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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인 것이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인 것이다" 내용보기
152년에 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한 일대 변혁으로 다가왔다.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인본주의라는 르네상스시대가 열렸지만 아직까지도 인류에게 신에 대한 존엄한 사유는 흔들림 없는 명제이자 불변의 진리였다. 과학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서서히 태동되기 시작한 시점이지만 이 역시 미비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인 것이다" 내용보기

152년에 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한 일대 변혁으로 다가왔다.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인본주의라는 르네상스시대가 열렸지만 아직까지도 인류에게 신에 대한 존엄한 사유는 흔들림 없는 명제이자 불변의 진리였다. 과학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서서히 태동되기 시작한 시점이지만 이 역시 미비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종이 기원>에서 출발된 진화론에 대한 대두는 그야말로 신의 영역을 부정해버리는 거대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서 지금 현재까지도 창조론자들의 진부한 줄다리기가 지속되고 있다. 진화론은 그동안 인류가 가져왔던 사유에 대한 거침없는 반격이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발점이었다. 최상위 신이라는 존재와 그 신을 대리한 인간이 모든 생명체를 관장한다는 관념을 이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만큼 진화론은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에 기반을 둔 현대 과학은 그 과학적 증거를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이라는 명제의 참을 증명해왔고 지금도 끊임없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거의 왠만큼의 생명의 탄생에서 진화의 과정이라는 큰 줄기를 밝혔고 DNA지도의 완성등에 힘입어 우리 자신인 인간의 진화론적 구조와 구성에 대한 이해의 폭도 상당히 넓혀졌다.

진화란 절대자의 계획적이고 획일적인 제작과정내지는 창조라는 대량생산의 체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계획적이고 다양성이라는 랜덤적인 요서에 의해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과정이라는 단순한 정의에 따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비계획적이고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정작 인간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는 확인해오면서 유독 우리 자신인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그 적용에 인색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젠더를 대표로 하는 성의 구분에서는 거의 터부시해왔다. 한때 트렌스젠더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이해가 있었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이는 상업화된 방송매체와 결탁된 사이비같은 사회과학의 부추김으로 인해 그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었고 일반인들에겐 오히려 호기심을 충족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간간히 터져나왔던 연애인들의 커밍아웃 사건등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저 다른 세계의 현상 마냥 그저 한쪽으로 흘려버렸다. 물론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거니와 전통적으로 교육받아왔던 진실과는 이격되어 있기에 우리는 동성애자나 간성인 그리고 트렌스젠더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편하지많은 않는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제대로된(생물학적이나 존재론적 차원등에서)남성이나 여성 이렇게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감히 벗어나보고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처음엔 사회문화적으로 강요되고 교육된 학습화의 과정이었지만 이젠 거의 고착화된 각인으로 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올바른 지침도 없었고 수면위로 공론화 하는 과정도 없었기에 더욱더 고착의 사고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진화의 무지개>는 바로 이러한 젠더에 대한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었던 사유가 얼마나 지협적이고 왜곡되었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변을 제공해줄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한권으로서 확정지울 수 는 없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거를 필두로 그동안 우리가 바라보고 왔던 시각을 확장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엔 충분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도출해 보자면 게이,레즈비언,트렌스젠더등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치부된 젠더의 영역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동물계에서 대표적으로 양성과 간성 그리고 성바꿈의 현상이 거의 보편화 되어 있을 정도로 드문 현상도 아니거니와 이러한 현상들이 결코 한 종에 있어서 진화론적으로 부정적인 역활을 수행하지도 않고 있다는 증거들과 현재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도 그 적용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메리카 인디언,인도,동남아시아등의 예를 들어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예시들은 물론 과학적 검증의 결과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성경속에 비쳐진 동성애 관련 예를 들어 젠더에 대한 다양성의 표본과 더불어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젠더에 대한 구분은 인류역사에 있어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 일종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지배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만큼 우리는 단순화되고 획일화된 상념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 인간이 동물계를 바라보는 시각자체에서 일종의 우월감이나 동물과 인간은 다르다는 차별적인 시각의 지배가 그대로 반영되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재개를 바라보면서도 아름답게 느끼는 이유는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일곱가지 색의 적절한 조화가 가져오는 아름다움에 기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가지색중 한가지색이라도 빠지게 되면 그 표면적인 아름다움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반감될 것이며 이러한 여섯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는 띠를 무지개라고 지칭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무지개는 서로 다른 파장의 프리즘 영역의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합작품인 것이다. 우린 인간 역시 이러한 무지개의 예와 다를 수 없는 것이고 성의 이분법적고 고정된 관념이 아닌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라는 제국은 지역,문화,경제,정치,인종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도 그리스도교라는 획일성이 자리잡으면서 붕괴되어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졌다는 점을 보더라도 다양성의 거부와 반감은 어쩌면 인류의 또 다른 거대한 장애물로 남을 지 모르는 일이다.

