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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느낌의 소설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한 개인의 삶.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절규에 가까운 고통 속에서 헤메는 인간의 괴로움을 묘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취향이 특이한 것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 수영이 살았던 유신정권 시절이 훨씬 지난 지금의 20대 독자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작품을 쓰고 싶지만 한계를 느끼고 절망하는 예술가도 느끼는 것이 많겠지만, 나처럼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하루하루 똑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비단 한 소설지망생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 중간 중간에서 밀란 쿤데라, 장 그르니에 등의 글이 종종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수영은 '실존의 한 단면을 나만의 언어로 발견하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재주가 없다'면서 통탄하는데, 적어도 이 소설은 그 한 단면을 발견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영처럼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소설의 여운 때문에 잠못 이루며 뒤척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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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들을 위한 변명 혹은 진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 제목이 가져다 주는 느낌은 난해함 과 요행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주제로 한 글이라면 그의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써는 작품을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좀더 도스토예프스키를 접근하는 쉬운 길을 알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이 후자의 경우였다. 다행이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주제로 한 작품은 아니었기에 그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더라도 책을 읽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수영은 글을 쓰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로 자신의 입지를 어느정도 굳혀 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내면에는 글을 쓰기 위해 무단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우연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만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게 된다. 도트토예프스키의 돌은 그 이름 만큼이나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 자신도 글을 쓰고 싶었다. 누구 보다도 좋은 글, 재미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좋은 글과 재미있는 글이라는 기준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변했지만 , 절대로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꿈을 일찍이 접게 만든건 내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쉽게 말해서 내 자신을 알았다는 얘기다. 작품에서도 많이 나오는 카뮈,카프카,쟝그리에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작품들을 읽고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에 편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아쉬움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작가는 수영이라는 또다른 자신을 내 세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빠른 시기에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변명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배부른 투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은 여유로운 변명이었다. 글쓰기는 그런 과정조차도 당연시 하는 것일지 모른다.
읽는 것 조차 많이 힘들어 하는 이에게, 쓰는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읽는 것의 연장이 쓰는 것에 옥구라는 것이 당연하다면,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읽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또다른 자신의 작품을 등장시키며 읽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있다. 솔직히,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중간에 삽입되어있는 작가의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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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해, 맘에 안 들어…하지만 내 얼굴이짆아” 거울 보며 제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쩔쩔매는 때가 있지 않은가.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내놓고 그렇게 중얼거렸을 거 같다. 왜냐면 이건 정말 제 얼굴 사진이고 제 얘기이니까. 이 작품은 ‘젊은 날의 초상’을 그린 얘기다. 그것도 그냥 그런 사람들 얘기가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작가수업을 하며 젊은 그 날들을 쩔쩔매던 한 여자의 얘기다. 작가는 피하지도 않고 책 뒷표지에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 바치는 책’이라고 헌사를 적시해 놓았다.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이라니… 더구나 작가처럼 또는 나 같은 중늙은이 독자들, 그 때나 이제나 소위 밥벌이가 안 돼서 스러져간다는 인문계 어문학과를 나온 친구들이라면, 7080 문학청년(‘문청’이라고들 불렀다)들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기실 대부분 그러했던 갑남을녀들이 ‘가슴에 품었던’이 아니라 이제는 ‘가슴에 묻어둔’ 얘기가 되고 말았던 얘기가 아닌가. 누군가 토해냈던 ‘일간지에 신춘문예 공고가 나타날 때쯤엔 아직도 가슴이 뛴다’는 표현도 이젠 낡은 수사가 되었다. 어쩌란 말인가. 아파트 평수 늘리고 자식들 과외비니 어학 연수비니 신경쓰느라 정신 없이 살았던 나날들에 신춘문예 공고에 아직도 가슴이 뛴다…라니… 그래, 이 스토리는 세상의 모든 문학소년과 문청들의 뼈아픈 일기장이다. 그런데 다들 꼬꾸라졌던 그 계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얘기라 읽고 싶고 읽히는 얘기가 되었다. 작품 속엔 70년대 80년대 젊은 그대들의 속살이 다 내비친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흔들리는 혼돈의 삶과 예솔에 대한 열정, 그래서 술과 담배와 음악과 섹스에 탐닉하는 청춘 스케치가 낯설지 않다. 게다가 시원스레 목 터져라 외치지도 못하는 독재 정권 치하에서의 젊음이란 또 얼마나 잔인한 계절이었던가. 그래서 이 책은 그 시절의 젊은이와 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격문檄文과 같다. 