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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네이버처럼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저장되는 기능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ㅡ.ㅜ
[경관의 피]에선 3대에 걸친 경관집안의 이야기를, [에토로후발 긴급전]에선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과 나라의 운명을 -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대통령의 쿠나시르섬 방문에 대해 작가의 트위터에서 안타까움을 조심스레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되지않은 다른 작품에서 다양한 배경의 탐정역을 통해 범죄 사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역사까지 사사키 조는 포괄적 시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작품은 작가의 개성처럼 그런 점을 보여주면서, 개성있는 탐정역의 설정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센도 다카시는 경시청 형사로 모종의 사건을 수사하다가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리고 만다. 이 사건은 마치 센도의 분신처럼 그림자처럼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미스테리한 소재가 되고 있다가 마지막 단편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경찰이지만, 휴직중인지라 마치 사립탐정처럼 - 하지만 그보다는 편하다. 가장 많은 정보와 편의성을 가진 경찰이 여전이 그의 편이다 - 사건을 의뢰받는다. 하지만, 의뢰인도 그도 사건을 해결할 수 없음을 확인하듯, 사건의 해결이 이런 이야기의 목적이나 내용은 아니다.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음에 후회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눈빛에서 읽어내기 어려운 인간의 어떤 심중의도에서 모색된 것인지 모르나.
모두가 작가의 고향인 홋카이도가 배경인데 (그러고 보면, 마츠모토 세이초도 고향인 쿠슈를 배경으로 글을 썼고, 미야베 미유키도 도쿄가 배경이다), 이야기가 범죄사건인지라 칙칙하고 황량하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에서 해외자본의 부동산투자에 얽힌, 어지러운 이해관계와 경찰력의 상징적 행보가 개인과 아슬아슬하게 어긋날지라도 그 개인에겐 얼마나 큰 곤경으로 다가오는지를, '폐허에 바라다'는 사회가 보호해줄 수 없었던 한 가정내의 불행이 긴시간을 지나도 회복할 수 없는 개인의 상처로 남아 또다른 희생자를 남는 범죄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으로 쓰여진 만큼 가장 크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아, 근데 거기서 자신의 복직을 걱정하는 센도는 뭔가?
'오빠마음'에선 작은 어촌마을까지 들어온 도박폭력세력과 나태해지는 도덕성, 그리고 전통적인 세력이 시대적 요구를 거부할때 폭력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가장 '잘했다'라고 말할 수있는 합의과정을 이끌어내는 센도가 현명하다. 읽고있는 나마저 뿌듯하다.
'사라진 딸' 에선 가족의 붕괴에서 튕겨지듯 나간 딸이 얼마나 손쉽게 재범자의 손에 희생될 수 있는지, 사건현장의 현장보존테이프 만큼이나 허무한 법의 감시체제를 보여준다.
'바쿠로자와의 살인'은 작가가 제목으로 고심했을 [까라마조프가의 살인]처럼 특이한 부자를 보여준다. 가장이라 함은 방향을 제시하고 보호하는 인물을 말함이지, 자신의 바람처럼 되지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이 아닐진대,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나저나, 사건을 직접 저지른 인물만큼이나 사주한 인물도 처벌했으면 좋겠다.
'복귀하는 아침'에선 드디어 그동안 미스테리와 같았던 센도의 과거사건이 밝혀진다. 그동안 그를 괴롭히고 상처주었던 것이 얼마정도 회복되었는지, 새롭게 일어나는 모습이 전체적인 칙칙함을 좀 덜어준다.
레이몬드 챈들러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집중하듯, 사사키 조는 이 작품에서 사건자체가 아닌 사건이 발생하게된 배경과 그리고 마치 돌이 던져진 물표면의 어지러운 여파처럼 흔들리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거기엔 피의자도 수사관도 포함되어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며 운명론을 보여주는듯하지만, 다시 일어나는 센도 다카시의 모습에서 다시 인간의지를 확인하다.
p.s: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소설가 나오키 산주고의 이름을 따 대중소설 신인작가를 대상으로 했으나, 점차 중견작가에게도 주어졌다.
