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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테나이에서 한 시민이 왕이 보낸 사절단을 접대할 때, 이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손님은 대화에 끼어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제논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방인들이 그에게 예를 갖추어 건배를 제의하며 "당신에 관해 전하께 뭐라고 전할까요, 제논?" 하고 묻자 제논이 대답했다. "술 마시면서 침묵할 줄 아는 노인이 아테나이에는 딱 한 명 있더라고만 전하시오!" 이 책의 23면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여기에서 왕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제논(기원전 333-262)은 퀴프로스 섬 키티온 시 출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다. 여기에서의 수다는 주정에 가깝다. 아니 주정이라고 플푸타르코스는 규정하고 있다. 한 얘기 하고 또 하고... 이런 풍경을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술마시고 허튼소리를 하면 그것이 주정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주정뱅이는 술 마실 때만 허튼소리를 하는 데 비해, 수다쟁이는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장터에서, 극장에서, 산책로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허튼소리를 한다"는 필자의 논평이다. 플르타르코스가 누구인가, <<영웅전>>의 저자이다. 숱한 위인들의 인생을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일반적으로 좋은 일만을 해낸 사람만이 아니고, 반면교사로 삼을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도 수록하였던 이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에세이다. 수다의 본질에 대해 이토록 간파한 글들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얼마전에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다가, 재밌는 대목을 발견했다. 페니미즘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리가라이의 <나, 너 우리;차이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흔히 여성이 수다스럽다, 라고 하는데 수다스러울 수밖에 없는 설득력 있는 '변호'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임신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데, 임신이란 타자와 10개월 가량을 공존하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여성의 특징이되는데, 타자와의 차이를 포용하는 여성적 경험이야말로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라는 것. 타자와의 차이가 우글거리는 곳이 현실이자 구체성인데, 여성은 그 체험을 표현하는데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남성의 담화(논리적이고, 폭력적이다)를 통해서만 표현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언어의 부적절함을 통감하게 된다. 해서 다시 혹은 자세하게 자신의 말을 더듬어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타자와의 차이를 포용할 수밖에 없는 감수성을 지녔기에 더욱 그러하다. "여성은 상대방이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면 반복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강신주의 책 188면)이다. 이것이 남성들에게 여성의 언어적 표현이 수다스러움이나 잔소리로 보이게 하는 원인이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여성들의 수다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이 한 권 나올만 하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는 얘기는 소통이 안 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산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소통이 안 되는 지도층, 기득권자들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운 거대한 사건이었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 여성들이 소통에 능할 수밖에 없다.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를 포용하는 여성성(이것은 '모성'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때문에 제대로된 표현을 해야 하고, 그러므로 남성중심의 언어로는 한정된 시간 안에 표현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였다는 것까자 수다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폰이나 갤러시폰은 소통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제쳤다. 그런데, 손가락이 큰 사람은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손가락이 작고 가느다란 여성들이 폰의 자판을 누르는데 능수능란한데, 소통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남을 감안할 때, 이 시대의 남성들은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수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23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의 전기를 기술한 플루타르코스의 혜안을 담은 <수다에 관하여>에서 수다가 가진 진정한 힘을 느껴보는 것은 어떠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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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에 관하여>는 이 책에 수록된 플루타르코스의 여러 에세이 가운데 하나이면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 권의 시집을 펼치거나 살필 때(서점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표제시'-제목으로도 사용된 시-인데, 꼭 그런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여러 편의 에세이 중에서도 '수다에 관하여'가 가장 뜨겁고, 21세기를 사는 이들에게도 어느 것 하나 놓을 수 없을 만큼, "맞아,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기왕 책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한 대목을 소개해볼까 한다. 저자는 수다를 포도주에 비유한다. "즐거움과 교제를 위해 생겨난 포도주이지만 희석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마시면 불쾌해지고 취하게 된다."