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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문 상담가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자는 취지로 펴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내용 중에서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은 무조건 인내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안 되는 것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전부터 타인(주로 엄마)을 먼저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남부터 의식하는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을 의식하게 되면 늘 남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이 하고자하는 욕구보다 세상이 원하는 가치로 자신의 걸음을 옮긴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욕망을 ‘주체의 욕망’이라고 하고 세상에 대한 욕망을 ‘타자의 욕망’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신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움직였던 세상의 욕망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 원하는 ‘주체의 욕망’을 찾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며, 저자가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이다. 성인들도 늘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찾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 줄 사람’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실체가 어떻든 나를 참아주고 사랑해 달라’는 것으로 이것은 엄마에게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어린아이 같은 소망으로 타인에게서 얻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갖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으면서 또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면 그 후에는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지 못할 때다. 그런데 그 자기 존재감을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려고 할 때 불안과 고통이 찾아온다. 이때 저자는 타인으로부터 받고 싶어 하는 것을 포기하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데 이런 이유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평가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잘나보이고 싶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나 역시 타인을 평가하기 때문이므로 타인에게 보내는 눈길을 따뜻하게 함으로써 자신도 따뜻한 눈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이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질문두 가지를 던져주는데 여기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정신적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는 대상은 무엇인가? 하지만 정체성이란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며 현재 삶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고 변하기도 하므로 심리학적으로 이 정체성이라는 가면을 벗어야 자신의 실존의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에서는 한참 동안 멍해지기도 했다. 1,2장에서 상당히 공격적으로 진행된 이 책의 내용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과감하면서도 남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저자의 생각을 자신의 삶에 대입해서 참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보자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편협한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3장과 4장에서는 내담자의 경우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함께 살펴보고 고민해보는 내용이다. 남의 사례를 살펴보면 답이 잘 보이는 것은 자신의 일을 객관화시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저자는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욕망을 포기하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내공을 길러야하고 그 길은 자신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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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포기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한 회사만 십년을 다녔다. 이후,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 온 지가 올해로 딱 십년이 되는 해이다. 경상도와 서울이라는 거리만큼이나, 인문환경의 변화는 지리적 거리보다 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우선 경상도 사람들의 직설적인 말투, 이것은 여전히 적응불가능하다. 서울 사람들의 나긋나긋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듬뿍 담긴 대화에 익숙하다보니 무뚝뚝하고 화가 나 있는 느낌이 너무도 생경했다. 평상시에도 거칠고 지나치게 솔직하여 불편함이 느껴지곤 하였는데 흥분하거나 뭔가 불만스러운 부분을 접수 받을 때, 나는 단지 전화 받았다는 이유로 심하게 욕을 들어주어야 했다. (이런 날은 정말 심하게 우울해지곤 한다.)이런 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잊는 것,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 욕망의 한 부분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흐느적 거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듯이 시골에 적응하려 했던 나의 삶도 그러하였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의외로 이런 방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배알이 없거나,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곤 하여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배알이 없거나,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경상도에 적응하기 위한 나름의 포기가 나를 좋은 포장지로 싸주는 계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도 매일을 하루같이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안에서 나름의 포기의 노하우가 생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나자, 내 삶은 전보다는 더 여유로워졌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서 첨하자면, 지금은 경상도를 무지 싸랑한다.)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저자의 《포기하는 용기》는 우리의 욕망이 타자에 맞추어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첫 장을 열고 있다. 이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질문인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의 질문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끝없는 욕망의 이면에는 ‘자아’의 욕망이 아닌 타인에게 길들여진 욕망이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씌어지는 욕망의 페르소나, 가족이라는 1차적 관계의 틀과 타자가 원하는 모습의 자아(나)를 형성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아'가 아닌 '타자'의 욕망에 저절로 맞추어져 살아가게 되는데 저자는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타자의 욕망’을 버려야만 자신 내면안에 깃든 참된 진짜 욕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참된 욕망,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 자유로운 삶과 조우할 수 있게 된다. 니체가 모든 것을 부정한 뒤에 강한 삶의 긍정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타자에게 맞추어진 모든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 뒤의 세상은 분명 실존적이고도, (플라톤의) 실재계와 같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낯설게 바라보기를 통해 더 자유롭고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삶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과정은 총 4장( 1장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3장 나는 왜 불안한가?4장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로 구성 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복합적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우울과 고통의 근원적인 존재불안에 대하여 인문학적인 치유와 방법을 모색해주고 있다.
