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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회부터 끝까지 본 최근의 드라마는 유일하게 '아르곤'.이었다. 배우 김주혁의 죽음은 또다른 의미로 큰 파장이 인다. 속상하다, 이런 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저 떠도는 아침이다. 연이은 지역 출타로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기가 어려워 읽다가 마지막 부분을 남겨두고 임미리의『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이제서야 다 읽었다. 죽음에 관한 기록이자 죽은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지리한 반복적인 문장이어도 조문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완독을 했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읽을 일이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2.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은 '열사' 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과정에 집중한 책이다. 어떤 죽음을 열사라 호명하고 어떤 죽음은 열사라는 호명에서 배제되었는지를 분류/분석한 책이다. 열사의 죽음을 실존형과 당위형으로 분류하고 100여명이 넘는 죽음을 유형화했다. 비록 갸우뚱한 분류가 있기도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열사'라는 호명과 배제는 결국 운동의 권력 크기만큼 결정되는 것임을 말하려 했다. 열사는 죽음으로써 저항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존재들을 호명체계다. 하지만 독재정권의 종료 이후(형식적인 독재정권 체제의 붕괴는 사실이니까) 열사라 호명되는 죽음들은 줄었지만(예를 들어 대학생들의 분신자살) 죽음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립된 죽음들은 더 많아졌다. 절망 끝에 광장이 아닌 크레인에서 공장 창고에서 혼자 조용히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어떻게 분류/분석할 것인가가 남는다. 하이데거의 관점에 기대어서 저자는 죽음을 삶의 한 방식으로 본다. 빼앗길 수 없는 것은 오로지 죽음 뿐. 자살을 자살자가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실존적 결단이기 때문에 죽음은 자살자의 삶이 온전히 배어있고 이는 세계와의 접속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에 어떤 시대에 있느냐에 따라 그 죽음의 형식과 의미들은 달라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열사로 호명된 죽음, 혹은 호명받지 못한 죽음을 파헤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더욱 집중해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일 것이다. 3. 백남기 농민은 '열사'라는 호명을 유족차원에서 거부하였다 들었다. 거부라기 보다는 '농민'이라 호명 받기를 적극적으로 피력하였고 이것은 이 기록작업에 아주 중요한 고갱이가 될 것이다. 그대로 소멸하고 싶어한 고립된 노동자의 죽음들, 열사라는 말도 싫고 그저 나를 잊어달라고 말한 어느 유서에 오래도록 눈이 머문다. 왜, 잊혀지고 싶었을까. 잊혀짐으로써 오히려 본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삶은 늘 잊혀지고 가리워진 삶이었음을, 이제와서 호들갑 떨지 말라는 세상을 향한 준엄한 유언이었으리라. 김주혁 배우의 명복을 빌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