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서가 한 편에 꽂힌 청소년 성장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분명 아이들 이야기인데, 이거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그래서 책 날개에 홍보된 책들을 서점 홈페이지에서 찾아 파도를 타다보면 재미있는 책을 가끔씩 만나곤 하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저자는 한국인인데 소설 속 배경은 그리스 아테네의 한 구석진 지역이다. 책표지를 보고 제목을 보면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보니 가난, 인종차별, 버림, 가족, 사랑.. 대충 이런 단어들이 공통적으로 보였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읽기로 했다. 주인공인 민수는 아빠와 나이 차이가 18살밖에 나지 않는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 민수를 낳고 사라져버리고,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진 민수는 1년이야, 2년이야.. 하다 5년이 지나서야 자신을 데리러 온 아빠와 어색하게 재회한다. 이 둘은 새출발을 위해 그리스로 이주하지만 생활은 녹녹치 않다. 그런 민수는 밀입국한 여동생 같은 딸을 가슴에 매달고 노숙과 짝퉁 가방을 팔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밀입국 흑인 소년 요나와 이웃이라기 보다는 옆집에 사는 그냥 타인이었던 해체 위기의 바소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이 가족은 불의의 사고로 아빠를 잃은 3남매 앞에 생전 처음 보는 이복동생이 자신의 아버지의 가족을 찾아오면서 해체 위기에 놓인다. 이들 사연에 민수는 반강제로 소환이 되고 민수는 그 과정에서 어릴 적 보육원에 버려지며 입었던 아픈 상처를 밖으로 터트리게 된다. 민수를 포함한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반항하는 방법은 가출이었다. 결코 말을 예쁘게 하지 않고, 지겨우리만큼 투덜대며 싸우지만 그러면서도 문제가 싶었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챙기고, 민수 역시 머리 속으로는 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몸이 먼저 움직여 그런 그들과 동화 되고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간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이 책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인종청소'. 소설속 시점을 그리스의 파산사태 즈음을 그리고 있어서 분위기는 많이 험악하다. 밤이 되면 더더욱 그렇다. 민수는 학교에서 교사에게 학급 친구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차별적인 모욕을 받는다. 많이 익숙한 듯 그 위기를 잘 넘기지만, 자신의 아픔을 아빠 앞에서 표출하고 가출 후 요나와 노숙하는 장면에선 민수가 노숙인을 단속하는 경찰로 착각했던 한 무리로 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한다. 아이가 있는 요나를 먼저 피신시키고 구타당하던 민수는 다행히 레오니스(아버지 가족을 찾아온 옆집 아이)에 의해 구출된다. 민수를 구타했던 이들은 경찰이 아닌 동네 불한당들 이었다. 그들의 명목은 '인종청소'. 백 번 생각해도 화풀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데 말이다. 최근 여행으로 유럽에 갔다 인종차별 당했단 소식을 아주 쉽게 많이 접하고, 또한 신종 코로나로 인해 그것이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사례와 경험자들의 인터뷰를 뉴스를 통해 들어서 그런지 읽으면서 많이 씁쓸했던 부분이다. 그리스의 파산상태를 시점으로 쓴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최근에 유럽의 다양한 정책을 소개했던 좋은 사례의 글과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자주 접하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하고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리스인 아이들 마르타, 콘스탄티노스, 디미트라 3명의 아이들은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물론 소설속 나이와 실제 나이는 달랐다.) 책을 다 읽고 말미에 저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이 작가가 4년의 그리스 유학 생활 동안 거주했던 공동주택과 그 이웃들을 모델로 삼아 쓴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초반에 테오도루 24번지의 분위기를 많이 소란스러워도 그러려니 하고 흔한 말로 오지랖으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다고 묘사한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그리스의 공동주택을 아주 따뜻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낮이 되면 자기집인냥 찾아와 책읽고, 간식먹고 하는 아이들, 저자 자신도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아프면 당연하듯 이웃을 찾아가 도움받고.. 실제로 '테오도루 24번지'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책이라는 형식을 빌려 테오도루 24번지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경험했던 그 공동주택의 따뜻했던 경험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렵게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 테오도루의 두 가족과 아이들이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보육원을 혐오시설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육원에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될 수 있으면 기피한다든지, 보육원 쪽에 있는 아파트는 선택 사항에서 제외한다든지. 교육환경이 좋지 않다고 평가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보육원에서 돌봄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행위를 어른들이하고 있다. 최근에 특수학교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특수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하소연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보육원, 특수학교처럼 사회적 배려와 돌봄이 필요한 시설들이 왜 기피, 제척 대상이 되었을까? 그리스 유학파 출신 작가가 쓴 <테오도루 24번지>는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작가는 그리스의 가상의 도시를 설정한다. 가상의 도시 이름은 '테오도루'다. 신의 선물이라는 반어적 표현을 썼다. 이민자들 조차도 찾지 않는 허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온 경호네 가족, 그리스로 불법 체류로 들어온 요나, 엄마가 다른 배다른 형제 콘스탄티노스와 레오니스 가족. 모두의 공통점은 사회 밑바닥에서 근근히 살아간다는 점이다.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 자신이 아버지라며 하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가족의 테두리에 들어가게 된 경호. 그러나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이별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남아 있는다. 