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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pe of Nanking ? 난징의 유린
제목에서 rape는 강간이라는 뜻이지만 지역을 대상으로 할 때는 무차별적인 파괴를 뜻하므로 난징의 유린으로 번역하였다. 실제 일본군은 난징 대학살 과정에서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군인, 민간인)을 죽였으며 그 중에는 최대 8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부녀자 강간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난징대학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7년 가을 난징여행을 계획하면서 “Lonely Planet China” 편의 난징대학살기념관 설명 파트를 읽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관광 정보 해설과 더불어 가이드서의 저자는 추가적인 독서로 아이리스 창의 역작 ”난징의 유린“을 권하였다. 귀국 후 아마존에 주문해서 받은 책을 한참 책장에 꽂아 두다가 올해 9월에 완독하게 되었다. 먼저 저자를 소개한다면 68년생으로 살아있다면 현재 53세쯤 된다. 이분은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부모가 들려 준 난징 대학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자라왔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인들의 단합이 강화되고 천안문 피해자 돕기 운동을 넘어 잊혀 가는 일본의 전쟁 중 잔혹 행위 규명과 피해 보상에 대한 요구로 관심이 확장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때 난징대학살을 다룬 기록과 사진을 접하면서 저자는 향후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결심을 하게 된다. 수 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이 책을 탈고하고 발간한 것이 1997년으로 저자 나이 30세 무렵이었고 그 후 왕성한 강연 및 집필 활동을 하다 얻게 된 정신병으로 2004년에 자살했는데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다. 이 책에서 아이리스 창은 대체 어떻게 30만명을 학살하고 8만명을 강간하는 대규모 전쟁범죄가 발생하고 용인될 수 있는가의 근원을 파헤친다. 그녀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전반적인 일본문화로 특히 일본병영에 깃들인 권위주의와 억압적 문화가 전쟁에서 진 피압박 민족에게 전가된 것으로 진단한다. 일본군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개인을 인권존중의 대상이 아닌 단지 국가의 부속품으로 희생되는 것이 마땅하다 식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도록 했다. 또한 일본 민족이 우수하며 기타 열등한 아시아 민족을 정벌하고 구제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오도된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기에 이들은 정벌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인 등 잔학 행위에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난징이 함락되기 전에 이미 장개석 등 중국군과 관료의 고위층은 중경으로 피난했고 중국의 패퇴를 직감한 외국인들도 대부분 피난길에 올랐지만 소수의 외국인들은 자신의 거처를 지키면서 학살과 만행을 피해 자신들에게 의탁하러 온 중국인들을 맞이하고 보호해 주었다. 좀 놀라운 점은 그중 독일인 욘 라베씨의 경우 난징지구 나찌당의 책임자였는데도 동맹국 일본군이 저지르는 학살과 만행을 막는데 앞장섰다는 점이다. 20명쯤 되는 외국인들은 나찌완장을 차고 중국인 보호활동을 했는데 미국이고 영국이고 모두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일본 병사들도 독일 나찌 완장에는 기가 죽어 폭행을 만류하는 이들의 말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만행을 국외에 알렸고,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하고, 히틀러에게 편지로 보고하는 등 큰 활약을 했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이들의 말로는 행복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나찌당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실업자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신적 충격에서 얻은 병 때문에 자살하기도 하였으며 만성질병을 얻은 사람도 있었다. 나찌당 책임자였고 난징 안전 지구의 책임자였던 라베씨의 경우도 자신의 직장인 지멘스에서 실직이 되고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궁핍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소식이 1948년 난징시에 전달되고 일본 강압 시기에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뜻은 성금으로 모아진다. 난징 시장이 분유 쇠고기 등 구호 물품과함 께 미국달러로 2000불에 달하는 성금을 전달하게 된다. 훗날 라베씨는 이들의 보답품이 도착하였을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과연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선현의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 왜곡문제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는데 독일과 달리 일본이 엄정한 전쟁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된 원인으로 냉전의 전개를 들고 있다. 미국은 팽창하는 소련과 공산세력을 막을 반공의 보루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전쟁 중의 과오를 추궁하는 기세가 점차 무뎌진다. 일왕 제도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배상책임도 거의 묻지 않는다. 중국은 대만과의 체제대결과 국제사회에서의 승인과정을 중히 여겨 마땅히 주장해야 할 배상이나 사죄 요구를 등한시했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자였고 난징대학살은 날조되었거나 과장되었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사태다. ”역사를 무시하는 자는 반드시 그로 인한 피해를 다시 겪게 된다.“는 격언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것이다. 중국은 난징에 1985년 중국 원어명 ”침화 일군 남경 대도살 조우 동포 기념관“이라는 긴 명칭의 대학살 기념관을 웅장하게 지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긴 기간을 일본에 침략당하고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제대로 된 기념관, 역사관과 자료를 갖추고 후세 교육에 임하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2020년 9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