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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하기 가장 힘든 책이 '시집'이다. 특히 내겐 그렇다. 문학평론가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그러려니 싶다. 어줍잖은 감상으로 대충 얼버무렸다간 '시에 대한 몰이해 혹은 함량미달의 시적 감성'이라는 혐의를 뒤집어 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낱낱의 문장들이 시원스레 풀어헤쳐져 있는 산문집의 경우 리뷰에 대한 부담은 시집에 비해 훨씬 덜한 편이다.
그러나 산문집이라 해도 서평하기가 참으로 곤란한 경우가 또 있다. 지인知人의 책인 경우가 그러하다. 김학민의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김학민 지음/은행나무 펴냄)를 리뷰하려니 선뜻 초를 치기가 어렵다. 공연히 자신감을 잃고 헛헛한 마음에 연신 담배만 빨아댄다. 그나저나, 두어 번 만나 대포 한잔 한 것 가지고 지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위안거리를 찾은 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칼럼모음집이다. 사실 한동안 '한겨레21'을 통해 연재했던 글들이니 난생처음 접하는 것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책으로 엮고 그럴싸한 제목까지 붙인 걸 보니 그 맛이 색다르다. 하여 새로운 심득心得도 뒤따른다.
음식에 관련한 책이라 하면 으레 몇몇 식당이나 특정 음식에 대한 단순한 소개서려니 싶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그런 것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특정 식당을 소개하거나 특별한 음식을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으며" 그 보다는 "식당이나 음식의 역사·문화적 배경, 먹을거리와 사회·경제적으로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243쪽)를 다루고 있다. 하여 책은 음식과 관련한 문화·역사적 고찰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눈여겨볼 것은 저자가 음식관련 글을 쓰게 된 동기부분이다. 저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난데없는 개고기 논쟁이 들끓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는 개고기에 얽힌 일화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의 취조실에 끌려갔던 유인태가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취조실에서 면벽한 채 냄새 고문을 당했던 일이나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무릅쓰고 끝까지 음식 주권을 지킨 어느 개고기집 주인의 재치만점의 암구호식 간판 '계속합니다' 등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한 고전을 섭렵하며 감칠맛 나게 엮어내고 있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인문학적·역사적 의미추적의 과정이다. 특정 음식과 그의 재료가 되는 식재료의 출현시기 및 탄생배경에 대한 저자의 치밀한 고찰을 가만히 읽고 있자니 그 인문학적 소양의 깊이와 폭에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심지어 인용하는 고전들이 하도 다양하고 방대하여 하마터면 저자가 이른바 인터넷세대의 편의적 출전 차용의 문화인 '인터넷 지식검색'을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오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나 책머리의 끝 부분을 보면 저자가 예의 컴퓨터문화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아저씨 세대(?)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어 그런 오해는 자연스레 해소되고 있는 셈이다.
그 외 책에 등장하는 모든 글들이 저마다 의미가 깊고 새겨둘 만한 것들이어서 되도록 많이 소개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어줍잖은 소개로 의미를 훼손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一讀을 권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바야흐로 산문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요즘에도 부실한 내용에 표지만 화려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이만큼 알찬 내용이 담긴 책이 우리 주변에 있음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30년 식도락가의 경험과 웅숭 깊은 인문학적 소양이 빚어낸 우리 음식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설을 보며 나는 '글맛에 끌리고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에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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