책임이란, 내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던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 라고 징징대지 마세요. 내 삶을 위해 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침 뉴스에 최근들어 자살률과 우울증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며 씁슬함과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저자는 고통의 원인은 삶의 균형이 깨어진데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욕망과 현실의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살면서 타자라는 부분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란 매우 힘들지만, 저자의 말대로 타자에 맞춰 있는 욕망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향해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의 삶 역시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 스스로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늘 폐쇄적인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한번 쯤은 타인을 향한 모든 욕망의 근원적인 몸짓을 멈추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진짜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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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계발서 들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자기계발을 할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뻔하다는, 모든 것을 저자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들면 체제에 순응하라는, 기존의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죽어라고,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공허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력하고, 자기를 계발해서도 안되면 그것은 사회의 기존질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못나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끔 만들어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 [포기하는 용기]를 대하고 나서 마음속에 든 느낌은 포기하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아마 나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처럼 포기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물론 학교 다닐 때도 그러했겠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성공을 하기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 성공인지를 떠나, 포기란 곧 나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했고, 그것은 나를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느꼈다. 그리고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란 그들 모두로부터 인정을 얻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들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기뻐하기도 했고, 또 상처받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이렇게 사는 삶이 과연 올바른 삶인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내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서 스믈스믈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속에서 느끼는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이었다. 나는 다 내려 놓았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아직도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풍족해지고 싶다는 욕망, 최소한 회사를 관두고서도 지금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변함없이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해야만 했고, 그것은 지금의 자리보다 더 위로 향하는 것이었다. 행복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그 때가서 만들어도 늦지 않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불안해 하고, 고통스러워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삶의 균형을 저울이라 말하고 있다. 한쪽에는 욕망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현실이 놓여져 있는 저울 말이다. 그런 저울이 균형을 잡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들의 삶이란 대부분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십상이다.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현실의 쟁반에 더 얹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욕망의 쟁반을 덜어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저울은 대부분 욕망의 쟁반이 더 무겁고, 그렇기에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한 그것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그것,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성이든 하다못해 남에게서 인정받는 것이든, 그것들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모두들 포기하지 말라고 말들 하지만,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포기는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쉽지는 않다. 지금껏 살면서 쌓아온 인간관계가, 그리고 커리어가 아깝고, 그렇게 놓아버릴 때 지금보다 더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선택은 자신을 모르고도 할 수 있지만, 올바른 선택은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욕망을 심어준 것은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욕망의 근원은 자신이 누구에겐가 치명적인 존재가 됨으로 해서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내 존재를 누군가를 통해 인정받음으로써 마음 속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고, 눈치보고, 어떻게 평가 받는지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바로 자신에 대해 올바로 평가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자기자신과 대면하여 자신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면의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시선도, 인정도, 잘나 보이려는 그 어떤 것들도 다 포기하라고 한다. 죽음은 그 자체보다 죽음이 몰고 오는 두려움이 우리를 더 괴롭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이 두려운 것이라고 한다. 포기야말로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사람들이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고, 자기 계발하라는 현재의 시스템은 우리에겐 좌절의 시스템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해 세상에 끄들려 다니지 말고, 자신과 대면하여 세상이 심어준 욕망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원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찾아내어야 자신을 사랑하기가 편해진다고 강조한다. 이 시대는 생존의 불안시대가 아니라 실존의 불안시대라는 것이다. 책임이란 내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성찰이라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남는다. 