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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그림]눈을 속이는 그림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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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깊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보낼때 그 지역에서 하는 예술제에 나가 그림부문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도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주셔서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의 말씀이 돈 많이 들어가니 절대 미술공부 안된다고 하셔서 화가에 대한 꿈만 있었을 뿐 그림을 접었었다. 뭐 계속 그려왔다고 해도 지금 화가를 할 정도는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해보지만 말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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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깊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보낼때 그 지역에서 하는 예술제에 나가 그림부문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도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주셔서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의 말씀이 돈 많이 들어가니 절대 미술공부 안된다고 하셔서 화가에 대한 꿈만 있었을 뿐 그림을 접었었다. 뭐 계속 그려왔다고 해도 지금 화가를 할 정도는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해보지만 말이다. 아마도 잘 그리지 못해 굶기를 밥 먹듯이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그림에 관한 책이나 화보집이 있으면 호기심이 더 생긴다. 생각같으면 다 구입해서 시간이 날때마다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화가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고흐와 클림트, 그리고 베르메르. 고흐의 그림이야 너무 유명해 책으로도 많이 나왔고 그에 관한 책도 가지고 있어서 우울하거나 할때 그의 그림 들여다 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책 <진주 귀고리 소녀>때문에 좋아하게 된 베르메르. 그 작품에 대한 영화까지 나와서 한동안 또 베르메르 그림을 좋아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키스>의 화가 클림트의 그림 또한. 클림트의 그림이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했을때 서울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그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과 소설까지 파고 들었었다. 이런 이유에서 난 그림에 관한 책들이 참 좋다. 그것이 어떤 쟝르이든지.

이 책은 사람의 눈을 속여온 그림 '트롱프뢰유'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로 '눈속임'을 뜻하며 미술사에서 관객이 실제와 착각하도록 그린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눈을 속이는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눈을 속이는 그림'이라고 하면 그림을 보는 이가 그 이미지를 실제와는 다르게 착각하게 한 후 그 실체를 깨닫게 되는 그림을 말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일단 속았다가 곧 가짜임을 알게 되어 그림임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주로 유럽쪽에서 '트롱프뢰유'를 많이 그렸다. 우리나라의 '트롱프뢰유'를 예로 들자면 신라의 화가 솔거가 사찰의 벽에 소나무를 그렸더니 새들이 날아와 부딪히곤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고 한다. 새들은 그 그림이 실제 소나무 인줄 알고 날아온 것이다. 후에 세월이 흘러 소나무가 조금씩 퇴색했어도 새들이 여전히 찾아오자 그 절의 주지스님이 소나무 그림에 붓으로 솔잎을 덧칠했더니 새들이 더이상 날아들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귀부인의 그림이 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모자같은 두건을 쓰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귀부인의 그림에 웬 파리가 앉아 있다. 그림을 얼핏 보았을때는 그림위에 파리가 앉아 있는 것 처럼 보여 손을 휘젓고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림속에 파리 그림인 것이다. 그림 속의 파리 그림 또한 유행처럼 번져 여러 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렸나 보다. 파리 앉아 있는 그림을 보며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책을 보다가 아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자 그림속에 왜 파리를 그렸느냐고 묻는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해줄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중국의 양나라의 유명한 화가 장승요가 금릉의 안락사 벽에 네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꿈틀거리는 듯한 그 용들에게 눈동자가 없었다고 한다. 왜 눈을 그려넣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눈을 그려 넣으면 용이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정신나간 소리 하지 말라며 눈을 그려 넣으라고 졸라대자 두 마리 용의 눈동자를 그렸더니 그 용들은 검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고 벽에는 눈동자가 없는 용 두 마리만 남아있다는 '화룡점정'의 이야기도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그 말을 들어보긴 했는데 이런 뜻이 있었다는 건 몰랐었다. 재미있고 살아움직이는 눈속임 그림 이야기이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게 있다. 얼마전 끝났던 드라마에서도 절에 있던 삼신할머니 옆에 있는 여우의 그림에 꼬리 아홉개를 그려주니 그 여우가 그림에서 사라져 사람으로 변해서 신랑을 찾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속의 커텐. 베르메르는 그림 속에 커튼을 자주 그렸다 한다. 그림속에 한쪽엔 커튼이 한쪽엔 인물이 있는데 커튼을 열면 가려진 그림이 나타날 것만 같아 거튼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커튼을 열면 숨어 있는 그림이 있을것만 같고, 커튼을 열어 그림속을 들여다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도 하는 설명들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했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고 해야겠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그림에 대한 한 가지를 알았다는 뿌듯함도 생긴다. 꼭 그림을 좋아하지 않아도 읽으면 재미있을 그런 책이다.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며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0.11.05. 신고 공감 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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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그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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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무엇인가? 문자가 만들어져 사용되기 전부터 그림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의사표현을 하던 것이 발전되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이제는 개성과 창작의 또 하나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수단이 아닌가. 5살인 조카를 보더라도 글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써 보이기 전부터 삐뚤빼뚤 선과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이려 하니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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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무엇인가?

문자가 만들어져 사용되기 전부터 그림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의사표현을 하던 것이 발전되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이제는 개성과 창작의 또 하나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수단이 아닌가.

5살인 조카를 보더라도 글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써 보이기 전부터 삐뚤빼뚤 선과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이려 하니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재능과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멋진 사진이나 풍경을 보면 그림같다고 한다.

예전에야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이었으니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온 솜씨 좋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 다른 세상을 전해 주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고, 그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렸을 테니 가장 그럴 듯 하게, 그리고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으로 칭송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원근감과 아름다운 색조를 사용하여 사진과 같이 그려낸 그림을 정말 잘 그린 그림이라 생각해왔던 거 같다.

 

언젠가 전시회장에서 보았던 한 그림이 너무나 강렬하여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다.

대학 선배가 학부시절에 그린 그림이니까 아마추어 그림이지만, 그 그림을 본 순간 놀라움에 숨이 멎을 뻔 하였다.