전반적으로 남성(수컷)과 여성(암컷)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왔던 젠더의 의미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양한 생물들의 성역활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고 생명의 탄생과정인 수정의 과정을 난자와 정자입장에서 기술된 부분은 그 흥미를 더하고 있기도 하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지금이라도 공론화되어야할 주제이기도 한 젠더의 정체성에 대한 훌륭한 지첨서 역활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l******e 2011.05.30.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의 무지개] : 진화의 관점에서 본, 자연계와 인간의 다양한 젠더의 무지개
"[진화의 무지개] : 진화의 관점에서 본, 자연계와 인간의 다양한 젠더의 무지개" 내용보기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어떤 보수단체에서 게재한 비난성 광고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들은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가 된 내 아들이 에이즈로 죽으면 방송사가 책임져라'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 드라마에 외설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성정체성이 드라마 하나 본다고 그렇게 간단히 변하는 것이 아니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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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어떤 보수단체에서 게재한 비난성 광고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들은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가 된 내 아들이 에이즈로 죽으면 방송사가 책임져라'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 드라마에 외설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성정체성이 드라마 하나 본다고 그렇게 간단히 변하는 것이 아니며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 비해 에이즈에 걸리는 비율이 더 높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아직 사회에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고,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나라에서 동성애를 법적으로 처벌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문필가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고 2년간의 강제노동형에 처해졌으며 20세기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역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받고 자살했다.

 

얼마 전, 무지개 색상의 띠지가 인상적인 조안 러프가든의 책 <진화의 무지개(원제 Evolution's Rainbow : Diversity, Genter, and Sexuality in Nature and People)>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1998년 52세의 나이에 여성으로 성을 전환했다. 그는 성전환을 함으로써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계속 교수로 재직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이, 어떤 개인의 학문적 성취, 업무수행 능력과 성적 정체성은 전혀 연관이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동시에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수정한다. 수컷은 활동적이고 암컷은 수줍으며,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암컷은 우수한 수컷의 씨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이론을 그는 반박하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우선 진화에는 다양성이 좋은 것이라는 '다양성 긍정 이론'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범주인 암컷과 수컷을 사회적 범주인 젠더와 구분한다. 암수의 구분은 생식세포의 크기 차원에서 끝나지만, 젠더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좀 복잡하다. 이 책에 예로 등장한 생물들 중 선피시(sunfish)라는 물고기는 큰 수컷, 중간 크기의 수컷, 작은 수컷, 그리고 암컷의 네 가지 젠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몸의 크기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형과 성 역할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많은 젠더를 가지고 있는 종은 옆줄무늬도마뱀으로 수컷 세 젠더와 암컷 두 젠더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젠더를 가지고 있는 종들은 암컷다운 수컷, 수컷다운 암컷 등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이분법적 성역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또한 동성 간의 구애와 짝짓기도 의외로 자연에는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큰뿔양은 거의 모든 수컷이 동성애적 구애와 교미를 시도하는데, 이러한 동성간 구애와 교미는 사육 양에서도 발견된다. 오랫동안 이런 행동은 다른 수컷을 암컷으로 착각했거나 암수 간의 교미 전에 행하는 일종의 연습이라고 설명되었으나, 동성애 숫양은 그냥 게이일 뿐 게이인 척 하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 반응 등으로 보면 다른 수컷을 암컷으로 여기고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 중 수컷을 선택해서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또한 보노보는 거의 모든 암컷이 동성간 성 접촉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인 연합체를 구축하여 생존에 유리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재생산할 수 없는 관계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도태되어야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적 선택'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정자를 배달하는 것보다 번식 기회의 획득과 거래,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고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2부에서는 인간의 젠더가 언제 어떻게 결정되며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불확실한 편견들이 실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XX/XY 성염색체 시스템은 이분법적이지만, 몸의 형태는 젠더들 간에 상당히 겹치고 교차하기도 한다. 또한 두 성 모두가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가졌으며 단지 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성적 지향은 단일한 주요 유전자에 의해 유전되거나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성적 이형성에 관계된 세 가지 신경세포 다발은 서로 독립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양한 성적 정체성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트랜스젠더만 해도 이미 1000명 중에 한명보다는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남녀 동성애자들의 비율은 더 높다. 그렇기에 이러한 다양한 젠더들은 돌연변이나 기형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다양성의 일부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이분법은 이들의 상태를 일종의 질병으로 여겨 전형에 끼워맞추고자 하는 사회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것 역시 편견으로, 성행위를 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의 수도 상당하다.