수상작으로는 (국내 소개된 것들로),
시바 료타로의 [올빼미의 성] (이거 1권만 절판되고 출판사에 물어봤더니 다시 출판할 의사가 없다는 반응 ㅡ.ㅡ 근데, 가끔 일부만 절판되서 궁금해서 전화하면 반응들이 왜이리 뚱한지. 나라면 잊혀지는 책이라서 오히려 반가워하지 않을까? ) 노사카 아키유키의 [반디불의 무덤], 다카무라 카오루의 [마크스의 산],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기리노 나츠오의 [부드러운 볼],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 유이카와 케이의 [어깨너머의 연인], 이시다 이라 [4 teen], 에쿠니 카오리 [울준비는 되어있다], 교고쿠 나쓰히코 [후항설백물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가쿠나 마쓰요의 [대안의 그녀], 슈카와 미나토의 [꽃밥],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미우리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남자], 모리 에토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이노누에 아레노의 [채굴장으로] 텐도 아라타 [애도하는 사람], 야마모코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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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별 뜻 없이 집어 들었는데 손에서 놓기가 어렵더군요. 아무래도 이 소설만이 가진 어떤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리하게 정의하자면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는 과정의 소설입니다. 형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장르물이지만 정작 추구하는 건 '누가 했느냐?'라는 식의 범인 체포가 아닙니다. 그 보다 더욱 천착하는 것은 사건 해결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를 온전히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랄까요? 산책자의 소설이라고 할까요? 산책자는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걷고 있다는 그 사실,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을 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할 뿐이죠. 풍경을 음미하면서 조용히 걸을 수만 있다면 목적지 따위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 바로 산책자입니다.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는 정말 그렇습니다. 비슷한 예로 미국의 하드보일드 작가 로스 맥도널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형사가 주인공도 아니고 루 아처라는 사립탐정이 주인공입니다만 풀어가는 스타일이 사사키 조와 유사합니다. 로스 맥도널드는 주로 당시 미국 가정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갈등들을 드러내는데 주력하는 작가인데 역시나 그 불안과 갈등등은 범죄로 표출되지만 맥도널드 역시도 누가 그것을 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가정이 왜 이렇게 불안과 갈등을 안게 되었느냐는 것이며 바로 그 이유의 탐색을 위해서 당대의 미국 사회를 풍경을 온전히 드러내는데 주력합니다. 말 그대로 로스 맥도널드의 소설도 과정의 소설인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폐허에 바라다'의 주인공 센도의 역할이 기묘합니다. 그는 형사이지만 어쩐지 사립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참여했던 사건의 비극으로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센도는 이 때문에 그 마음의 상처 부터 치료하고자 휴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요양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꾸만 과거의 인연으로 사람들이 사건을 의뢰해 와서 할 수 없이 계속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폐허에 바라다'는 그런 식으로 뛰어든 사건들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휴직 상태이기 때문에 멋대로 경찰의 신분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이지만 사건 탐문 때는 경찰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보를 얻기위해 할 수없이 사람들에게 경찰임을 드러낼 때는 명함을 건네줍니다. 이건 그대로 사립탐정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때 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그렇게 센도는 경찰이지만 경찰이 아니고 자신을 드러내는 외양만 보자면 사립탐정과 같습니다. 더구나 사건을 탐문할 때 마다 늘 스스로나 타인들이 자꾸만 휴직 상태임을 일깨웁니다. 그렇게 경찰로 일한다기 보다는 사립탐정으로 일한다는 것을 내내 일깨워주는 것만 같습니다. 굳이 사사키 조가 왜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택한 것일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이지만 왜 자꾸 사립탐정의 역할을 연기하게끔 하는 것일까? 아마도 여기에 대한 대답이 사사키 조가 '페허에 바라다'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주된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역시 센도에게 PTSD를 가져다 준 사건의 성격입니다. 그 사건의 내막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복귀하는 아침'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데 센도가 PTSD를 가지게 된 것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제대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그저 고지식하게 수사 원칙을 지키려고만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극적 사건(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는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사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런 원칙 따위는 무시해 버려야 하는 것이냐 하는 선택에 직면한 것이죠. 그러므로 결과만 좋으면 과정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훗설이 말하는 에포크, 즉 판단중지가 필요한 것이죠. 