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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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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이 책에는 박사학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을 포기하고, 새롭게 학문 공동체를 꾸린 저자의 역정을 풀어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은 '수유+너머'를 새로운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저자는 새로운 학문공동체인 '감이당'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제도권에서 학문을 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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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이 책에는 박사학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을 포기하고새롭게 학문 공동체를 꾸린 저자의 역정을 풀어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지금은 '수유+너머'를 새로운 사람들에게 넘겨주고저자는 새로운 학문공동체인 '감이당'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제도권에서 학문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그런 결단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저자는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보다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이미 저술과 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공부를 했으며한동안 나는 저자와 비슷한 연배인 선배들과 함께 말석에서 열띤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실제 초창기 '수유연구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고여러 차례 그곳에서 진행되었던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했다이 책 역시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겨 있으니오래 전에 직접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아마도 서울역 맞은편의 옛 대일학원 자리에 새롭게 꾸린 '수유+너머'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열린 '토요서당'에 한동안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다닌 적이 있는데그때 저자에게서 이 책을 직접 받았을 것이다오랫동안 앚힌 채 서가에 방치되어 있다가최근 저자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손이 가서 다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그 공간을 '탈주'해서 새로운 학문공동체를 꾸리고 있지만공동체를 꾸려가는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이 책에서도 확인되고 있다학문도 재산도 독점하지 않고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 저자가 지닌 기본적인 삶의 철학이다이 책에는 '수유연구실'을 처음 꾸릴 때부터사회과학을 하는 이들과 '접속''수유+너머'로 확장되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그리고 수유리에서 시작된 공간이 대학로와 종로의 연남동으로 이어지는 과정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다양한 인연들에 얽힌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다처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본'으로부터 시작했지만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학문 공동체를 구축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로 활용했음을 진술하고 있다저자의 이런 뜻에 공감한 많은 이들이 동참하여공간을 넓히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접속'해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점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저자만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그러한 과정에서 얻었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학문공동체 활동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저자의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다른 학문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자신의 이익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경향에서 벗어나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는 저자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본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1.02.03. 신고 공감 1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날개의 무게를 가진 꼼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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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보니, 다소 거창하단 느낌이 든다. 뭐 인류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부제는 약간의 상술이 배경이된 설정이란 느낌이다. 오히려 " '수유+너머'와 함께한 내 삶의 진솔한 에세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단 생각이다.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감동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화두로 삼아야 할 많은 것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공동체'라고 하면, 나는
"날개의 무게를 가진 꼼뮨" 내용보기