포기란 우리 삶의 초라함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것 이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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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제 근무의 영향인지 요즘에는 어느 관광지나 명승지를 가던지 사람들로 붐빈다. 하다못해 좀 괜찮다는 음식점만 가도 줄을 서는 것은 예사이다. 그런 관광지나 음식점에 가면 익숙하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경치가 좋은 관광지, 명승지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너나 할 것 없이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반드시 치러야할 무슨 의식 같다. 하지만 음식이나 명승지만 사진의 소재는 아니다. 그건 단순한 부재일뿐이다. 중요한 주제는 자신이다. 그 사진 속에는 반드시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주길 부탁하거나, 찍어줄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사진을 찍는다. 요즘 하는 말로 셀카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관광을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찍기 위해 온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여념이 없다. 차분히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오래된 유물 등의 유래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다음 장소로 서둘러 옮긴다.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에 온 듯하다. 그렇게 바쁘게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일까? 명승지에 비치된 안내판 하나도 보지 않고 그저 사진 속에 자신을 담기에 바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에는 명승지나 관광지에서 대하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가슴에 기억했다. 때때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그 추억을 불러내 되새김하곤 했다.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턴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에 담았다. 그리곤 인화된 사진을 보며 추억 속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어떤 풍경이던지, 어떤 음식을 먹던 그 사진에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의 모습이 들어간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인화가 되어 사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개인 블로그나 주위지인들에게 자랑하는 하나의 인증 샷이 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갔다 왔고, 그런 음식을 먹었다는 하나의 자랑거리이다. 그 자리에 있는 나의 만족과 즐거움은 뒷전이고 타인에게 나의 모습을 자랑하는 데만 궁극의 목적이 있다. 한데 이상한 것이 있다. 그런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든다. 아마 카메라도 이제는 그 V자가 지겨울 것 같다. 일부는 그 V자로 얼굴을 가린다. 왜일까.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릴 이유가 없다. 자신이 어떤 장소나 식당에 다녀갔다는 것을 자랑은 해야겠는데 외모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임기응변으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그러니 모두가 다 한결같이 사진 속에서 V자를 만들어 얼굴을 가린다. 이런 행위야 말로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의 결정판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을 내세워 과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모는 자신이 없다. 아니 자신 있는 외모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와 비교를 하니 위축된다. 만약에 조물주가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같기를 바랐다면 지금처럼 각자 다르게 얼굴을 주었을 리가 없다. 각자의 얼굴은 나름의 개성이다. 자신만의 색깔이다. 근데 다른 색과 자신의 색이 다르다고 스스로가 가진 색을 포기한다. 만약 세상에 핑크빛만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만 되어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정신이상에 걸릴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타인이란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나라는 존재를 알기 전에 나에게 온갖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엄마를 먼저 인지한단다. 그래서 제일 처음 배우는 말이 ‘엄마’이다. 하지만 그 엄마조차 타인이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반응에 일희일비한다.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대로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태생부터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춘단다. 이를 일컬어 심리학에서는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 이라고 한단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자신을 맞추어 일체화 시키는 현상을 일컫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를 의식하며 산다.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신의 모습인 아상我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맞춘 타상他相에 의해 산다. 아상我相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지만 타상他相은 더더욱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니 내가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다. 흔히 하는 말로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사는데 왜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나. 그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정한 기준이 없다. 그러니 비교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타인이다. 우리와 관계를 맺는,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이다. 그게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나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말이다. 내가 행복한지, 내가 잘살고 있는지를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둔다. 그 타인은 수시로 대상을 달리하여 내게 다가온다. 기준을 타인의 시선과 위치에 놓는 한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언제나 타인은 내 욕망의 기준이다. 나의 부족함의 측정치이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지옥은 타인이다.” 나는 타인에게, 타인은 나에게 지옥이다. 서로가 서로의 욕망의 기준이다. 그들은 서로를 비교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기준으로 한 욕망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니 삶이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할 수밖에. 서로에게 인정받고자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는 경험을 하기 지극히 어려운 까닭은 타인에 대한 나의 욕망, 나의 편견이라는 자기중심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58쪽) 저자는 이 책 『포기하는 용기』에서 타인의 시선에 맞추고자 하는 나를 내려놓으라고 한다.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다. 당신을 붙잡고 있는 그것,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단다. 인간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문제들이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에게 맞추고자 하는 욕심으로 살기 때문이란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삶의 균형이 깨어진데서 온단다. 