밤에 창 밖으로 내비치는 바깥 풍경을 그린 그림인데, 조명에 반사된 실내의 모습까지 겹쳐져 있어서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본 화가의 눈에 보여지는 모든 사물과 빛이 캔버스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이게 사진인가 그림인가 혼란스러웠던 그림.

트롱프뢰유의 첫 경험이었기에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트롱프뢰유란 프랑스어로 눈속임을 뜻한다. 미술사에서 관객이 실제와 착각하도록 그린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눈을 속이는 그림을 뜻한다.

하지만 사진처럼 잘 그려져 사진인지, 실물인지 착각할 정도로 그려진 하이퍼리얼리즘과는 차별을 둔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실제에 매우 가깝게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트롱프뢰유는 실제와 닮게 그리면서도 이것은 평면에 그려진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려 속임수를 내세운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트롱프뢰유는 고대 그리스의 화가였던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이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서 새들이 날라왔다는 이야기다.

실제와 가깝게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이 실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속임수, 다시말해 처음에 그림을 봤을 때 느껴지는 생경한 느낌 속에서 뭔가 어색함을 찾게 만드는 그림은 화가들의 짖궂은 장난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트롱프뢰유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몇가지 장치가 있다.

첫번째는 쪽지나 튀어나온 못, 편지꽂이나 선반과 같이 얕게 튀어나온 사물이다.

2차원의 평면 그림이 3차원처럼 보여져야 하므로 입체감을 주기 용이한 편지꽂이나 선반 그림이 많다.

 

트롱프뢰유로 유명한 호흐스트라텐의 1666년작이다. 편지꽂이에 꽂혀있는 빗과 메달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두번째는 프레임이다. 액자를 뛰쳐나오는 그림과 같이 화면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그림이나 손가락 끝이 액자에 걸쳐있는 그림들이 위트있게 관객의 인식의 틀을 뒤흔든다.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독일의 무명화가의 작품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림 속의 할머니의 손이 그림 밖의 책장을 넘기는 듯하였으나 자세히 보면 그렇게 연출되었을 뿐 책장은 바람에 의해 넘겨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적 정물의 묘사보다 눈속임을 전개한 솜씨가 놀랍다.

 

세번째는 파리와 커튼이다.

성스러운 성화에 파리가 한 마리 앉아있다. 누가봐도 잘 그려진 그림에 파리가 있으니 제욱시스의 포도를 보고 날라온 새마냥 누구나 그 파리를 날려버리고 싶어 손짓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왠걸 그림위에 올라앉은 파리역시 그림이다. 화가들이 천역덕스럽게 잘 그려진 그림에 파리를 그려넣어서 실제처럼 보이게 그린 것이다.

포도그림으로 기고만장해진 제욱시스는 친구 파라시오스의 그림을 보러갔다. 그림에 커튼이 쳐져있어서 커튼을 걷으러 가서 보니 그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커튼너머의 공간과 화면을 살짝 가리는 커튼은 그림속의 상황과 그림 밖의 공간을 이중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이의 시선이 그림 속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이 또한 자주 사용된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의  1658년 작, 꽃이 있는 정물이다. 꽃을 잘 그리는 스펠트와 직물을 잘 그리는 미리스의 합동 작품이다. 커튼의 현실적인 빛감에 그림을 가리는 커튼이 앞에 달려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트롱프뢰유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에 책에 소개되어있는 백여점의 도판이 트롱프뢰유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각 장치에 따른 다양한 시대에 그려진 여러 작가들의 그림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은 책에서 보는 그림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미술관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d******h 2010.11.08.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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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화가 사이의 속고 속이는 게임, 트롱프뢰유
"관객과 화가 사이의 속고 속이는 게임, 트롱프뢰유" 내용보기
몇달 전에 트릭 아트전이란 전시회가 있었다. 지방에 살다 보니 당시에 열렸던 전시회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봐야 했기 때문에 트릭 아트전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트릭이 숨어 있는 그림이 도대체 어떤 그림인지 나중에 다른 블로거들의 사진을 보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뒤늦은 아쉬움도 함께.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속임 그림이란 말이
"관객과 화가 사이의 속고 속이는 게임, 트롱프뢰유" 내용보기
몇달 전에 트릭 아트전이란 전시회가 있었다. 지방에 살다 보니 당시에 열렸던 전시회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봐야 했기 때문에 트릭 아트전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트릭이 숨어 있는 그림이 도대체 어떤 그림인지 나중에 다른 블로거들의 사진을 보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뒤늦은 아쉬움도 함께.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속임 그림이란 말이 왠지 트릭 아트란 말과 통하는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눈속임 그림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M.C. 에셔다. 물론 에셔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판화이긴 하지만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 에셔의 판화를 보면 눈이 즐겁기도 하지만 어지럽기도 했다. 그런 그림도 여기에서 소개된 트롱포뢰유에 속하는가 싶었는데, 그런 눈을 어지럽히는 그림은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여기에서 소개된 그림들은 가짜이지만 실제처럼 보이도록 관객의 눈을 속이는 그림이다. 또한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처럼 실제를 꼭 빼닯은 그림도 제외된다. 하이퍼리얼리즘 작품들은 사진처럼 보이길 원하는 그림이고, 관객을 속이려는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소개되는 트롱프뢰유는 어떤 그림들일까.


위의 그림을 보자. 이 작품은 얀 판 데르 파르트의「바이올린」이란 작품이다. 난 왼쪽 그림을 봤을 때 저 문을 통해 바이올린이 걸린 문까지 저벅저벅 걸어들어 가고 싶었달까. 왠지 만져질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렇듯 관객의 눈을 현혹시키고 그려진 것이 실재 사물인양 하는 것이 바로 트롱프뢰유이다. 이 책은 총 7개 파트로 나누어 트롱프뢰유의 다양한 수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뭐, 이런 악취미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죽은 동물의 그림을, 그것도 벽에 매달린 죽은 동물의 그림을 그리는 거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 왼쪽 그림은 1764년, 오른쪽 그림은 1504년에 그려졌다 - 를 생각해 보면 묘하게 납득이 간다. 요즘 사람들이 자신이 사냥한 동물의 사진을 찍어 보관하듯 이 시대에는 이렇게 그림으로 보관했던 것이다. 또한 요즘처럼 먹을 것이 흔한 시대가 아니였기에 이 그림을 통해 근사한 저녁만찬을 떠올렸을지도 모를일이다.