부제를 보니, 다소 거창하단 느낌이 든다. 뭐 인류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부제는 약간의 상술이 배경이된 설정이란 느낌이다. 오히려 " '수유+너머'와 함께한 내 삶의 진솔한 에세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단 생각이다.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감동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화두로 삼아야 할 많은 것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공동체'라고 하면, 나는 기본적으로 두갈래의 생각이 먼저 든다. 첫번째는 생태공동체로, 현대문명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은 이들이 귀농등의 실천을 하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누리려는 의식적인 노력 말이다. 두번째는, 앞부분은 비슷하고 형태도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주된 배경이 종교라 할 수 있는 종교공동체. 애미쉬나 퀘이커 등... 그리고 종종 이 둘은 양립하기도 하고. 그 다음으로 최근에 종종 들어봤던 육아공동체도 세번째 정도로 들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 문제란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매우 제한적인 '공동생활'이란 외피때문에, 큰 감흥은 없는게 사실이다. '수유+너머'라는 존재/공간에 대해서, 그냥 사무실 하나 있고, 강의 종종 있고, 여러 지인/학자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나서 그들의 사고방식이라는게, 그리고 발자취라는게 가지는 의미가 그 이상이라는,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쩌면, 이러한 내 느낌이 고미숙의 유쾌한 문체때문에 증폭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수유+너머'는 공동체였다. 그에 대한 자부심이 '인류학'이란 기표를 부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개똥철학을 약간 풀어놓자면, 사람이 어떠한 것에 감동을 느끼는 것은 결코 정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해서 특정인에게 항상 감동을 주는 특정한 존재는 불가하다. 인연이라고 할까,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공간에 그 특정인이 그 특정 사물/현상을 접했을때 주는 감동은, 다른 시공에서 그 주체와 사물의 만남이 발생시키는 감동과 같을 수 없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만났던 시기는 어쩌면 딱 내가 이런 이야기에 감동을 받을 만한 상태에 있었을때가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살면서 뭔가 정체됨에 대한 회의와 피곤함을 느끼고, 때로는 차라리 포기하고 규칙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퇴행욕구마저 느낄 즈음, 이 책은 나름대로 탈주의 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너무 거창한가? 하여간, 순간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서, 여러 종교인의 이야기도 나오고, 끄트머리에는 약간의 생태주의에 대한 저자의 사고도 비쳐진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 혹은 삶의 기저에 종교와 생태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거의 표방하지 않았고. 어찌보면 막연하게만 느껴질 '다른질서'를 추구하는 이들이었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 스며들게 된 종교적 수준의 경건함과 생태적 건강함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차레 실증을 느낀, 종교와 생태주의의 기표에만 매달린 여러 실험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가운데, 이들은 진정 참/신/했/다. 네그리와 가타리의 말을 인용한다. "사랑에 대한 유물론적 정의는 공동체에 대한 정의이다. 즉 그것은, 사회적 배치들을 구축하는 관대함을 통해 넓혀지는 정서적 관계의 구축에 대한 정의이다. 사랑은 남녀 한쌍이나 가족 속에 가두어지는 그 무엇일 수 없다. 그것은 아무튼 지식과 욕구의 공동체들을 구축하는, 그 밖의 무엇인가를 구축하게 되는 그 무엇이어야만 한다. 오늘날 사랑은, 존재를 뭔가 고유하고 사적인 것 속에 가두는 모든 시도의 파괴로서,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방식속에서 제기된다. 나는, 사랑은 고유하고 사적인 것을 공동적인 것으로 변형시키기 위한 근본적 열쇠라고 생각한다." ... 이 실험을 하면서 대두되는 여러 일상적인 문제중의 하나인 '사랑'에 대한 잠정적(?!) 답변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에 취해, 거기에 힘겨워하고, 극단까지 달리는 이야기나 아니면 어줍잖은 '쿨~함'에 대한 환상, 그렇지 않으면 곰팡내까지 나는 지고지순함이라는 모델들에 비해 꽤 멋지지 않나? 노마드 적이 삶, 횡단하는 삶, 그리고 생명력있고 어디든 언제이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데,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덕목인 사랑이 어찌 이를 가로막는 혹은 발목을 잡는 감정/심리적 기재가 되어야 하는가? 아주 운이 좋은 이들이었을 수도 있다, '수유+너머'는. 앞으로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비관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낙관이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혹은 저자가 전범으로 삼는 달라이라마나 마르코스의 낙관은 이미 그 이상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니까. 부처가 제자들에게 했다는 말.. "오직 날개의 무게로만 가는 새처럼 가라!" 데카당트한 에고이즘의 아우라가 찐득하게 붙어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보다 훨씬 경쾌하다. 그리고 그 말이 내 뇌리 한 곳을 관통한 것 같다. 이제 책이 아닌 몸으로 부딪혀봐야 할 때인 것 같다.
YES마니아 : 골드 e****s 2004.11.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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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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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 기대없이 지인의 추천으로 사보았습니다만...웬지 모르게 빠져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참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웬지 모르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많이 생기더군요. 아주 작은 모임에서 현재 뭐 거의 기업형(?)으로 발전되어가는 코뮌이네요. 책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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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 기대없이 지인의 추천으로 사보았습니다만...웬지 모르게 빠져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참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웬지 모르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많이 생기더군요. 아주 작은 모임에서 현재 뭐 거의 기업형(?)으로 발전되어가는 코뮌이네요. 책이 2004년에 나왔던지라 현재는 구로커뮤니티까지 생기고 이래저래 많이 변했더군요. 시간이 되면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놀러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미나에도 참석을 해봐야겠다는 생각...그런데 홈피에 보니 세미나들은 상당한 공력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재밌게 그리고 유쾌하게 보았습니다. 고미숙선생님의 다른 저서들도 시간을 내어 섭렵해볼 생각입니다.
