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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읽은 또 하나의 책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책 역시 바로 앞에 소개했던『무문자사회의 역사』만큼이나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1. 농경과 유전자 폭발 저자들은 농경에 유리한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단, 그것이 단순하게 '역사상 농경이 빨리 시작된 사람들에게 그러한 유전자가 있으므로 농경이 빨리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끝맺고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농경은 분명 기존의 수렵채집인들에게 새로운 생활방식을 떠안겼고(새로운 식이, 새로운 질병, 새로운 사회, 장기적인 계획의 새로운 이점들), 오랫동안 수렵채집 활동에 적응해온 사람들은 농경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경은 그러한 새로운 생계를 받아들이는 개체군 크기를 엄청나게 늘림으로써 적응적인 돌연변이의 생산을 크게 늘려나갔다. 즉, 이전에 비해 새로운 문제들도 많이 생겼지만, 새로운 해법들(이 책에서 말하는 돌연변이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에도 나오는 얘기로 저자들 역시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큰 지역이나 개체군은 곧 더 많은 잠재적 발명가들, 더 많은 경쟁하는 사회들, 더 많은 혁신들이 있다는 뜻이다. 잘 돌아가지 않는 사회들은 경쟁 사회들에 의해 곧바로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큰 개체군에는 단순히 이러한 사회적 변혁들뿐만 아니라 '유전적 혁신' 또한 많다는 것을(그리고 이것이 최근의 인간의 진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도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무언가를 이 책을 보면서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젖흡혈귀(우유를 마셔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주 재밌는 표현이며 또한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 얘기도 나오고, 저자들은 락타아제를 만드는 돌연변이가 결국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유리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정착생활, 그리고 농경에 필요한 가축들과의 생활은 분명 인류에게 전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문제점을 안겨주었다. 또한 새로운 농작물과 새로운 식사 준비 방법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덜 풍부한 영양분들을 제공해주었다. 그럼에도 왜 인류는 농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고, 농경에 적응해 왔을까? 인류는 술을 마심으로써 기본적인 전염병의 내성이 생기게끔 했으며(당연히 알콜중독에 대한 내성 또한 생겨났다), 쌀을 도정하거나 새로운 농작물을 개발함으로써 균형잡힌 식사가 가능하게끔 노력했다. 뭔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청동기시대 후기 송국리문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흔히 얘기하는 것들이 수전체계다.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고, 그러한 송국리문화는 일본 열도로 전파되어 야요이시대를 열었다. 그럼 여기에서 살펴볼 것. 이러한 논농사 문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분명 장단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점이 있었기에 사회는 그에 따라 변화했을 것이고, 그럼 그러한 부분들이 고고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까? 한번 살펴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단순히 고고자료상 이러이러한 변화가 있었으니, 당시 사회는 논농사가 발전되었다~라는 결론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과 이유로 그러한 변화들이 생겨났는지 보다 근원적인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멜서스의『인구론』(이 책 한번 읽어봐야겠다. 젠장, 아직까지 이런 책도 한번 안 읽어보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니...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을 거론하고 있다. 인구와 경제구조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또한, 엘리트의 등장이라든가 농경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구는 계속 정비례의 곡선을 그리며 확장되거나 발전되지 않았는가?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선사시대는 그 이후에 비해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던 사회였으며,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항상 적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시켜왔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선사시대가 아주 평화로웠다고 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문명이 발생하고, 국가가 생겨남으로써 폭력과 전쟁에 의한 인구 상실(?)은 줄어들게 된다. 단! 이제는 기근과 영양실조, 자연재해에 의한 인구 상실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엘리트가 아닌 하층민은 현상 유지 수준의 자식들을 길러낼 수 없었고, 인구는 생각한 것만큼 증가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적절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필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암튼...농경에 대해서 신선한 얘기들을 한 부분들이 있어 좋았다. 2. 