<산 것과 죽은 것> 장에 소개된 그림들은 저런 사냥물과 구겨진 종이가 특징적이다. 왼쪽 그림은 그림이 다 보이지 않아 구겨진 종이가 어디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책 중간 부분에 있는 것이 종이이다. 이 구겨진 종이는 재미있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냥물이 그림이라면 구겨진 종이는 실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걸 보고 실재라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몇 백년전에 그려진 그림이 실재를 대신할 정도가 될 것이란 것은 쉬 짐작이 간다. 막 사냥한 사냥감을 벽에 걸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트롱프뢰유의 두번째 이야기는 레터 택이다. 일명 <편지 꽂이 그림>이라고 하는 이 장르는 사물에 반사된 화가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편지 꽂이 그림은 편지나 문서들이 꽂혀 있는 그림도 있지만, 이 그림의 경우 작가가 사용한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그림은 같은 작가의 그림이다. 사뮈엘 판 호호스트라텐이라는 작가가 그린 이 그림들은 그려진 시기에 2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는데, 2년동안 상당히 정교한 그림으로 바뀌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왼쪽 그림은 그림같지만, 오른쪽 그림은 왠지 그림같지 않달까. 무척 흥미롭다.

이런 그림은 언뜻 보기에 작가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아도, 결국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가방 공개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가방 공개를 해야할 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은 다 치워놓은 후에 공개를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호호스트라텐 역시 자신이 보이고 싶은 것만을 그린 게 아닐까.
 

위의 그림 또한 편지 꽂이 그림의 한 종류이다. 왼쪽 그림은 편지꽂이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리본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 왠지 뒷면이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뒤집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트롱프뢰유의 제왕이라 불렸던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인데, 단순히 편지 꽂이 그림이라고 보기엔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편지 꽂이 중간 부분에 벽감같은 것이 있고 그곳이 움푹 들어간데다 작은 문도 달려있다. 또한 해골까지 놓여 있다. 이는 인간이 갈구하는 물질적 욕망과 호화로움과 쾌락이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결국 쇠락하고 소멸한다는 '바니타스' 주제를 의미한다. 이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런 편지 꽂이 트롱프뢰유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재미있는 변화를 보인다. 그것은 편지꽂이 같은 장치가 소멸된다는 것과 사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틀(프레임)이 없어지고, 사진같은 그림대신 사진을 그린 그림이 등장한달까. 왠지 미국의 실리주의를 그림에서도 발견하는 것 같아 무척 재미있다.


편지 꽂이 그림은 무언가를 세워두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라면 이번에 볼 그림은 수평의 트롱프뢰유이다. 왼쪽은 전체가 그림이 아니라 테이블 위의 상감이 그림이다. 테이블에 앉아 사무를 볼 때, 실제로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테이블이지만 무엇인가 놓여있다는 느낌을 준다. 무척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같으면 정신 사나워서 저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란 느낌도 들지만.

오른쪽 그림은 수평의 트롱프뢰유에 깨진 유리 효과를 덧입힌 것이다. 뒤에 있는 건 그림이 확실한데, 앞의 유리가 실제인지 아닌지 무척 헷갈린다. 바로 이것이 깨진 유리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재미있게도 스페인 - 프랑스 평화 조약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화조약 전에 그려진 그림이었으니까.

그림위의 유리는 더욱 발전해 판화를 가장한 유화, 판화를 가장한 유화위의 깨진 유리로도 발전한다. 깔끔한 판화처럼 보이는데, 프레임부분까지 그림으로 처리한 그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까지 든달까. (笑)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그림 위의 그림>이란 것이다. 그림 위의 그림은 그림 위에 그려진 파리로 시작한다. 독일에서는 초상화에 파리가 붙은 그림이 많았는데, 이 형식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종교화에까지 적용된다. 위에 보이는 그림 역시 종교화의 일종으로 왼쪽 그림은 하단부분에 오른쪽 그림은 예수의 가슴 부근에 파리가 붙어 있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설마 화가들이 성모자나 예수의 그림에 파리를 그렸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당황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파리를 쫓기 위해 손을 휘휘 내젓는 관객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 다음으로 소개되는 것은 <그림위의 쪽지>인 카르텔리노와 관련한 것들이다. 이는 그림의 안팎을 교란하기 위해 그려진 장치로 뒤에 그려진 그림은 그림인데, 앞에 있는 것은 그림인가 진짜 쪽지인가를 관객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왠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을 떠올랐달까.

그외에도 찢겨진 캔버스 그림도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찢겨진 캔버스 그림은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일본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 밑에서 개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다. 신화라 함은 신성한 것인데, 개가 캔버스를 찢고 고개를 내민 것에서 웃음이 터져버린다. 물론 이 그림이 실재처럼 보일리는 없지만, 개가 머리를 내민 것으로 조금은 다른 유쾌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달까.


위 그림은 앞에도 소개된 헤이스브레흐츠의 그림으로 다양한 트롱프뢰유 기법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벽에 걸린 그림은 벽감안에 있는 해골과 구겨진 종이를 묘사하고 있다. 해골은 바니타스를 의미하고, 밑에 있는 쪽지는 카르텔리노라고 봐야 할까. 해골이 들어 있는 것은 벽감이다. 만약 이 그림의 배경이 없다면 또한 캔버스에서 종이가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면 왠지 벽감이라고 착각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캔버스에서 그림이 떨어져 나옴으로 인해 캔버스를 포함한 것은 그림이라 여겨지지만, 그외의 것은 실제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이랄까.

