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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철학적인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저 편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에 안심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있었을 때도 다 읽은 지금도 무척이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변화를 꿈꾸고 있어서 인지 그때의 고생을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고생이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생도 이 책의 제목처럼 행복한 고생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그저 편히 읽을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생각을 잠깐 들여다 본다면 아마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너무나 크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큰 고통을 큰 일을 전부 고생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안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도움을 준다. 고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고 깊이 생각해 볼수 있도록 도와준다. 옛말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아직은 어린 축에 속하는 나. 그러나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확실히 든다. 그래서 고생도 더 해보고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깊은 생각을 갖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고생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갖게 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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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작가님의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신정근 작가는 고생이란 개념을 부모세대, 우리세대, 자식세대 3세대에 결처 나열하고 있다. 부모님세대의 고생학이란 물러설 곳 없는 전쟁으로 파부침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세대의 고생학으로는 변화와 저항의 시대 한 가운데로 화씨지벽을 이야기 하며, 자식세대의 고생학으로는 새로운 삶에의 도전을 말하는 계명구도 말하고 있다. 어찌그리 우리의 시대상과 잘 맞아떨어지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부모세대의 고생은 산다는 것이 고생 그 자체였을 것이다. 힘들고 모진 부모님들의 고생이 있었기에 우리 세대에게 인생은 한마디로 기회의 장이되었던 것이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온전한 혼신과 노력을 다했던 우리 세대, 나보다는 가족이 앞서고 나의 헌신과 배려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세대. 이러한 우리세대의 헌신과 노력으로 자식세대에게 인생이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수 있는 무대가 되어진다. 풍료로움속에서 지내는 세대이지만 그들이 감당해야할 고생은 그리 녹록치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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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고생도 사서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랐다. 고생을 알아야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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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을 부모세대,우리세대,자식세대로 구분하여 설명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니 과거의 부모님들의 고생한 시절이 많이 생각이 난다.아끼고 하던 생각이 많이 나며 먹을 것도 자주못먹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과거가 어른들이 식사를 입에 대야만 나머지 가족들이 식사를 하였지만 요즘은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나가고 가족은 하나의 하숙집과도 같이 변모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이러한 고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듯하다.
예능프로에서 연예인들이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 박장대소로 웃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리얼체엄 즉 해병대캠프같은 스스로 고생을 하는 경우까지 있기도 하다.
고생이 고생으로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고생은 반드시 희망으로 점철되어야 한다.
우리삶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고생의 경험으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기때문이다.
3대의 세대문화를 비교검토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느낀점은 소통이 제일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수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를 어느정도 받아들일때 가족간의 화합과 구성원들의 단합으로 행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맹자의 이야기중 하늘이 그사람을 큰 인물로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시대의 행운아로 별개로 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중 다수가 고생 고생하여 여기까지 와서 성공을 일구어낸것을 우리는 알수가 있다.
책을 통하여 고생의 의미와 이시대의 가치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부모세대들과의 소통또한 기대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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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고생에 대한 철학적 소고"를 예상하였으나, 철학을 직업으로 하는 저자가 우리들은 이렇게 고생했다고 적었다. 잠든 얼굴을 쓰다듬던 거친 손마디, 허옇게 서리내린 머리카락, 흘러간 세월이 켜켜이 쌓이 주름살. 누가 그 분들의 고생을 부정할 수 있으랴. 평균 수명 70세가 훌쩍 넘어서는 시대에, 환갑을 맞으면 온 동네가 잔치하던 옛 시절, 한편으로는 알프스 산을 넘던 나폴레온 군대의 평균 키가 150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보라. 21세기 지금, 지구 어느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마실 물을 얻기 위해 수십킬로를 걸어 다녀야 하는 아이들과, 굶주림과 추위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도 60세가 되도록 살았다는 것이 동네 잔치를 해야할 만큼 기쁠 것이고, 기아에 시달려 채 자라지 못할 것이다. 이 처연한 현실과 고난을 그 아이들은 자신을 키워주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고생이 고생이 아니게 되는 순간에만 고생은 무용담이 된다. 현재진형의 고난을 단순히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하는 그 고단함 혹은 다시 그 시절로 후퇴하지 않으려는 절박함도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 저자가 보기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재가 고생은 줄었어도 더 행복하지 않다. 고난에 맞닿아 본 사람만이 두려움을 떨칠 수 있으니,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방법으로 저자는 고생을 추천한다. 진짜로 한번 당해보면, 그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우리들은 그렇게 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안주거리로 화한 무용담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두려움은 경험의 부재에서 오기보다, 어쩔 수 없이 겪을 수 밖에 없게 되는 무기력함에서 온다. 당장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도, 한순간 삐끗하며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곳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사회에서 두렵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을까.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줄 위에서 조금씰 출렁거려보면 두려움이 가실까. 물론 저자가 이야기 하려는 바는 충분히 알겠다. 각자 다른 경험을 한 세대들이 공존한다. 서로 이해 했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니 고생이 단지 고생이 아니라 성장하게 하는 힘이 되더라. 충분히 공감하고 맞는 말이다. 단 살아남는 자에 한해서라는 단서도 같이 붙여 주었으며 좋았을 것을.