우리의 삶이 평행저울이라고 했을 때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욕망이 올려져있고, 다른 한쪽에는 현실이 올려져있다고 치자. 이 때 어느 한쪽이 무거우면 저울의 균형은 깨진다.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현실에 무게를 아무리 더해봤자 커가는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현실의 무게 추는 산술적으로 더해지지만 욕망의 무게 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니 갈수록 힘들어지고 불만족스럽다. 그럼 이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맞다. 나의 욕망을 내려놓으면 된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으니 욕망을 내 현실에 맞추어 덜어내면 된다. 내게 주어진 현실에 나의 욕망을 맞추면 된다. 그럼 삶의 평행저울은 균형을 맞추게 된다. 놓아버려야 한다. 당신이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자신의 기준에 의한 욕망이 아니라 타인에 맞춰진 삶의 모습, 타인에게 비춰지는, 타인의 만족을 위해 사는 모습. 타인과 비교하며 현실을 재단하는 그 시선을 거두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포기하는 용기이며 지혜이다. 가족 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모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자녀에게 투영해서 요구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그건 자신의 삶이 아니다. 단순히 부모의 인생을 대리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부족한 것을 타인에게 요구한다. 타인을 통해 보상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타인은 내가 아니다. 내 형상을 타인에게 씌우는 것은 편견의 시작이다. 타인은 타인으로서의 삶이 있고 스스로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틀을 뒤집어씌우고, 그 틀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순간 편견은 시작된다. 편견은 오해를 만들고, 타인이 나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생각을 투영하기 시작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은 시작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고 하는, 그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욕망으로 덧씌워진 자아가 아닌, 현실의 나와 직면하게 된다. 가장 온전한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마주한 자신의 자아 속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좀 더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더 나아가 아상我相과 타상他相이 가진 그릇을 비우는 것, 아니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인 자아라는 그 허울까지도 버리는 것, 그릇자체를 깨는 용기와 깨달음이야말로 삶에 있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아닐까. 그래서 허虛가 아니라 공空이다. 타상他相도 없고 아상我相도 없다면, 그 한계마저도 없다. 한계가 없으니 나를 맞추어야 할 어떤 기준도 없다. 그러니 공空이다. 기준이 없는 삶에서는 욕망도 없다. 오직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에 맞추어진 내가 있을 뿐. 그 순간 우린 행복이라는 삶의 축복과 좀 더 쉽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포기하는 용기이다. 타자를 향한 우리의 시선과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 온전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나조차도 버리는 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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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용기》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문득 떠올린 기사가 있다. '포기를 포기' 했다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게 될 거라는 내용의 기사였던 것 같다. 포기, 자기계발서의 단골 메뉴. 포기란 배추셀 때나 쓰는 용어라 했던 그 포기. 기사의 제목처럼 포기는 포기해야할 대상이었지 살면서 들먹거리지 말아야할 단어이자, 배추셀 때도 쓰지 말아야 했을 단어였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삶을 이끌게 되면서 포기라는 단어는 더더욱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런데 살면서 헛된 집착들이 많아져 그런지 이젠 포기하는 삶, 내려놓는 삶, 멈추는 삶에 대한 조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때론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해야 하고 때론 내려놓기도 해야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잘해야 한다는 얘기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누구나 삶이 서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삶은 낯설다. 그게 아니었다면 연식이 쌓이고 경험이 쌓일수록 사는 게 더 수월해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전히 사는 건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각박해지기까지 하니 더욱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도 힘들고 어쩔 땐 뭘 원하며 사는지도 모르며 산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나 역시 그런 것 같으니 말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니 어딘가 내면에서부터 탈이 난다. 자기도 모르게 아프며 산다. 내면이 불안정하고 아파서 어떤 행동들을 습관적으로 하지만 그걸 알아내기가 쉽지않다. 스스로 내면을 깊이 성찰해보기 전에는 말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전엔 말이다.
자신감을 갖거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등의 일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로서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해 가능한 한 더 많이 알고, 가능한 한 더 잘 아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_(P.32)
내가 서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탐색할 수 없듯이 나를 모르고는 내가 가야할 곳에 이를 방법은 없다. 자기 스스로 답을 얻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의 말을 가져와 자기 삶의 해답으로 삼으려고도 한다. 그러니 열심히 명사들이나 책에서 얘기한대로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게 정답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기가 욕망하는 것이나 집착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욕망이나 집착은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 보기 전에는 알아내기 힘들다. 때론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모든 감각이 바깥으로 향해 있어 돌보지 못했던 우리 내면의 문제는 실상 우리가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짚어내기 조차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이 가진 것이 행복이고 성공이란 믿음을 갖고 사는 우리에게 때론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다. 우리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욕망이나 집착에 대한 것들일 때 더더욱 그렇다. 드러나 보이지 않으니 돌보기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눈길을 보내지 못했던 것들에 관심의 눈을 돌려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누구로 사는가?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저자의 전문가로서의 진단을 읽으며 문득 이건 내 이야기라거나 내 주변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란 걸 발견하게 되면 대단한 수확이 될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여러사례들에서 나와 유사한 사례들을 만나게 되면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될 것이고.
