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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보는 과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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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보는 과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역사는 과거의 눈 즉 당대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역사를 인식하는 것에 있어 더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사 이래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 제법 그럴싸한 논쟁 ‘꺼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상범 교수의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은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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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보는 과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역사는 과거의 눈 즉 당대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역사를 인식하는 것에 있어 더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사 이래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 제법 그럴싸한 논쟁 ‘꺼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상범 교수의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은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보는 과거’라는 전제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금서’라는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기형적 체제를 지니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재인식, 재확인 하고자 한다. 저자는 ‘금서 제도’ 가 있는 나라를 “예외 없이 억압 사회, 사회적 모순을 지닌 사회이며 문화의 건실한 발전이 뒤처진 기형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라 규정하고 있다. 그는 ‘금서 제도가 있는 그 기형적이고 모순적인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근․현대 한국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금서’는 “당시 사회의 기성 권위와 부조리에 대한 도전”의 한 형태이다. 이 책 [금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자에게는 예외 없이 “당시 사회의 기성 권위와 부조리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였던 선지자이며 순교자이다. 따라서, 그들의 ‘피로 쓴’ 저작들은 ‘금서’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정신의 존엄과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한 위대한 선지자들의 정신”이 되는 것 이다. 마키아벨리가 그러했으며 그로티우스가 그러했던 것이다. 하여간, 이 책은 고대 프로타고라스부터 근대 마르크스 까지 거의 모든 금서의 목록들이 에피소드와 함께 일별되어 있다. [금서]에 등장하는 서적들 가운데 다수가 ‘근대 서양 철학사상’을 다루고 있어, 일반 독자들에게는 제법 어려운 소재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필력으로 쉽게 풀어 쓰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사이에 ‘근대 서양 철학’에 나름대로의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었다. ^^*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저자의 피로 쓴 것만을 애호한다. 피로 써라" 라는 말이 귓가에 멤도는 이유는....

[인상깊은구절]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저자의 피로 쓴 것만을 애호 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 이다."
a******i 2004.01.1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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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번 읽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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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들어본 지도 오래된 이 단어에 마음이 끌린 듯하다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은 1980년대 중반, 전씨와 노씨의 합작품인 신(新)군부가 온통 세상을 장악하던 그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20대 초입의 혈기왕성한 촌닭이 소위 '빨간 책'이라 불리던 금서들을 처음 접하게 된 그때,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세상과는 판이한 세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분노'에 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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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들어본 지도 오래된 이 단어에 마음이 끌린 듯하다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은 1980년대 중반, 전씨와 노씨의 합작품인 신(新)군부가 온통 세상을 장악하던 그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20대 초입의 혈기왕성한 촌닭이 소위 '빨간 책'이라 불리던 금서들을 처음 접하게 된 그때,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세상과는 판이한 세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던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에 끌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은 책이다.

 

금서 탄생의 배경에 대하여

 

인류의 문화는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거나, 사상과 창작의 표현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낸다. (중략) 그러나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세력은 어떤 책에 갖가지 구실을 붙여 금서로 낙인을 찍기도 했다. 지금도 이른바 안보와 풍속 문란을 이유로 그러한 일은 지속되고 있다. (p.10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은 "금서는 왜 생기며, 누가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서구 근대사의 속내를 조명한다. 16세기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초 러시아 혁명까지 근대사상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자 했다는 저자의 욕심(?)은 종교 권력과 왕권 등 당시의 절대권력과 대립각을 이루며 태동한 인본 혹은 민주사상의 뿌리를 캐는 과정을 통해 유럽의 근대철학과 사상의 변천과정에서 드러난 기득권자들의 우매함을 맘껏 조롱하고 있다.

 

역사와 금서,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주역들에 대한 고찰

 

인류사는 개혁가(책이 말하는 '선지자')들과 기득권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지속된 전쟁의 역사다. 그것은 '금서'를 생산하는 자와 '금서'로 지정하는 자,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현실의 안위를 지키려는 자, 새것과 고루한 것 간의 투쟁 역사인 동시에 '금서'를 생산하는 피묻은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책은 그런 역사 속에서 지금은 '상식'이 된 역사의 '화석'과도 같은 이론들과 그 이론들을 생산해낸 사상가들,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상식 밖의 고난들이 한데 어우러져 추상화같이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 간다.

 

어떤 사상가들의 위대한 업적은 당시 사회의 기성 권위와 부조리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비상한 용기와 각오가 없이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헌신과 순교자적 희생 덕택으로 귀중한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들의 고난과 좌절, 시련과 희생, 고뇌와 집념의 일부나마라도 엿보지 않고는 그들의 사상을 옳게 파악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p.11 본문 인용)

 

마치 화장실 구린내는 뚜껑을 덮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또 밝아 온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듯 말이다.

 

금서가 던지는 반면교사의 역사적 교훈

 

왜 '금서'를 통해서 근대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오늘날 명저나 고전으로 꼽히는 선지자의 저작이 거의 대부분 '금서'로 낙인이 찍혔던 책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선지자가 온갖 박해와 수난을 당하면서 인류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을 선지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당시의 문제를 통해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p.10~11 <들어가는 말> 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편협한 속물들'이 금(禁)하였던 것을 통해 '선지자'들이 외쳤던 지극히 바른(正)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이미 검증한 가장 현명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증언이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금서, 세상을 바꾼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들과 위정자들에게 반면교사의 경종을 울리는 대자보가 될 것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아팠던 기억의 편린들

 

버스를 타다가,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심지어는 고궁의 돌담을 걸으며 고즈넉한 데이트를 즐기던 중에도 어김없이 짭새들에 의해 가방이 까발려졌던 기억. 마치 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겨지는 듯한 참담한 심정으로 순순히 가방을 건넬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풍경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무겁게 눌렀던 이런 감정들이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회고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비록 지나가버린 날들이었지만 당시 철저하게 짓밟히고 유린당했던 '내 권리'는 아직도 아픔으로 되새김질 되곤 한다. 그래서 더욱, "대부분 선지자들이 걸어간 길은 역경의 노정이었다.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인류를 위해 무언가 바른 일을 한다는 확신이 그들의 창조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p.11 본문 인용)"라는 저자의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며 줄곧, '과거는 이미 역사의 저편에 섰고 나는 여기 건너편에서 아픈 생채기만 쓰다듬을 수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나'들이 겪었을 그날의 아픔들이 차곡차곡 쌓였기에 현재의 우리가 민주라는 이름 아래 버거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고 겸허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면 지나친 정신적 사치였을까?


첨언 : 권하는 말과 사죄의 말


제대로 된 서양근대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직 이런 책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울러,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이 글에 쓴 '짭새'라는 단어는 미안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그들이 무슨 죄 있었으랴마는,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려다 보니 가장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에 어찌할 수 없이 사용하게 됨을 용서하기를.

z****n 2008.05.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