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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논리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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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논리 진리>는 논리실증주의를 세상에 소개한 분석철학의 고전이다. 논리실증주의는 러셀의 논리학,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마하의 경험론 등에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형성된 철학으로, 카르납의 검증가능성과 포퍼의 반증가능성 등은 현대과학의 기본적인 검증원리가 되었다. 논리실증주의는 인간은 논리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언어를 넘어선 언어 이상의 의미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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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논리 진리>는 논리실증주의를 세상에 소개한 분석철학의 고전이다. 논리실증주의는 러셀의 논리학,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마하의 경험론 등에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형성된 철학으로, 카르납의 검증가능성과 포퍼의 반증가능성 등은 현대과학의 기본적인 검증원리가 되었다.

논리실증주의는 인간은 논리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언어를 넘어선 언어 이상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형이상학을 사이비 진술이라고 주장했다. 즉, 불필요한 가정없이 최소의 개념만으로 사실을 기술한다는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따라 형이상학과 같은 무의미한 진술들을 거부하고 검증가능한 범위에서 실증적인 진술을 사유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은 언어의 한계 밖에 존재하기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언어의 한계 밖에 있다는 것은, 경험적 전제로부터 초경험적인 존재, 즉 신이나 UFO의 존재를 정당하게 추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결론이 전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고 거짓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따라서 "감각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재"를 주장하는 진술이 무의미함을 논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어떤 제일 원리를 가정하고 그 원리의 귀결인 실재에 대한 완성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모든 가정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과학법칙이나 논리를 벗어나는 경험의 영역이 있다는 가정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대상에 대한 관념적 가정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망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확증도 기대할 수 없는 대상에서 확증을 찾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신학이나 철학이 사실과 경험에 관한 실험적 추론이 없다면 불꽃 속에 던져라. 그것은 궤변과 망상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니까"
신학적 관념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은 선결문제 질문의 오류 혹은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건 상식이다. 객관적 타당성이 없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판단에 대해 참인가 거짓인가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가치판단은 감정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 유용성 관점에서 역시 문제가 되는 진술로 동어반복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나다.'라는 진술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는 완벽한 진술이다. 그러나 "비록 동어반복은 우리를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는 사실에 관한 어떤 정보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것은 경험적 진술이다. 경험적 진술에 대해 저자 에이서는 다른 논리실증주의 학자와 조금 다른 수정된 검증원리를 제시한다. "어떤 명제의 참이 경험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면 그 명제는 강한 의미에서 검증가능하다고 말하고, 개연적으로 참인 명제가 될 수 있다면 약한 의미에서 검증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경험적 명제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기준은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관찰에 의해 예측을 확증한다면 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래에 그 명제를 반박하는 주장이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할 수 없고 '개연성'이 증가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대표적인 예인 '신'이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종교적 경험을 통해 신을 경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의 문제이지 객관적인 경험의 문제가 아니다. "신이 형이상학적 용어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개연적일 수 조차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일수도 거짓일수도 없는 형이상학적 진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초월적 신의 속성을 기술하려는 문장은 어느 것도 문자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실 과학적 명제들도 "매우 높은 개연성을 갖지만 귀납적 일반화"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과학이나 수학이 지식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어느정도 힘을 잃었다. 그러나 무엇을 믿을지 미리 생각하고 반대증거는 무시하고 근거가 빈약한 증거를 기반으로 동어반복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무의미한 형이상학적 명제가 아니라, 논증가능한 명제만을 다루는 것이 오컴의 법칙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비록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미신이 출몰하는 세상에선, 수학같은 논리적 명제를 근거로 물음을 통해 지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YES마니아 : 로얄 f*********0 2018.01.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