세상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라고 하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건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포기하자는 것 아니냐면서. 누군가는 욕망하고 집착하며 사는게 행복이라 여기며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막연하기만 했던 행복을 집착이나 욕망을 포기하면 찾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정작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니 헛된 것들을 좇는 것 같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게 되면 그런 헛된 것들을 포기하는 용기도 생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그런 갖가지 포기해야 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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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은 남과 비교하면서 우열을 가리고 뭔가를 쟁취해 나가려는 본능의식이 강하다.누구에게 지고 낙오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우월의식이 떨어지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현대사회가 신자유주의시대이고 개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는 시대이므로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각박할 수밖에 없는 자조섞인 탄식이 절로 나온다.인생의 길은 다양하다.그런데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좋은 일,안좋은 길이라는 암묵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에 좋은 길을 고르고 이 길에 진입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경쟁의 늪에서 살아가는 것이다.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양상이지만 탈산업화 시대에서는 개인의 능력과 창조성이 더욱 중요시된다.특히 어느 방면에 전문가로서 외길을 걷지 않으면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극복해야 삶이 편해지면서 질높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저자의 얘기는 열린 사회에서 요구되는 참신한 이야기이다.자신이 갖고 있는 재주와 능력을 사회가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사회라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지만 실상은 작은 그룹을 형성하여 파벌을 조장한다.나와 타인의 차이만 생각할 뿐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지 않는 배타적인 사회분위기는 사회 구성원들간의 위화감과 상생의 길은 요원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인간은 태어나면서 기회의 평등을 안고 태어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환경의 우열부터 기질,성향,성품 등에 의해 개인의 존재,삶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져 간다.누군가 자신의 길을 계도하고 잘못된 길을 수정해 주면서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품성과 잠재력을 살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역할을 충분히 발휘해 나가리라 생각한다.생계와 자기계발,사회기여를 하면서 인간과 사회를 보다 밝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에게 부여해 주어야만 할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욕망과 탐욕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망가뜨리고 기나긴 인생의 레이스에서 도중에 지쳐 낙오되고 만다.내가 하려고 하는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정하여 이에 맞춰 장도의 길을 도도하게 걸어 나가는 현명한 처세가 무척 중요하다.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왜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얻고 나를 제외한 다수의 타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까지 생각하고 실천해 가는 담대하고 용기있는 마음의 자세는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작용을 하리라 생각한다.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회가 알아주는 '사(士)'자 직업을 갖어야 일생이 보장된다는 지배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 사회는 발전지향적인 열린 사회가 아닌 어둑하고 답답한 암흑의 세계가 될 것이다.살아가면서 자신의 진로를 정하되 연령대에 맞게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챙기고 그 분야에서 오로지 1인자가 되겠다는 장인정신과 리더자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발휘해 나간다면 비록 경제적 수입과 사회적 신분보장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 주체자로서 당당한 삶을 꾸려 갈 수가 있다.'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능력과 성향에 맞지 않는 길은 과감히 털어낼 줄 아는 과단성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이를 삶의 지혜이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책임지고 살아갈 줄 아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삶 속에는 포기와 체념을 해야 하는 기로의 순간이 종종 있다.자신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타인의 기대와 눈치로 인하여 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을 꺾지 않고 기어이 해내려는 잘못된 생각과 오류를 연발하는 사람들도 많다.실패 속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삶은 그리 길지는 않다.길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조기에 찾아 부단히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진정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도중에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좋은 인간관계와 삶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여 가던 길을 수정하면서 새롭게 삶을 다져 나가는 것이 용기있는 삶의 처세가 아닐까 한다.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는 경제적인 수입도부터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과연 걷고 있는지,그리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욕망을 갖되 자신의 능력에 맞는 욕망은 아름다운 욕망이고 이를 발전시켜 자신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데서 더 나은 삶이고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승화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나이가 들어가면서 불필요하고 정신 사나운 것들을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정리해 나가는 것도 삶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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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강사 김미경씨의 강의가 유행했을 때 tv에서 그녀의 강의를 본 적이 있었다. 보면 볼 수록 저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졌다. 