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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란 책에서 과학자는 생각보다 대접을 잘 받는다고 했다. 예술가는 그렇지 않고. "사람들은 그림이나 시를 봐서 와닿지 않으면 나쁜 그림이나 나쁜 시라고 한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 같은 과학은 모르면 제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사람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1979년에 만든 영화 <잠입자 / 스토커 Сталкер / Stalker>는 잘 와닿지 않기 때문에 낮춰볼 수 있는 그런 예술에 들어갈 듯하다. 그냥 눈으로 보면서 마음으로 따져보기가 어려운 영화였다. 다시 되짚어 보아도 선뜻 와닿지 않았다. 소설 <길가의 소풍>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가 그렇다고 낮춰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어떤 곳을 보여주면서, 그곳을 사람들이 어떤 눈길로 보는가를 155분에 걸쳐 영화에 담아놓았다.
2. '구역'이라 이름 지어진 곳에 가면 어떤 방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서 제 바람을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구역은 아무나 갈 수가 없어서 꼭 이끄는 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를 '스토커'(잠입자)라 했다.
스토커(알렉산더 카이다노프스키)의 도움으로 '작가'(아나톨리 솔로니친)와 '교수'(니콜라이 그린코)가 구역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이들이 이루고 싶어 마음속에 갖고 가는 바람은 무엇일까?
스토커의 아내는 가지 말라고 말린다. "정상적인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잖아요?" 스토커가 "곧 돌아올게" 하지만, 그 아내는 가로 막는다. "감옥에 다시 갈 거예요. 이번에는 5년이 아니라 10년을 썩게 될 거고..." 그런다고 스토커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한테는 어딜 가나 감옥이나 마찬가지야. 막지 마"
아내는 옆지기가 행여나 잘못 될까 봐 걱정을 한다. 구역은 들어가는 길을 경비병들이 막고 있고 이들에게 잡히면 감옥으로 가야 하며, 그들을 뚫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는 곳이다. 들어온 길로는 못 나간다. 구역 안에서 자칫 잘못 하면 덫에 빠져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곳이다.
3. 영화는 생각보다 으스스하기도 했다. 아마도 밤에 혼자 보면 무서워질 수도 있을 것. 귀신처럼 보이지 않고 생각 속에 머무를 때가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지듯이, 구역이 움직이는 무엇을 드러내어서 보여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소름을 돋게 한다. 그 속에 들어간 세 사람이 하는 말과 보여주는 몸짓만으로.
처음에는 스토커가 앞장을 섰지만, 구역 안에서는 오히려 뒤에 따라간다. 언제나 작가나 교수가 갈 자리를 알려주고는 그는 뒤따른다. 사람들이 가진 바람을 들어주는 방에 들어갈 때까지는.
그 방에 갈 때까지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감독이 알리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글을 쓸 때 있어야 할 영감이 사라졌다며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구역을 찾아온 작가나, 바람을 드러내지 않고 구역 안을 구경하면서 매고 온 배낭을 챙기기나 하는 교수가 스토커와 같이 구역 안을 다니면서 하는 이야기는 곧 감독의 생각일 것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예술을 영화 속에 담아놓았다. "작가가 글을 쓰는 까닭은 의혹과 번뇌 때문이지. 늘 자신과 세상에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거지. 그 자신이 가치롭다는 것을 말이야..." 나이든 작가의 입을 빌려서 하는 말이었다. 또한 살기 편하게 만든 여러 가지를 보는 눈길도 담겨있었다. "어떻게 되었거나 그 온갖 과학기술, 그 빌어먹을 장비들...그 따위 것들은 죄다 일 덜하고 거저 먹겠다고 만든 잡동사니일 뿐이니,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팔다리에 지나지 않아..."
그러면서 하늘이 스토커에게 들려주는 말처럼 내세우는 것들은 노자가 쓴 <도덕경>과 비슷했다. "사람이 막 태어났을 때 그는 연약하고 유연하도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뻣뻣하고 둔감하도다. 나무가 자랄 때는 부드럽고도 잘 휘어진다. 허나 뻣뻣하고 건조해지면 나무는 죽는다. 견고하고 강건한 것들은 죽음의 무리이며, 유약하고 연약함은 곧 새 생명의 신선함이니, 강건한 것들은 결코 승리할 수 없도다..."
