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70-80년대, 다섯 명의 여성노조 운동사
"70-80년대, 다섯 명의 여성노조 운동사" 내용보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23살의 청년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면서 부르짖었던 절규이다. 온 몸을 불사르며 그토록 몸부림쳤던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노동법을 오용해오던 사주들에 대한 반기를 들게 된 동인(動因)이 되었으며, 잠잠해 오
"70-80년대, 다섯 명의 여성노조 운동사" 내용보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23살의 청년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면서 부르짖었던 절규이다. 온 몸을 불사르며 그토록 몸부림쳤던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노동법을 오용해오던 사주들에 대한 반기를 들게 된 동인(動因)이 되었으며, 잠잠해 오던 노동계의 의식이 들불처럼 타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 나의 한 몸을 태움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기 바란다." 이는 지난 14일, 울산 현대중공업의 협력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근로자 박일수 씨가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하면서 던진 이 사회를 향한 격정적인 항변의 유서이다. 어찌 보면 온 몸을 내어 던지며 분신투쟁을 하는 모습이 70-80년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 선진국가로 돌입한다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에까지 연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우리나라의 노동 조건이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변하지 아니하였음을 실증적으로 나타내주는 반증인 셈이다. 그런데 그토록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남성들이 온 몸을 내어 던지면서까지 투쟁해 오는 동안, 여성계에서는 과연 어떤 노조운동을 벌여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여성 노조 운동사를 보여 준 책이 최근에 나온 바 있는데, 바로 박수정이 펴낸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아름다운 사람들, 2004)가 그것이다. 이 책에는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YH무역 노조위원장 최순영, 전 원풍모방 노조부위원장 박순희, 전 한국여성노동자회 협의회위원장 이철순, 그리고 전 전남제사 노조위원장 정향자 등의 주도적인 노조 운동 활약상이 소개돼 있다. 이들 다섯 분들 모두는 출신지를 비롯해 태어난 가정 환경이라든지 성장 배경도 각기 달랐다. 하지만 70년대의 가난한 여성들이 바라던 꿈이 대부분 엇비슷하듯이 이 분들의 꿈도 그러했다. "사회에서는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러도 동일방직은 대공장이라 다들 당당하게 다녔는데, 지금 같으면 아무도 안 다닐 정도로 강도가 센 그 곳에서 사람들은 버틸 수가 있었다. 고향에 생활비 보내고, 동생 학비 보내고 ..."(p.24) "열심히 일하는 최순영이 회사로서는 그야말로 최고모범생이었다. 바로 밑에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서울로 데려왔다."(p.92) 열악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대도시로 상경하여 공장에 취직하고, 그 공장에서 힘들게 모은 돈을 시골에 부치거나 동생들 대학 뒷바라지하는데 쓰고, 그 와중에 모은 돈으로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가는 것, 그것이 당시 가난한 여성들이 품고 있었던 꿈이었다. 이들 다섯 분들의 최초 꿈도 그러했다. 도시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모아, 나름대로 공부를 하거나, 남동생들 뒷바라지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하지만 막상 공장에 취직하고부터는 이들의 꿈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장 내에 있는 노동조합을 통하거나, 공장 외부에서 지원해 주던 가톨릭노동청년회라고 하는 JOC(Jennesse Ouvriere Chretienne)와의 만남, 그리고 크리스찬아카데미와 도시산업선교회 등과의 잦은 교류를 통하면서부터, 당시 노동 현장에서 부딪히는 착취와 부당한 대우들을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투쟁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이들 다섯 분들이 여성 노조 운동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가톨릭노동청년회 남부 연합회 서기 일을 맡아 하던 70년 어느 날 신부님을 뵈러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와 청계천 재단사 친구들이었다. ...... 두려웠다. 노동자의 길을 간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 당시 나이 스물 셋, 집에서는 혼인하라고 하는데, 어떤 삶을 살 건가 선택의 길이 박순희 앞에 놓였다."(p.149) 그렇게 해서 이들 다섯 분들의 운명은 당시 가난한 여성들이 바라던 일반적인 꿈에 동조할 수만은 없었고, 결국 노동 운동계의 진정한 해방과 처우 개선을 향한 투쟁사에 한 획을 긋는 여성 노조 운동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이철순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곳 어디라도 달려가 함께 하기 위해 3년 간 다닌 대동화학을 나왔다. 조용히 나오지 않았다. 사업장마다 고질 같은 문제였던 '퇴직금 받기 싸움'을 했다."(p.204) "공장 생활 3년째에 정향자는 더 이상 다른 곳을 바라지 않았다. 제도 교육을 향한 열망을 깨끗이 버렸다. ...... 떠나려고 노력했던 그이는 '이제 이 안에서 살겠다.' 마음먹었다. 온 몸에 전율로 다가온 새로운 삶, 노동 운동은 전율이었다."(p.249) 그런데 이들 다섯 분들이 그토록 활발하게 전 방위 노조운동을 벌이기까지에는 음으로 양으로 함께 연대해 준 그 당시의 숱한 여성들이 그 여성 노조 운동사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저자도, 그리고 그들 다섯 분들도 그런 점을 못내 아쉬워했던 게 아니였겠나 싶다. "선생님들은 함께 한 그 여성노동자들의 이름을 다 싣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쉬워도 책 빈 여백과 글 사이사이에 마음으로 그 이름들을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p.363) 지금 우리나라는 교육계를 비롯해 문화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여성계의 목소리가 들풀처럼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여성 노동계에서는 어떻게 노동 현장의 주도권을 잡아가며 조율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바, 이 책에 기록된 70-80년대 여성 노조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다섯 분의 여성 노조 운동사를 읽어보면서, 앞으로 어떤 구상을 하며 어떻게 연대해 나가야 할지 크나큰 지침들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상깊은구절]
바로 자기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운동이었다. 온 몸에 전율로 다가온 새로운 삶, 노동 운동은 전율이었다.
s*****e 2004.03.1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