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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나치 점령 하에 있을 때, 진정 용기 있는 이들은 자신을 부각시킬 기회가 왔다며 오히려 위기를 환영했습니다. "오늘에서야 누가 남자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소 끌며 밭 가는 일로 시간을 보내다, 외적이 침공해 오자 보습 대신 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선 킨킨나투스처럼 말입니다. 의인들의 피가 대지에 흐르고 마침내 이족의 철제가 수그러들자 세상의 기준과 안목은 또다시 흐려지고, 용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첨꾼과 모리배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한켠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거, 전쟁 때 배운 기술을 평화시에 써서야 될 말이오?" 이렇게 말하는 루이스 케인, 전쟁 중에 통하던 이름으로는 "캉통" 역시, 전쟁 때 이름을 떨치던 그 수완과 남다른 통찰로 생업을 이어갑니다. 영국은 수백 년 간 프랑스와 앙숙이었고, 특히나 나폴레옹 1세 통치기에는 국운 전체가 전환점을 맞기도 했습니다. 평시에는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 세계의 변방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의 파트너 사이를 형성하는 등 다자 게임의 명수였던 영국은, 엉뚱하게도 왕실의 먼 혈통을 함께 나눈 호언촐러른 가문과 일합을 벌이다 급기야 가진 재산을 다 까먹는 운명에 처했죠. 이 비감 어린 행운의 변전 과정을 공유한 파트너가 (좋든 싫든) 프랑스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루이스 케인은 통 크게 상대의 장점을 인정합니다. "그런 말 마시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프랑스의 몫이야. 우리는 그저 총에 총알만 재어 준 거지." 사실 전쟁은 물량 보급의 노릇이 태반을 넘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이 렌드-리스 정책을 소련에까지 확대하지 않았다면 과연 스탈린이 살아남았을까요? 자원이 고갈되기 이전 이미 전의가 상실되었을 터입니다.
루이스 케인은 청부업자입니다. 사람도 많이 죽였을 것 같고,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짜서 상대를 보기 좋게 한 방 먹이고, "내가 네 머리 위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 적진을 초토화시키는 전략가입니다. 이런 그에게 외견상 대단히 이상한 청탁이 들어옵니다. 어떤 정체 불명의 사업가를, 몇 월 며칠까지 내륙의 작은 국가 리히텐슈타인까지 무사히 이동시키는 일입니다. 우표나 찍어서 수입을 올리는 작은 도시국가에 목숨을 걸고 찾아갈 이유가 무엇이며(여정이 프랑스 브레타뉴 반도에서 시작하니 꽤 먼 거리임에는 틀림없죠), 그 이전에 이 사업가라는 자가 무엇을 하는 위인인지도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대단하기는 한 위상인지, 일을 맡긴 사람이 장난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투르에서 수상한 자들이 교통을 방해하기도 하고, 호젓한 길목에서 총탄이 날아와 케인과 사업가(마간하르트)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살벌한 리얼리즘을 소설 전편에 철저히 구현합니다(심야에 차 몰고 홈플러스에 갔다 온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 예로 차를 몰던 케인 일행을 저격하려 든 자들은, 소설 처음에 일류 보디가드로 거명되던 후보였습니다. 객관적으로 확률을 계산하면 그 반대의 결과(즉 케인과 마간하르트가 먼저 죽는)가 나오기 십상이었으나, 세상 일은 이처럼 수학 공식에서 해가 도출되듯 딱 떨어지는 방식이 아니죠. 청부업자들은 "경찰이야 한 번만 판단이 맞아도 좋지만, 나에게는 한 번만 판단이 틀려도 모든 일이 그르쳐지오."라는 대사를 통해 직분의 어려움을 표현합니다. 이 복잡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건, 혹시 그 수수께끼의 여비서가 배신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입니다.
영화 <화이트 스완>에 보면 가방 속에 잘 숨겨진 주식 뭉치의 행방을 놓고 수십 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활극이 펼쳐집니다. 제 임자가 아닌 자의 손에 증권이 넘어가면, 우리 같아서야 제권 판결을 받거나 명의개서 등 다른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그만일 텐데 왜 저 난리를 피우나 싶죠. 그 영화의 배경이 된 러시아나 이 소설 속의 리히텐슈타인이나 소위 "무기명 주식"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생깁니다. 왜 권리자의 신변을 익명으로 두느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금 포탈을 위해서죠. 범죄자들은 이처럼 국가의 기초적인 제도 사항에 대해 반감을 가집니다. 법제를 유월하려는 그 필사적인 시도에 드는 비용이, 과연 납세의 출혈보다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금 내기 싫어하는 자 치고 교육 올바로 받은 부류가 없습니다. ㅎㅎ 이 스릴러는 그런 의미에서, 태생적 반사회분자에게 참교육을 시켜 주는 교훈적 내용도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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