제대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초기화 시키고 다시금 처음부터 되새겨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폐허에 바라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바로 센도가 지금 안고 있는 그 의문에 대한 탐문인 셈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사키 조가 왜 이 소설을 과정의 소설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하드보일드 장르의 사립탐정으로 만들었는지가 이해되는 것이죠. 사립탐정의 역할은 경찰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경찰이 질서의 복원이라면 사립탐정의 역할은 폐허가 되어버린 질서를 관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기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었죠. 아시다시피 그는 레이몬드 챈들러의 광팬입니다. 그 소설을 말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립탐정은 어떤 진실을 추적하지만 결국 확인하게 되는 그것이 변질되고 말았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립탐정은 변화의 목격자이며 바로 이 때문에 사사키 조는 굳이 센도에게 사립탐정의 외양을 취하게 한 것입니다. 센도에게 폐허의 관찰자가 되기를 바랐던 사사키 조의 의중은 에피소드 곳곳에 나타나는 세월에 변해버린 공간의 묘사에서 두드러집니다. 훗카이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의 무대들은 모두 외국인들이 들어오거나(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중(폐허에 바라다)이거나 좋았던 전통이 몇몇의 협잡으로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곳(오빠 마음)이거나 한 곳들이죠. 그렇게 변화의 와중에 있는 곳입니다. 센도는 바로 그런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탐문합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공간이 변한 만큼 사람들 역시도 변해 버렸다는 것을. 그것도 현실적인 욕망의 추구로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센도가 가지고 있었던 PTSD를 불러온 의문에 해답이 되는 셈입니다. 즉 사사키 조는 정당한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변화에 임기응변으로 임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그 모든 공간과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결국은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하더라도 원칙을 고수함이 올바른 것이라고. 이는 센도와 공간의 대비로 인해 두드러집니다. 즉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과는 달리 센도만은 PTSD마저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고지식하고 남들이 보면 안지켜도 될 것 같은 것도 충실히 지키려들죠. 그 세세한 원칙의 고수를 사사키 조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지킬 것은 지키는 것. 센도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의 독특한 매력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두가 현실적 타협을 위해 신념을 져버리거나 원칙을 무시하는 것쯤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시대에 고지식하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것을 작가가 마음으로 부터 지지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사키 조는 이 소설 전체를 일종의 산책자의 소설로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던 것은 이러한 센도의 신념에, 사사키 조의 지지에 공명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키 조의 작품은 '경관의 피'와 '제복 수사'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있는 것 같던데 차후의 여정이 어떻게 될 지 또 지켜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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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 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사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 -p. 40
센도 타카시는 과거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휴직 상태에 있는 경관이다. 되도록이면 경찰 관련 사건으로부터 눈을 돌리려 하지만, 그의 본능은 그렇지가 않다. 게다가 과거 사건을 해결하면서 맺은 인연들로부터 하나씩 연락이 와 정식 수사원은 아니라도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고 수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강한 그의 활약이 담긴 연작 단편소설집 <폐허에 바라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의 혐의를 조사해 본다거나, 과거에 수사했던 사건의 피의자가 무심코 이야기한 자신의 고향 이야기에 잠겨 그의 고향, 이제는 폐허나 다름없어진 오래된 탄광촌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출소한 당시의 피의자를 만나,「폐허에 바란(라)다」. 또, 어업이 활성화된 홋카이도의 한 마을에서 젊은이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고있는 남자가 마을의 또다른 유지를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센도는 그 곳에서, 「오빠 마음」을 절실히 느끼기도 한다. '센도가 도움이 될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사라진 딸」의 시체라도 찾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에 따라 그 딸의 자취를 쫓기도 하고, 「바쿠로자와의 살인」사건 덕분에 찾아간 경주마 생산 목장에서는 엄격하고 고집 센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의 갈등을 만난다. 그리고 드디어 비로소 과거의 사건을 마주할 수 있게 된 타카시는 인간의 내면의 무서움과 맞서며「복귀하는 아침」을 맞이한다.