4.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아니라 구역이 결정해...구역은 희망을 버린 이들을 살려주는 걸 거야. 선하건 악하건 비참한 사람들만을 살려주지. 하지만 아무리 비참한 사람들이라도 까딱 잘못 하면 죽어." 구역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스토커는 받아들여 떠받드는데, 감독이 말하는 구역 같은 게 있을까?
정 붙일 데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나, 남보다 잘 하는 게 없어 늘 뒤쳐지는 이들, 솜씨가 없어 하는 일 마다 잘 되지 않는 사람, 제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떠밀려가는 이들에게 지치고 다친 마음을 달래주고 다독거려줄 곳으로 '구역'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많이 배웠다는 교수와 작가를 내세워 이들로 하여금 구역을 찾아 그 뜻을 살펴보게 하지만, 문턱에 다가가 방에 들어가려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스토커의 말을 그들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진 건 희망밖에 없어. (구역이) 여기가 올 수 있는 마지막 장소야. 이게 없으면 희망도 사라져." 하며 영화 속에서 스토커가 구역이 갖는 값어치를 말하지만, 나한테는 멀게 와닿았다. 구역 같은 곳에 데려만 가면 아프고 지친 마음을 깨끗하게 낫게 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쏭달쏭하다. 사람의 마음속이 아니라 넓디넓은 우주 어딘가에는 이런 곳이 있을까?
그래서 "보면서 쉽게 가슴에 와닿아야 좋은 영화다"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말이 생각나고, 속에 숨은 뜻은 깊고 묵직하겠지만 겉으로 빨리 와닿지 않는 탓에 별은 넷만 주고 싶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새로이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지면 그 때는 다섯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5.
카메라의 움직임이 좋은 영화였다. 구역으로 들어갈 때 그들 앞에 놓인 구역이 어떻게 와닿을지를 생각하는 듯 교수와 작가의 뒤통수만 비추거나 살짝 옆모습을 바짝 당겨서 담아놓은 장면이나, 스토커가 던져놓은 끈 쪽으로 한 사람씩 나아가는 모습을 뒤쪽에서 카메라로 잡아 가슴을 졸이게 할 때나, 사람들의 생각을 훑어내는 듯 물속에 잠긴 여러 가지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낸 것들은 알려주는 말이 하나도 없어도 마음 속에 물결이 일도록 했다. 처음에는 흑백 영화로 보았다. 그런데 보다가 컬러로 나왔다. 이 영화가 컬러인가 싶었는데 끝무렵에는 다시 흑백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찍었을까? 구역 안에서는 컬러로 보여주지만, 구역 밖에서는 흑백으로 나온다. 그래서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구역 밖으로, 꿈꾸듯 바라보는 곳은 구역 안으로 나타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싸움터같이 버려진 탱크와 대포, 참호 따위를 나무가 둘러싸고 풀이 가득한 들판에서 보여주고 얕은 강과 파놓은 땅굴, 모래 언덕, 우물 따위를 섞어서 구역으로 나타냈는데, 솜씨가 좋았다. 이들을 비춘 카메라를 따라 가다가 별 것 없는 구역에 괜스레 가슴을 졸이게 되었다. 나중에 뒤에 깔리는 가락을 입히기에 앞서 배우들이 대본에 맞춰 연기를 할 때는 그저 별 뜻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에서도 사뭇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좋았다. 6. 만든 지 서른 해 넘게 지난 영화지만, 디뷔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나름 깨끗했다. 두 장짜리 디뷔디인데, 두 번째 디뷔디보다는 첫 번째 디뷔디가 나았다. 그러나 우리말 옮김은 어색한 곳이 더러 보였다. 러시아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말로 옮긴 대목에서 아귀가 딱딱 맞지 않은 것을 보면.
덤은 그런대로 많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하는 말을 담았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미술감독과 촬영감독과 제작자가 나와 영화 뒷얘기를 해주는 것도 괜찮았다. 이 영화를 한 해만에 다 찍었다가 필름을 잘못 인화하는 바람에 새로 찍어야 했다는 얘기에 놀랐다. 짧은 글을 쓰다가 어쩌다가 날려버린 때에도 가슴이 답답해져 올 때가 있는데, 끝낸 영화를 새로 찍어야만 했다면 감독이나 나머지 사람들이 얼마나 허탈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