지금은 모두가 꼰대가 되어 ‘꼰대스러움’에 빠져 그 때를 추억하는 자들에게는 위문 편지가, 지금 여전히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되어 헤매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만사慢詞가 된 것이다. 박완서 선생과 이병주 선생은 40대에 자기 문장을 세상에 선보여 매스컴에 올랐지만, 문영심 작가는 50대에 어렵게 장편을 묶어냈어도 매스컴에 오르지 않는다. 그 만큼 늦깎이도 많고 이젠 고령화 사회가 되어 뉴스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창작을 포기하고 좋은 독자로만 남기로 했다’고 마음 먹었음에도 늘 문학 동네에 얼씬거리며 끈을 놓기 싫어했던 모든 문학소년과 문학소녀와 문청과 그리고 아직도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읽을 만하다. 그리고 잘 읽힌다.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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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심정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람의 이름인 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 작가였는지도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책은 좋은데 작가의 이름이나 종류는 그리 따지지 않는다. 그저 읽을뿐이다. 그저 읽고 있는 것이 좋고 마음이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다. 꼭 누구의 작품이고 유명한 작품이다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나의 조그마한 변명이지만 말이다... 소설이니깐 으로 시작된 이 책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소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자서전 같은 느낌이면서도 소설이고, 소설속의 또 다른 소설인 것이다. 그래서 읽다가 이게 소설속의 소설이였나? 아님 진짜 소설인가? 라는 의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소설도 이 자체도 모두 훌륭한 문체를 가지고 있었고 소재도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였다. 그래서 새로움과 흥미로움 두 가지를 다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문영심이라는 작가의 삶이 소설 속에서 묻어나와 자서전과 같은 소설이 되어버렸지만 작가만의 고통과 작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뇌해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어찌 문영심 작가의 고통일 뿐이겠는가. 요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도 같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내보이면서 다른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또는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모든이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고 그 감정을 다른이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진정한 소설가라면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고 남에게 자신을 글을 내보이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아니기에 그 모든 의미를 알수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작가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또한 나에게 주어진 삶이 또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얼마나 나 자신을 위해 또 남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었는지 또는 고통을 주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끔 하였다. 작은 물건하나에 많은 기대를 품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일도 아닌 것에 화를 내거나 극단적이면 죽음까지도 가게 되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인간이니깐 그러한 모든 고통을 희망이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굴레안에서 견뎌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희망과 사랑을 믿으며 조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견디고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 또는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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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시절 내가 '문학소녀'라는 애칭을 붙여준 절친이 있었다.
키도 나보다 크고, 재치 있고, 유머스러웠던 친구..
그 친구는 중딩시절부터 하이틴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고, 무료로 잡지를 받아본다든가, 원고료로 푼돈을 받아 용돈으로 사용하던 친구였다...
교내에서 글짓기 부문 상을 휩쓰는 건 기본이고, 학교 대표로 굵직굵직한 대회에도 참가해 대입장학생으로 대학마다 러브콜이 쇄도했던 친구..
언제나 내 머릿속엔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읽는 내내 나의 '문학소녀'가 내 머릿속에서 줄곧 자리잡고 있었다. 내 친구도 주인공처럼 번뇌하며, 고뇌하며 글을 썼을까??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개혁운동에 참여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옴스크 감옥에서 4년동안 복역할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다 해서 관광객들의
탐을 내는 기념품이다. 특히, 문학지망생들에겐 이 돌맹이가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 이 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문학적 성취를 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프롤로그로 딱 들어맞는 나레이션부터 꽉 막힌 8년차 방송작가 이수영.. 그녀의 징크스는 언제나 첫 문장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문장이 순조롭게 잘 풀리면 그 뒤로 적절한 문장들이 잘 따라 나오는데, 프롤로그의 첫마디를 끌어내지 못하면 그녀의 머릿속은 점점 비어나가 실마리조차 풀지 못하는 고질적인 징크스..
주인공인 방송작가 이수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를 다룬 프로그램 대본으로 압도 당하는 중 촬영감독인 박감독으로 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건네 받게 되면서 1977년 문창과에 갓 입학한 신입생환영회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너무 자주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을 가지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다툰다. 망각은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기억을 잡아먹고 있다. 불확실한 기억은 무한히 왜곡된다. 우리는 망각과 기억이라는 두가지 정신작용에 의해 우리의 과거를 끊임없이 지우고 변형시킨다. -본문 중에서-
희수.수옥.석균은 언제나 수영과 뜻을 함께 하고 웃고 즐기는 절친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문학작품 창작활동에 대한 고뇌와 번뇌, 그리고 열등감으로 수영은 힘겨워한다.
