖다 붙이기일 뿐이고 사실은 우연히 그렇게 생활해보았더니 편리해서 습관으로 굳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전자에 공감하며 '나라가 자주 바뀌었다'는 점은 중국인들 유전자에 오랫동안 무의식으로 남아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본주의적인 현대 중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들 마음을 몹시 불안,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생존하면 된다고 믿고 있는지도, 또 경제가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남들보다 좀 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많을 테다.
오기사는 중국을 다니면서 이들의 미적 감각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본주의적으로 돈이 될만한 전통은 밀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지점에 대해 안도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아름다움이 없고 삭막함만 보이는 이유로 저자는 '중국인들이 귀여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가설을 세워본다. 석사 때 논문 쓰며 공부한 바에 따르면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우미와 존엄', '아름다움과 숭고함'과 같은 속성을 내포한다. 광고를 제작할 때에도 아기와 동물을 이용하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일반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쉽게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은 작고 귀여워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에는 안아주고 싶다는 말도 들어있단다)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오기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tvN "알쓸신잡"보다도 훨씬 먼저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온 작가다. 공간과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는지 알고 싶으면 그의 전작들을 찾아보라. 무척 재미있다. 이 책에서는 아래 내용이 인상 깊었다. 한국은 산이나 물 같은 자연을 두고 거기 맞추어 길을 만들거나 건축을 해왔다. 중국은 길게 쭉 뻗은 대로가 많단다. 마을에 집들을 배치하거나 궁궐, 절을 만드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책에서 이야기하는데 흥미롭다.
오기사가 좋아했다던 영화 "중경삼림" 배경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2월 초 홍콩섬 소호에서.
오기사 글이 가진 매력은 홀로 걸으며 생각하다가 의미 있는 가설을 세워 독자에게 던져보는 데 있다. 다소 개인적인 감상과 경험치가 섞여 있어 어떤 이에게는 '에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을, 하지만 나는 매번 '오, 말이 되는데?'라며 공감하는 그런 지점들이다. 특히 올 겨울에는 홍콩, 마카오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중국 여행기 중에 양념처럼 덧붙여져 중국과 비교 대상으로 삼은 그 짤막한 여행기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그 미묘한 경계 지역들(그런데 또 홍콩과 마카오는 매우 다르다)이 보여주는 매력을 방금 경험하고 왔기에 공감했다. 그러고 보면 홍콩이 영국스럽고, 마카오가 포르투갈스럽듯, 칭다오는 독일스러운 면이 있고 상하이는 프랑스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이 새삼스러워졌다. 제국주의 시대에 중국은 서양이 보기에 참 탐나는 곳이었나보다. 어서 칭다오에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왠지 이 책을 읽으며 칭다오 맥주를 함께 마셔야할 듯해 요렇게 구색을 갖추고 독서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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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20대 초에 자주 가던 카페에 항상 책이 몇권 놓여져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던 책이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라는 책이었다. 책 크기도 그렇고 겉표지가 뭔가 다른 책들과 다르다보니 더욱 그랬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던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최근 갑자기 오기사 생각이 나서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을 해보니 지속적으로 책을 쓰고 지원자들을 모집해 여행도 보내주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최근에 쓴 중국에 관련된 책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비상식적으로 발전하고 커가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사회,경제적 관심 말고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도 알고 싶었고 또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구매하고 읽어 보았다. 제목부터 그러하듯이 어떠한 객관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 보다는 오기사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에세이 느낌의 책이다 보니 역시 가볍게 읽을 수 있기는 하나 뭔가 많이 참고가 될만한 내용은 없어서 아쉬웠다. 오랜만에 오기사라는 사람을 추억하였고 잡다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