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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행복을 화두로 하는 책들이 참으로 많이 출판된다. 그만큼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말하면 지금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거나 혹은 지금의 행복이 불충분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돌의 정원>에서 “나는 이 세상에 행복이 드문 이유를 알고 있다. 이상주의자는 행복을 너무 높은 곳에서 찾고, 현실주의자는 너무 낮은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우리 곁에, 우리 마음의 키 높이에 있다. 행복은 하늘이나 땅의 아들이 아니고 인간의 아들이다.”라고 쓰고 있다. 가브리엘 루아의 <싸구려 행복>을 접하기 전에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먼저 만났다. 시골 여선생의 눈으로 비춰진 시골 아이들의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과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이야기이다. 흥미롭게도 작가의 연보를 보니 <싸구려 행복>은 작가가 가장 먼저 쓴 작품인데 반해, <내 생애의 아이들>은 거의 끝, 즉 인생의 뒤안길에서 쓴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싸구려 행복>에서는 날카롭고 냉철하게 에누리 없이 인생을 그리고 있다면, <내 생애의 아이들>에서는 그 모남이 무디어지고 다듬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감싸는 듯 하다. <싸구려 행복>은 제2차 세계대전, 캐나다의 소도시 생 탕리, 가난한 소시민의 큰 딸인 플로랑틴과 그녀의 가족을 중심으로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청춘의 특권이기도 한 자신에게 펼쳐질 인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기도 전에 이미 가난을 몸소 느끼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작은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해야만 하는 그녀는 자신의 피곤한 삶의 탈출구로 사랑을 꿈꾼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마음 속의 포부만 믿고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이자 무능한 아버지 아자리우스, 그리고 어머니 로즈 안나, 무능한 남편으로 인해 삶에 찌들려 살지만 힘들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빈곤함을 피하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장 레베스크는 플로랑틴을 사랑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을 버리고 더 나은 곳으로 떠난다. 장의 친구이자 군에 자원 입대한 에마뉘엘은 홀로 남겨진 플로랑틴을 사랑하게 된다. 결국 플로랑틴은 격렬하고 위험한 모험 같은 사랑대신, 아찔한 황홀경도 막막한 수렁도 없고 평탄하고 조용한 구원과도 같은 안정된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는 이제 가난은 더 이상 없다고 집도 가족들을 위한 옷도 살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전쟁이 한창이어서, 군수산업을 제외하면 일자리가 없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 가난한 동네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거창한 국가주의나 애국심에서라기 보다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겨울 외투가 필요해서, 혹은 결혼하기 위해, 혹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등 저마다가 처한 삶의 이유로 군대에 자원하게 되고, 결국 무능한 가장이었던 아자리우스 또한 가랑잎만 굴러가도 웃음을 터뜨리던 가엾은 아내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서 가장다운 가장이 되기 위해서 혹은 지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 젊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된다. 에마뉘엘은 이러한 아자리우스를 보면서 가난한 변두리 동네에 전쟁을 통한 구원이 오는가, 우리는 왜 모두 떠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갈등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힘든 상황 혹은 전쟁은 끝날 거라고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 가닥 빛과 같은 희망을 본다. <싸구려 행복>의 원제인 <bonheur d’occasion>는 ‘중고의, 묵은(secondhand) 행복’을 뜻한다. 행복을 새로운 것과 중고의 것으로 뚜렷하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모험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원했던 플로랑스의 모습에서, 혹은 더 나은 사회계급에 도달하기 위해 사랑을 버리는 장의 모습에서, 혹은 애국심보다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가난, 어려움이나 전쟁의 개입으로 원래의 순수함을 상실한 낡아빠져 너덜너덜해진 행복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파란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얼굴을 내밀듯이 이러한 낡은 행복일지라도 놓지 말라고, 희망을 가지고 살라고 88만원세대인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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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했던 때였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아직 애들이 어리고 소소한 일상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행복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시절. 그녀의 작품 <내 생애의 아이들>로 가브리엘 루아를 알게 되었다. 시골학교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학교의 여덟 살의 풋내기 여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묶은 중.단편집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들을 보고 작가의 마음이 엿보여 그 따뜻함이 좋아서 인상에 깊게 남았던 작가였다. 캐나다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페미나상을 받았던 이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굉장히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따뜻함을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가슴에 무언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가난이, 궁핍한 생활들이 그렇지만 그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이들의 모습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난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주인공들의 절박하고 절망적인 생활속에서 저마다 행복을 바라는 내용이다. 