 

3부에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젠더를 보는 관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 사회에나 성소수자들은 존재했고 때로 이들은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두 영혼' 사람들, 종교의식을 맡았던 인도의 히즈라, 고대 로마의 거세한 남성들, 인도네시아의 레즈비언 공동체, 멕시코시티의 베스티다, 고대의 남성간 성행위, 그리고 남성의 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던 잔 다르크 등의 예를 통해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잔 다르크가 트랜스젠더 남성이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은 좀 비약이 지나친 듯 하다. 잔 다르크는 스스로를 남성으로 생각해서 남성의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격렬한 전투에 편리하도록 기사의 복장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한 가톨릭의 성녀 테클라와 에우제니아가 남장을 하고 살았던 것 역시, 당시에는 여성이 혼자 은수생활을 하기에 위험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는 복장도착(transvestite)과는 무관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계에 다양한 젠더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생물학자로써 진화 과정에서 성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나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성 다양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제는 다수 혹은 표준과 다르다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며(사실 동성간 성폭력의 경우에도, 가해자가 이성애자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친구, 이웃, 동료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의 다양한 젠더들에 대해 나오는 부분은 꽤 학술적이라 읽기가 녹록치 않았지만(나는 과학에 약하다), 인간의 젠더와 문화사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면 훨씬 읽기가 수월해진다. 비록 저자의 모든 주장들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자유롭고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용기있는 외침에 기꺼이 찬사를 보낸다.

j******m 2011.05.31.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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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에 대한 당연하고 필요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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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로 표현되는 성적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고등동물의 10% 미만의 비율로 동성애가 존재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동성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인 채였던 것이다.     획일성, 복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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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로 표현되는 성적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고등동물의 10% 미만의 비율로 동성애가 존재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동성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인 채였던 것이다.  


  획일성, 복잡한 것을 간단한 분류로 나누어 범주안으로 묶어놓는 현재의 지식체계는 결국 단순한 이분법과 흑백논리의 시각만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내었다.  정상인 것과 정상이 아닌 것, 질병이 아닌 것과 질병인 것 등등..  그 기준은 전문가라 표현되는 지식독점자들이 일방적으로 제시해놓고서는 그들이 말하는 옳음의 범주안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옳음의 테두리 안으로 들도록 치료나 교정이라는 명목하에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해 왔다.  때때로 그것은 자본논리와 결탁하여 이윤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전혀 불편하지 않은 몸의 상태를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또는 미래에 불편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협박으로 그들이 원하는 테두리 안으로 들도록 일방적 치료를 감행하기도 하였고, 정체성적 문제 역시 정신적 질환이나 환경적 혼란의 결과로 치부하여 교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으며, 원치않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그저 소수의 사람들로 때로는 정치사회적 의도를 가지고 의도적인 억압을 가하기도 하였다.  의식의 부재 또는 무지, 그리고 제도에 대한 철저한 순응은 그렇게 스스로가 원치 않는 고통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재케 하였다.


