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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거창한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간행된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서적과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 말을 부분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68혁명 전후의 프랑스에서 간행된 게루, 마트롱, 마슈레이, 발리바, 그리고 들뢰즈의 주해서가 그렇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간행된 컬리의 저작선집과 요벨의 연구서적과 편저가 그러하다. 사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엄격함과 난해함으로 전문철학자들도 상당히 꺼려했던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스피노자 전공자는 꽤 드물다. 그러나, 이진경 선생이 '근대 속에서 탈근대를 사유한 철학자'라고 평했던 것처럼, 스피노자를 깊이 공부하면 그만큼 철학적인 학자도 없다. 우선, 그의 주적인 '에티카'를 읽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슬람 철학을 공부해야 하고, 토미즘과 둔스 스코투스 등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아니, 중세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사유에 대해 정통해야 하며, 라이프니츠와 서신을 주고 받았던 것처럼, 그의 철학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호이겐스가 그와 친분이 있었던 것처럼, 근대의 과학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에티카'의 방법론인 기하학에 정통해야 한다. 물론, '에티카' 및 그의 주요저작이 라틴어로 쓰인 점을 감안해, 라틴어를 독해할 줄 알아야 한다. (1910년 즈음에 나온 라틴어 판본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 즈음에 독일에서 라틴어-독어 대역본을 구하라!) 마지막으로, 당시의 네덜란드의 정치적 혼란과 드 비트 형제와의 친분, 그리고 '신학-정치학 논고'에서 그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한다면, 당시 홉즈의 사유와 근대의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해서만 개괄한 것이다. 그의 사유체계 안에서는 '내재성' 개념, 'potentia/potestas', '자기 원인', '실체', '존재', '능산적 자연/소산적 자연', '속성', '양태', '코나투스', '인식의 3가지 종류'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에티카'를 읽어보되, 컬리가 편집한 저작선집(85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간행)을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꼼꼼한 라틴어/영어 개념비교와 함께 '신학-정치학 논고'를 제외한 저작들을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피노자 이후, 헤겔,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주석가들 이외에 네그리와 하트의 정치적인 변용 등을 살펴보라. 스피노자가 20세기 들어 상당히 연구되었지만, 이제 시작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저작은 그만큼 중요하다. 긴 글을 여기 적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참고문헌이 필요하다면 메일을 보내달라. 가장 완벽한 참고문헌 목록을 내가 만들어놓았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정말 매혹적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에티카' 안에서 필연적인 오류를 발견한 것을 보지 못했다. 해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그런 비판은 요원한듯 하다. 정말 이 책은 철학 바깥의 철학이리라. [인상깊은구절] 1. 나는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 3. 나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즉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4. 나는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그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5. 나는 양태를 실체의 변용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
| 스피노자라 하면 나에게는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등학교 다닐 때 단짝 친구가 스피노자에 미쳐 철학책만 끼고 도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나 역시 그의 그러한 광기에 무척이나 매료되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골라 읽은 건 그런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을 어느 책에선가 보고 감동을 했기 때문이다. 워낙에 배타적인 써클을 이루며 살아가는 유태인이면서 종교적 진리를 똑바로 응시하는 걸 겁내지 않고, 과감하게 동족의 잘못된 통념에 맞서 일생을 고생하며 고립된 상태에서 살다 죽었다는 점. 평생을 렌즈연마공으로 호구하면서도 철학에의 지고한 뜻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대학교수로 초빙하는 것을 거부하면서까지 학문연구가로서의 고고한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 좌우간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진리탐구의 도정을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는 허망하고 공허해보이는 관념적인 지리를 들이대고서, 그에 대해 마치 수학공식을 적용하듯 하나하나 논리적, 기하학적으로 증명을 해나간다. 철학적 진리에 관심을 두었던 천재라면 누구나 꿈꾸어보았을 야심찬 기도가 아닌가! 한번에 싹 읽고 치울 책은 절대로 아니다. 두고두고 숙독할 책이며, 진리의 내용 그 자체보다 그것에 다가가는 명징한 정신의 보조에 주목할 일이다.. |