몬트리올의 시 외곽의 생 탕리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로 싸구려 식당 15센트에서 플로랑틴은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식당에 자주오는 장 레베스크를 보고 그에게 빠지기 시작한다. 어렸을때의 불우한 기억을 가진 장은 주야로 공부하며 신분상승을 바라는 남자다. 자신에게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플로랑틴이 자꾸 신경에 쓰이지만 멀리 도망치려고만 한다. 플로랑틴의 엄마 로즈 안나는 가난하지만 가족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난해서 아이들을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못하며 열두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로즈 안나의 모습을 보며 진짜 화가 났다. 집세 낼 돈이 없어 이사가야 할 형편이면서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기만 하는 걸 보며 그녀가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힘들면 아이라도 덜 낳아 기르지 하는 생각. 가족이 가난때문에 힘들어하는데도 몽상만 일삼는 아자리우스까지 나를 화나게 했다. 그나마 내가 마음에 조금이나마 드는 캐릭터는 장 레베스크의 친구 에마뉘엘이다. 이상을 위해 군대를 자원했지만 이주간의 휴가에서 플로랑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지만 다시 군대로 가야만 하는 에마뉘엘은 플로랑틴의 경박함을 알면서도 그 모습까지 사랑해 마지 않고 자신이 번 돈 전부를 플로랑틴에게 주고 간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자신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누구나 힘들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도 경제적으로도 행복하고 싶어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풀리면 우리가 정말 행복해질까? 조금은 행복해 질 것이다. 하지만 꼭 행복하다고 할수도 없겠다. 행복은 꼭 경제적인 것이 아닌 우리 자기가 원하는 우리 마음속의 행복감이기에.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이 행복을 찾는 방법들이 다 다를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묻는다.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낄까? 가족들이 건강하고, 또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시간이 조금이나마 주어졌을때 등산을 다니고 또는 여행도 가끔씩 다니며 책을 읽는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나에게 행복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 욕심을 부리자면 이사갈 집이 얼른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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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행복' 도대체 싸구려 행복이란 어떤 행복을 말하는 것인지 제목에서 부터 무척 흥미로움을 준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싸구려 행복'은 몬트리올의 소도시 생 탕리에서 벌어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아홉살의 플로랑틴 라카스는 능력없고 대책도 없는 아버지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를 도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 질 수 밖에 장녀로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다. 플로랑틴 라카스는 기계공 청년 장 베레스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난한 집에서의 탈출은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장과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지만 장은 플로랑틴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친구 에마뉘엘에게 그녀를 소개한다. 플로랑틴 레카스는 판이하게 다른 두 청년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된다.
'싸구려 행복'의 저자 가브리엘 루아는 1945년 '싸구려 행복'을 발표했고 1947년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그 후 '데샹보 거리', '내 생애의 아이들', ' 비밀의 산', '알타몽의 길', '휴식 없는 강', '즐거운 여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사후에 미완의 자서전 '비탄과 환희'가 출간되었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절망과 실패를 맛 본다. 하지만 얻는것이 있었기에 실패라고 볼 수 없을것이다. 이 책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행복을 향해 쫓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안타깝기도 하지만 하나 하나의 과정들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낭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플로랑틴의 삶이 있는가 하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사랑을 버리는 장의 모습도 있다. 또는 애국심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젊은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과연 이들이 찾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기를 바랄 것이다.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도 모두 같은 생각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띤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찾는 방법도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만은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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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행복, 제목부터 뭔가 의미심장하다. 원제인 중고(Secondhand)의 행복이 다소 약해보였을까 아니면 행복만큼은 제값을 매기고 싶은 것이었을까? 어쨌든 싸구려 행복은 우리들이 상상해왔던 행복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행복은 더욱 아니다. 본 작품은 가브리엘 루아의 처녀출품작으로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내 생애 아이들’이란 작품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다.