  저자는 내용에서 무지개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그것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다양한 분야 안에서 펼칠 수 있는 무지개들, 즉 다양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매우 객관적이고 충분한 근거를 통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람의 역사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근거들을 모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사회로 귀결시키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는 왜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왜 존중되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때로는 다양한 근거를 하나의 결과로 귀결시키는 연역적 논리전개가 살짝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방대한 자료와 근거, 그리고 논리에 나의 막연했던 생각이 논리적 구체성과 근거를 갖추어 훨씬 명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적 외모와 젠더정체성에 대한 명료한 구분과 이들을 표현케 하는 유전자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를 통해 가장 간략하게만 정리해도 인간의 성과 젠더적 표현형은 최소 16가지의 모습이 있다는 설명은 생물학자로서의 저자의 탐구력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내 지식의 편협함에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저자는 동시에 현재의 의학과 모든 자연과학적 지식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소위 지식을 거머쥐고 조율한다는 전문가 집단들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희생당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말이다.  이는 이반일리히나 웬델베리 같은 사상가들의 사회적 관념성이 가득한 지식에 대한 비판과는 또다른 근거론적인 비판이다.  철저하고 치밀한 분석이 같은 사상적 비판을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 비교적 자연스레 읽히는 것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의 구체적 근거에 대한 갈망때문이기도 하고 동성애를 통해 기존의 지식의 흐름을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하여 재정렬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재미와 신선함때문이었다.  그리고 관념적 비판이 이렇게 구체적 근거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좀더 객관적인 모습으로 힘을 갖추게 되는 현상을 목격하는 즐거움때문이었달까.  나는 성적으로 이성애자이다.  내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관심밖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눈이 작거나 다리가 짧은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가 부정될 수 없듯이,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그들의 존재를 인정받아야하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역할을 존중받아야 한다. 아울러 그들이 이제껏 사회에서 겪은 고통과 불이익에 대한 보상과 배려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제안에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일은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분명 필수적인 요건이 될 것이다.

h*****1 2012.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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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대한 새로운 공감의 장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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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다윈의 종의 기원과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을 읽으면서 그간 어설프게 잘못 알고 있었던 진화론에 대해서-예를 들어 원숭이가 진화하면 사람이 된다는 식의- 잠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적이 있었다. 위에 살짝 적은 부끄러운 나의 잘못된 상식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진화에 대한 조금 더 정확한 지식들이 쌓이면서 역시나 나에게 궁금증을 일으킨 것은 대부분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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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다윈의 종의 기원과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을 읽으면서 그간 어설프게 잘못 알고 있었던 진화론에 대해서-예를 들어 원숭이가 진화하면 사람이 된다는 식의- 잠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적이 있었다. 위에 살짝 적은 부끄러운 나의 잘못된 상식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진화에 대한 조금 더 정확한 지식들이 쌓이면서 역시나 나에게 궁금증을 일으킨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진화와 동성애의 문제였다. 특히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이에 대한 의문은 더욱 심해졌는데, 그 책에 따르면 진화에 불리한 유전자는 점차 유전자 풀에서 사라지면서 모습을 감추기 마련인데 만약 동성애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면 이것이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지, 그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가끔씩 진화론에 대한 생각과 토론을 할 때면 여전히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진화의 무지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부분의 의문을 해소해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기존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성선택'이론을 과감히 깨부수고 '사회적 선택'과 그에 따른 동성애 행위의 생존에 대한 이로운 점을 부각시킨다. 특히 저자는 동물들의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한 것을 집대성하면서 우리가 잘 모를뿐더러, 오로지 이성애만 가득할것 같은 동물들의 세계, 야생의 세계에서 오히려 인간사회보다 훨씬 동성애 행위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저자는 동성애가 인류만의 특수한 행위가 아니며 또한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심지어 어떤 개체군에 한해서는 이성애만큼이나 동성애가 많은 사실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충격 아닌 충격을 전해준다.

또한 인간의 진화와 발생,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과학을 통해 동성애 유전자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어떤 성에 보다 영향을 미치고 이것을 과연 질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 우리가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젠더를 구성하는 요소를 단순하 남과 여로 보지 않고 8개의 젠더로 분화될 수 있다는 사실, 동성애자의 뇌와 이성애자의 뇌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점, 쌍둥이들에 대한 비교연구를 인용하여 동성애가 사회적 산물인지 유전적 산물인지 등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확실하게 분해한다.