캔버스에서 떨어져 나오는 그림은 이처럼 나무틀이 보이는 그림도 있지만, 다른 그림이 보이는 그림도 있다. 또한 캔버스 전체를 감싼 천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림도 있다. 캔버스 하나로 다양한 그림을 선보이는 것, 이는 화가들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롱프뢰유 다음 이야기는 <공간의 재해석>이란 주제다. 위 그림을 언뜻 보았을 때 실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감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앞에 걸린 수건은 선반 뒷면과의 거리감을 보여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터치, 얕은 공간이지만 공간감을 충분히 살린 표현, 그리고 바니타스를 의미하는 양초까지. 무척이나 흥미로운 그림이다. 이런 선반 그림은 비단 선반 뿐만 아니라, 책장, 장식장, 그리고 앞서 나온 벽감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


트롱프뢰유 작가들의 공간 지배 능력은 집안의 작은 장소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프레스코화(벽화)의 경우 공간을 극대화하고 실재화하는 수완을 톡톡히 발휘한다. 이는 원근법을 이용해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천장화에서 더욱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성당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 봤을 때 저런 그림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정말 성당의 천장이 다른 세계까지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건물을 바탕으로 그려진 트롱프뢰유는 콰트라투라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트롱프뢰유 수법은 <화면의 경계 무너뜨리기>이다. 이런 기법으로는 볼록 거울을 사용한 듯한 그림, 초상화의 손이 프레임에 걸쳐 있는 그림들이 먼저 소개된다. 위에 나온 왼쪽 그림은 가부키 공연중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모습으로 밑을 자세히 보면 화면 테두리에 걸쳐 앉은 사람과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이 보인다. 프레임 밖으로 나와서 어쩌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랄까. 오른쪽 그림은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그림이라면 절대 없어야할 그림 속 인물의 그림자가 보인다. 근데 손의 그림자가 저렇게 비치나? 그림 속의 손의 손가락은 오무리고 있는데 그림자 속의 손은 손가락을 펼치고 있으니...


위 그림은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테두리를 들고 걷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오른쪽에 있다. 테두리를 들고 걷는 사람의 뒤에 보이는 그림속 인물이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테두리안에 있는 건 똑같지만, 누구는 나가서 걸어다니고 누구는 그속에 갇혀 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이나 튀어나오려는 사람을 보면 왠지 티비 밖으로 나오려는 혹은 나오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링의 사다코를 생각나게 한달까. 윽. 갑자기 소름이...(汗)


이번에 만나볼 트롱프뢰유 작품들은 <입체감을 갖는 그림>이다. 위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거 조각아니야? 라고 생각했다면 작가의 의도가 훌륭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 역시 이건 벽 선반에 조각을 올려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프레임도 조각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그림이다. 이 작품은 1435년경의 작품인데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이런 조각처럼 보이는 작품은 조각인 양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조각을 대신한 그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조각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만, 조각처럼 보이는 그림은 조각을 대신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일지도. 옛날 사람들도 효율성을 추구했다는 생각을 많이 들게 한 그림이 이런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배경에 비해 사람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이나 벽은 실제처럼 보이는데, 사람은 왠지 붕 뜬 느낌이랄까. 이는 트롱프뢰유 수법중 샹투르네(컷 아웃)이란 것이다. 이 그림의 경우 여성을 그린 나무판을 잘라 그림에 붙였다고 한다. 이렇듯 배경에 그림을 붙이는 것, 이것을 샹투르네라고 하는데, 이런 그림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든다. 밤에는 절대 보고 싶지 않달까.


마지막으로 살펴 볼 트롱프뢰유 작품은 <커튼을 이용한 눈속임> 작품들이다. 위의 그림은 꽃을 잘 그리는 작가와 직물을 잘 그리는 작가의 합작품이다. 커튼이 진짜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꽃이 그림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반대로 꽃이 그림이란 것을 강조함으로써 커튼이 진짜가 아닐까 하게 만드는 그림이기도 한다. 만약 이 그림이 내 눈앞에 있다면 커튼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커튼이란 것은 가리는 수단이다. 그러하기에 커튼이 쳐져 있는 뒷부분에 뭔가가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아무리해도 뒤를 볼 수 없는 커튼인데도 말이다.

이런 커튼은 뒤에 다른 그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비밀을 엿보게 하는 느낌도 갖게 만든다. 또한 커튼은 훌륭한 무대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커튼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웅장해 보이고, 더욱 성스러운 느낌도 준달까. (종교화의 경우)


위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이젤의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보이는 건 풍경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뒤로 보이는 풍경 사이에 캔버스의 모습과 캔버스에 종이를 고정해 놓은 클립도 보인다. 이렇다 보니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실제인지 헷갈린다. 게다가 커튼까지 쳐져 있으니 커튼을 젖히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 그림이 실제와 그림의 교란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림은 그런 목적면에서 아주 성공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트롱프뢰유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빼꼼히 들여다 본 기분이다. 책에 실린 도판이라 눈 앞으로 확 다가오는 느낌은 없지만,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해 본다. 오래전에 그려진 그림이라 사실적인 면이 떨어지는 그림이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을 충분히 속이고 놀래켰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림은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관객과 화가가 즐겁게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을 벌이기도 하는 이런 작품들이 있으니까. 어떤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인지, 좋은 그림인지 나는 딱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고 즐거워진다면 좋은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 봐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깜짝 놀라게 하거나 미소를 머금게 하거나 때로는 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그림이 잘 그려진 좋은 그림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8~19p, 50~51p, 66+69p, 71~73p, 82~83p, 98~99p, 114~115p, 126~127p, 136~137p, 152~153p, 158p, 175p, 182~183p, 194p, 208~209p)

y*****5 2010.12.17.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손놀림이라니.. 믿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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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롱프뢰유~   말그대로 '눈을 속이는 그림'이다. 다시말하면 그림이면서 그림이 아닌척 하는 그림 이다.   이책에서의 트롱프뢰유의 의미는 눈을 속이는 그림은 얼른 보고는 실제 사물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실제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을 그린 그림이었던것. 이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번 그림을 보고 바이올린을 손으로 들어 보려 한다면 이것이 진짜가 아닌 문과 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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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롱프뢰유~

 

말그대로 '눈을 속이는 그림'이다. 다시말하면 그림이면서 그림이 아닌척 하는 그림 이다.