싸구려 행복의 무대는 몬트리올 근교의 소도시 생 탕리다. 음산하고 부산하기만한 생 탕리 거리엔 출세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그리고 조그만 레스토랑을 차지한 한 남자 장 레베스크, 기계공인 그의 욕망은 빨리 성공해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의 외모에 뭔가를 기대하는 열 아홉 살의 플로랑틴, 그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하기위해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다. 장과 플로랑틴 사이에 장의 친구인 에마뉘엘이 끼어든다. 그리고 이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갈등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플로랑틴은 현실주의자인 장과 이상주의자인 에마뉘엘를 사이에 두고 전에 없던 갈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싸구려 행복엔 무능한 플로랑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현실에 좌절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손을 놓아버리진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공황의 여파는 삶의 조건이 최악이라도 최상의 선택을 가능하게끔 공간을 재배치한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이라는 상황이 곧 희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싸구려 행복엔 다양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언제나 존재하는 사회적 신분의 격차와 한계를 벗어나고픈 젊은이들의 욕망, 그리고 전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소설의 전반부를 장악한다. 또한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듯이 우린 어딘가에 다다른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원했던 삶이 아닐지라도 결국 지속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의미는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가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로 바뀌었을 지라도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나 느끼는 감정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현재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반세기가 지난 작품이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행복에 대한 전제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혹 자신에게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면 잠시 보류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좋은 행복, 우리들이 원하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풍요롭지만 빈곤한 행복이 그리운 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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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행복 - 가브리엘 루아 2ㅇ1ㅇ1 2ㅇ1 - 2ㅇ1ㅇ1 2 1 5
( 정말 오랜만의 책읽기다. 여기저기 뒹굴러 다니는 읽다 만 책들이 수두룩이지만- 마음 다잡고 책읽기 모드로 변신! )
행복, 객관적인 잣대가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 아닌가. 거기에 싸구려라니? 하는 반문으로 첫장을 넘겼다.
"플로랑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 가는 줄 아니? 우리는 그냥 할 수 있는 대로 하면서 사는 거란다." 플로랑틴은 생각했다. '아뇨, 엄미. 저는 제가 원하는 인생을 살 거예요. 전 엄마처럼 불행하게 살지 않을 거예요.' - 130~131page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 미명에 비추어 면도를 하는 동안 아내의 슬리퍼가 주방 리놀륨 바닥을 분주하게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남편이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창문에 김이 서리고 따뜻하게 덥혀진 방에 들어서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그녀가 차려놓은 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녀가 잠옷의 넓은 소맷자락을 붙잡은 채 따라주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만 아침식사를 흡족하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247 page
로즈 안나는 재봉틀을 돌리면서 플로랑틴에게 흘끗 눈길을 주고는 너무 뚫어져라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나 자식을 붙들고 속내를 털어놓는 법이 별로 없었다. 애틋한 마음은 늘 조용한 시선이나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일상적인 말로 표현할 뿐이었다. - 251 page
오! 몹쓸 병을 감추듯 마음에 품은 말 한마디를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 그를 기다리는 아픔과 절망이란! 하지만 우회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그 사람이 없으면 숨을 쉬어도, 잠을 자도, 말을 해도, 발길을 옮겨도 미련과 권태밖에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흐드러지게 피어날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 죽어버린 꿏무리 속에서 가시들이 하나하나 도드라지듯이, 그럴 때에 분노는 한창 피어났어야 할 사랑 속에서, 사랑을 통해 성큼 자라난다. - 253~254 page
15센트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좋은 남자를 만나 현실을 피하고픈 플로랑틴, 신분상승을 꿈꾸는 기계공 장 레베스크.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 두 인물에 촛점을 맞춰 읽었다. (두근, 플로랑틴의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답답하기만 한 주인공들의 처지에도 감히 행복할까? 라고 말 할 수 없는 이유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싸구려 행복은 우리 모두의 느끼는 일상을 다룬,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감정들, 행복. 그들의 삶이 내 삶 같았다. 나 역시 작은 것 하나에 만족하며 행복이라 말하고 있으니까.