<경관의 피>에서 3대를 이어져오는 경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방대한 스케일의 하나의 '역사'를 이렇게 치밀하게 써내려갈 수 있구나, 하고 그의 필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그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지, 그의 작품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아마 이 <폐허에 바라다>가 <에토로후 발 긴급전> 이후 세 번째 작품인가 싶다. 경찰소설의 대가 답게, 역시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사키 조. 하지만 조금 특이하게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관 대신,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휴직 중인 형사를 등장시킨다. 휴직 중이기에 사건이 발생해도 정식 수사권을 가지고 활동할 수 없고, 그렇기에 수사원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ㅡ다시 말해 탐정ㅡ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탐정의 시각에서 굉장히 기상천외한 트릭을 간파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센도 타카시의 말 한 마디는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던 이의 누명을 벗겨주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피의자의 말이 비로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단편의 군데군데에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센도에게 일어난 '과거의 그 사건'.. 그 정신적 외상에 힘들어하면서도 수사원의 본능을 버리지 않고 마음 속 상처가 아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기상천외한 트릭이나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고 펼쳤다면 분명 이 작품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 작품만의 매력은 바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묘사하며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에 있다. 앞서 말했던 모든 것들이 홋카이도의 도시를 배경으로 멋지게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침착하기 짝이 없는 센도의 점잖은 말솜씨는 사건 속에 휘말려 상처입은 이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그리고 사건을 일으킨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가시가 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짧은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보면 범죄가 낳은 비극을 다시한 번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의 범죄는 그저 피해자에게만 상처를 입힐 뿐일까? 상처입는 이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 그리고 피의자와 그를 수사하는 수사원들을 상처입힌다. 그 중에서도 사사키 조는 '수사원의 상처'에 주목했는데, 계속해서 흉악범죄를 맞닥뜨려 정신을 갉아먹는 수사원들의 상처를 생각해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음에도 비로소 이 작품으로 생각을 해 보게 된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아울렀기에 142회 째 나오키상은 이 작품에게 돌아간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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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는 경찰 소설로 각인되어 있다. 내게는 그러하다. [경관의 피]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홀딱 반했다. 그래서 [경관의 조건]도 당연히 따라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폭설권]이라는 책을 읽고 또 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소설은 몰입력이 대단하다. 두툼한 페이지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온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방대한 분량이 너무 스케일이 커서 혼란스럽다거나 하지 않는다. 딱 짜여진 이야기들이 이해를 돕는다. 그러니 선택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일단 이 책은 단편이다. 형사 센도 타카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지만 별개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사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지금은 휴직 중이라서 경찰이라는 신분을 사용할 수 없다. 제한이 있음으로 인해서 사건 해결은 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역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센도다. 경찰의 신분이 아니기에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오는 것을 들어줄 수가 있는 것이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감형을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나 동생이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다. 분명 심각한 사건 같은데 개인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담겨져 있다.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수사가 아니어서 박진감이 떨어지거나 스케일이 작을지 몰라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편이다. 역시는 역시다. 단편이라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더 많은 이야기를, 두툼한 분량을 기대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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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사키 조'의 연작단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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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거의 남한 면적의 84%에 이른다. 무더운 계절에는 서늘한 '여름 나기'로 떠오르고, 겨울에는 눈과 스키 생각에 한 번쯤 여행하고픈 곳이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 '사사키 조'는 고향을 배경으로 자신의 장기를 살려 경찰이 등장하는 여섯 편의 연작 단편을 창작하였고, 이것으로 제142회 '나오키상'의 영예를 얻었다. "스물 아홉에 처음 쓴 소설이 상을 받은 이후로 31년째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30년 동안 잘 버텨 왔다"라는 말을 듣던 차에 나오키상을 받게 되었지요. 저는 이 상을 일종의 장기근속표창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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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설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몇명 있는데 그중에 늘 꼽히는 작가가 바로 사사키 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경찰소설이라도 경찰 내부조직의 알력이나 정치게임을 주로 다루며 그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쪽인 요코야마히데오에 비해 좀 더 사건자체의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쪽이 사사키 조 인것 같다. 3대에 걸친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룬 `경관의 피`도 그랬고 `폭설권`이나 `제복수사`역시 경찰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사건과 사건 관계자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그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작가들마다 특유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데 그 각각이 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 일본의 경찰소설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폐허에 바라다` 역시 단편으로 연결된 연작소설적 성격이 강한데 사정상 경찰직에서 잠시 휴업중인 경관인 `센도 타카시`가 주인공이 되어 일본을 떠돌면서 나름의 수사로 범인을 잡거나 추적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설정이라 각 단편마다 다른 사건을 소개하고 있어 각각을 읽는 재미가 제법 솔솔한 작품이다.