s*******0 2009.05.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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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놀이터 <수유+너머> 이야기
"공부 놀이터 <수유+너머> 이야기" 내용보기
단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늘 그곳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곳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대학이라는 울타리 틀이 얼마나 학문을 억압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의 어려움, 밥그릇 싸움으로 인한 혹은 전공 이외의 무지로 인한 학제간 연구의 어려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파가 아닌 학계 내 파벌 형성, 학연으로 뒤엉킨 교수 사회,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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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늘 그곳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곳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대학이라는 울타리 틀이 얼마나 학문을 억압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의 어려움, 밥그릇 싸움으로 인한 혹은 전공 이외의 무지로 인한 학제간 연구의 어려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파가 아닌 학계 내 파벌 형성, 학연으로 뒤엉킨 교수 사회, 생기를 잃어버린 낡아빠진 강의와 연구, 비판과 새로운 대안이 없는 학회…. 대학과 학자들에게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라는 주문을 하기에는 외적인 억압 요인이 너무도 많아 보인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학계인 이상 대한민국의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그대로 떠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할 학자들의 내부마저도 이런 모양이니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해서 ‘수유+너머’와 같은 제도권 외부의 학술연구공간이 대학을 대체해야 한다거나 제도권 교육기관, 학술기관을 모두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유+너머’의 존재는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대안의 제시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존의 학계에 반성을 촉구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귀염둥이가 되지 않을까. 대학이 대학 밖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반대로 대학도 대학 밖에서도 배워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우선, 고미숙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이야기한다. 시골이 고향이었던 터라 특별난 배움의 기회가 없었지만, 아이들과 공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세미나(?)를 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린다. 공부는 우선 즐거워야 하는데 대학은 그런가? 규격화된 논문 쓰기 연습으로 인한 인식의 화석화과 새로운 앎의 세계에 접속하는 어려움…. 대학이나 대학원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이 유치원 같은 초등교육기관보다 교육과 학습의 등급(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교육학적 상식이다. 대학 교수의 학습과 연구보다 유치원생들의 놀이와 연계된 학습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 ―― 사실, 이 책에서는 그렇게까지 대학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의 공부와 자신들의 공부를 비판적으로 대비시켜 놓기보다는 수유+너머의 즐거운 일상과 그 즐거움이 가능하기까지의 좌충우돌들을 발랄하게 유쾌하게 그려놓고 있다. 남들을 비판하기보다는 우선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즐겁게 재구성하려는 그 시도! 저자 고미숙이 시종일관 웃음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낙천적 기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웃음의 활력이 이뤄낼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n****w 2004.04.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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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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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의 '지식 꼬뮌'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만의 방식에 깊숙이 매료되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사무치는 감정을 느끼게 된 데는 아마 저자 고미숙의 특유의 종횡무진 명랑한 '말빨'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전해주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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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의 '지식 꼬뮌'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만의 방식에 깊숙이 매료되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사무치는 감정을 느끼게 된 데는 아마 저자 고미숙의 특유의 종횡무진 명랑한 '말빨'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전해주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말합니다. "본디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지나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노신 선생이 말했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식 공동체'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미숙으로부터 시작된 '수유리 공부방'과 이진경으로 대표되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운명적인 만남과 변신·합체·진화의 과정을 통해 길이 생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조와 잡가 따위를 연구하는 고전문학 연구자와 가장 전위적 담론을 모색하는 사회과학자 사이의 은밀한 접속, 그리고 탈바꿈(=변태?)