 

즉 작가는 동성애에 관하여 동물에 대한 부분, 인간에 대한 부분, 사회에 대한 부분으로 논의의 장을 이동하면서 일관적으로 동성애라는 것이 특수한, 열등한 것이 아니며 그간의 성선택 이론과 진화론,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고 고착화된 사회문화에 의해서 소외되어온 동성애를 이성애와 동급으로 올려놓으며 '동물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격상'시킨 것과 같이 동성애를 이성애의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의 발표가 학계에 어떤 파급효과와 의미를 던져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간 진화와 과학 문제에서 동성애를 다루던 수준을 한단계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주제이며 저자의 주장에 대한 찬반이 어떻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동성애 문제를 과학적으로 보다 확고하고 의미있게 접근하게 할 수 있을 발표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 책의 무한한 가치는 그 곳에서 나온다. 결국 이 책과 저자의 주장은 그 주장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주장' 자체만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 자체에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고 하여 독자의 입장에서 책과 저자의 주장, 특히 저자가 글을 써내려가는 방식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말란 법은 없다. 책은 위에서 말한대로 동물사회에서의 동성애와 그에 따른 사회적 선택이란 가설에 대한 설명이 1부를 차지하며 2부에서는 인간의 발생학, 해부학,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서 동성애가 질병이나 저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역사에서 보여지는 동성애와 지금도 많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트렌스젠더 등, 양성적 구별이 아닌 다양한 성구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마무리짓는다. 결국 저자는 너무도 할 이야기가 많았던 듯 싶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트렌스젠더임을 밝히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굳이 불만을 가질 것도 없으며 가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항변이라도 하듯 책을 진행한다. 그간 당하고 살은 설움이 폭발하듯 저자는 너무 할 말이 많았던 듯 싶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환자를 볼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 중 한가지는 한번에 한가지씩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환자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그곳까지 아프다고 해서 그것들을 한번에 치료하려고 욕심내고 이것 저것 다 하다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방이 되고 치료도 더욱 더디기 마련이다. 차라리 한번에 한가지씩 정확한 목표를 주고 치료하는 것이 의사 본인도 명확하고 환자에게도 더욱 도움이 되고 이해시키기도 쉬움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너무 한번에 많은 것을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 같다. 책은 1부와 2부,3부의 주장이 각각 다른 것을 이루고 있다. 1부를 통해서는 동성애가 그간의 상식과 달리 진화에 꼭 불필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2부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 즉 동성애와 트렌스 젠더는 치료할 것도 저급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3부를 통해서는 동성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진행한다. 결국 책을 다 읽고나면 저자가 정확히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캐치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차라리 이번 책에서는 진화의 무지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성애가 진화에 필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하였다면 더더욱 좋은 책으로 독자들을 만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또한 한가지 아쉬움 점을 더 들자면 저자의 의도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진화에 주체성을 부여한다는 느낌을 계속 준다는 점이다. 진화는 내가 진화하고 싶다고 해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사회가 진화하고 싶다고 해서 진화를 이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자꾸 동물의 동성애와 진화의 상관관계등을 설명하면서 진화라는 것 자체에 의지가 있다는 뉘앙스를 상당히 풍긴다. 진화는 내가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내가 더 좋은 나로 바뀌는 과정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물론 혹은 급격하게도 이루어지겠지만- 살아남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이루어진 누구도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과정이다. 그 과정을 물론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쉽게 바꾸면서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마치 우리의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이루어지면서 진화가 진행될 수 있고 그 진화과정을 각각의 개체군이 의지를 가지고 제어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저자가 성선택 이론에 따른 잘못된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진화에 대한 새로운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닌가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지니는 가치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위에도 적은 것처럼 이 책은 그간 일반인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온 진화론중 성선택이론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논의를 끄집어냈다는 점만으로도 별점으로 표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특히 나처럼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충격에 사로잡혀 모든 것은  유전자가 잘 살아남는 방법으로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간의 과학계에 종사하며 성선택 이론과 그간의 진화론을 새로운 종교로 받아들였던 사람에게는 신선한, 혹은 죽을 만큼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로 인한 발상의 전환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이 책은 그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진화의 상징은 저자의 말대로 무지개, 즉 다양성이다. 진화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는 꼭 성에 대해서만큼은 암컷과 수컷, 이성애. 이것만으로 고정불변의 성역으로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간만에 내 뇌에 다양의 무지개를 심어주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 책이다.

