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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책이 될 것 같다. 저자의 해박함과 명석함에 놀란다.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 2권은 초기불교, 인도 고대 서사시,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는 이 철학사를 단지 초기 불교를 알기 위해 구입했다. 읽다 보니, 불교 이외에도 흥미로운 게 너무 많았다. 다만, 불교에 대한 관심이 너무 승하다 보니, 꽤 흥미가 있었던 바가바드기타도 대충 읽고 넘어가게 됐다. 요는 초기불교와 부처 사후 상좌부 불교, 대중부 불교 그리고 이후 부파 불교를 중심으로 읽었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 위빠사나 수행을 하며, 내가 만났던 테라아다 불교(상좌부 불교) 혹은 우리가 뭉뚱그려 이해하는 소승불교는 교과서에 나온 편견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교과서적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100% 맞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교과서에서 말하는 편견에 휩싸인 소승불교는 혹시, 아쇼카왕 시절에 잠깐 유행했던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일부 불교 종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실제, 내가 만난 테라와다 불교는 그렇게 극단적 개인주의를 고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이에 많은 논의점들이 있을 것 같은 데, 다 생략하고 이 책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문제는 이것이다. 부처님이 원래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 또 다른 문제. 어떤 말씀이 부처님이 원래 하신 말씀이라면 그것을 100% 다 믿어야 하는 것인가. ' 불이 금을 시험하듯이 내 말도 시험해 봐야 한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겠다. 벽암록에 나온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는 선불교의 공안이 어쩌면 다시 부처님 원래의 말씀을 적절하게 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전제하에 부처님의 원래 말씀은 어떤 모습일까. 역사적 존재로서 부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부처를 신이나 절대자의 모습이 아니라, 역사라는 삶의 공간속에서 고민하는 스승의 모습으로 공부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아직도 한글로 된 책 중에는 읽을 만한 불교 서적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이 생각이 짧은 생각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품으며) 왜 부처 사후에 그렇게 많은 계파로 불교가 갈라졌는 지, 또 불교가 인도에서 바라문 교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밖에 없는 지 읽으면서, 종교라는 것, 그것을 바르게 믿는 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고원한 종교라 할 지라도 부처님의 말씀대로 끊임없이 시험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부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진흙에 오염되지 않는 연꽃과 같이, 자신과 진리를 의지처로 삶아,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부처님은 탁월한 심리학자이자, 당대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인권운동가이자, 수행자이셨다. 사회적 변혁과 개인 내면의 변혁을 동시에 달성할수 있는 실마리를 부처님의 모습에서 찾을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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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 불교와 바가바드기타 부분인데 참 읽을수록 번역이 책 내용 흐름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화가 날 정도로 흐름을 망치네요. ' 붓다에 의하면 그가 설했던 현상계에 대한 진리외에 또 다른 진리가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윤리적이라면 그는 그러한 다른 진리를 보게 될것이다. 붓다 자신이 얻었던 유형의 깨달음에 필수적인 윤리적 준비를 주장하는것은 붓다의 자발적 사명이다' 윤리적이라는 원단어가 무엇인지는 궁금하고 뭔놈의 필수적인 윤리적 준비와 자발적 사명이라니 당췌 번역이란 걸 제대로 하지못하는 분입니다. 여러번 읽어보면 의도는 알겠으나 이런 문맥이 어울리지 않은 번역 책 내용 내내 끼어있어서 읽고 넘어가기가 괴로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번역이 가능한지 이 좋은 책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아마존에서 영문판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