의 과정. 그 과정에서 경계는 사라지고 지식은 늘 새롭게 배치됩니다. 그런 지식이 그들만의 세미나를 통해 공개되고 공유됩니다. 노마디즘, 열하일기, 천의고원, 푸코, 들뢰즈/가타리는 그들이 즐겨하는 주제입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너무 많아 옮기기가 민망합니다. 아주 최근의 강좌 또는 세미나 제목을 몇 개 옮겨 보겠습니다. '노마디즘'과 '선(禪)의 관문(關門)', '빛에 대한, 빛에 의한, 빛으로 보는 세계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급진성, <에티카>', '지속과 생성의 철학, <물질과 기억>', '<西遊見聞>을 읽는다 Ⅱ', '지젝 with 헤겔', '근대의 감각과 시각성-<소년>과 <청춘>의 창(窓)', '실크로드로 떠나는 사진교실' 등... (www.transs.pe.kr에 가면 자세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히 '세미나 게릴라'라는 이름이 붙을만 합니다. 그 게릴라들이 쏟아낸 책들입니다. 알라딘과 예스24에서 뒤져보았습니다. 《열하일기, 웃음가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계몽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나츠메 소세키 문학예술론》(황지헌 옮김),《나츠메 소세키 문명론》(황지헌 옮김),《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진은영)《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정여울),《book+ing 책과 만나다》(수유연구실+연구공간'너머'),《근대적 시. 공간의 탄생》(이진경),《연애의 시대》(권보드래),《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진은영),《들뢰즈와 문학 기계》(고미숙),《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정선태),《근대성의 경계를 찾아서》(서울사회과학연구소),《인텔리겐차》(퍼슨웹),《한국근대소설의 기원》(권보드래),《철학극장, 욕망하는 영화기계》(고미숙),《노마디즘 1,2》(이진경),《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김진균),《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이진경),《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진경),《철학의 외부》(이진경),《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이진경),《수학의 몽상》(이진경),《맑스주의와 근대성》(이진경),《철학의 탈주》(이진경),《탈주선 위의 단상들》(이진경),《철학의 모험》(이진경),《일본 근대의 풍경》(연구공간 '수유+너머' 옮김),《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비평기계》(고미숙),《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고미숙),《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일본 문학의 근대와 반근대》(정선태 옮김),《가네코 후미코》(정선태 옮김),《아시아라는 사유공간》(류준필 옮김),《옛 시 읽기의 즐거움》(김풍기),《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고병권 옮김),《카프카》(이진경 옮김),《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이진경),《동양적 근대의 창출》(정선태 옮김),《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정선태),《문화읽기 : 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고길섶),《18세기에서 20세기 초 한국시가사의 구도》(고미숙),《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이진경 옮김),《근대계몽기 지식 개념의 수용과 그 변용》(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박성관 옮김),《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진은영),《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김경희 옮김) 등등등... 헉헉... 대충 잡아도 이 정도입니다. 찾아도 찾아도 끝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이들에게 학문의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고미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즉, 한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가의 여부는 천재적 영감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지적 열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열정을 견지할 수 있는 그들에게 앎이란 즐거움이고,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에게 하는 원천으로서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앎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 - 이것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시작이자 끝일 것입니다. 혁명이건 구도건 그런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법이니까요. 그들이 부럽습니다.
n******8 2005.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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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실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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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이 방법을 종종 써먹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계속 떠들어대는 것이다. 계속 떠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욕망이 감염되어 덩달아 떠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경계가 펼쳐진다. ... 믿어지지 않는다면? 일단 한 번 해보시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물론 조건이 하나 있다. 마음을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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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이 방법을 종종 써먹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계속 떠들어대는 것이다. 계속 떠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욕망이 감염되어 덩달아 떠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경계가 펼쳐진다.