본인과 비스한 환경에 처한 레오니스를 만나면서 말못할 상처가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상처는 아프지만 도려내야 낫는다. 스스로 돌아보기는 어렵지만 상대방의 상처를 보며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상처 받은 자들이 상처를 숨기기보다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8년 구제금융 상황에 놓이게 된 그리스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가정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가정의 아픔은 고스란히 어린 아이들의 몫이 된다. 작가는 작은 희망을 말한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다. 동일한 상처를 지닌 이들이 서로를 품어 주는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 공감하며 아픔을 반으로 나누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할게다. 상처가 낫기까지 아픔을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법체류, 이민, 보육원 등 무거운 주제를 그리스 유학의 경험을 살려 표현한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
국가가 파산상태인 그리스, 그리스의 빈민가 테오도루 24번지에는 어떤 청소년들과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특히 예쁜 표지와 국내 작가가 쓴 글이라 호감이 갔다. 테오도루 24번지는 이민자들도 버리고 간 빈민가 다세대 주택이다. 아빠가 또 자신을 버리고 갈까봐 까칠한 민수,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레오니스와 이복 남매들의 불화, 우연히 만난 불법 체류자 흑인 요나와 그의 아기 딸 줄리아... 이렇게 정상적인 가족들이 살지 않는 곳, 그래서 매일 싸우는 소리가 끊임없고 레오니스 남매들이 민수의 집에 자꾸 드나들게 된다. 서로 툴툴거리고, 싸우고, 심지어 가출하게 되는 청소년들!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사기꾼 미노스 아저씨의 꼬임에 빠져 그리스에 오게 된 아빠, 그렇게 미노스 아저씨한테 이용만 당하면서도 아저씨의 수블라키 가게에서 적은 일당으로 일하는 아빠가 이해 안되는 민수... 툴툴거리면서도 수블라키 가게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아빠를 도와주는 민수... 이해 안 가는 레오니스 남매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어울리게 되는 민수... 딸 줄리아를 자신처럼 버릴까봐 요나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민수... 하지만 구질구질한 테오도루 24번지를 찾은 요나가 "테오도루, 야~ 신의 선물이란 뜻이잖아? 넌 신의 선물인 집에 사는 거야~" 라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요나 앞에서, 민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자신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진다. 국가가 파산했다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서 살아야 할까? 단속에 걸리면 아기를 업고 뛰어야 하고, 가짜 명품 가방을 팔면서 살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요나... 취업도 안되는 대학을 다니느니 장사에 뛰어들어 내 앞가림을 하겠다는 당찬 레오니스의 여동생 디미트라... 민수는 이런 사람들이 문득 놀랍다. 아빠가 예전에 나를 버렸으니까 다시 버릴지도 몰라,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접고 열심히 일하며 자식을 걱정하는 아빠의 진심을 민수가 이해하게 될 날이 올까? 강한 척, 시크한 척... 민수의 겉모습은 이랬지만, 내가 나쁜 짓을 한건가? 아빠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나? 끊임없이 자신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늘 아슬아슬하지만, 민수는 분명히 훌륭한 청년으로 커가겠구나 안심 되어 갔다. 결국 소설을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는 순간, 그리스든 어디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디든, 신의 선물 테오도루 24번지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순간이 와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문득 키케로의 "행복한 사람은 막대기를 심어도 레몬 나무로 자란다." 라는 말이 생각 난다. |
|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떠들석한 파티장을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쉴새없는 입담에 홀려 문장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새 마지막 장이었다. 이 책은 등장인물들이 펄떡펄떡 살아있어 마치 나와 함께 떠들고 대화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여객선 안에서 요나의 드라마를 들으며 훈수를 두고 싶었고, 불량 이웃들의 떠들썩한 수다에 한몫 끼어 들고 싶은 충동으로 입이 근질거렸다.
아프리카 난민 요나, 그리스 소년 콘스탄노스와 레오니스, 민수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어울려 수다를 떨고 싶은 이유는 그들이 너무나 솔직하고 당당하기 때문이다. 어린 미혼부 요나는 줄리아의 아빠로 손색이 없다. 짝퉁 가방을 팔고 호텔 쓰레기통에서 케익을 주워 먹기도 하지만 딸 줄리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빠라서 믿음직스러웠다.
가출소년 똥돼지 콘스타노스는 어떠한가. 가출해 남의 집에 얹혀 살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게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버지가 몰래 숨겨둔 아들 레오니스가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가출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형제임을 받아들이는 멋진 소년이다.
그리고 주인공 민수는 아빠가 보육원에 5년동안 맡겼다가 찾아온 인물이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은근 피해의식에 시달리지만 요나와 친구들을 만나 부대끼며 상처를 치유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때론 아빠의 사랑을 의심해 가출을 시도하고, 티격거리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든든한 아들이다.
디폴드 사태를 맞이한 그리스 아테네 시 빈민가에서 사는 소년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위태롭지만 젊음이 뿜어내는 생기발랄한 활기 덕분에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테오도루가 '신의 선물'이란 뜻이 있는 것처럼 부유하든 가난하든 오늘 하루는 신이 선물했기 때문에 즐겁게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테오도루 24번지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웃고 떠들고 도망을 다녔다. 노숙자가 득실거리고 가난한 이민자들이 값싼 한끼를 찾아 헤메는 테오도루를 신이 선물한 거리로 바꿔버린 민수와 요나, 콘스탄티노스, 레오니스, 마르타, 디미트라. 그들의 우정이 더 많은 마법을 불러올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