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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위버멘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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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그가  가꾸는 것은 어디로 향하기 위한 것인가?글귀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인가?그가 원했던 위버멘쉬라는 것은 여러가지를 함축한다.그 함축된 것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처럼 뒤로 당길 때마다 가지는 힘은 다이너마이트처럼 후대까지 큰 폭발력을 이룬다. 언더그라운드로 바닥을 다진 후 이 책을 접한다면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세상,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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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

그가  가꾸는 것은 어디로 향하기 위한 것인가?

글귀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인가?



그가 원했던 위버멘쉬라는 것은 여러가지를 함축한다.

그 함축된 것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처럼 뒤로 당길 때마다 가지는 힘은 다이너마이트처럼 후대까지 큰 폭발력을 이룬다.


 언더그라운드로 바닥을 다진 후 이 책을 접한다면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세상, 우리가 가치있게 바라보아야 하는 세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한 철학자를 알아간다는 것은 끝없는 인내와 그의 환경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책 3권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먼 여정을 달려 도달한 곳은 또다른 출발선이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s******1 2020.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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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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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책이 난해하다보니 고병권샘의 해설서를 읽으면 니체 책의 입구에 들어가기가 좀더 수월해진다. 반면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해설서가 더 쉽게 느껴져 니체 책을 더 읽기 꺼려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니체를 이렇게 읽어냈구나를 경험하면, 나또한 니체를 이렇게 읽어내었다는 다른 해설서를 써보자는 ㅡ의욕이 샘솟기도 한다. 니체 연구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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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책이 난해하다보니 고병권샘의 해설서를 읽으면 니체 책의 입구에 들어가기가 좀더 수월해진다. 반면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해설서가 더 쉽게 느껴져 니체 책을 더 읽기 꺼려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니체를 이렇게 읽어냈구나를 경험하면, 나또한 니체를 이렇게 읽어내었다는 다른 해설서를 써보자는 ㅡ의욕이 샘솟기도 한다. 니체 연구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d*****r 2025.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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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 대한 간략한 서평 – 지금 여기서 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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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exbris/222822674053 신의 죽음과 영원회귀   니체에 따르면 종교적 잔인성은 장자 희생, 인간 자신의 희생(금욕주의), 신의 희생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신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심판의 죽음이고, 죄의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덕적 속박의 저편, 선악의 저편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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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exbris/222822674053

신의 죽음과 영원회귀

 

니체에 따르면 종교적 잔인성은 장자 희생, 인간 자신의 희생(금욕주의), 신의 희생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신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심판의 죽음이고, 죄의 소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덕적 속박의 저편, 선악의 저편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을 통해 선악의 저편을 열어주는 신은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아니라 ‘디오니소스’다. ‘십자가에 매달린 자’의 고통과 죽음은 죄의식을 심어주며 그의 부활은 죄에 대한 심판을 수반한다. 디오니소스는 어떤가? 디오니소스는 타이탄들에 의해 사지가 찢겨 먹히는데, 심장은 제우스에게 전해져 부활하고 디오니소스를 먹은 타이탄들은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불에 타버린다. 그리고 타이탄의 재에서 첫 인간들이 탄생한다. 디오니소스의 죽음은 세계와 삶의 무구함을 긍정하는 데 필요한 단련이자 파괴이다. 또한 그의 부활은 영원히 다시 태어나고 파괴로부터 돌아오는 무구한 세계와 삶에 대한 약속이다.

 

여기서 영원히 다시 태어나고 파괴되며 반복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영원회귀의 악령에 따르면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 살아야만 할 것이다.” 고병권은 ‘영원회귀’되는 동일한 것들을 “가능성들 전체”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영원회귀되는 것이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가령 내 앞에는 지금 이 순간 《다이너마이트 니체》발제나 저녁 식사나 뜬금없이 주사위 놀이나 윷놀이나 이런 것들을 할 가능성과 하지 않을 가능성들이 모두 존재한다. 요컨대 지금 내 앞에 놓인 “가능성들 전체”는 ‘무한한’ 가지일 것이다. 무한한 것들이 결정되지 않은 채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겪는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화한 유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어떨까?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매사 무기력하며 자기 안위만 챙기는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어떤 계기로 인해 전투 부대 배정부터 죽는 순간까지 반복되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된다. 빌이 전투에 참여하고 리타(에밀리 블런트)를 만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반복되지만 빌이 경험을 통해 업그레이드될수록 그 사건의 결과들이 조금씩 달라지며 죽는 시점들도 연장된다. 지금 이 순간 윷놀이나 주사위 놀이가 아니라 《다이너마이트 니체》 서평을 작성하게 되어 있는 삶이지만 서평의 내용과 구성은 이번 생과 다음 생에서 다를 수 있다. 즉 사건의 발생은 반복되지만 결과는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셈이다. 물론 사건의 발생과 결과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가 새로운 사건의 발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빌처럼 반복되는 삶을 기억하며 모든 가능성들을 시도해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원회귀를 믿는다면 가령 지금 우리의 ‘철세’ 모임을 전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반복될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가능성들에 대한 긍정으로 영원회귀를 의지한다면 이 모임을 통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 지금과 다른 실존”이 되고자 시도할 것이다. 니체는 ‘신’이나 ‘죄’같은 개념에 제약되지 않고 이렇듯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자의 형상으로 어린아이를 제시한다. 그리고 니체가 보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는 “영원한 어린아이”가 들어있다.

 

m*******d 2022.07.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