...

믿어지지 않는다면? 일단 한 번 해보시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물론 조건이 하나 있다. 마음을 최대한 비워야 한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초조하다고 오락가락하면 절대 안 된다. 텅 빈 마음으로 치열하게 열망할 것. 이것이 비결이다.

64쪽

 

오늘부터 소망하는 것을 떠들고 다녀야겠다.

y*****s 2011.1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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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은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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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를 처음엔 의아함과 나중엔 시새움의 눈빛으로 곁눈질한 것이 햇수로 몇 년 된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인문학자들이 모여서 생활 공동체를 만들었다는데, 그들은 대부분 비주류들이었고 이름도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이진경씨만 빼고... 그는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사상가였기에 80년대 학번들은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였다. 대체 이들은 무슨 짓을 하려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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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처음엔 의아함과 나중엔 시새움의 눈빛으로 곁눈질한 것이 햇수로 몇 년 된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인문학자들이 모여서 생활 공동체를 만들었다는데, 그들은 대부분 비주류들이었고 이름도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이진경씨만 빼고... 그는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사상가였기에 80년대 학번들은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였다.

대체 이들은 무슨 짓을 하려고 모였으며, 듣기에도 생소한 학자들의 생활공동체라니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과연 오래 유지될 수나 있을까?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집단은 쉽게 깨지지도 않고 사회주의적 코뮌의 성격을 띠며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저작물들을 쉴새없이 쏟아내고 있다.

박지원의 저술을 새롭게 소개하며 고미숙씨가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린지도 이제 햇수로 꽤 된다.(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고미숙씨가 수유리에 있던 개인 집필실을 몇몇 국문학자들과 공유하면서 이진경을 비롯한 사회학자들을 세미나를 통해 끌어들이다 결국 그들과 합체하여 공동체를 만들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고 있다. 이 책에는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란 부제가 붙어 있다. 자신의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아낌없이 이곳에 바치면서 남는 장사라는 그의 논리에 머리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 쥠으로써 내가 가진것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놓음으로써 관계의 확장을 통해 무궁무진한 세계로 확대되는 지식과 사고, 그리고 삶의 찬란한 변이!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이다.

YES마니아 : 골드 p******e 2009.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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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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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또 놀랍다. 한없이 부러운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이 학습공동체(?)의 이름은 지인을 통해서 들은지 꽤 되었다. 물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금새 잊어버리긴 했지만. 이번에 우연히 ‘수유+너머’의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을 읽게 되었고, 올해 들어 읽은 최고의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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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또 놀랍다.

한없이 부러운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이 학습공동체(?)의 이름은 지인을 통해서 들은지 꽤 되었다.

물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금새 잊어버리긴 했지만.

이번에 우연히 ‘수유+너머’의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을 읽게 되었고,

올해 들어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게 되었다.

왜 이런 책을 지금에야 접하게 되었나 싶은 한탄과 함께.

(이 책은 2004년 1월에 나왔으니, 벌써 5년이 지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대학 시절 꿈꿔왔던 것,

나름대로 ‘공부’란 것을 하면서 이상향으로 삼아왔던 모습이 현실화된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이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학삐리’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나의 삶이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마음 한 구석에 영원히 가지고 있을 꿈, ‘돈키호테의 꿈’과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동체’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특히 요즘처럼 매일매일이 생존을 위한 삭막한 경쟁의 연속이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지친 사람일수록 더욱 공동체를 원한다.

내 것 네 것 없이 공유하고 나누며, 서로에게 기여하고,

생존의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더 깊게 성장시키는 공간.


여기 승자독식의 사회를 거부하고 ‘공부’와 ‘학문’ 영역에서 출발하여 코뮨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수유+너머’라고 이름붙여진 공동체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솔직히 ‘수유+너머’에 대한 나의 인식은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문학 공개강의를 하는 연구단체 정도에만 그쳤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통해서 이들의 실험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문턱→탈주→배치→축제→비전의 순서로 ‘수유+너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체의 시작은 ‘문턱넘기’부터 시작한다.

넘어야 할 문턱은 무엇보다 권위에 빠진 제도권과 내 한 몸 편안한 안식을 찾는 조로증이다.

고정된 사고와 답답함 가운데 조금만 생각을 ‘전복’시키면 출구가 보이고

모든 것을 풀어놓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기만 하면 내 삶을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감을 알려준다. 이것이 문턱넘기이다.

한 번 문턱을 넘고, 또 하나의 문턱을 넘으면 이제 공동체는 본격적으로 달려나간다.

사회가 미리 세워 둔 골인지점이 아니라, 주체가 이끄는대로, 내 삶이 개척되어나가는 곳으로 탈주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가지 몸으로 체득해야만 하는 자세가 있다.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는 공동체가 아닌,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비옥해지는 공동체.