1945년작이라 그런지;; 그 시대에 폭- 빠지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잘 접하지 않은 나라라-_-;;;; 주인공들 이름이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아서 초반에 살짝 힘들었다. 그리도 한번 읽으면 쭉- 나가주니 59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도 금방 읽힌다 ;) 가브리엘 루아가 누구지? 했는데 제목만 알고 있는 '내 생애 아이들'의 저자였다.
앞으로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나라의 책들을 만나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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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기준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힘들것 입니다. 싸구려 행복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꿈꾸는 행복도 모두 저마다 틀리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발표된 책들 중 가장 진정하고 가장 대담하고 가장 완성도가 높은 책이라는 찬사를 받은 싸구려 행복은 섬세하고 잔잔한 이야기로 주인공들이 자신들만의 행복에 대해 들려주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몬트리올 외곽의 소도시 생 탕리 이곳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꿈을 찾으면서 살아가는데 '15센트'라는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플로랑틴은 자신이 일하는 가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만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만나게 된 장이라는 남자는 플로랑틴이 꿈꾸는 행복을 줄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는데 그가 가게에 왔을때 플로랑틴은 이제까지 자신이 만난 남자와 다른 느낌의 그를 주목했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플로랑틴에게 자신이 간직한 행복에 대해 생각할수 있게 해주었지만 장 레베스크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어렸을때 불우한 여건을 극복할수 있는 신분상승이 목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가는 야심가였습니다. 장에게 행복은 신분상승이 였고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해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장의 친구 에마뉘엘은 부유했지만 자신의 가진 것에 안주하기 보다는 번뇌하는 인물로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이상가로 전쟁에 입대하는데 서로 다른 두 친구의 행복을 찾는 모습에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열명의 자녀를 두고 매일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을 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 하는 플로랑틴의 엄마 로즈의 모습과 자신의 가족을 돌보아야할 의무는 저버리고 세계평화를 걱정하는 아버지 그런 가족을 대신해서 가족을 돌보는 플로랑틴 경제적으로 어렵고 전쟁으로 인해 희망조차 없는 삶에서 그들은 저마다 작은 행복을 생각하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는 모습 속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책의 제목처럼 행복에도 싸구려 행복이라는게 있을까 하는 생각과 각자가 마음 속에 가진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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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소설 한 편을 읽었습니다. 정말 딱 10년 전 그 이전에는 정말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읽었던 저였지만 사실 핑계이긴 하지만 딱 10년 전 결혼을 하고부터는 그 후 10년간은 맘 편히 소설 한 편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완전히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지만 온통 아이들 동화책이거나 아니면 육아서나 교육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10년만에 소설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감이 없어져서인지 권위있는 상도 받은 "가브리엘 루아"라는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전 처음 듣는 작가였지요. 게다가 난생처음 읽어보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이라고 하니 낯설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신선한 느낌과 궁금증이 더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 처음에 제목만 봐서는 스스로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유쾌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는데요. 표지 그림 또한 붉은 색의 느낌이 강해서 막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리 밝은 내용의 소설이 아니라서 막연히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저로선 조금은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정말 생각해보지 못한 2차 세계대전 상황을 소설로 맞닥뜨리고 보니 조금은 우울해지려 합니다. 솔직히 전 전쟁이야기가 싫거든요. 하지만 참 다행이게도 이 책의 이야기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니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더군요. 그런데 이야기의 첫 서두는 참 어둡습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플로랑틴이라는 여자도, 장 레베스크라는 남자도... 그저 너무 우울한 느낌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힘이 넘치는 청춘의 느낌보다는 삶에 찌들어서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가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 이후에 등장인물들 모두가 우울하기만 해서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도 우울해지려 해서 오랜만에 읽은 책이라 무척 기대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반 매체나 책을 통해서 제가 알고 있던 캐나다는 숲과 어우려져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나라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의 배경이 캐나다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흑백영화에서나 보던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의 어둡고 암울한 뒷골목의 이야기만 같았지요. 일할 곳이 없어서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자니 캐나다라는 나라의 이면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린 부아스베르가 똑똑했지만 너무나 굶주려서 공부보다 먹을 것을 훔치는데 몰두하고 피투는 바지가 찢어져 아빠에게 두들겨 맞을까 집에도 못들어가고 결국 바지를 수선할 실이 없어 학교를 3주나 결석하고서 폐결핵으로 죽은 큰형의 바지를 입고서야 학교에 나올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보는 순간 1950년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지요.