유전자들의 대이동 저자들은 칭기즈칸이라는 한 사람의 정복으로 인해 오늘날 그 유전자는 세계 각지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그 한 사람의 행동은 세계사적으로 보면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는 오늘날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은 분명 유리한 대립유전자들이 먼 거리와 지리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한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일반적인 지역적 결혼의 결과로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렇게 빨리 유전자를 넓은 범위까지 퍼뜨리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러한 경우는 고대에도 종종 보였다. 아시리아와 사르곤 2세 등이 추진한 강제이주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 유고슬라비아나 체첸 공화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와 더불어 반달족과 베르베르족에 대한 이야기도 제시하고 있다. 반달족은 기원전 120년 경 슐레지엔으로 이주했으며, 3세기 무렵에는 루마니아 서부와 헝가리까지, 그 다음에는 로마 영토 내에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5세기 무렵 프랑스를 유린했고 곧 피레네 산맥을 넘어 포루투갈과 갈리시아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곧 스페인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휘하의 벨리사리우스는 반달족을 격파했고, 반달족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각지로 퍼져나가 베르베르족에게 푸른 눈의 유전자를 남겨줬다는 것이다. 1만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푸른 눈 유전자,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푸른 눈 유전자가 북유럽의 발트해를 중심으로 모로코, 사하라 사막, 자그로스 산맥의 쿠드르족,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타나는 이유를 저자들은 반달족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해적이다.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 하)를 소개했던 적이 있다. 1500~1800년 무렵 회교도 해적들에 의해 노예로 사로잡힌 유럽인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때 남자 노예들은 대부분 죽도록 일했기 때문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 했지만, 여자 노예들은 대개 하렘에 들어옴으로써 유전자 풀에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아랍인들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mtDNA를 보면 중동에 사는 아랍인들의 모계 혈통의 약 5%가 아프리카계지만, 아프리카 기원의 Y 염색체는 극히 드물다(Y 염색체는 남자가 갖고 있는 X, Y 염색체 중 하나로 아들을 통해 유전된다. 그에 반해 미토콘드리아 DNA는 여성에게만 확인되는 유전자다. 양자의 차이점 혹은 상태를 통해 분명한 유전자의 이동에 대해 밝힐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저자들은 유전자의 이동을 따라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론하고 검증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들은 생물학에 승자의 율법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 인류는 고인류를 대체했고, 반투족은 부시먼과 그밖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몰아내면서 팽창했고, 투르크-몽고인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을 차지했던 이란어를 쓰는 사람들을 몰아내면서 확장했다. 이때 혈통의 혼한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주된 경우는 '대체'였다. 흔히 말하는 '주민 교체'인 셈이다. 그럼 왜 어떤 집단은 성공했고, 어떤 집단은 실패했는가? 일반적으로 승리하는 자의 이점은 문화적인 것(무기, 전술, 정치조직, 농경방식 등)으로 많이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학습이 가능한 것들이다(예를 들어 이집트를 침략한 힉소스를 곧 이집트인들이 몰아낸 것과 같이). 그렇지만 저자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생물학적 능력들은 모방하거나 획득할 수 없다고 말이다(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인류가 현대 인류의 문화적 속성들 중 일부를 모방했고, 그것이 샤텔페롱 문화에 남겨졌지만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 것처럼 말이다). 이 점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며, 필자가 아주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3.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특화된 유전자 저자들의 주장이다. 누가 보면 뭐야 이거? 생물학적, 유전학적으로 특정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 아니야? 라고 할 수도 있다(실제 인터넷 서점의 어떤 리뷰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굉장히 불쾌했다고 한다). 필자 또한 처음에는 뭐야 이거?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돈을 잘 벌고,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전학적으로도 그게 맞다...는 뜻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분명히 얘기한다. 어째서 로마 제국 시절의 유대인들이 이례적으로 다른 민족에 비해 높은 지능을 가졌거나, 잘났다는 얘기는 없는데 특정 시기 이후로는 그런 증거들이 나타날까? 하고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특정 시기 이후에 유대인에게 어떤 사회적인 억압 혹은 제약이 따랐고, 그로 인해 유대인이 똑똑해질 수 밖에 없어졌고, 그 똑똑한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계속 유전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그럼 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대체 어떤 민족들일까?