사건현장에서 뜻하지않은 일을 겪은 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으며 일선에서 물러나 휴직중인 경관 `센도 타카시`는 오랜 휴직으로 지루해하고 있던 차 일선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로부터 혹은 동료의 추천으로 사건 관계자가 도움을 요청해와 이런 저런 사건에 발을 디밀게 된다. 별볼일 없던 땅에 외지인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모여들어 개발이 되면서 주변의 상권이 들썩이고 이런 와중에 그들의 행태에 불만을 가진 현지인과의 마찰이 살인사건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게 된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윤락여성의 얼굴을 형편없이 짓이겨 살해하는 잔인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의 숨겨진 과거와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되는 배경이 쓸쓸한 폐광촌의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쓸쓸함이 돋보여던 `폐허에 바라다` 복수와 질투 그리고 어둠속에 숨은 악의가 돋보였던 `복귀하는 아침`
6편의 깔끔한 단편으로 이뤄진 작품이 바로 이 책 `폐허에 바라다`이다. 주인공인 센도가 조사권을 가진 현직 경찰이 아닌 아무런 힘도 연줄도 없는 그저 쉬고 있는 휴직경찰의 신분이라는 점이 이채로운데...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각종 연줄이나 학연,지연에 얽힌 사회이다보니 어떤 이권이나 권력구조에 의해 사건이 왜곡되기도 하고 사건방향이 틀어지기도 하는데 현직경찰의 신분이라면 이런 구조를 뛰어넘기 힘들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그 한계를 넘기기가 좀 더 수월하지않을까 생각하면 이런 포석을 깐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것 같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좀 더 냉철하게 접근할수 있고 일반인보다는 더 사건에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휴직경관이란 위치가 참으로 절묘하다.거기다 이 센도라는 인물의 특성이 제법 사건을 보는 눈이 넓고 그가 겪은 사고로 인해 어떤일에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않고 있다는 점이 사건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알수 있다. 단편의 특성상 엄청난 스케일의 큰 사건이 아닌 어디서나 있을수 있을 법한 사건들 위주로 그럴싸한 접근방법을 통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센도는 이런저런 사건을 조사하고 관계자를 만나고 해결하면서 자신이 입은 사건 후유증도 점점 치유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고 있다. 일단 잔인하거나 엄청난 사건이 나오지않아 읽기에 부담이 없고 단편이기에 더욱 부담이 없으며 사사키 조의 매력을 맛보기엔 적당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단편이라면...단편을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도 좋아할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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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는 명실상부 일본 경찰소설의 대표작가다. 그의 대표작〈경관의 피〉는 드라마로는 보았지만 원작소설은 좀처럼 펼쳐보기가 어려웠다. 원작이 드라마를 따라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기우 때문인가. 그만큼 잘 만들어진 명품 드라마였다. 대신에 2010년 나오키 상을 받은 사사키 조의 연작단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폐허에 바라다]는 휴직 중인 형사 센도 타카시가 등장하는 여섯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된다. 형사 센도 타카시는 3년 전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억울성 감정 불안정이라는 진단을 받고 현재 휴직 중이다. 기후요법의 일환으로 한적한 시골 온천에서 낚시나 산행, 입욕의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지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사건에 개입하기도 하고, 삿포로 자택 부근에서 조깅을 하다 의외의 사건을 부탁받기도 한다. 현재 휴직 중이라 권총도 경찰수첩도 소지할 수 없고, 당연 수사권이나 체포권도 없는 형편이지만 지인이나 낯선 의뢰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씨 착한 형사다. 먼저 센도가 휴직을 하게 된 사건부터 설명해야겠다. 이 사건은 소설의 맨 마지막 편 <복귀하는 아침>에 소개되고 있다. 3년 전 삿포로 추오 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인데 그 때 목격한 참혹한 사건 현장과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태로 인해 심각한 PTSD를 겪게 된다. 밤 11시 110번으로 한 아파트 주민의 신고가 들어왔다. 뭔가 사고가 났다는 신고였다.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입구에서 미세한 혈흔과 한 여성의 휴대전화를 발견한다. 휴대전화의 주인은 실종 상태. 사건 신고 후 약 한 시간이 지나, 센도와 아키노는 아파트 뒷편에 위치한 독신자용 공동주택에 탐문을 간다. 거기서 한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데 알고보니 그 남자가 바로 여성을 납치한 범인이었다. 수상함을 느낀 아키노는 집안에 들어가 수색하자고 하지만 센도는 그런 아키노를 말린다. 30분 후 행방불명된 여성의 처참한 사체를 그 남자 욕실에서 발견하고, 도망친 남자는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탐문 당시만 해도 피해자도 살인범도 모두 살아 있었다. 센도의 어의없는 실수로 현장에 가 놓고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고 살인범과 접촉해 놓고도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두 목숨이 그만 사라지고 만 것이다. <복귀하는 아침>은 치정으로 인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아 인간 내면의 증오심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토카치가와 강가에서 여자 소사체가 발견된다. 