플로랑틴의 엄마 로즈 안나를 보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 가족을 희생시키고 있는 생각이 모자란 엄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능한 아빠 아자리우스를 먼저 탓하기 전에 어쩌면 로즈 안나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남편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아이를 왜 그렇게 많이 낳아서 힘든 상황을 자초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로즈 안나의 잘못된 선택이 온가족을 구렁텅이로 몰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기만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도 힘든 삶을 이어가지 않았을수도 있고 딸 플로랑틴이 그렇게 힘든 삶을 살다 결국 부를 위해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남편을 전쟁터로 내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읽었던 [흥부와 놀부]를 생각하면 그저 흥부는 착해서 복을 받고 놀부는 나빠서 벌을 받았다라고만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것은 모순이 있다고 봅니다. 특별한 밥벌이도 없던 흥부가 대책도 없이 아이만 많이 낳아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 보다는 놀부에게 얻어먹을 생각만 했다는 사실이 한심스러운데요. 그저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잘못된 모습들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삶의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샌 것 같은데요. 전쟁과 맞물려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암울한 삶을 보면서 과연 누구의 삶이 정답이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들을 보면서 책 읽는 이들의 삶의 방향과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볼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라는 판단을 하기 이전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일이라도 그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절대 우리는 그 상황을 색안경 끼고 보면 안되겠지요. 아무리 싸구려 행복일지라도 그들은 최선의 선택이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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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행복> (2010,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상북스 펴냄)에는 'bitter sweet'가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bitter sweet'는 열여덟 살의 아가씨 플로랑틴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식당에서 손님으로 만나 마음을 둔 청년 장을 만나러 가는 계기였다. 플로랑틴은 '평생을 통틀어 성공의 표식을 이렇게 지니고 다니는 사람'으로 장을 묘사한 반면, 장은 플로랑틴을 보며 '절반은 빈민, 절반은 노래, 절반은 봄날, 절반은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장이 플로랑틴에게 장난처럼 <bitter sweet>를 상영하고 있는 카르티에 앞에서 만나자고 데이트를 청했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나간 플로랑틴에게 장은 자신을 감추고 사라질 뿐이었다. 두 번째 'bitter sweet'는 장의 친구 에마뉘엘과의 데이트에서 등장한다. 군인으로 자원입대하여 맞은 첫 번째 휴가에서 에마뉘엘은 장과 함께 플로랑틴이 일하는 식당에 가고, 장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모르고 플로랑틴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참전했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에마뉘엘은 플로랑틴을 다시 만난다. 그 사이 장은 플로랑틴을 버리고 떠난 상태였고, 에마뉘엘을 보면서 마음을 잡지 못하던 플로랑틴은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bitter sweet'를 들으며 장을 떠올린다. 씁쓸하면서 달콤한,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이 양가적인 감정은 플로랑틴의 가난과 젊음을 비롯하여 나쁜 남자 장과 다정한 남자 에마뉘엘, 한량 같은 아버지 아자리우스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로즈 안나, 지지리도 못사는 사람들이 모인 변두리와 영국식 안락에 젖은 웨스트마운트 타운 등으로 변주되며 책 전체를 관통한다. 그래서 결국 아직 열아홉밖에 되지 않았으나 인생에 이미 지쳐버린 플로랑틴에게는 '싸구려 행복'만이 남을 뿐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청년 실업의 막막함을 타개하는 계기로서의 전쟁이라니, 삶과 죽음이 어떻게 서로를 대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생사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공통의 운명을 밝히 보여주기 위해 세상 끝으로 떠나는' 에마뉘엘 같은 이도 있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떠나는 이도, 총을 쏘고 총알에 거꾸러지려고 떠나는 이도 있으니,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전투에 임해도 사람마다 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지상 최대의 사건은 이 책에서 여인들의 소소한 삶에 가려 부수적으로 묘사되지만, 전쟁 자체가 '싸구려 행복'이 되는 삶도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책 표지가 빨간색 안경에다 책 절반을 덮을 정도의 빨간 띠로 이루어져 있어서 요즘 사람들의 경박한 삶 이야기일까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꽤 많은 오, 탈자 때문에 무도회에서, 15센트 식당에서, 기차가 지나가면 통째로 흔들리는 집 안에서, 남자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는 두 레코드 가게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처녀작인 이 작품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납득될 정도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 책이 발간된 1945년에는 더 많은 공감과 재미를 누렸겠지만, 지금도 그 묘사와 서사는 바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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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보 거리>를 읽다가 아련한 어린시절의 향수가 밀려와서 울컥했던 이래로, '가브리엘 루아'의 최고걸작이라는 이 데뷔작을 줄곧 기다려왔다. 