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북쪽에 살고 있는 이들은 8~9세기 무렵 역사기록에 나타난다. 그럼 그 이전은?? 그러면서 저자들은 3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는 아슈케나지 유대인 혹은 그 중의 일부가 로마 시대부터 프랑스 및 라인란트에 살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629년 프랑크 왕국의 다고베르트 왕은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면하려면 개종하거나 떠나라는 이야기를 했고, 이후 150여년동안 프랑스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둘째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같은 먼 이슬람 땅에서 기원한 유대인 상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카롤링거 왕조가 보호해줬고, 그들은 동방의 값비싼 물품들을 유럽으로 갖고 왔다. 셋째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데 이들이 남유럽, 즉 이탈리아에서 진출했다는 것이다(그중 하나가 917년 이탈리아 루카에서 마인츠로 이주한 칼로니모스 가문이다). 암튼,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다양한 수공예와 농경에 종사했었다. 그런데 아슈케나지 유대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 그들은 뭘 했나? 그들은 원거리 교역 및 고리대금업(무역과 금융)을 담당했었다. 아주 독특하게도.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금지했던 분야에 이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뛰어들었고 블루오션 부분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 쫓겨나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지방에 들어가 그 나라의 근대화와 재건에 도움을 주면서 다시금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유해진 이들은 더 많은 자식을 남겼고(다른 유대인에 비해), 더 많은 유전자를 번성시켰다. 단, 그들은 다른 집단과의 결혼을 금지했고, 유대교의 배타적인 부분도 이를 가속화했기 때문에 그들의 유전자가 더 넓은 범위까지 확산되거나 다른 유전자와 섞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유대인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쪽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지역사회들을 포함하는 범위에도 유대인들은 존재한다. 다만 차이라면 그들은 이슬람 사회에 속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처럼 화이트칼라에만 집중적으로 종사할 수 없었다. 즉, 같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었고, 곧 그것이 유전적 차이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 왜 같은 시기 서유럽의 다른 인종(아슈케나지 유대인 이외의 유럽인)들은 그렇지 못 했을까? 그들은 더 많은 유럽인과 개방적인 유전자 교환 및 혼합을 이뤄냈고(종교적으로나, 결혼에 있어서 더 개방적이었으므로) 그 유전자는 대부분이 농민이었을 다른 유럽인과 섞였다. 당연히 특수한 상황에서 유전이 계속 이뤄진 아슈케나지 유대인과는 차이가 났을 것이다. 거기다가 같은 유대인 중 이슬람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그래서 오늘날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아주 특수한 유전자 보존 및 전파에 의해 의학계와 법조계, 학계 등에서 강한 힘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마치 영화 <타임머신>에 나오는 엘로이족이 떠올랐다. 그들은 고도로 지능화된 족속으로 신체적으로 우수한 머록족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기도 했고. 인간은 그들에게 지배당하는 사냥감 정도?). 오늘날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수학과 문학 등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만, 재현 회화, 조각, 건축에서는 보통이다. 이 또한 그들의 유전자가 특화되었음을 알려주는 근거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어느 특정 분야에 특화된 집단이 있고, 그들의 유전자가 지속적으로 후세에까지 전해졌다면 기존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오늘날 세계에서 탑 클래스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고대 東夷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뭐 이런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 전체적으로 상당히 재밌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짤막짤막한 소주제의 챕터들이 여럿 모여 큰 장을 이루고 있기에 상당히 지루하지 않게 많은 내용들을 머릿 속에 담을 수 있는 책이다. 더군다나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한 내용을 그런 식으로 접할 수 있으니 더욱 더 효율적(?)으로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지만, 한번쯤 시간내서 읽을만한 책인 것 같다. 덧글. 원서의 표지보다 번역서의 표지가 더 마음에 드는 책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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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제목이 내용을 전부 말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제목대로 저자들은 인간의 진화는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날 때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문명의 선택압 때문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진화가 오래 전에 멈추었다는 것이 지난 세기 사회과학의 일반통념이었다. 최신판은 이 시기를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5만년전 이전으로 본다.” 