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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반갑다. 참 기쁘다. 참 좋다. 참 정겹다.
윤구병 선생님이 처음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 <내 생애 첫 우리말>이 나왔다.
푸르다, 퍼렇다는 말은 푸나무를 가리키는 ‘풀’에서, 누르다, 누렇다는 말은 땅을 가리키는 ‘눌’에서, 검다, 까맣다는 말은 하늘을 가리키는 ‘검’에서, 희다, 하얗다는 말은 ‘해’에서, 붉다, 빨갛다는 말은 ‘불’에서, 묽다, 말갛다는 말은 ‘물’에서 왔다는 윤구병 선생은 해와 달 오누이 이야기에서 ‘범’을 ‘호랑’이라고 풀면 안 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호랑’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말은 ‘아와 어, 오와 우, 우와 어, 오와 아’가 서로 넘나들기 때문에 ‘범’을 ‘밤’이라고 푼다. 그래서 밤이 깊어지니 깜깜해서 팔이 보이지 않고 다리도 보이지 않아 넘어져서 떡 광주리를 엎고 겨우 몇 개 추슬러서 또 길을 가다가 칠흑 같은 밤, 길을 잃는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오누이는 호롱불이 꺼지고 밤이 덮쳐 무서워 하늘에다 대고 살려달라고 빈다는 얘기다. 이 책을 펼치고 우리말뿌리를 찾아 들어가다 보니 밤이 하얗게 새었다.
글말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살아있는 말인데, 머리만 쓰는 선비들이 말을 다루다보니 입말이 사라지고 글말이 힘을 쓰는 세상이 됐다. 살아있는 말이란 느낌을 주고받는 말이어야 하는데, 글말은 느낌은 다 죽이고 머릿속에 있는 관념만을 살려내고 만다.
윤구병 선생은 글보다 말이 먼저라고 드잡이한다.
“말은 입에서 나와서 귀로 들어가는, 뜻을 담은 소리지. 말소리에는 뜻만 아니라 느낌도 담겨 있어.
재잘재잘 물이 흐르고,
깡충깡충 토끼가 뛰고,
얼룩 바지를 입은 새끼 멧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갖 소리 흉내, 짓 흉내가 숲을 흔들고 바람에 말 씨앗을 날려.
‘누리’는 ‘누르’고, ‘풀’은 ‘푸르’지.
이런 소리는 말로 영글고 글로 그려진다고. 느낌이 와 닿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니고, 그런 말을 글로 옮겨봤댔자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윤구병 선생은 세종임금이 정음, 바른 소리를 내는 길을 제대로 찾아내서 그 소리를 글로 옮기면서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고받던 여러 가지 토박이말이 되살아났다고 말씀한다. 훈민정음이 없었더라면, 사람들 가운데 있던 소리흉내말, 짓시늉말이 다 죽어버렸을 것이라면서. 선생은 아테네 제국이 둘레 나라를 모두 합치고, 로마가 큰 제국을 세웠을 때 가까이 있던 곳 토박이말이 죄다 없어졌다고 말씀한다.
병치레를 하며 오늘내일하는 늙은이, 고무신 할배가 우리말 살려쓰자며 <내 생애 첫 우리말> 펴낸 까닭이 어디 있는지. 훈민정음을 빚은 세종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어째서 불경을 풀어썼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볼 일이다.
우리말이 참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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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의 우리말은 예쁜 아기보 아기보보다 덜 자라 아이를 폭 감쌀 만큼 크지 못한 것은 보아지, 보오지 조자(좆이) 아직 조그마해서 고추만 할 때 부르는 조아지, 자아지. 이렇게 우리 몸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쓸모 있는 걸 깨끗한 우리말로 가리켜왔는데 어쩌자고 이걸 상스러운 욕이라고 못 박아 자지를 자지라고 보지를 보지라고 못 부르게 하는지 -「자지 보지 예쁜 우리말」에서
김영승 시인의 「반성 563」(『반성』, 1987)을 보면 “형이상학적 사고 체계가 완벽한 / 나는 가끔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 우리나라 말 <보지>를 발음했을 때의 / 그 전무후무한 공명을 숙고해 본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도 몰래 묵묵히 / <보지>를 발음해 보며 /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 불타나 예수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냐고 묻는 그 시에는 보지가 금기어에 가까운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윤구병 선생님은 자지 보지는 정말 예쁜 우리말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도 몰래 발음할 말이 아니라 대놓고 자주 써야 할 예쁜 우리말이다.
윤구병 선생님의 우리말 사랑은 남다르다. 한창기, 이오덕, 권정생 같은 분들과 변산공동체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들과 함께한 세월이 당신의 우리말 사랑을 단단하게 했다. 어려서 함평 시골에서 자란 것도 큰 몫을 하고 있을 테다. 우리말 사랑은 짧은 세월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당신이 살아오는 내내 이루어졌고 점차 깊어지고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의 글 어느 것을 보더라도 쉬운 우리말이 정갈하게 살아 숨 쉰다. 그리하여 당신의 글을 읽는 사람은 저절로 우리말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아가 그것은 자연스레 우리의 뿌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계속 읽으면 우리는 어느새 눈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테면 당신이 들려주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호랑이 부족과 곰 부족이 연합해서 고조선이 생겨났다는 어림친 부족 신화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천지창조의 신화가 있었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한다.
호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호랑이가 아니라 범이라고 해야 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호랑 虎狼’이라는 말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생긴 ‘신화’니까. 범을 호랑이로 잘못 알면 이 이야기의 알맹이를 만나지 못하고 꺼풀만 보게 된다. (22쪽)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여러 판 가운데 하나에서 구원자가 묻는다. “누가 달이 되고 누가 해가 되겠느냐?” 누이동생이 유난히 밤을 무서워하니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오라버니가 말하여 누이동생은 해가 되고 오라버니는 달이 된다. 전 세계 신화를 보면 대체로 달의 신은 여신이고 해의 신은 남신이다. 모계사회의 신화를 부계사회의 신화가 완전히 뒤집에서 중요한 신은 다 남신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오히려 해의 신이 여신이고 달의 신이 남신이다. 이런 점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모계사회의 전통이 또렷이 남아 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27쪽)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은 어른 말, 어려운 말, 타향 말, 외국 말로 말길이 바뀌면서 글말이 주인이 되어버렸다. 그런 말로 우리는 정보를 얻고 생각하고 뜻을 주고받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 숨 쉬는 우리말이 있다. 소리흉내말과 짓시늉말이 대표적이다. 그 만큼 우리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훈민정음’의 덕이 크다. 훈민정음은 풍부한 자연의 세계, 소리의 세계를 글로, 그림의 세계로 바꾸는 데 꼭 필요한 것이고, 이래야만 우리가 저마다 다른, 사람과 사람의 바른 생각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제대로 그러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 말, 쉬운 말, 고향 말, 우리말의 말글이 주인이 되게 해야 한다. 세 살배기도 까막눈 할매도 알아듣는 말을 주고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세상, 민주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선생님은 조곤조곤 말씀을 들려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