이런 수영의 힘겨움을 보고 있노라니, 문창과에 다녔던 나의 절친이 다시 한번 수영과 오버랩된다. 곁에 딱 달라붙어 바라본 내 친구는 그저 연필로 끄적끄적 쓱쓱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듯 보였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도 그 친구도 수영처럼 이렇게 힘들고 괴로웠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을 맞이한 대학생활 4년차..
꽤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속에 수영도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아야무야 끝을 맺는다.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다큐작가로서, 한아이의 엄마로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 삶이 무기력해짐을 느끼며, 소설을 쓰고픈 창작욕에 다시 열정이 끓어오르는 수영...
하지만 피끓던 20대의 정열과 도전은 뒤로 한 체, 문창과 시절의 수영과는 전혀 다른 그녀 주변의 일상을 담은 소박하고 진솔한 글을 쓰기로 작정 하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책 안에는 각각 단편으로 구성된 4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영이 몇 년전에 써 놓았던 습작속의 인물들이 그려지는가 하면, 언제나 올곧은 정신으로 창작활동에 열심인 석균의 작품도 들어 있다. 글의 중심 내용을 읽어가다 만나는 단편들은 꼭 보너스를 받는 야릇한 기분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재미 중의 하나이기도 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맛이 쏠쏠하다.
작가들은 한 작품을 탈고 할 때 온몸의 기가 빠져나고 심지어는 잇몸이 헐고 이가 빠지는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소설을 쓴 문영심 작가와 방송작가 이수영의 고뇌와 번뇌가 함께 전해오는 듯 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통해
그동안 눈으로 후루룩 읽어내려간 깨알 같은 글들이 한 문장 한 문장 소중하고 새롭게 다가옴을 느끼며,
이미 읽어버린 책을 다시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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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해 시작한 다큐작가인 수영이 있다. 지난날 품었던 문학에 대해 잊고 있던 수영은 어느날 후배에게서 문학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선물 받게 된다.
문학지망생들에게 이 돌은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 있어 이 돌을 성취하게 된다면 반드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수영은 지난날 문학과 함께 살았던 그 시대, 자신의 대학 신입생환영회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 된다.
수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돌로 인하여 과거를 회상하다 무의미하게 써내려가는 다큐작가를 그만 두고 다시한번 문학에 뛰어 들기로 한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환경은 만만치 않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회색의 책표지와는 다르게 글에서는 주황색과 갈색사이를 오가는 그런 색이 연상 되었다. 실제로 느껴보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시대를 느꼈다고나 할까? 오히려 극 중 수영의 작품에서야 회색의 책표지와 같은 느낌이 났다. 작가님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영의 작품에서 그녀가 고뇌하며 썼던 작품이 정말 주인공이 그 상황에서 썼을 법한 글일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쓴 사람은 한분인데 소설속의 소설이라... 그속에서 서로 다른 느낌을 내는 책은 색달랐다.
그리고 읽으면서 주인공이 작가님 자신이 모티브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영의 말처럼 작가가 작품을 내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구절에 깜짝 놀랐지만 작가님의 이력을 보면서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속도감 있게 읽혀졌고, 창작에 대한 주인공의 고뇌에 대한 해답을 마지막 작가의말에서 박경리선생님의 답변을 보고 아!라는 탄성과 함께 깨달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의 작가님의 부연 설명과 함께.... 그 마지막 해답을 찾은거 같아 만약 지금 이순간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책을 추천하고 싶다. |
![]() 박정희 군사 독재 막바지, 군홧 발아래 짓밟히던 야만적 행동과 자유와 낭만이 공존하던 대학 캠퍼스는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귀퉁이를 들춰내 젊은날의 한 때를 떠올리게한다. 그 시대에 문학이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며, 그런 시절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특히나 작가를 지망하던 문학도들은 문학이 곧 정권에 반대하는 시대 저항의 수단이며 반항이라 믿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가치에 반발하고 기존의 질서에 맞서 그들만의 가치와 그들만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았다.수영을 비롯한 같은과 학생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능가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거창한 꿈을 지닌 소설가 지망생 수영은 아밖으로 시끄러운 대학생활을 마감하며 그녀의 부족한 재능을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며 글쓰기를 포기한다. 작가의 길을 포기한 그녀는 방송작가로 주부로 한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삶을 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얻고 난 뒤 그동안의 결혼생활과 일이 그녀의 삶을 소모시킬뿐 전혀 행복하지 안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내부에 침잠된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그녀로 하여금을 다시 습작을 시작하게 한다. 그녀는 더이상 카뮈나 카프카 등 대가들과 경쟁하려했던 예전의 자만심에 가득찬 이십대가 아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녀가 아는 것, 잘 쓸 수 있는 것에 대해 소박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그녀의 느낀바와 생각한 바대로 그녀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쓴 글이 일간지에 당선됬다는 통보를 받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치열함과 솔직함을 잃어버린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글에 실망한다. 