신원은 오비히로의 유명 제과점 경영자의 딸이자 레스토랑 경영자 마치다 나오로 밝혀진다. 피해자는 평소 생활이 사치스럽고 남자관계도 복잡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인물인 나카무라 하루카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3년 전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나카무라 유미코가 하루카 언니인데, 센도에게 자기 여동생을 매스컴으로부터 지켜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렇게 센도는 '오비히로 여류 명사 살인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그런데 유미코는 정말 여동생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일까. <사라진 딸>은 퇴폐업소에 다니다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의 뒤늦은 회한을 다룬 작품이다. 강변 조깅 코스를 달리던 센도 타카시는 타나베 형사의 소개를 받고 자신을 찾아온 미야우치를 만나게 된다. 미야우치는 자신의 사라진 딸을 시신이라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딸아이 핸드백이 부녀자 연쇄폭행범 타카다의 방에서 발견되었는데 타카다는 교통사고로 죽고 말아 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시체도 없고, 혐의범도 없는 기묘한 상황이다. 센도는 사라진 딸의 시신을 찾을 수 있을까. 탄광촌 유바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폐허에 바라다>는 이 책의 표제작이다. 홋카이도의 옛 탄광촌 유바리는 저자 사사키 조의 고향이라고 한다. 2006년 재정파탄으로 일본 지자체 중 최초로 파산선언을 한 곳인데, 고향의 그런 몰락을 역시 유바리가 고향인 한 범죄자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서 재현하고 있다. 이 책을 손에 잡은 독자라면 이 단편만은 꼭 두 번 읽게 되어 있다.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복귀하는 아침>으로 센도가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독자라면 <페허에 바라다>에 나온 '지명수배 중', '댐', '투신'과 같은 단어들이 센도에게 어떤 정신적 충격을 주는지 두 번째 읽어서야 확실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13년 전 삿포로 매춘부 살해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40대 출장안마사가 러브호텔에서 살해된다. 센도에게 피의자로 짐작되는 한 남자의 전화가 걸려 온다. 12년 징역을 마치고 출소한 삿포로 사건의 범인 후루카와 유키오다. 그가 과연 출장안마사 사건의 진범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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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가는 길>을 읽고.......
'무릇 책이란 영혼을 치유하는 종이 의사'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작가. 조이. 작가는 현대인들의 건전한 정신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컴플렉스를 풀어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가 지워지고 새롭고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자기 정체성을 찾아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심혈을 기울려 작품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독자가 얼마나 마음을 열고 책을 보느냐에 따라 작가와의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이강빛의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강빛이 좋아하는 꿈에서도 잊지 못할 마음씨 고운 여학생. 김아란. 머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강빛의 친구. 이 범. '머프 증후군'_에너지를 만드는 사립체가 돌연변이해서 일어나는 희귀병으로 완치법이 없다.
이들 3명이 주인공으로 여러가지 다양한 쟝르의 소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줄기세포, 복제인간, 우주인, 뇌복제, 호스피스 병동, 로봇공학, 생명공학.........
이강빛은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지만..... 친구 이범에게서 '에빙 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이용한 학습법을 전수 받아 일취월장하는 실력으로 최고의 성적을 유지한다. 또한 이범은 이강빛에게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따라 간다'고 강조한다.
이강빛의 명석한 두뇌로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높은 수능 점수를 받고 생명공학과 로봇공학을 이용한 꿈을 키워간다. 아란의 제대혈을 이용한..........식물인간 아란의 소생을 위해서.......
소설 전반적인 내용에 있어서 결말 부분은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쟝르로 시도한 부분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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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 범죄 드라마를 볼 때 문득 문득 느껴지던 것은, 수사관들은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은 주변의 배려와 이해 속에 따스하게 감싸지지만, 수사관들은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욕이나 얻어 먹는다. 때론 우습게도 가해자인 범인을 두둔하고 그들의 편에 서는 사람도 나오기도 한다. 참혹한 범죄 현장을 마주해야 하고, 괴물같은 심리를 가진 범인들을 잡아 들이는 그들, 그들을 보면 용케 제정신으로 그 일을 계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범죄는 점점 더 잔혹해져가고, 수법은 치밀해진다. 별 것 아닌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그 마음은 오죽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