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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저우에서 아시아게임을 하고 있다. 한국선수를 응원하고, 경기 결과에 기뻐하고, 아쉬워한다. 지금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여자 축구를 하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 북한여자축구팀과 최근 상승세인 한국여자축구팀의 경기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북한을 맞아 한국이 고전분투하고 있다. 한국여자축구는 올해 큰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그런 한국을 북한이 압도하고 있다. 결국 3-1로 북한에게 져 3·4위전으로 밀려났다. 경기를 보면서 ‘올해 상승세인 한국과 세계최강인 북한이 함께 팀을 이뤄 출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어찌 보면 뻔한 생각을 해본다. 트위터를 보니 나와 생각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왔다. 우연하게도 리뷰를 쓰려고 하는 책 제목이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배우기’이다. 저자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다. ‘평화길라잡이’라는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이자, 수필가이다. 마흔에 접어든 작가가 왜 자원봉사를 시작했으면, 어떤 것들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평화길라잡이’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전쟁기념관을 안내하는 자원봉사활동을 말한다. 책은 작가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소위 과격 운동권 학생이었다. 거리에서 싸우다 연행도 되곤 했다. 국가와 권력의 부정함에 대해선 폭력을 써서라도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앞부분을 읽고는 의아했다. 나는 작가와 함께 ‘평화길라잡이’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 그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그는 흔히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모습이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옷을 입고, 가끔 아들의 손을 잡고 자원봉사를 하는 아버지이다. 그리고 말 할 때 마다 마치 소 같이 눈을 끔벅이는 모습은 순박하다 못해 평온해 보인다. 지금의 모습에서 과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폭력도 불사하던 운동권학생이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바꿔놨을까? 그를 바꿔놓은 것은 ‘평화 감수성’이다. 폭력은 폭력으로서 제압해야 한다고 하던 그가 지금은 평화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그가 주장하는 ‘평화감수성’은 무엇인가? 그가 ‘평화감수성’에 대해 쉽게 써놓은 부분이 있다. ‘어떤 사황이라도 전쟁은 안 되고, 일상에서 폭력도 안 되고,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만취도 안 되고,......’ 평화감수성은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폭력이 없는, 아픔이 없는, 편견이 없는 그러한 생각을 ‘평화 감수성’이라 불렀다. 쉬운 단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 어려운 단어이다. ‘평화’의 반대말을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쟁’이라고 답한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저자는 ‘평화’라는 개념을 더 넓게 보고 있다. ‘평화는 참고 순종하고 거짓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파헤치고 사태의 정곡을 파악하여 갈등에 놓인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인데......’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푸는 것을 평화라고 보고 있다. 제목에 ‘분단’, ‘평화’ 이런 단어가 있어 어려운 책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읽기 어렵고 전문적인 책이 아니다. 40대에 들어선 저자가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이야기 하듯이 서술하고 있다. 그 이야기 안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평화’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하고 있다. ‘평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이웃과 같이 문을 열고 인사만 하면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평화가 뭐에요?’라고 물어보는 아이의 질문에 선뜻 답을 못하는 분들, 일상을 평화롭게 살고 싶은 분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