아프리카를 떠났을 때 인간의 생물학은 고정되었고 이후 인간은 문화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오히려 그 이후 진화는 더 가속되었다는 것이 이책의 주제이다. “역사학이나 인류학 같은 기존의 사회과학들은 주로 브레인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브레인 소프트웨어란 관습, 신화, 사회구조 같은 문화적 발달을 뜻한다.” 그러나 현생인류의 빠른 발전이 소프트웨어의 진화만으로 가능했겠는가? 라고 저자들은 묻는다. 윈도우가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하드웨어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듯이 문명의 진화 역시 하드웨어의 진화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하드웨어가 중요하지 않고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만으로 충분하다면 “’포커 치는 개’가 실제로 가능했을” 것이라 말한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자 마자 경이로운 도약이 가능했던 것 자체가 하드웨어의 사건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후기 구석기 즉 구석기 마지막 시기의 고고학 기록-3만년전에서 4만년전에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한 형대 인류의 산물-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현대 인류가 유럽에 나타나면서부터 곳곳에서 혁신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약진’을 규정하는 새로운 특징들은 다수가 대단히 인상적인 것들이엇다. 동굴 벽화, 조각, 장신구, 엄청나게 개선된 도구와 무기들, 이들 중 일부는 일상의 실용적 문제들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왓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창조 능력과 발명 능력의 현저한 증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몰랐던 예술, 종교, 정교한 테크놀로지, 그리고 아마도 정교한 언어와 사회조직이 등장한 시기이다. 아프리카에 있던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나 네안데르탈인들은 종교도 없었고 예술도 없었다.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들은 죽은 동료를 그냥 버렷다. 죽은 금붕어를 하수구에 버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대 인류는 매장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있었고 종교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들은 이런 대약진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묻는다. 해부학적으로 별 다르지 않은 아프리카 직계조상들과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가? 저자들은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시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흡수하면서 하드웨어가 달라졋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함께 현대 인류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추측을 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생활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늑대처럼 큰 위험을 감수하고 매우 협력적인 사냥꾼들이었던 반면, 아프리카에 살았던 해부학적으로 현대적인 인류는 잡식성을 지녓고 현대의 수렵채집인들과 비슷했다. 이러한 차이들은 네안데르탈이느이 큰 뇌가 아프리카의 큰 뇌와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햇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순전히 가설적인 예를 하나 들면 큰 사냥감을 매복 공격했던 사냥꾼들로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햇던 네안데르탈인드에게는 먹이의 반응을 상상하고 예상할 수 있는 능력이 도움이 되엇을 것이다. 그것을 ‘동물의 마음 이론’이라 부르자. 네안데르탈인들은 강하고 몸집이 컷지만 사냥의 성공은 사자와 늑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지능에 의존햇다. 네안데르탈인들의 지능은 도구와 무기를 쓸 수 잇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활방식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큰 뇌는 그밖에 다른 방식으로도 생존을 도왔을 것이다. 예컨데 다친 아메리카들소가 어떻게 반응할지 더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잇는 네안데르탈인은 들소에게 갈비뼈를 걷어 채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종이 마음 이론을 가지고 다른 종을 상대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례가 잇다. 늑대들은 눈치가 없지만 개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진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추측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감정을 공감하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은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다. 그 특성은 사회생활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음 이론은 마음 읽기와 공감 두가지로 나뉜다. 두가지는 뇌의 같은 회로를 사용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사이코패스는 마음 읽기는 능란하지만 공감은 제로이다. 그러나 자폐증은 마음 읽기는 거의 제로이지만 공감은 정상이다. 