 

이책에서의 트롱프뢰유의 의미는 눈을 속이는 그림은 얼른 보고는 실제 사물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실제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을 그린 그림이었던것. 이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번 그림을 보고 바이올린을 손으로 들어 보려 한다면 이것이 진짜가 아닌 문과 떼레야 뗄수없은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상황처럼 트롱프뢰유는 관객을 속이는데 만일 관객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짜 바이올린이라고 믿고 가버리면 이것또한 곤란하게 된다. 관객을 속이기 위해 그렸지만 나중에 관객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트롱프뢰유의 그림을 크게 6가지 대분류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1. 산것과 죽은것

 죽은것과 산것을 한 화면에 담아 보여주는 악취미는 자주 등장한다. 또한 '매달린 사냥물'은 트롱프외유의 여러 유형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많이 제작되었고 처음에는 네덜란드 화가들이 많이 그렸으면 뒤로 갈수록 프랑스화가들의 작품이 많아진다. '매달린 사냥물'과 함께 등장하는 소재가 구겨진 종이이다. 이 종이에는 화자의 서명과 제작년도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쪽지는 화가들의 다양한 층위에서 유희를 위해 활용하는 도구였다.

 

2. 그려진 종이

 펜촉과 깃털펜이 등장하여 당시의 편지문화를 펼쳐 보여주는 듯한 그림도 등장하고 대표적인 화가로 바일란트와 헤어스브레흐츠, 베네치아의 화가 카르파초가 있다. 이탈리아 화가들이 제시한 회화 형식의 '원형'을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들이 왕성하게 발전시켰고 18세기에 프랑스 화가들이 이어받고 19세기에는 미국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 화가는 사뮈엘 판 호흐스트라텐. 도미니크 동크르, 장 프랑수아 드 르 모트등이 있다.  미국의 화가로서는 존 프레더릭 피토, 하벌등이 있다. 편지꽂이라는 모티프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며 겪은 변화가 있는데 사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사진의 등장은 회화뿐 아니라 미술 전체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3. 그림위의 그림

 그림에 붙은 파리는 15세기 초부터 널리 그려졌다. 지역적으로도 독일과 네덜란드, 북부 이탈리아등 여기저서 등장했다. 파리그림은 화가들이 실제 같은 느낌을 내는 솜씨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여기 저기 등장한 파리는 크나큰 악을 가리키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는 하잘 것 없는 요소를 대표하는 의미로 많이 그려진듯하다. 이외에도 캔퍼스를 찢고 나오는 개라던가 벗겨지는 그림형식으로 그린것이 있는데 그림위에 붙은 파리, 그림위에 붙은 쪽지, 벗겨지는 캔버스등 이들은 중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이라는 위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4. 열린 그림

 책장이나 선반이다. 벽감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살짝 움푹한 공간들을 뜻하는 것들이고 공간감을 내는게 지나치게 까다롭지 않으면서 일상의 사물을 트롱프뢰유로 그릴수 있는 계기였다고 한다. 화면 안쪽으로 열린 공간처럼 보이려 하는 것들이나 천장화가 있는데 이처럼 건물을 바탕 삼아 만든 트롱프뢰유를 콰드라투라라고 하며 일상적인 사물을 그린 트롱프뢰유를 쿼들리벳이라고 한다.

 

5. 뛰쳐 나오는 그림

 화면속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작품들이 있다. 화면속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나오려 하는 그림들을 그리는 방법은 간단한데 그림의 테두리를 넘어오게 그리면 되는 것이다. 테두리, 즉 프레임은 그림을 바깥쪽에서 감싸는 테두리이자 그림을 감싸서 보호하는 틀이다. 이런 프레임의 존재와 의의를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그림을 보고 세상을 보지만 프레임을 타고 넘는 트롱프뢰유는 보는 사람에게 프레임의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을 의식하게끔 낳드는데 이 프레임이 절대적이고 불면하는게 아니라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것임을 깨닫게 한다.

 

6. 사물이 된 그림

 회화와 조각, 둘 중 어느쪽이 우월한지를 놓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논쟁을 거듭했다. 조각과 회화의 논쟁은 각각의 장르가 지닌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는 구실을 했다. 회화의 경우 실제로는 관객의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따로 존재한 적도 없는 사건이나 사물을 눈앞에 내보인다는 점에서 가증스럽다거나 신묘한 창조물이라고 할수 있다. 17세기를 트롱프뢰유의 전성기라고 하는데 실물이 아닌 실물에 대한 관념은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파라시오스의 커튼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둘 중에 누가 우월한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더 이어갈 여지가 있겠지만, 우선 여기서는 실물을 꼭 닮게 묘사하는 솜씨를 겨루었을때 승부를 가른 것은 바로 커튼이었다. 그 이후 엿보는 커튼이나,성스러운 장면에서의 커튼, 그림을 덮은 커튼,펄럭이는 커튼등 많이 그렸지만 옛날 파라시오스가 그렸던 것처럼 그림을 완전히 가린 커튼을 그린 그림은 눈에 띄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커튼은 가리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완전히 젖혀지지도 완전히 드리워지지도 않았을때 의미의 충만과 무의미 사이에 자리를 잡았을때 스스로의 의미를 가장 충실히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모호하고 모순적인 성격탓에 커튼은 트롱프뢰유를 대표하는 상질물이 되었다고 한다.

 

위 책을 읽는 내내 도저히 내눈을 의심할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그림 하나하나 경이롭고 놀랍고 감탄스럽고 그저 놀랄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 많은 것들이 진짜 아닌 사람이 직접 그린것이 맞을까?? 신이 내린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이런 그림은 그릴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보며 우리스스로가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많이 착각하고 혼동하고 속아 넘어갈수 있는지 깨달아 가며 너무나도 흥미로왔다. 우리 인간이 가진 능력 이상 그 한계를 뛰어 넘는 수많은 작품들을 이 책 한권으로 손쉽게 접할수 있었던 좋은 기회여서 너무 기뻣다.