소유나 집착이 아닌, 상대의 본성을 촉발시키는 사랑이 발현되는 공동체.

일사불란함과 조직이 아닌, 이질성과 다중심, 밴드식 결합, 우발성이 범람하는 공동체.


그리고 이런 탈주를 위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습속과 버릇을 다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배치’가 바로 그러한 통과의례이다.

이 배치는 단순한 마음가짐의 변화만 의미하지 않는다.

먼저 ‘몸’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진지함’의 미덕도 바꿀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자의식’이란 가장 공고한 습속을 바꾸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배치의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렇게 배치가 바뀐 사람들은 이제 공동체를 형성하고 ‘축제’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현대의 삶이란 것은 얼마나 팍팍한가.

명문 대학=좋은 직장=부자의 등식은 이 사회 구성원 거의 전부를 구속하는 등식이 되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는데도 말이다.)

하나의 코뮌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수유+너머’는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당연하게 습속화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스템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왔던 것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고 미래의 비전을 찾기 위한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얼마전 유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목의 특징은 어느 한 군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나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수유+너머’의 유목이 이제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갈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수유+너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2004년 나온 책의 내용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다만 여전히 북적거리며 활기찬 모습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바라기는 이들의 실험이 반드시 성공하여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생활공간, 인간의 규격화된 경계를 넘는 공동체간 네트워크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s******e 2009.06.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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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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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가계부 같은 책이다. 이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한(기획하지 않았다니 만들었다는 말도 구성했다는 말도 쓰기가 어렵다) 고미숙의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책이다. 굳이 그 공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읽어둔다면 나,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함께 앎의 코뮌을 만들어가는데 큰 보탬이 될만하다.   어떤 공동체가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고 그 명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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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가계부 같은 책이다. 이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한(기획하지 않았다니 만들었다는 말도 구성했다는 말도 쓰기가 어렵다) 고미숙의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책이다. 굳이 그 공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읽어둔다면 나,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함께 앎의 코뮌을 만들어가는데 큰 보탬이 될만하다.

 

어떤 공동체가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했다면 그 나름의 색깔, 규칙, 비전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누가 나서서 기조를 세우고 운영 방식을 기획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한 시간만큼 쌓여온 문화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나누고 남이 아는 것을 배우는 앎의 코뮌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고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을 공동체 모두가 즐겁게 여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한 앎이 단순히 책상 머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밥을 함께 먹고 운동을 함께 하고 텃밭을 일구고 내가 번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공동체에 보탤 수 있었기에 지금의 '수유+너머'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종교집단 같기도 하다.

 

나 혼자 공부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많이 알게 되기까지의 시간도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공동체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발전해가고, 서로 가지고 있는 앎을 나누고, 그렇게 얻은 앎을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기에 이 공간이 멋있는 것이다. 협동학습은 이 공간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9.01.21.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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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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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산층의 삶이 아니고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들처럼 사는 길을 택할 뿐이다. 성공해봤자 나른한 일상과 소통부재만이 존재하는 그런 코스를. 따라서 그런 코스와는 다른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아니, 그 자체가 자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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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산층의 삶이 아니고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들처럼 사는 길을 택할 뿐이다. 성공해봤자 나른한 일상과 소통부재만이 존재하는 그런 코스를. 따라서 그런 코스와는 다른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아니, 그 자체가 자본으로부터의 탈주가 된다. 자본에 대한 대안이 자본보다 빈곤해서야 말이 되는가.”


옳은 말이다. 자본에 대한 대안이 자본보다 빈곤해서는 안 된다. 모든 대안적인 것은 기존의 것보다 더 행복하고 더 신이 나야 한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연구 공간 ‘수유+너머’라는 곳의 실체를 파헤쳤다. 앎의 즐거움에 대해, 지식과 일상의 하나됨에 대해, 자신의 낡은 습속과 몸을 변혁하는 것에 대해, 혁명과 구도가 일치하는 비전에 대해,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모색해온 ‘수유+너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권하고 싶은, 재미있고 유쾌하며 감동적인 책. 교육적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줄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나면 우리는 과연 행복한지를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