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보르헤스라는 이름은 하나의 콤플렉스였다. 그는 내 교양 목록에 없어서는 안 될 항목이었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질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철학의 시조’라는 수의를 입고 다가오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쉽사리 그를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다가왔고, 불행히도 나는 철학과 학생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내가 이 책 ꡔ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ꡕ를 선뜻 집어든 건 여전히 그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아물지 못한 상처는 다시금 칼날을 탐하는 것이던가. 어쨌거나 그는 여전히 내 목록의 빈 자리를 채워줘야 할 이름이었다. 꼭 그래야 했다. 더구나 이번엔 문학작품이 아니라 강연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내 기대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내 이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번엔 그의 잘못이 분명했다. 거기엔 “오래된 문제의 해답”도 없었고, “새로운 문제”도 없었으며, “다만 케케묵은 당혹감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저는 단지 이러한 당혹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충분히 뻔뻔한 사내였다. 그러나 그의 뻔뻔함과 그로 인한 나의 당혹감은 신기하게도 하나의 출구가 되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내 눈동자에 별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학책을 들출 때마다, 저는 별들이라고는 전혀 본 적이 없는 천문학자의 저서들을 읽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받아왔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시가 마치 무슨 과업이기라도 된 듯이 시에 대하여 쓰고 있을 뿐 시의 실체, 즉 열정과 즐거움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열정과 즐거움을 안고, 마법에서 시작되어 다시 마법으로 돌아온 언어 사이를 경쾌하게 오간다. 그렇게 그는 시를 말하고, 그의 말은 곧 시가 된다. 나는 그의 발자국을 이 곳에 조금이라도 옮겨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물론 스포일러에 대한 유의 때문은 아니다. “저는 그것을 상기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단순한 이성으로써가 아니라 깊은 상상력으로써), 그것은 번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번역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보르헤스는 이제 더 이상 내 교양 목록의 항목이 아니다(어쩌면 다른 항목들조차 재고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향기롭고 달콤한 음료이다. 나는 그가 시를 마시듯 그를 마신다. 물론 그 음료가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재료를 찾느라 달콤함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나는 책 말미에 붙은 해설을 읽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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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책 속의 책에서 알게된 작가다.그가 말하는 어떤 구절들에 이끌려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그는 할머니에게 영어를 배웠고,스페인어,독일어,프랑스어,라틴어를 배운 석학이다.유전적인 요인과 지나치게 많은 독서량으로 시력을 잃었다.그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유독 끌리는 부분은 그가 도서관에서 사서,도서관장으로 일했다는 점이다.그는 시력을 잃고 나서도 여전히 책을 많이 읽었고,많은 활동을 했다.
이 책은 160쪽 분량의 강연과 연보,옮긴이의 설명 등을 포함해서 199쪽 분량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그의 삶 자체가 책이라고 보면 된다.책에 관한 서적을 읽을 때는 독자는 자신이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야 즐겁다.그가 말하는 것처럼 단어들은 공유된 기억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가 언급한 책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안된다.그래서 그의 강연을 모두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놀라운 부분,입가에 미소짓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는 삶이란,시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그의 시에 대한 예찬은 대단하다.그에게서 나는 시를 느끼는 방법을 배운다.먼저,우리가 시를 읽을 때 저자와 독자간의 세월의 간격이 가져온 그 단어의 변형이나 의미의 변형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점을 지적한다. 세월이 시를 깎아내리는 때,언어가 그 아름다움을 상실하는 때입니다.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세월이 시를 깎아내리기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때입니다(P29)
그는 강력한 은유들은 의미를 강화하기보다는 해석학적 틀을 불안정하게 한다고 주장한다.(P185) 시는 대부분 은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그는 은유에 대해서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시간과 강에 대하여 (Of Time and the River)』 이 두 단어를 그냥 가져다 붙여만 놓아도 시간과 강,이들 둘 다 흐른다라는 은유를 암시하지요.(P40) 장자가 자신이 나비였던 꿈을 꾸고 나서,자신이 나비였던 것을 꿈꾸었던 사람인지,자신이 사람이라고 지금 꿈꾸고 있는 나비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부분은 가장 훌륭한 은유라고 말한다.
프로스트의 시(P47)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허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입니다.몇 마일은 공간에서,뉴잉글랜드에서 몇 마일이며'잠들다'는 '잠자러 가다'를 뜻합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몇 마일이 공간에서뿐만아니라 시간에서도 거리이며,'잠들다'는 '죽다' 또는'쉬다'를 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소설에서 말하는 행복과 성공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빈곤함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번역은 반역이다는 말의 예를 들어,번역으로 원작과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책이란 물리적 사물 세계에 있는 하나의 물리적 사물입니다.그것은 죽은 상징들의 묶음입니다.그리하여 적절한 독자가 그 책을 펼치노라면.. 언어는 살아나게 되고,우리는 언어의 부활을 봅니다.(P12) 보르헤스는 세계를 무한한 도서관으로 보고 있다.보르헤스는 독자는 책을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서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보르헤스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그의 또 다른 책을 접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