저자들은 마음 읽기가 아마도 현대 인류가 자체적으로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오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저자들은 추운 지역에 적응해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능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열대에 살던 현대 인류가 짧은 시간에 바로 유럽은 물론 극지방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우리는 적응적인 대립유전자들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유입이 ‘인간 혁명’을 만들어낸 능력들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 혁명은 “어느 정도는 그들의 네안데르탈인 사촌에게서 훔친 유전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는 10배쯤 증가했고 빙하가 물러나고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그 속도는 더 가속화되엇다.” 간빙기에 새롭게 열린 기회는 농업이었다. 그리고 농업은 진화의 폭발을 일으켰고 지금도 일으키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 이유는 농업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가 많으면 돌연변이의 빈도도 많아진다.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무해하거나 해롭다. 그러나 그중 드물게 유리한 특성이 나타나고 진화가 일어난다. “전에는 10만년에 한번씩 발생했던 유리한 돌연변이가 이제는 400년마다 나타났다. 플라이스토세에 비해 약 100배나 빠른 속도엿다.” 농업은 숫자만 늘린 것이 아니다. 농업 자체가 자연선택을 일으키는 선택압으로 작용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농업으로 식단이 달라지면서 유전적 변이가 일어났다. 농경사회의 식단은 수렵채집사회보다 질이 형편없다. 단백질이 부족하고 비타민도 부족하다. 식단의 변화로 일어난 유전적 변이의 대표적인 예로 저자들은 피부색이 엷어진 것을 든다.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서 햇빛을 받아 비타민 D를 생성해야만 한 것이 백인종과 황인종이 진화한 이유라 저자들은 말한다. 그보다 더 강력한 선택압은 사회조직의 변화엿다. 농업 덕분에 “인간은 난생처음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생산하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엘리트 집단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런 발전들이 정주 생활과 맞물려 정부를 탄생시켰고 정부는 폭력을 통제햇다.” 정부가 폭력을 독점하면서 인류의 선택압은 수렵채집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되었다. 수렵채집사회의 인구밀도는 집단간의 전쟁으로 통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구체적으로는 엘리트 집단은 그 폭력을 통제했다. “정부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아마 그럼으로써 피지배자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뜯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축들끼리 싸우면 주인에겐 손해이다. “개인들 사이의 폭력이 제한되자 이제는 전염병이나 굶주림으로 (그리고 국가간의 전쟁) 죽는 개체군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농업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 그러나 “크지 않은 인구성장률조차도 식량생산의 모든 가능한 개선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잇다. 그러므로 인구는 주로 맬서스의 한계 근처에 머물고 삶의 척도의 지속적인 향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크고 잘 조직된 사회를 만들지 않았다면 전쟁이 극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했을 것이다. 실제로 전쟁은 우리 외의 많은 종에서 중요한 제한요인이고 초기 인류에게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협력을 할 수 있다. 특히 훔칠 가치가 있는 뭔가가 있을 때는 국가가 나타나 결국 지역 내 폭력을 제한했다. 그리고 평화는 극빈층을 만들었다.” 인구를 조절한 것은 가난 만이 아니었다. 가난을 만든 인구과잉 자체는 전염병을 불러왔다.인구밀도가 낮았던 시절엔 전염병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심각한 변수가 되었다. 그렇게 전쟁, 전염병, 기근은 돌아가며 인구를 조절했다. “농부들은 더 안전해졋다. 그들은 더 이상 습격할 수도 없고 습격을 당하지도 않았으니까. 국가 이전의 전쟁은 현대의 대규모 전쟁 이상으로 개체군의 상당부분을 죽이는 일이 잦았다. 농부들은 여전히 외부 적들과의 전쟁을 경험했지만 폭력으로 죽는 비율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래도 출생과 죽음은 여전히 균형을 이루었다. 폭력에 의한 죽음이 감소한 만큼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어나갓다. 정부 특히 좋은 정부는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줄였다. 적어도 칼로리의 측명에서는 그랫다.” 엘리트 그리고 그들이 만든 국가는 인간의 환경을 바꾸어 진화의 조건을 바꾸었다. 그렇게 달라진 조건은 단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달라진 선택압에 따라 인간은 조상과는 다른 행동양식을 개발했다. “농경 이전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렵채집인들의 대다수는 평등한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족장도 두목도 없었다. 오늘날 부시먼들은 여전히 ‘두목’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러나 농부들은 우두머리가 있었다. 땅을 소유한 결과엿다. 수렵채집인들은 멀리 떠날 수 있었지만 토지는 버리고 떠나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었다. 따라서 농부들은 권위에 굴복해야 했다. 옛 스타일의 독립적인 마인드, 즉 평등주의자들인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 잘 통했던 성격(‘결국 사람은 사람이다’)은 씨가 말랐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사람들 역시 지배 엘리트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적응도에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강력한 국가가 있을 때 공격적인 개인이 갖는 이익은 더 작아진다. 법과 질서는 자기 방어를 위한 전투적 태도를 덜 필요하게 만들었다. 북적이는 환경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에 선호되었던 몇몇 성격형질들이 냉대받게 되었을 것이다. 