YES마니아 : 로얄 t*****d 2010.11.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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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트롱프뢰유 그림과 함께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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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그림을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기법과 그 그림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 트롱프뢰유. 눈속임 그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에서는 트롱프뢰유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표지 그림으로 대표적인 트롱프뢰유 그림인 '찰스 윌슨 필'의 '계단'이란 작품을 선택했다.이 그림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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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그림을 실제 사물로 혼동하게 만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기법과 그 그림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 트롱프뢰유.

눈속임 그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에서는 트롱프뢰유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표지 그림으로 대표적인 트롱프뢰유 그림인 '찰스 윌슨 필'의 '계단'이란 작품을 선택했다.이 그림은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화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했을때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했는데,그 사람들이 바로 이 그림속의 인물들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얼마나 사실적이었으면 그 정도였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노라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최초의 트롱프뢰유를 그린 화가로 알려진  제욱시스를 '서장'에 배치하고,트롱프뢰유의 정의,대상,수법과 미술이 지닌 속임수라는 측면을 극대화 시킨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림 앞에 그려진 '커튼'한 장으로 제욱시스를 속인 파라시오스를 '종장'에 배치했다.종장에서는 곰브리치의 말을 빌어 트롱프뢰유 게임을 성립시키는 4가지'맥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서장과 종장만 봐도 트롱프뢰유란 어떤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비전문가로서 우리는 서장,종장 사이에 기법에 따른 여러 작품들을 만남으로써 더욱더 눈으로의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난 처음부터 찬찬히 내용을 훑어 나갔기때문에 그림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림과 첫 만남을 가졌다.그래서,제대로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화가의 의도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었을것 같다.

 

 

 그래서,이 책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이 책만의 독서법이 있다.

104장의 그림만을 먼저 보는 것이다.

그림들을 천천히 음미해보면 트롱프뢰유에 대해서 더 깊이있게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싶다.

"에이 이거야 뭐 거짓인 줄 다 알겠네".하는 그림도 있을테고

"우와 정말 그림으로만 봐도 깜박 속겠는데,실제로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할 만한 그림도 있을것이다.

 

 

j*****3 2010.11.08.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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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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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가 그린 그림에 새들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와 앉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좀 심한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트롱프뢰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솔거 역시 그림으로 누군가를 속일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눈을 속이는 그림' 에는 규칙이 없다는 것.'속이는 그림'은 효과를 통해 정의될 뿐 정해진 규칙을 준수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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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가 그린 그림에 새들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와 앉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좀 심한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트롱프뢰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솔거 역시 그림으로 누군가를 속일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눈을 속이는 그림' 에는 규칙이 없다는 것.'속이는 그림'은 효과를 통해 정의될 뿐 정해진 규칙을 준수했느냐로 정의되지 않는다.말인즉,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관객을 속이는 게 중요할 뿐이다."

 

트롱프뢰유의 핵심은 그러니까 속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화가들은 관객을 속이려고 했던 것일까? 속시원하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트롱프뢰유 역시 일종의 '바니타스'와 같은 알레고리를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면에 그려진 것을 실제라고 전제하는 관습을 받아들이면서 빠지게 되는 함정에 대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니...

관객의 입장에서 볼때 실제라 전제하는 것이 왜 함정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땠든 화가들의 입장에서 끝임없이 긴장감을 늦추기 않길 바랐다는 생각인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느껴진다.

<눈속임그림>이란 제목의 인상은 호기심이였다. 화가들이 눈속임 하듯 그린 그림

그 열쇠를 찾아보고자 하는 호기심!

그러나 속이듯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오히려 생각보다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속이기 그림에 노력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이 가장 큰 숙제였다.

어째서,왜,무엇때문에 화가들은 눈속임 그림에 몰두했을까,화가들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였을까? 혹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관객과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당신이 사실이라고,혹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도 속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일종의 메멘토리 같은.

'왜'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답은 없었다.

그러나 트롱프뢰유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굉장히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그리고 눈속임그림에 진정한 맛은 숨은 그림을 찾는 것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까지...

 

뱅키시나 워홀의 작품이 눈속임의 확장된 영역이란 것을 알았다.

하이퍼리얼리즘과 트롱프뢰유의 차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설명되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트롱프뢰유에 대한 이해는 확실하게 된 듯 하다.^^

w*******i 2011.02.0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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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그림 ^^; 속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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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 그림. 그게 뭔지는 잘 몰랐어도 전설 속 그림처럼 사람의 눈을 속여온 그림 '트롱프뢰유'를 다룬 그림이라기에 나는 착시 현상을 생각 했었다. 마치 아래 그림 처럼 말이다. 하핫. 하지만 그런 그림이 아닌 그림을 보는 관람자가 (작가는 관객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나는 조금 별로이다) 실제와 착각하도록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이 책은 나의 무지를 일깨워 준 것으로 감사 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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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임 그림. 그게 뭔지는 잘 몰랐어도 전설 속 그림처럼 사람의 눈을 속여온 그림 '트롱프뢰유'를 다룬 그림이라기에 나는 착시 현상을 생각 했었다. 마치 아래 그림 처럼 말이다. 하핫.




하지만 그런 그림이 아닌 그림을 보는 관람자가 (작가는 관객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나는 조금 별로이다) 실제와 착각하도록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이 책은 나의 무지를 일깨워 준 것으로 감사 표시를 해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어찌 되었든 나의 착각으로 산 책이었으니 처음부터 글이 읽힐리는 만무 했지만 돈이 아까워~~ 라는 아줌마 정신으로 읽어보았다. 
그런데 '트롱프뢰유'는 살피면 살필수록 더욱 재미있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원근법이나 다른 회화 기법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인다.
2차원이 3차원의 세계로 만들어지는 마법.
아마 이 책을 읽지 못하면 절 대 알지 못할 사람들이 많으리라.
그리고 '트롱프뢰유'는 극사실주의와는 다른 위트와 웃음이 담겨 있었다.
인쇄되어 작품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해 조금 아쉬운 나에게도 기꺼이 속아가며 즐겁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생각 외로 재미있는 교양서라고 할까?
단지 아쉬운 것은 한국 사람이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솔거의 이야기도 조금 실어주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러나 '트롱프뢰유'의 세계에 잠시나마 빠져들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고 또 즐겁게 그림나라 여행을 떠나올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책이었다.