언젠가는 읽을수 있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데 비해서는 톰슨 가젤만큼이나 발빠르게 소개되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이런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행복이다. '2008/ 2010년 죽기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에 선정된 이책 <싸구려 행복>은 앞서 소개된 <데샹보 거리>와 마찬가지로 여류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하나, 행동하나하나에 놀랄만큼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캐나다 몬트리올 근교의 소도시 '생 탕리'를 무대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상, 문화, 사상등이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힘겨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행복의 끈을 붙잡고 싶은 어느 일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는 돌아간다. 작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플로랑틴 라카스'는, 열아홉 꽃다운 나이의 여느 처녀들이 그렇듯이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영화같은 달콤한 사랑도 경험해 보고 싶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똥구녘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실질적인 가장이자, 집안의 장녀라는 책임감으로 그것들을 애써 억누르고 있다. 한탕을 바라는 몽상가 아버지 '아자리우스 라카스', 점점 더 궁핍해져만 가는 집안 살림에 홀로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오즈 안나', 그리고 새둥지속에서 부리를 벌리고 오밀조밀 모여앉아 있는 아기새들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몇명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린 동생들까지, 이 대식구가 전적으로 플로랑틴이 가져다 주는 돈에 의지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플로랑틴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그녀가 일하는 식당에 손님으로 찾아온 노동자 청년 '장 레베레스크'. 이 시니컬한 청년에게 플로랑틴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홀딱 빠지지만, 얄궂게도 정작 플로랑틴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장의 친구인 '에마뉘엘 레투르노'였다. 에마뉘엘은 군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장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알게 된 플로랑틴에게 사랑을 느낀다. 플로랑틴은 지체높은 집안의 도련님인 에마뉘엘과 '나쁜남자' 장 사이에서 갈등한다. 궁핍한 삶은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의 종류마저도 제한하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어려운 시기 중에도, 서민들은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 보려 하지만, 가난 앞에서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렇게 힘겹게 고른 선택조차도 대부분 원하는 최선은 아니다. 너무나 가지고 싶은 실크 스카프를 사기 위해 모아 둔 쌈짓돈을 생활비로 내어 놓아야 하고, 집세가 없어 대가족이 다같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마당에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소음 정도는 더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하고, 이성을 선택하는데도 조건에 휘둘리고, 이런저런 명분은 있지만 이들이 하는 선택은 결국 모든 것이 궁여지책이다. 이것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마지못해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 와중에도 파티를 즐기는 등, 이런 암울함은 해당사항이 없어보이는 가진자들의 모습과 대비되 더 안타깝다. 돈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지만 가난해서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차선책 혹은 그 다음의 다음 선택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독려하는 따뜻한 인간애가 있어서 마음은 무겁지 않다. 명품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짝퉁이라도 구한다는 여자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비록 차선책이기는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않고 무언가 갈망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결코 우울하지 않다. 