낯선 사람과 만날 일이 많은 사회에서는 높은 공격성에 대한 선호가 떨어질 것이다. 너무 자주 싸우면 반드시 지기 마련이다.” 공격성과 모험선호성은 감소해야 햇다. 그리고 농경에 필요한 근면함과 인내, 계획성에 어울리는 성격형질이 증가했다. “그러한 형질 중 한 가지는 오랜 시간 동안 보상을 미루는 능력이다. 씨앗으로 쓸 곡식과 씨가축으로 쓸 가축을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자제하는 전통도 참는 성향도 없었다. 부시먼을 양치기로 가르치는 일은 자주 실패한다. 그들이 양을 모두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경과 함께 인간은 이기적이 되었고 부지런해졌으며 자제심이 많아져야 했다. 그래야만 농업이 바꾸어놓은 사회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적응은 누적된다. “문명은 선천적 지능의 몇가지 측면을 꾸준하게 촉진하는 듯하다. 예컨데 상업활동은 구세계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고 상인은 군사작전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마음의 모델을 필요로 한다. 오래된 농경 문명들은 농경과 계층사회를 덜 경험한 집단들에 비해 복잡한 기술과 사회조직 형태들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인다.”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를 인용하면서 그러한 누적적 적응이 문명의 서열을 만든다고 말한다. “오늘날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르고 잇는 국가들은 여전히 수천년 동안 식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오래된 지배 중심들에 속했던 국가들이다. 혹은 그러한 지배 중심에서 나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국가들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세계를 지배할 전망은 어둡다. 기원전 8000년에 정해진 역사의 진로가 지금의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1만년 동안 누적된 적응은 집단 구성원의 성격형질과 인지적 형질을 바꾸어 놓았고 그렇게 쌓인 세월은 넘볼 수 없는 생물학적 우위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인종과 민족의 생물학적 평등’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한줌의 은화를 땅에 떨어트릴 때 전부 모로 떨어질 확률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잘 연구되어 있는 중요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어떤 개체군은 (평균적으로) 다른 개체군보다 특정 상황들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잇다.” 저자는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인도유럽어족이 지배적이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인도유럽어족은 오늘날 인류의 반을 차지한다. 그러나 인구어족의 조상인 아리아인들이 이동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야만인에 불과했다. 내세울 할 문화도 문명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생물학적 우위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인도유럽계의 팽창을 추동한 이점이 생물학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유럽인에게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락토오스, 내성 돌연변이다. 성인의 대다수가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새로운 종류의 목축이 가능해졌다. 즉 사람들은 소의 살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의 젖을 위해 소를 길렀다. 낙농업이 도축을 위해 소를 기르는 것보다 에이커 당 다섯 배 많은 칼로리를 생산한다. 신석기 후기 북유럽에서 낙농업은 곡물 농사보다도 더 생산적이엇다. 같은 양의 땅에서 더 많은 전사를 기르고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패창의 비결이었다.” 저자는 생물학적 불평등의 최근 사례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지능을 들고 잇다. “이들의 평균 아이큐는 약 112-115로 유럽인 표준인 100보다 훨씬 높다.” 통계적으로 이는 유의미한 차이이다. 그러나 “고전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남긴 글들을 보면 유대인이 특별히 똑똑하게 여겨졌다는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저자들은 유대인 중에서도 아슈케나지 유대인만 지능이 높아진 이유를 상인, 금융업자, 관료 같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자연선택이 된 결과이며 그렇게 자연선택된 형질이 다른 민족과 결혼을 금한 족내혼에 의해 희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실제 아쉬케나지 유대인의 신경세포를 보면 다른 민족보다 더 효율적으로 달라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보처리의 효율성을 지능이라 부르며 지능은 거의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면 저자들의 논지는 반박하기 힘들다. “농경이 발생하면서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가 모두 가속화되었다. 새로운 생활방식이 인간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농경 이전에 인간은 언제나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농경으로 인한 커다란 인구 증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뿐 아니라 유리한 돌연변이를 야기했다. 농경의 확산에 뒤따른 우리 종의 급격한 진화는 실로 ‘1만년의 폭발’이라 할 만한 것이다. 과학 연구자들이 자연선택이 현재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외면한다면 그들은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열쇠를 스스로 집어던집으로써 수수께끼를 미스터리로 바꾸는 것이다. 