r******0 2010.11.1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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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그림의 매력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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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도 속는다는 말은 이런 그림들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고 평면임을 머리로 인지하면서도 눈은 또 다른 입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신기한 트릭아트전에서의 경험 이야기다.게다가 그 그림들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는 그 생생한 입체감에 또 한 번 속고 말았다.그런 재미있는 경험들을 이 책 속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읽었다.이 책속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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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도 속는다는 말은 이런 그림들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고 평면임을 머리로 인지하면서도 눈은 또 다른 입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신기한 트릭아트전에서의 경험 이야기다.
게다가 그 그림들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는 그 생생한 입체감에 또 한 번 속고 말았다.
그런 재미있는 경험들을 이 책 속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읽었다.
이 책속의 그림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눈으로보고도 속게되는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칫 미술계에서는 비주류의 한 분야로만 분류할 뿐 그닥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않는 그림들의 세계를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트롱프뢰유'라는,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는 낯선 단어를 만났다. 트롱프뢰유(trompe l'oeil)는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속이는 즐거움, 속는 사람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오락프로그램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화가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그림을 보고 속고 속이는, 화가와 그림을 보는 관객과의 묘한 심리전도 이끌어내는 
유쾌한 속임수 그림임엔 틀림없다.

트롱프뢰유의 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제욱시스의 포도그림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해서 트롱프뢰유의 정의와 대상, 기법에 대한 설명에 이어
소재와 질감 등으로 분류해서 우리들에게 잘 몰랐던 트롱프뢰유에 대해 들려준다.
트롱프뢰유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묘사하는 사물의 종류, 질감의 종류가 적어야 한다고,
관객이 그림 속 사물의 질감이 실제 같다고 느낄 때는 묘사의 솜씨보다는 서로 다른 질감의 대조효과가 잘 드러날 때라고 한다.
단지 정밀하게 묘사만 해서는 트롱프뢰유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으며 실제를 꼭 닮을 필요없이
오히려 실제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느낌을 분명히 줄수록 좋다는 의외의 사실도 알게 되었다.
거짓말이 잘 먹히게 하려면 대부분의 내용은 진실로 채우고 부분적으로 거짓말을 섞어야 하는,
눈속임 그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정하고 속이고자 하지만 완벽하게 속이면 안되는 절묘함을 갖추어야 한다니!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림속에 교묘히 그려져있던 파리, 엄숙한 그림속 느닷없는 곳에 묘사되어 있던 파리,
그 조그만 존재가 놀랍게도 특별한 입체감을 나타내는 걸 보니 신기했다.
이 책에서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무심코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눈속임그림에서 특별한 의도로 사용되어진 파리나 커튼, 쪽지, 프레임 등의 기법과 화가들의 상상력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르고 봐도 재미있는 그림들이지만 알고보니 더 흥미진진해진다.

내가 눈속임그림을 처음 접한 건 드라마세트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KBS드라마센터 견학시 당시 열심히 보던 아침드라마 세트장에 갔었는데 놀랍게도 늘상 보던 창문밖 풍경이 그림이었다.
사무실에서 창문 밖으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버스들이 모두 그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보면서도 나는 늘 진짜같은 풍경에 놀라곤 했었다.
그냥 놀랍다 신기하다 재미있다를 떠나 좀 더 트롱프뢰유 그림에 대해 알게 해 준 책 [눈속임그림]
평면의 그림이지만 입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트롱프뢰유의 그림들을 통해 그림 너머의 세상을 짐작해 보게도 되고
속고나서 '어! 이게 뭐지?'하고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게 트롱프뢰유만이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트롱프뢰유 간단하게 눈속임그림으로만 알기에는 미묘한 매력들을 많이 갖고 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권의 도록이라고 해도 될만큼 많은 작품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나 의도를 몰라도 책 속의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안 판 데르 파르트 [바이올린] 1700년경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 [꽃이 있는 정물]
 
 즐거운 속임수라는 공통점을 보여주는 트릭아트 그림앞에서.....

c******y 2010.11.08.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눈속임 그림 : 실재와 그림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화가들의 유쾌한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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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벽인 척 하는, 부서진 벽을 그린 그림. (물론 안의 기둥도 그림이겠지.)        본래 책 감상문을 쓸 때 그리 사진을 활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참고할 사진이 없으면 효과적으로 감상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위의 사진을 보자. 사실 나도 위의 '그림'처럼 건물 외벽이나 길바닥에서 순간적으로 깜빡 속아넘어가게끔 만드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무심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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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벽인 척 하는, 부서진 벽을 그린 그림. (물론 안의 기둥도 그림이겠지.)
 
     본래 책 감상문을 쓸 때 그리 사진을 활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참고할 사진이 없으면 효과적으로 감상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위의 사진을 보자. 사실 나도 위의 '그림'처럼 건물 외벽이나 길바닥에서 순간적으로 깜빡 속아넘어가게끔 만드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무심코 지나가다 얼핏 눈에 들어왔던 그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 같았는데,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여하튼 이건 정확히 무엇이 그려져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제법 오래전의 이야기다. 당시에도 물론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번에 읽게 된 '눈속임 그림'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러한 그림들을 일컬어 부르는 이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그림의 역사가 제법 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그림들, 저렇게 실재를 흉내내며 그림이면서 그림이 아닌 척 하는 그림을 '트롱프뢰유' 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트롱프뢰유는 그림을 그린다, 라는 행위의 근원적인 의미에서부터 출발한 화가들의 유쾌한 도발이자 진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 라는 평가는 얼마만큼 '능숙하고 절묘한 솜씨로 인물이나 사물을 꼭 닮게' 그리느냐에 따라 갈려왔기 때문이다. (p 5) 어 렸을 적 다녔던 미술 학원에서 죽어라 사과 데생을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어쨌든 이 책, '눈속임 그림'은 '트롱프뢰유' 라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혹은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르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도록으로 실린 그림들은 대부분이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니만큼, 직접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깜빡 속아넘어갈 수 있도록 올 컬러로 수록되어 있고, 덕분에 나는 그림인걸 알고 보면서도 몇 번이나 눈을 의심하는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 <꽃이 있는 정물>
 
