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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경학은 황허 문명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수천 년 동안 문화 지형의 변천에 따라 윤색 변형되었으므로 동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의 비교 분석은 원형을 찾는 데 요긴하다. 한나라 때는 동중서에 의해 음양오행과 미신을 붙인 위학緯學이 되었고, 위진시대에는 하안왕필에 의해 노자를 끌어다 붙인 현학玄學이 되었고, 당나라 때는 국교였던 도교의 보조역할을 하는 도학道學이 되었고, 송나라 때는 주희에 의해 불노를 결합하여 이학理學이 되었고, 명나라 때는 선불교를 덧붙여 심학心學이 되었던 것이다.”(6쪽)
묵점 기세춘 선생은 2.500년 전 공자 당시 인人, 민民, 백성百姓이 각각 의미하는 대상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배계급을 지칭하는 인人과 피지배계급을 지칭하는 민民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온갖 성씨’를 뜻하는 ‘백성’이란 단어는 땅을 소유하여 세금을 내는 ‘호족’으로 풀이한다. [좌전]에 의하면, 성은 그 사람의 탄생한 장원의 이름이나 관직의 이름을 따서 천자가 하사하며, 씨는 천자가 분봉해 준 영토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논어]에는 백성이란 단어가 단 세 곳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묵점의 공자 해석학은 인과 민의 구분에 있다.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위주로 한 설명이기에 무척 설득력이 있지만 이런 구분이 공자의 재해석에 있어서는 오히려 제한을 가져온다. 가령 삼척동자도 외던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한다'는 인자애인(仁者愛人)이란 말은 '어진 사람은 대인을 사랑한다'는 말로 퇴색되어 유가의 휴머니즘적 가치가 크게 절하된다. 물론 묵점은 대중들에게 상식처럼 알려진 공자의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인은 영지를 소유한 대인과 세금을 내는 유산자를 말하고, 민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四民과 부역을 담당하는 무산자를 말한다. 가령 ‘주인周人’은 주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주나라 제후로 해석해야 한다. 인과 민을 구분함으로써 공자의 인仁과 묵자의 겸애兼愛의 대립도 가시화된다. 인과 겸애는 모두 사랑이지만 인애는 인 중심이고, 겸애는 민 중심이다. 그러므로 인은 혈연적이고 차별적이며, 겸애는 공동체적이고 평등하다. [맹자]의 <진심 상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과 민을 구분하여 해석해보면 뜻이 더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의미를 축소시키는 단점도 있다.
“君子之於物也,愛之而弗仁;於民也,仁之而弗親。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
저자는 한유의 “묵자를 알아야 공자를 제대로 알 수 있고, 공자를 알아야 묵자를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을 빌어 공자와 묵자의 비교와 대조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공자는 유사 출신의 보수 지식인이고 묵자는 목수 출신의 진보 지식인이다. 묵자는 공자의 복례로 대표되는 수구주의를 반대한다. 유가들은 성인의 말씀과 군사부를 가치표준으로 삼지만, 묵자는 하느님의 뜻과 인민의 이익을 가치표준으로 삼는다. 묵자는 유가들이 지각과 경험을 무시하는 관념론자들이라고 비판한다. 묵자는 공맹의 의전론을 반대한다. 묵자는 유가의 왕권신수설인 천명론과 신분차별의 이념인 운명론을 모두 거부하고 비판한다. 묵자는 유가들의 예악을 비판하고 후한 장례와 오랜 상례와 사치한 음악을 반대한다. 묵자는 유가들이 노동을 포기한 것이 인간의 특권을 포기한 불구자나 거지와 같다고 비판한다. 묵자는 노예처럼 군주에게 순종하라는 유가의 군자론을 비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