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유학 혹은 유교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쓰레기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청산해야 할 구악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여겨져 어떤 이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언제 공자가 제대로 득세한 적이 우리나라에 있었던가? 조선왕조 500년이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조선의 유학은 굳이 말하자면 주자학이다. 공자와 분명 뿌리가 닿아 있지만 엄연히 주희의 독자적인 사유 체계에 근거한 것이다. 난세에 태어나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고 당대에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했던 공자가 우리에게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공자가 죽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우선이고 그 뒤에 죽이든 살리든 해야 할 게 아닌가? 공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정신세계나 관념론, 사후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춘추전국이라는 난세에 살면서 그저 조화로운 공동체,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도 가족과 가정이 건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두껍지도 않고 대학 신입생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어 유가사상의 입문서로서 적당할 듯 싶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글이 따분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씌여졌으며 저자의 소신과 고집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어금니를 꽉 다물고 그야말로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하는데 참으로 저자의 강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숙연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생명, 도덕, 가정윤리, 사회윤리 등을 유가윤리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그 뜻이 변질된 효와 충에 대해서 본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유가의 윤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발표한 것과 같은 동기에서 이 책을 냈다고 하고 또 이보다 더 자신의 혼을 담은 글을 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유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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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은 행위를 구속하지 않는다.' 김충열 교수의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동양철학은 규범이 행위를 구속하지 않는다. 서양의 사상은 자유주의의 토대 아래에서 합리적인 규범을 만든다. 즉,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방임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외재적인 수단인 법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즉, 자유를 주되 제한을 가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자유와 제한이 모두 개인의 내면에 있다. 스스로 사회생활을 통해 자유와 그 제한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仁, 義, 禮는 하나의 當爲처럼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하고, 친구와 의리로서 지내는 것 등은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권장하는 사회생활을 통해 내면에서 형성되어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런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차이들이 있다. 그래서, 김충열 교수의 <유가윤리강의>를 읽으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는 다른 동양의 윤리학을 맛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명성만큼이나 전문적이지만 또한 쉽다. 그래서 부담이 가지 않는다. 생명에서 시작해 나, 가정, 사회, 역사로 확대되는 유가윤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참 쉽다. 내가 四書를 강독하면서 漢字를 한자씩 찾아가던 그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서양인은 잘 이해되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쉽게 이해된다. 그런 윤리의 환경에서 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물결이 밀려 들어왔고, 그에 앞서 자본주의의 파편화된 논리가 우리의 몸을 지배했다. 그러면서, 수천년을 간직해온 동양의 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책이 유행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양의 윤리를 버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옳지 않다. 서양의 윤리학이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를 우리는 이미 많이 넘어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정의주의(emotivism)와 같은 문제가 우리에겐 없다. 이론과 실천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충렬 교수 역시 본문의 서두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밝힘으로서 나와 전체가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이것이 동양철학의 강점이다. 노자의 사상 역시 플라톤이나 하이데거의 철학에 뒤지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근대화'가 동양의 것을 버리고 서양의 것만을 추구하는 '서양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점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양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인상깊은구절] ...생명의 귀중함을 외면한 그 어떤 계산도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자각이 될 수 없다. 물론 인간 세상, 역사적 상황 속에서는 때로 귀중한 생명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위해 생명마저 던지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생명의 고귀함을 자각한 데서 깊이 깨닫게 되는 생명 정신의 승화이므로, 생명을 처음부터 외면하고 경시한 데서는 진정한 인간의 정신적 가치나 역사의 의미는 설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실천이성비판>유가윤리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