이제 과학 연구자들이 진화의 정체나 ‘심적 동일성’같은 도그마들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 평점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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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그리고 약간은 위험한 책이다. “모든 것이 유전자다”라는 말로 압축되는 이 책은 진화, 역사, 정복, 계급 그 모든 것을 생물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무모한 시도는 당연히도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문제에 민감함 사람이라면 많이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연은 자연이고 윤리는 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현대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약 4-5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나와 전 세계로 퍼진 단일종이다. 인류는 아프리카를 나온 이후 더 이상 진화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 고인류학계의 주류적 견해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음과 같은 말이 바로 그러한 테제를 대표한다.
“4만년 또는 5만년 동안 인류는 생물학적 변화를 전혀 겪지 않았다. 우리가 문화와 문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같은 몸과 뇌가 만든 것이다.”
이런 테제는 정치적으로 꽤나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과학적으로 지지되는 인류 동일설은 인종주의를 시대착오적 미신(그리고 죄악)으로 폐기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호미니드 종으로서 인류는 완전히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모두 형제이며 친척인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약 4-5만 년 전에 멈추었는데 그 이유는 문화의 능력으로 자연의 선택압을 이겨내어 더 이상 생물학적으로 진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심지어 최근 1만년동안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진화가 멈추는 일은 생물이 어떤 환경에 최대한도로 적응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경제학적으로는 “보도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지폐는 이미 다 주워갔다”고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안정된 종이 완벽한 상태에 이르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존 전략이 잘 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1만년 전 이후로 인류의 환경은 급속히 변화하였고, 그 변화의 속도는 문명의 성립과 함께 엑셀러레이터를 밟았기 때문에 진화 역시 더욱 급격하게 일어났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예컨대 개는 1만5000년전에 가축화되었는데 지금은 그 어떤 포유류보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 아메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진 옥수수는 테오신트라는 야생초에서 단 7000년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오늘날 이 둘을 비교해보면 근연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류 역시 마찬가지로, 10만년 전에는 커다란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찌르는 창을 이용한 근접 공격에 의존했다. 그러한 공격은 매우 위험하고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따라서 당시 사냥꾼들은 근육이 발달했고, 뼈가 두꺼웠다. 그러나 그러한 몸은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이 먹어야 했다는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었다. 이후 창 발사기와 활 같은 새로운 무기 덕분에 인류는 유지 비용이 적은(더 적은 에너지로 생존가능한)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진화란 트레이드-오프 게임(하나를 추구하면 하나를 포기)인데, 특수한 신체적인 장점을 획득하게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고, 결국 어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가 생존하는 것이다.
현대인류는 약 4만년 전에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조우했다고 한다. 두 자매종은 같은 종류의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우월한 적응에 뛰어났던 현대인류에 의한 완전한 대체가 1만년 동안 일어났다. 그러나 저자들이 보기에 이런 종류의 종간 투쟁보다 더 중요한 혁신이 폭발했는데, 그것은 1만년전에 시작된 농경이었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왜 농경과 함께 진화가 더 가속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농경과 함께 인구가 급증하고 밀집했고, 유전자풀이 확대됨에 따라 유리한 대립유전자들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인간 개체군의 크기가 증가하자 유리한 돌연변이가 점점 더 자주 발생했다. 아프리카 밖으로 퍼져나가기 전인 6만년 전에 현대인류의 수는 약25만 명이었는데, 30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는 대략 6000만 명이었다. 전에는 10만년에 한 번씩 발생했던 유리한 돌연변이가 이제는 400년마다 나타났다. 개체군 크기의 증가는 유익한 돌연변이의 공급을 증가시켰다. 복권을 많이 사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인간의 역사와 항상 함께해온 미시적 세계, 즉 세균과 바이러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농경과 함께 문명이 발생하는데, 문명의 꽃은 도시이다. 도시는 수많은 개체들이 밀집하고 근대 이전까지 매우 비위생적인 공간이었다. 따라서 전염병은 도시의 잔인한 친구였다. 농경을 1만년 동안 지속해왔던 유라시아 대륙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함께 키웠다. 그리고 1500년대 콜럼부스 익스체인지가 일어났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 사태에 대해서 일종의 기계적인 진화론적 방식으로 서술하는데, 이 지점에서는 웬만한 인내를 가진 독자들도 ‘놀랄 노’자일 것이다.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저자들이 실로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인지도 모른다. 현대과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인종주의 논의. 어째든 “모든 것은 유전자”이니까.