고. 이처럼 "말도 인간과 인간을 가장 즐겁게 이어주는 수단이지만 생각 없이 잘못 사용하면 반 인간적이요 반 사회적인 것이 된다."고. 말과 술이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네요. 말을 남용하면 즐겁게 해주려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경탄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사랑받으려던 사람에게 미움받게 된다고. 그러한 사례들은 너무도 많아 예를 찾는 것보다는 예를 찾아볼 것도 없다는 역설의 말로 예시하겠다. 그렇게 본인이 유심히 살핀, 그리고 꼽은 '수다'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다른 정념의 폐해는 대게 위험하거나, 역겹거나,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수다는 이 세 가지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수다쟁이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다 웃음거리가 되고, 반갑잖은 소식을 전하다가 미움을 사는가 하면, 비밀을 지키지 못해 위험에 처한다. 그런 연유로 아나카르시스(주27)는 솔론의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은 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왼손은 사타구니에, 오른손은 입에 얹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혀에는 강한 재갈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그의 생각은 지당하다. 무절제한 성생활로 말미암아 패가망신한 개인들을, 비밀이 누설되어 멸망한 도시나 정권만큼 많이 늘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수다에 관하여> 7장, 27면)
무절제한 성생활 부분은 이곳에서의 논점이 아니고 수다의 근원인 입에 주목하게 되는 에피소드다.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를 배치했다", "인체 가운데 자연이 혀만큼 안전하게 울타리로 둘려친 부위는 없다."는 앞서의 대목은 참 명언인데, 어쨌거나 그 근원지인 입을 손으로 막고 잠든 이 사람, 아나카르시스는 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스퀴타이족 출신의 현인으로 그리스를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솔론에 집에 온 것은 솔론이 여행시에 만났던 이로 답방 형식이 아니었을까(<영웅전> 115면, 솔론은 선주(船主)로서 여행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10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다음 출항했다.<솔론 전>) 어쨌거나, 흥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고, 그런 관찰 결과를 '소문'낸 솔론도 흥미롭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플루타르코스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책, <영웅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 과정에서 보여준 일화를 떠올리게 된다. '수다' 혹은 침묵의 힘을 강조하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정복하는 동안 엄청난 재화가 전리품으로 혹은 정복당한 국가들이 바치는 식으로, 알렉산드로스로서는 풍족했으나 이 사람,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 그야말로 팍팍 나눠주는 데서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 올륌피아스가 고국에서 끊임없이 경계하는 편지를 보낸다. 좀 조심하고, 그렇게 퍼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너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재물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당부하는 편지들이다. 그녀는 그 서찰에서 그에게 "이제는 전하께서 좋아하고 존중하시는 자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호감을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지금 전하께서는 그들 모두를 왕과 대등하게 만드시어 그들이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만드시지만, 정작 전하 자신은 친구들을 잃어가고 있사옵니다."라고 썼던 것이다. 올룀피아스는 그에게 이런 취지의 서찰들을 자주 써 보냈지만 그는 그 서찰들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딱 한 번 그와 함께 서찰을 읽곤 하던 헤파이스티온이 이미 개봉되어 있던 서찰을 여느 때처럼 읽었을 때, 그는 그것을 막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에서 인장 반지를 뽑아 비밀을 지키라는 뜻으로 헤파이스티온의 입술에 날인했다.(<영웅전> 305면) 이 대목이 참 좋았더라. 그리고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으니, 헤파이스티온은 그의 친구이면서 최고의 참모이다. 조선시대 왕으로 치면 '종신' 좌의정 쯤에(우의정보다 좌의정이 한끗이 더 높았다네요) 해당하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그에게, 인장반지(서찰을 보낼 때 본인임을 확인하기 위해 꾹 눌러주는데, 그처럼)로 입을 봉인해버리니 말이다.
<위 이미지는 영화 <그림형제>의 스틸컷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수다에 관하여>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예시하는 많은 글들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쯤에서 앞서 소개한 솔론의 사랑채에 묵은 손님의 잠버릇을 상기해보자. 그야말로, 인터넷과 SNS 매체들까지, 특히 우리나라는 그 현상들로만 보면 '소통천국'이고 '소통공화국'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유력한 대선후보였다가 단일화를 위한 아름다운 양보를 하셨던 분까지, SNS를 통해 자신이 단일 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라는 추측기사가 나오고, 그러므로 <수다에 관하여>에서는 '입'조심을 강조하는데, 적어도 현대의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다를 경계하는 방식이 바로 손가락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수면 양말과 같은 수면용 장갑 같은 것이 나와 자는 동안 손을 어디에 두어도 상관없는데, 다만 자판을 두르리지는 못하도록 말이다. <수다에 관하여>는 이 출판사가 펴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키케로와 세네카의 책들로 각각 나온 에세이들과 함께 하드커버 장정으로 4권을 묶음 책 <그리스로마에세이>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소장 가치도 그렇고, 주석을 해당 텍스트와 한 프레임에서 읽어가려면 <그리스 로마 에세이>으로 만나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