j*******s 2011.05.31.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조금 낯선 진화, 섹슈얼리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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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무지개를 읽고서조석현·김영은|마음풍경 진화란 무엇일까? 그리고 진화란 무엇인가? 라는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곤 했다. ~일까? ~인가? 라는 질문은 같으나 차이가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방향성의 유무로 어떤 사건을 푸는 데, 진화 역시 그 중 하나다. 하나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하나가 아니라 근사치인 셈이다. 딱 떨어지는 답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한 번 정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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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무지개를 읽고서


조석현·김영은|마음풍경 



진화란 무엇일까? 그리고 진화란 무엇인가? 라는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곤 했다. ~일까? ~인가? 라는 질문은 같으나 차이가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방향성의 유무로 어떤 사건을 푸는 데, 진화 역시 그 중 하나다. 하나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하나가 아니라 근사치인 셈이다. 딱 떨어지는 답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한 번 정하면 바꿀 수 없어서다. 역사를 훓다보면 이러한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고, 진화론 자체도 그러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진화론과 다윈평전을 먼저 읽었다. 그렇다 해서 편견이 줄어들리 없지만, 이 편견은 창세신화의 분파가 아니다. 진화라는 것을 연기緣起로 보았기에, 어떤 논論이나 관觀이 내 의식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성전환한 교수이고,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라고 했다. 논리의 전개는 그러나 나와는 맞지 않았다. <진화의 무지개>에서 무지개가 다양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좋으나 강조하는 바가 몇 장에 걸쳐 있었고, 인문학의 고전이 되기는 부족한 상상력이라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장에 갈수록 그의 논증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옹호를 위한 이야기로 채워갔다. 성전환을 하는 이유가 알고 보면 정체성인데, 정체성을 다루는 것보다는 벌레와 동물의 예와 빈민가에서 지내는 이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가? 상상력과 도덕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되묻게 되었다.

최근 두 어달, 폐렴이 심하게 진행되어 평소에 보는 책도 보지 못했을 뿐더러 본다 하더라도 페이지 수가 몇 장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과 진화의 무지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진화를 성으로 국한해서 푼다는 것에 집중력이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성만이 진화가 아니라는 생각은 책을 읽을수록 강하게 밀려왔다. 다윈의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지만, 성보다는 삶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티벳에서도 제3성을 인정했다는 최근의 소식은 놀랄만하다. 그러나 놀라움 이전, 우리가 살아오면서 늘 그런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경멸과 존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왔다. 그리스 신화나 창세신화, 인도신화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신화가 현실이 되면 괴물이고 놀리거나 왕따를 시키는 게 일반화됐다. 이 일반화의 암적인 논리가 만든 것이 섹슈얼리티가 아닐까. 현대에 와서 이 섹슈얼리티는 상업화에 맞물려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간다고 하지만, 결국 큰 그릇에 담아보면 통섭의 눈이다. 그릇에서 빼내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다, 라는 것이 서양적 관찰이고 그들의 입장이다. 저자가 예를 드는 몇몇 가족들을 보면 황인종인 경우가 적지 않고, 도시가 아닌 빈민촌인 경우가 많다. 그 성전환자들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은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다. 보고서를 내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필요한 자료를 수집한 것을 잘 활용하고 직접 여행도 한 기록물이기는 하지만, 그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밀도가 높지 않은 문장은 읽기는 수월해도, 의문점이 들지 않았다. <진화> 그리고 <다양성>이라고 한다면, 다양성에 대한 진화의 입장을 피력할 줄 알았는데―제3의 성에 국한되었다는 것에 다양성의 손실이 있었다고 평을 하고 싶다. 내게 있어 성이라는 것은 남성여성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 진화의 한 축이라고 본다. 태어나는 것, 그 결정권을 내릴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현대과학이 손을 대려고 하고는 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조차도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이 결정되는지 알게 해준 읽을 거리가 없었다. 내 불찰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결정이 무작위성이며, 그것을 무위無爲이며, 자연이라고 부르고 있다. 태어난 후의 성을 바꾸는 것은 위에 언급한 정체성의 문제인데, 사회가 그것을 용인한다면 바꾸고 바꾸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질 이유는 많지 않다고 본다.


다양성은 그러나 현대에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 왜곡된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연구와 다양성이 결합된 것이라는 추측이 깨진 책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왜 읽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모름이 진화의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m*******e 2011.06.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