정말 자신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지금 답답해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밖에도 유행하는 멘토니 힐링이니 하는 책들도 간간히 읽었었다. 모두 자신의 욕망을 찾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도 했다. 자기계발서를 보고는 자극을 받고 다르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도 했다. 지금 나는 그 많은 멘토와 힐링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하나를 하지도 못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사실 멘토니 힐링이니 하는 책과 스타강사라는 분의 강의를 듣고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니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들은 많은 부분을 개인에게로 책임을 돌렸다. 네가 자신을 못찾고 네가 사회를 못보고 네가 게으르다고 이야기했다. 막연한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경험이라는 핑계로 자신가 잘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뜻대로 완벽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몇 년전 웃음전도사로 불리우는 분의 자살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또 부자되는 법을 써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의 파산소식은 실소를 짓게도 했다. 이미 우리는 책은 어쩌면 책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제목이 포기하는 용기 답게 포기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포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가치를 죽을 각오로 지키는 것도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그 것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자신을 괴롭히는 욕망들을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자인 작가는 여러 사례를 들어 포기하는 과정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마음은 모양이 없다. 표현하기 어렵다. 마음을 밝힌다고 하면 많은 사람은 전등을 켜거나 촛불을 밝히는 것과 연관시키지만 마음을 밝힌다는 것은 그것도 다르다. 포기하는 것도 무신경하거나 단순한 달관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로 전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책은 다른 방법으로 소화가 된다. 뱀이 마신 물은 독이 되고 소가 마신 물은 우유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 책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를 꽤 흥미롭게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읽힌다고 생각할 만큼 재미도 있다. 혹 멘토나 힐링에 질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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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저자 - 이승욱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이 책의 저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한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음,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조금 놀랐다. 책은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펼치고 있는데, 팟캐스트는 다른 방식이었다. 난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목적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프롤로그에 굵은 글씨로 적혀있다.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포기는 인생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락날락했다.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만화 ‘슬램덩크’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컷이었고, 적절한 시기란 무엇인지 올바른 포기는 또 뭐란 말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욕망과 집착을 줄이라는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추측까지 해보았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총 네 개의 장에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여 저자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1장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여기서는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예를 들면, 왜 남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지, 내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은 집착 때문인가 욕망 때문인가, 내가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 이 장에서는 내 존재를 어떻게 누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지, 무엇을 얻고자 노력하는지 말하고 있다.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3장 나는 왜 불안한가?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남에게 평가받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미지의 것, 예를 들면 죽음 때문에 현재를 불안해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 싫어서 두려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4장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제목 그대로, 내가 남에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서 그 빈 공간을 채우거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가는 대목도 있고 아니다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결국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비슷한 문제 같다. 어릴 적에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커서 자식에게 집착하고 왜곡된 상을 주입시킨 부모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은 아이가 태어난다.
상처받은 상태로, 그것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속으로 곪고 짓무르면서 고름과 피를 철철 흘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자신이 싫어서 자기 자신을 또 상처주고 경멸하며, 누가 이런 자기 속마음을 알까봐 불안해하는 동시에 누군가 상처를 치료해주길 바란다. 이런 모순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집착을 하거나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놓아버리라고 충고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지나친 욕망은 버리라고 말한다.
음, 하지만 요즘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면 어쩐지 뒤처지거나 루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리라는 건 글쎄……. 지나친 욕망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일 수도 있을 텐데.