| 1656년 7월 27일. 유대인들은 재판정에 있던 등불을 하나씩 끔으로써 한 유태인의 정신이 꺼져갔음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선고하였다. “천사의 재판과 성자의 판결을 얻어 우리들은 그를 저주하고 추방한다. 거룩한 전 회의는 613개의 교훈이 쓰인 거룩한 책(구약성서와 율법) 앞에서 옛날 엘리사가 어린이를 저주한 그 저주로, 그리고 율법 속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더하여 그를 저주한다. 그는 낮에도 저주를 받아야 하고 밤에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 그가 누워 있을 때도 저주를 받고 깨어 있을 때도 저주를 받아라. 나갈 때도 저주를 받고 들어올 때도 저주를 받아라. 하나님이 절대 그를 용서하지 말기를, 인정도 하지 말기를, 그리고 주의 진노와 주의 불쾌가 영원히 그 위에 임하고 율법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를 억압하고 이 세상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말기를, 주께서 그를 이스라엘 온 민족으로부터 끊어 버리시고 율법 속에 있는 모든 저주로 그를 억누르시기를..... 이로써 각자를 훈계하노라. 누구나 입으로 그와 말을 주고받지말고, 글로써 그와 의사를 주고받지 않도록 하라. 그를 돌보지 말라. 아무도 그와 한 지붕 밑에서 살지 말라. 아무도 그가 에르렌거리 근처로 접근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누구도 그가 입으로 전하거나 글로 쓴 문서를 읽지 말 것이로다.” 17세기 사방이 적대적 비유태인에게 둘러싸인 홀랜드의 유태인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 경제적, 철학적 기반인 민족과 친구들에게 저주당한 사람은 바로 Baruch Spinoza이다.(1656년) 20대의 이 슬픔과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간 그는 다른 위로와 목적, 기쁨의 원천을 찾아야했다. [에티카]의 방법론에 해당하는 [지성개선론]에서 그는 덧없고 허망한 것이 인생임을 깨달아, 최고의 기쁨을 향유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찾고자 결심했다고 밝힌다. 이 방법론의 적용이 이 책 [에티카]이다. 1661년(29세)-1675년(43세)에 이 책은 집필되었다. 고통은 철인을 낳았다. 이 책에서 그의 화두는 어떻게 수동감정(파토스)를 조정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파토스에 복종하는한 선할 수 없다. 로고스에 따르면 선에 이르며 이것이 진정한 파토스를 극복한 에토스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개념을 재정립한다. 그에게 행복하려는 욕구는 [자기존재 유지의 욕구]이다. 선은 자기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또한, 사랑은 자기보존의 기쁨, 미움은 자기괴멸의 슬픔이다. 그 자신의 파멸과 정신적 죽음의 경험 그리고, 유태인의 독특한 자기유지의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감정을 억제하려면 인식이 감정으로 인식되어야만 한다고 한다. 맞불이다.그는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생기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조절이라는 면에선 스토아이지만 그에게 방법은 의지가 아닌 이성이다. 감정은 의지가 아닌 이성에 의해 조절된다.그래서 이 이성의 궁극으로 신이 정의된다. 이성적 신의 창조이다. 필요에 의해 정의된 신이며, 감정극복을 통한 자기유지와 확장의 근거가 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가장 선한 것은 신의 인식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존재유지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어야 신이다. 1부의 정의에서 그는 이 점을 정의해 보였다. 결국 이성으로 감정을 극복하고 신의 본질에 합하는 완성에 이르면, 신의 본성을 공유하므로 서로 일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통한다. 이런 노력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자기의 이익 곧 자기보존은 노력할수록 덕을 입는다고 말한다. 이 때 덕이란 능력, 인간의 본질로부터만 규정 받는 능력이다. virtu는 potentia인 셈인데 이 때 능력은 이성의 힘을 말한다. 일주일 내내 이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개인적 괴로움과 존재파멸의 폐허 위에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관-물론 스토아와 스콜라, 데카르트와 홉스의 빛아래이지만-을 세워낸 것이다. 그가 만든 신은 영 아니지만, 그를 충분히 납득할 순 있었다. 서론이며 이해의 열쇠인 [지성 개선론]이 절판된 책을 통해서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또한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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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세상의 탁월한 것. 훌륭한 것은 그렇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