    그런데 사실 트롱프뢰유는 그저 '꼭 닮게 그림'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란다. 보는 이들이 그림이라는 것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살짝 빗나간 곳에서 실재와 그림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순간적인 착각을 유도한다. 바로 위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도 또한 트롱프뢰유인데, 과연 어느 부분일까. 꽃을 그린 그림은 못 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재하는 꽃이라고 착각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림의 1/3을 가린 커튼은? 커튼 레일까지 있는데, 설마 그림일까? 물론 정답은 그림이다. 커튼 레일부터 시작해서 마치 실재하는 커튼인양 하고 있지만. 이렇듯이 보는 이들이 그림일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아닌 척 그려놓고 순간의 착각을 유도하는 것은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사실 화가들이 트롱프뢰유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게임은 감상자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살짝 착각'을 할지언정, 그 직후에 '그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성립하는 것이니까, 저렇듯 교활하게(!) 화가들은 보는 이를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커튼이 쳐져 있으니 그 커튼을 걷어 그림의 나머지를 보려고 손을 뻗는 순간, 그 착각은 깨져버릴테니까.

     이렇듯, 이 책은 다양한 트롱프뢰유의 기법과 역사 등을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아직도 소리내어 발음해보면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헷갈리는 트롱프뢰유라는 생소한, 그러나 알고는 있던 미술의 한 장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다. 사실, 책이기에 트롱프뢰유라는 그림들이 더욱 실감났던 것 같기도 하고. 책 속에서 저자도 지나가듯이 언급하지만, 사진에 찍힌 트롱프뢰유는 만져볼 수도 없고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도 없기에 더더욱 실재와 그림의 경계가 모호하니까.
 
 
c******l 2010.11.0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림도 3D로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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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문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화랑과 미술관 등에서는 수많은 그림들이 걸리고 있다. 오래 전 케케묵은(?) 그림에서부터 현재를 호흡하는 그림까지 시대를 초월한 그림들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볼 때 만큼은 더없이 행복한 느낌이다.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 라는 자신이, 화가들이 살았던 당시나 아니면 화가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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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문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화랑과 미술관 등에서는 수많은 그림들이 걸리고 있다. 오래 전 케케묵은(?) 그림에서부터 현재를 호흡하는 그림까지 시대를 초월한 그림들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볼 때 만큼은 더없이 행복한 느낌이다.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 라는 자신이, 화가들이 살았던 당시나 아니면 화가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린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실물보다 더 실물같은 그림을 볼 때면 화가들의 손끝에서 어떻게 저런 그림이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黃龍寺) 벽에 그린 노송도(老松圖)를 그려놓았는데 새들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와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사진이 발명되고 인상주의가 나타나면서 실물을 그대로 그리는 화풍을 벗어나기 전인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실물을 꼭 닮게 그리는 화가의 작품이 뛰어난 것으로 여기는 믿음이 만연해 있었다. 실물을 꼭 닮게 그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실물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은,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2D시대에 마치 3D와 같은 입체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실물과 꼭 닮게 그린 그림들을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고 부르는 줄은 몰랐다. ‘트롱프뢰유’는 ‘속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tromper’와 ‘눈’을 뜻하는 단어 ‘œil’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눈을 속이는 그림’, 관객이 실제와 착각하도록 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뜻한다. 그런데 화가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화가들은 왜 관객들을 속이려고 한 것일까?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71)는 '미술은 속임수'라고 했다. 미술은 진실을 반영하지만 그 수단은 어디까지나 속임수이고, 트롱프뢰유는 미술이 지닌 속임수라는 측면을 극대화시킨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트롱프뢰유 장르는 미술가와 미술에 대한 관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또한 트롱프뢰유는 현실과 환영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적극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을 통해 트롱프뢰유는 관객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 미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예기치 못한 측면에서 다채롭게 드러낸다(본서 제35쪽 참조).“

 

화가들이 트롱프뢰유를 그리고, 우리가 트롱프뢰유를 봐야 하는 이유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문구가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잡다하게 많은 그림에 관한 책을 봤지만, 이 책에서처럼 그림을 가지고 이리 저리 뜯어보며 재미있게 그림을 보게 한 책은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화풍과 사조, 역사적 상황 등을 언급하면서 그림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트롱프뢰유에서는 전적으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화가들은 그림을 실재처럼 보이기 위해 주로 사냥물 그림, 못, 벽에 꽂힌 종이, 편지꽂이, 선반, 파리, 벽감, 프레임, 커텐 등과 같은 장치를 그림의 요소 요소에 배치하여 그림에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다. 그렇다고 실재와 완전히 똑같이 그리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진짜라고 납득하는 지점과 원리에 맞추기 위해 미술가는 자신이 본 것을 과감하게 변형하여 그리기도 하였다. 자연히 트롱프뢰유는 그리기 용이한 것, 그렸을 때 효과가 좋은 것(화려하고 다채로운 것), 주변에서 쉬이 보고 접할 수 있는 것(본서 제122쪽 참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살아 있는 동물이나 사람을 실제와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정물이 많다. 이런 이유로 트롱프뢰유는 정물화의 변종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건물 바깥에 그려진 트롱프뢰유는 이런 주장을 일축하며 트롱프뢰유만의 특유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며 정물화뿐 아니라 더 넓은 공간, 더 생명력을 지닌 존재,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림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전문적인 미술 서적 내지는 그림에 관한 지은이의 단상을 읊은 에세이류가 많다. 특히 에세이들은 너무 감상적(感傷的)이어서 읽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서 사진을 보는 정도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펼친 책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그림에 숨겨진 기호들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남다르게 와닿았다.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책을 잡자마자 한 번에 읽어내려 갔다.

 

이때까지 트롱프뢰유에 해당하는 그림을 보기는 했지만, 그 그림이 트롱프뢰유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트롱프뢰유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트롱프뢰유는 그림을 재미있게 읽는 또 다른 길을 하나 가르쳐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아주 의미있는 책이 될 것 같다.

c*****1 2010.11.12.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