게다가 저자는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에는 세상에 알리거나 타인의 확인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욕구가 있다고 배웠다. 그걸 버리라는 건가?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게 욕망인지 아니면 내 능력 안의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담? 그러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아, 그렇구나. 이제야 알 거 같다.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지, 그가 왜 시공간을 초월해서 추앙을 받는지 알 거 같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는 요구는,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니 스스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사랑할 수 없더라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p.59
타인이 당신과 똑같은 존재이길, 똑같은 감정표현 방식과 관계 방식을 갖기를 기대하지 않길 바랍니다. 만약 당신에게 그걸 요구하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싫다고 정중히 말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감정을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상처받지 마십시오. -p.201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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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잘 닦여진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포기할 수 있다는 건 무언가가 없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고, 어떤 것은 내게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지혜를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화재의 팟캐스트 <공공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20년간 정신분석 클리닉을 운영해 온 저자가 한 말이다. 흔히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에게 실패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포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가 아무거나 막 포기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 삶의 평안과 행복을 망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그것을 놓아버리라고 말한다. 종교적 의미로 자주 쓰이는 '내려놓음', '비우기'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자명하다. 우리는 흔히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직책과 직장을 얻고, 얼굴이 더 예뻐지고, 또 남들로부터 사랑받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며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을 더욱 채찍질한다. 남들에게 보란 듯이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이 원하는 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삶은 크게 볼 때 낭비된 인생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결국 '남의 욕망'에 기대어 사는 삶을 포기하는 것만이 우리를 홀가분하게 하고 진짜 자신을 만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때 선택의 C는 적극적 행위의 선택과 함께 소극적 행위인 '포기'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겠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바람직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우린 그 문제를 버리(포기)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계발 도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청년실업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자기계발 도서는 이런 구조적 사회적 문제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 치환해 그 본질을 흐리는 측면이 있다. 독자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고 끈질기게 노력해 취업을 할 수 있는 비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다. 그 경쟁에서 진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남는 법이다. 따라서 본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는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을 위해 개인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해결에 앞장서야 할까? 그것은 지난한 길이겠지만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본질적 해결방법은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물질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그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나올수도 있는 법이겠지만....
결국 우리는 사르트르의 명제로 돌아온다. 인생이란 선택의 문제이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내가 중심에 서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을 눈높이를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의 선택의 문제로 구분된다. 완전히 어느 한쪽으로 경도된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이것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가? 나는누구인가(Who am I ?)라는 질문을 간간히 던지기라도 한다면 불안한 삶의 행태는 상당부분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인생의 쓸데없는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포기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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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따르면 인간 본성엔 무엇보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의 주저 '정신현상학'은 바로 그러한 타인의 인정을 바탕으로 이루러지는 인간 주체화의 여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그만큼 우리의 주체란 타인의 인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의 인정으로 부터 자유롭기란 누구나 다 느끼듯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라캉은 아예 우리가 인정의 근거가 되는 대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알고 살아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얻으려 애쓰는 삶이란 게 그리 좋은 건 또 아니다. 어쩌면 전혀 자신과 맞지않는 삶의 모습인데도 그 인정을 위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억눌러야 할 때도 있으며 너무나 가변적인 타인의 인정에 맞추다 보면 정작 자기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망각해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타인의 인정이 순방향이라면 정말 다행한 일이겠으나 그런 운좋은 경우는 사람의 삶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보면 언제든 한번은 기필코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타인의 인정만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나의 전적인 충만만을 위해 살 것인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일이. 물론 여기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책들이 거기에 대해 말해왔기도 하고. 하지만 막상 그것을 택하는데는 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게 아무래도 타인의 인정과 짙게 결부된 존재이다 보니 타인의 인정에 초연하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렇게 '포기하는 용기'를 불러 일으키고 키워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온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포기하는 용기'는 바로 그런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작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말인데 나처럼 지은이가 누군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하여 책날개에 나와있는 약력을 잠깐 소개해보고자 한다. 소개에 따르면 그는 서른이 훌쩍 넘는 나이에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직업이기도 한 교사직을 관두고 가족 모두를 데리고 뉴질랜드로 건너가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것만 해도 참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뉴질랜드에서 그의 삶은 더욱 고되었다. 나이들어 그것도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학문을, 그것도 익숙치 못한 낯선 언어로 따라잡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어서 10년간 하루에 거의 다섯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결국 학업을 마치고 시작한 곳에서 끝을 마치고 싶다는 마음에서 뉴질랜드 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오늘애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약력을 가진 이의 말이기에 타인의 인정을 받기보단 자신의 내적인 충만을 더욱 소중히 여기라는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은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확인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이행한 약속이어야 한다(P. 63)' 같은 말에 말이다. 정말로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인정애만 매달리는 '헛똑똑이'들이 많다. 생각해보면 그런 헛똑똑이들은 늘 뒤늦게 후회했다. 그런 헛똑똑이가 되지 않고 언제든 후회않는 삶을 살도록 하는데 이 책은 정말 좋은 조언들을 그것도 친절한 말로 넘치게 해주고 있다. 그 진심이 너무도 흥건하게 배여있기에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나면 어쩔 수 없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우리가 정말로 해야할 사유라는 점에서 이 책을 한 번 벗해 볼 것을 꼭 추천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