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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지루함"과 "딱딱함"을 연상하기 쉽다.
이 책의 경우는 이런 단어와 거리감이 있다.
저자는 스페인, 터키, 몽골 등과 국내의 명승지를 돌면서 느낀 생각과 더불어 다양한 사진들로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다.
발길 닿는 곳곳에 역사적 의미와 개인적 느낌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아주 史적인 고백과 아주 事적인 고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떨쳐 버리고 첫장부터 술술 읽어 가면서 가볍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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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우리나라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2003년 6월 24일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에 실린 주장이다. 2002년 2월부터 중국사회과학원이 수행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東北邊境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사업의 결과에 의하면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부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 지린(吉林)성 정부가 나서 ‘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井非朝鮮人).’라고 선언했다.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고구려 용담산성에 새로 세운 안내판의 제목이다. 사뭇 직설적이고 도전적이기까지 한 이 안내판의 제목 밑에는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 결과 고구려는 중국 고대 국가인 상(商, 殷이라고도 함, B.C. 1600~1046년)에서 나왔다는 것이 확정됐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고구려가 중국 동북변방의 소수민족이라는 데서 한발 더나가서 그 기원 자체가 중국의 한(漢)족이라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내친 김에 아예 못을 박아버리자는 심산인 것 같다. 이쯤 되면 역사 왜곡의 수준을 넘은 탈취다. 동북공정(工程)이 아니라 공작(工作)이다. 범죄자가 처음에는 돈만을 뺏으려다가 증거를 없애려고 이내 살인까지 저지르는 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가 한족이고 중국 역사라면 어떻게 될까? 우선 고구려와 핏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역사기록에 명확히 나와 있는 부여와 백제, 발해가 모두 중국 것이 된다.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한 고려 또한 흔들리게 되고, 결국 남는 것은 고대 고조선과 한반도 동남부 조그마한 초기 신라뿐이다. 반만년 동안 만주대륙과 한반도를 품에 안고 살아온 우리 역사의 뿌리와 민족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뽑히게 되는 것이다. 이리되면 우리가 애타게 염원하는 남북통일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전개상황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가 될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고구려 역사도발은 일본의 독도 분쟁 유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독도가 우리의 자존심과 경제적 이해가 걸려 있는 국가 주권의 문제라면 고구려 역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걸려 있는 보다 근본적 사안이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이에 달려 있다 해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미래 인류를 지배하는 로봇군단 스카이 넷은 인류 저항군의 총사령관인 존 코너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킬러 로봇인 터미네이터를 과거 세계로 보낸다. 인류 저항군 또한 어린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하여 다른 터미네이터(아널드 슈워제너거 분)를 프로그래밍하여 과거 세계로 보낸다. 첨단 IT와 특수 유동합금 및 타임머신까지 동원된 허리우드 활극이 볼만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키워드는 과거의 존 코너이다. 그가 살아야 미래의 존 코너 그리고 인류 저항군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영화에서 미래 인류의 희망이요 뿌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고구려는 우리에게 있어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존 코너와 같다. 고구려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이며 고향과 부모를 잃어버린 미아와 같다. 중국이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하며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우선하는 것도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나서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 터미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고구려 제7대 차대왕 때에 명림답부라는 지방호족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왕의 폭정에 시달리다 못해 거듭 반란을 청하자 마지못해 군사를 일으켜 새로이 8대 신대왕을 옹립하였다. 그의 나이 99세 때의 일이었다. 그 후 그는 최고 관직인 좌보(左輔)와 우보(右輔)를 합하여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초대 국상이 되었고 병권까지 장악하여 천하를 손아귀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되었음에도 항상 겸손하여 아래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고 위로는 임금을 충심으로 받들었다. 정적을 화합으로 대하여 차대왕의 측근들을 사면하고 아들까지 살려주었다. 군사전략에도 밝아 중국의 동한이 대군으로 침공하였을 때 모두가 정면 대결을 주장하였으나 그는 수성전과 초토화 작전을 왕에게 건의하였다. 이윽고 동한의 대군이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 퇴각하자 직접 추격전을 벌여 궤멸시켰다. 이른바 좌원대첩인 데 그의 나이가 106세였다. 결국 113세가 되는 해 가을 숨을 거두는 데 신대왕은 직접 명림답부의 빈소를 찾아 슬퍼하고 7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중국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강태공 즉 태공망 여상(呂尙)과 비견될 만하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한 예로 인터넷에서 태공망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내용이 있다. 태공망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그가 썼다는 육도삼략 병법, 우화등선했다는 신비스런 이야기, 그를 주제로 한 만화 봉신연의, 낚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명림답부를 검색해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들의 것을 이렇게 방치하고 무시하다니.. 이러고도 과연 우리가 고구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스러운 고구려 역사를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가? 역사에서 기록이 부족하고 자료가 없다는 것은 핑계이고 후손들의 직무유기다. 고구려가 우리 조상이라면 명림답부와 같은 초인의 삶을 발굴하여 빛나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은 마땅히 우리가 해내야 할 몫이다. 그런 창의적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고구려는 완전하게 우리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말 김부식 이후 조선시대부터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배해 왔던 한족 관점의 의식을 털어 버리지 않고는 결코 중국을 극복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그들은 전통적인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족’과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 주변을 블랙홀처럼 빨아드리고 있다. 우리의 뿌리인 고구려를 지키고 그 DNA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강력한 역사의 터미네이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구려를 세운 풍운아 고주몽이 앞에 있다면 소리쳐 물을 것만 같다. “너희가 명림답부를 아느냐?”라고. 우리가 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중국의 고구려 역사 찬탈 공작은 지구촌에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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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고백'에 나오는 칼럼 한편을 통째로 옮겨보았다.
저자의 역사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반추하여 현상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거늘, 고구려가 우리의 '존 코너'라는 것은 정말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단순한 사실(史實)에만 빠진 사람이 아니다.
책을 보면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는 비참한 사태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아가 우리가 창조하고 채색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스스럼없이 술자리에서 논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순수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역사를 좋아하는 공무원, 경영자를 넘어 역사 자체를 생활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역사인(歷史人)이라고 할까?
역사가 가미된 가벼운 기행문과 다소 무거운 역사칼럼이 적절히 섞인 '아주 사적인 고백',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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