작품의 중간 중간 수영의 내면세계를 투영한 4편의 단편들 통해 그녀의 심적 변화와 창작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책속에 담긴 각기 다른 4편의 단편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녀는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할 수 밖애 없는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임을 깨닫게된 그녀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토록 미뤄왔던 자신의 작품과 마주할 용기를 얻게된 그녀는 가방에 넣어둔 자신의 작품이 실린 책을 꺼내 읽는다. 다시 절망할지라도. 작가들은 한 작품을 탈고 할 때 온몸의 기가 빠져나고 심지어는 잇몸이 헐고 이가 빠지는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왜 그들은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 쓰고자 하는 열망으로 애닿아 하는 그들의 고민과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창작의 고통을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책속에는 글을 써야만 하는 절절함이 묻어난다. 삶이 녹아있는 문학이란 바로 삶 자체가 아닐까하는 나름의 생각을 해보며 느낀점 몇 줄에도 머리를 쥐어 짜는데 하물며 창작이야 어떠할지 가늠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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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한창 소설가로써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글을 쓰던 때가 생각난다. 제목만 보고는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난다. 그 시절 잠을 많이 자면 이상하게 글이 씌여지지 않아 일부러 먹지도 못한 커피를 한주전자 끓여 놓고 홀짝 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연심 끔뻑이며 잠을 쫓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 내 한때의 꿈이었고 삶이었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냥 과거의 추억일 뿐이라는게 새삼 서글프게 느껴진다.
주인공 수영도 마찬가지다. 큰 꿈을 가슴에 끌어 앉고 대학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사람하는 사람을 만나 많은 추억들을 쌓았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나서는 모든게 물흐르듯 흘렀다. 적당히 만난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소설가가 되리라던 꿈을 접고 방송작가가 된 수영. 수영의 삶이 무조건 불쌍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영이의 삶이야 말고 지금 우리들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모두들 사는데 바쁘고 돈 버는데 바쁘니까 말이다. 그런 방송작가 일을 하다 우연히 아는 사람으로 부터 움스크 감옥 생활을 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가져오게 되면서 수영은 과거 자신이 큰 꿈을 안고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수영은 신춘문예에 당선하게 되고 소설가의 길을 걷지만 결혼생활의 위기로 다시금 그 꿈을 접게 되는데......
나는 돈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솔직히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조금씩 조금씩 쓰던 소설을 얄팍한 내 지식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면서 점차 폐품쓰레기가되어 버린 내 원고가 생각난다. 공순이 생활로 무슨 글을 쓰겠나 싶어서 그리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내가 무슨 소설을 쓰나 하는 절망감으로 말이다. 지금이야 솔로에 서른이 넘는 나이로 이래저래 현실과 타협하며 하루하루 무난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읽고 다시금 새로운 희망이 싹트려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수영이 간간히 쓴 소설도 소개 되어 있다. 한권의 책에 몇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작가 참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약간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참으로 한참을 방황하며 지냈구나 싶은게 너무도 헛되이 시간만 보냈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문구가 제법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나는 너무도 부족하고 나태하지만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시금 큰 꿈을 품게 해 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근데 서른이 넘은 내가 지금 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 나는 내 머릿속에 떠도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글로 보여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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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수영을 통하여 소설을 쓰기 위하여 겪는 아픔과 학교생활의 일상을 거침없이 표현한 소설이다. 수영은 우연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남편과의 갈등등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소설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기대하던 꿈을 이루게 된다. 대학교때의 친구인 희수 수옥과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단골술집인 업에 대한 이야기등 모두가 한때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시간은 주인공인 수영이 아름다운 소설을 완성하는 하나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실적이고 때로는 통속적이기도 한 이소설의 긴박감 그리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구조로 인하여 누구나 소설을 빨리 읽어버릴수밖에 없는 욕망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소설속에 소설이 들어있어 입체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학교다닐때의 고뇌와 문학을 하는 학생들의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표현하였으며 문학에 대한 집념이 강하게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수영과 술집업의 아저씨와의 사랑또한 아쉽게 다가왔다. 그리고 남편과 딸에 대한 무관심을 소설을 통하여 이루려고 했던 수영의 고뇌또한 어떠한 심리상태인지 궁금하다. 모든것이 어찌보면 정상적인 생활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생활인지 헷갈릴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내면에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심리학적 상상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읽는재미가 배가될것으로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