그런데 과거의 인종주의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의 시녀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얼개를 들춰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진화는 우연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오늘날 성공적인 요소들이 미래에 낭패로 드러날 수 있고, 과거에 열등하다고 간주된 속성들이 현재에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결국 진화란 자연사를 서술하는 것이고, 생물들은 더 잘 적응하는 종이 그렇지 못한 종을 대체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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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더디게 진행된다, 진화는.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단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니까. 인류는 한 5만년 전에 비해서 크게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즉 구석기 시대의 형태와 습성, 또는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이,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빠르게 진화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일까나. 예를 들면 우유를 마실수 있게된 어른들, 특별히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있고 동시에 특별한 유전병을 갖고있는 아쉬케나지 유대인들. 농경 생활을 받아들인지 수십년 밖에 되지 않는 원주민들이 특히 알콜 중독에 취약한 점. 여러가지 예시를 들면서 여전히 인류는 빠르게 진화중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진화의 속도를 한 인간의 인생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진화에 관련된 책들을 좀 읽어 보았지만, 이 책의 논증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을만큼 정통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농경 혁명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그에따라 당연히 진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부분이다. 다른 진화관련 서적과 같이 읽어볼만한 재미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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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고나서 뭔가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 가 없었다. 아쉬케나지 유태인이 유전적으로 똑똑하다고? 그럼 유태인이 지금 세계의 부를 좌지우지하는게 유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인가? 이 책 저자 유태인아니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논란이 이미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인종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예민한 문제이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인으로서 특히 거부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을 무시할 순 없었다. 또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유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평등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이후에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후 지난 1만년간 폭발적인 진화가 있었다. 수렵 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됬고, 이에 따라 인류의 생활양식이 바뀌었다.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응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에 유리했다. 파종후 수확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장기간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이러한 적응은 우리 유전자의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집단간에 지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학생집단과 아마존 원시부족집단간에는 분명 평균 지능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집단간 지능의 차이는 환경에 따라 나타난다. 만약 원시부족집단을 수십 세대동안 지적 자극을 받는 환경에 놓는다면(물론, 그들이 이런 삶을 원하진 않겠지만) 그들의 아이큐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다. 결국 인종간의 차이는 그들이 처해졌던 환경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앞으로 유전공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종간에 많은 유전적 차이점이 발견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과거의 암울했던 예와 같이 잘 못 사용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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