어쩌면 <데샹보 거리>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도 사람 사는게 모두 같구나 하는 삶의 보편성이랄까, 어렵던 시절의 우리를 보는 듯한 애틋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이 그런 힘든 시절을 꿋꿋이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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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집 없이도 살고, 옷 없어도 산다. 노숙자도 살고, 원시인도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먹는 문제는 다르다. 먹고 사는 것은 항상 붙어있다. 그 ‘먹고 사는 것’ 이라는 기본적인 과제 앞에서 인류는, 어떤 모양새로든 끊임없이 불행을 겪어왔다. 과연 먹고 살기도 빠듯한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허덕거리는 가난을 외면하고도 다른 일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책, 싸구려 행복이다. 저자는 가브리엘 루아. 매니토바 주 생 보니파스에서 태어나 1937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뒤 유럽에 두 차례 체류한 다음 퀘벡에 정착했다. 1929년 위니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8년 동안 교사생활을 했다. 그 후 몬트리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1945년 이 책 ‘싸구려 행복’을 발표했고 캐나다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1947년,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1954년 ‘데샹보 거리’라는 작품으로 캐나다 총독상을 받고, 1977년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으로 또 한 차례 캐나다 총독상을 수상하며 비평계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3년 7월 13일 74세의 나이로 운명한 저자는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때는 세계2차대전. 주인공 플로랑틴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하며 집안 경제의 주축인 인물이다. 집에는 주렁주렁 감나무에 감 열리듯 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돌보면서 삯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아빠는 집안이 어떻게 굴러먹든 말든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철부지 가장이다. 그래서 경제적 가장을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이 콩쥐 컨셉이냐. 그건 아니다. 그녀는 여느 남자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으나 딱 그만큼 세속적이고 천박하리만큼 꾸미길 좋아하고 자존심 깨나 부릴 줄 아는 돈 없는 집 딸이다. 여러 손님들에게 대시를 받아도 꿈쩍 않던 그녀가 장이라고 하는 책을 든 사내의 작업에 마음이 넘어가려 한다. 장은 그냥 한번 찔러보는 것인데 말이다. 이 사내는 야망에 도취된 인물이다. 어떻게 하면 이 퍽퍽한 세상에서 자신도 한 번 성공하여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지만 연구하는 인물이기에 주인공에게 관심은 가나, 그 여자의 천박스러움과 결부 시에 계산되는 뻔한 결론에 이내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다. 갈려면 진짜 곱게나 가던가! 우리의 천박녀 플로랑틴이 가족이 없을 때 집에 그를 초대하니 슬그머니 와서는 애만 배게 만들어 놓고 갔다. 에라이 나쁜놈! 공황상태를 맞이한 여자는 평소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던 에마뉘엘과 데이트를 하고, 서둘러 결혼을 한다. 사랑 없는 결혼, 단지 그녀를 이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결혼. 에마뉘엘은 좀 사는 집 아들이고, 엘리트이며, 자의로 군에 입대한 멀쩡한 인물인데, 어쩌다 그녀에게 꽂혔는지, 원! 멜로 소설 줄거리만 적고 있다. 실제로 글의 윤곽이 이러하다. 그러나 가난한 집의 장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처절하리만큼 빈곤한 이들의 가정 내부를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다. 그녀의 엄마의 인생을 통해서, 다니엘이라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가족의 시선에서 외면당했던 그녀의 동생을 통해서, 전시 상황에 일자리가 없어 내내 놀다가 돈 때문에 자원입대하여 전쟁터로 가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그녀의 아버지와 동생, 엠마뉘엘의 동료의 삶을 통해서 저자는 전쟁의 시절의 가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굳이 뭘 느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말할 수 없이 많은 생각이 스치고, 읽고 나서도 뭔지 모를 여운에 한없이 잠겨있었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의 생각이다. ‘드디어 우리도 잘살게 됐어.’ 놀라운 만족감, 편안하게 가슴에 차오르는 허영심에 들떠 그녀는 몇 번이나 이 생각을 되풀이 했는지 모른다. (p. 581)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기술의 진보가 첨단을 달리고 곧 로봇전쟁을 앞두고 있는 현 시대에서도 인류의 단 몇 퍼센트만이 밥걱정 없이 살고 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미국도, 복지 국가로서 위상이 가장 드높은 북유럽도 빈곤 없는 정치를 해나가지는 못한다. 풍요로운 시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행복은 여전히 거기, 최소한 굶어 죽을 걱정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는 않을까. 싸구려 행복? 그 가치와 도덕성을 평하기 이전에, 인간은 그렇게라도 살면서 사람다운 인생을 영위해야 할 가치 또한 타당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난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글로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값어치를 생각하게 해준 저자의 소설은 독자에게 제목과는 상반되는 값진 행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