"네 것 내 것으로서 내 집이 아니라 네 것 내 것 구별이 없는 천하라는 넓은 집에 머무르고 천하에서 제자리를 찾아서 일어서고 천하가 나아갈 큰 길을 걸어간다. 뜻이 통하여 하나로 모이면 사람들과 더불어 밀고 나가고 뜻이 통하지 않으면 홀로 그 길을 헤쳐 나간다. 부귀로도 타락시킬 수 없고 빈처으로도 그만두게 할 수 없고 무력으로도 무릎 꿇릴 수 없다.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 "
오오 멋있다. 울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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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평생 살면서 고생을 한다. 먹을 것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은 세대들을 향해 ‘고생도 모르며 산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디 고생 없는 인생이 있을까! 방법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단 차이가 있다면 고생을 통해 자신이 인격을 성장시키는 사람과 다시는 고생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히려 인격적으로 부족함이 더 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인생에서 겪는 고생을 통찰력 있게 살피고 고생을 통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 철학자의 글이 있다. 지난 100년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큰 고생을 하며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회적 격변기에 절대적 빈곤이 겹쳐진 시대를 살았다. 삶에서 물러설 곳이란 어는 곳도 없는 시대, 생존하기 위해 생존할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게임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라고 하니까 할 수밖에 없고, 악쓰면 살 수밖에 없는 세대였다. 그리고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들은 절대적 빈곤에서는 벗어낫다지만 산업화, 도시화를 겪은 변화의 시대를 살았다. 끔직한 독재의 경험을 당연하다 믿고 살다가 어느 순간 민주화를 겪은 세대로 공적 영역에서는 자유를 맛보고 있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권위와 명령에 복종해 시대를 살았다. ‘열심히’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살면서, 회사를 내 집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해야 하니까 한다는 의무감에 살았으며,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면 살 던 세대였다. 마지막으로 자식 세대, 이들처럼 고생을 모르고 산 시절이 있었을까 생각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고생이 이들을 기다라고 있다. 이들이 이제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한 분야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모든 것을 잘 해야 된다. 이른바 스펙 쌓기. 대학 졸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어는 기본, 취업을 위한 각종 경험과 경력들 그러고도 이들은 이태백이 아닌가! 그러고도 세상은 ‘고생도 모르고 산 것들’ 이라고 외면한다. 배고픈 적 없다고 무시당하는 세상, 이게 더 서럽다. 고생! 피하려 하면 할수록 삶의 한복판에서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동반자. 이 친구를 만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어떤 사람은 고생을 만나 독선, 과시, 불신, 포기라는 미운 자식들을 낳아 그 속에 둘러싸여 산다. 고집불통이다. 요즘의 화두인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고약한 고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겸손, 여유, 나눔, 공존이라는 고생의 어여쁜 자식을 낳은 사람들은 사막에서 꽃을 피우고, 인생에서 희망을 피우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고생(苦生)을 고생(枯生)으로 이끌지 고생(高生)으로 이끌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p.145). 후기 : 우연치 않게 좋은 글을 읽었다. 뜻하지 않게 곳에서 횡재를 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깊이 있는 책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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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들자 세상으로 어른들은 항상 말한다. 젋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그럴때면 머릿속에는 이미 나를 변론할 말들이 100가지는 넘는 것 같다 "내가 왜 고생을 해야 해?!" 부터 "그런 거 필요없어 싫어"까지 온갖 변명들이 머리를 헤집고 다니지만 결론은 고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이다. 하지만 그 고생’ 이미 자처해서 하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을 수록 피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처럼 앞만 보며 먹을 걱정 입을 걱정 하면서 살진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처럼 오로지 공부를 파고들어 성공에 목메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 세대는 자신을 위해 고생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이렇게 보면 고생의 의미는 시대를 따라 조금은 변화된 듯 하다. 보통 20대에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유럽일주도 있겠고 전국을 누비는 국토순례같은 일주라던지 해외봉사를 가는 일도 있다 단순히 예로 들은 이 세가지 모두 쉬운 것이 아니다. 유럽일주의 경우 편하고 호화스런 여행이 아니라 청춘을 대표하는 배낭여행의 일종으로 커다란 백팩에 청바지와 운동화 그리고 약간의 여비만을 쥐고 외국의 바닥까지 훑는 여행이라 한다. (개인적으로는......생각만해도 발이 아프다) 해외봉사의 경우 현재 많은 단체들이 후원을 하기 시작해 조금씩 기회도 열리고 도움을 필요로 한 많은 국가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중에 있어 좋은 기회이다. 위의 예들은 쉽게 생각하면 이력서에도 들어갈 수 있는 예들이다. 이력서에 넣기 위해 봉사하는 이들을 아직까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물적으로 풍부한 시대에 태어나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이나 친구가 있지 않고는 가난’이라는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가 잘 살지는 못하지만 부모세대나 그 윗세대와 비교해서도 어렵다고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보릿고개라던지 먹을게 없다는 말은 교과서나 티비에서만 보아왔다 하지만 봉사를 하면서 그렇지 않은 세상이 더 넓게 주위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였던 것 같다. 자원봉사에 조금씩 중독되어 가는 것은 정말 많은 분야가 있다. 새로운 분야의 봉사를 할 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이것은 곧 고생의 매력과 중독성이 아닐까? 하루 자고 일어나면 말끔히 털고 일어나는 우리는 이런 고생쯤은 사서 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건 정말 세대를 아우른다는 느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우리 세대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 어느 교수님께서 말해주신 적이 있다. "어른은 어른이라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할아버지할머니 세대가 죽지않고 이만큼 살아온 것은 운도 있지만 각자의 지혜로 살아왔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귀를 멤돌았다 인생에 나이테가 있다면 그 이름은 고생이 아닐까 하고.. |
![]() '철학자'가 말하는 '고생'학이라니, 솔직하게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고리타분한 무게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문장의 길이가 비교적 짧고 의미가 명확하며 가독성이 높은 문체를 가진, 이 책에 빠져 들수록, 제목이 주는 선입견이 책의 가치를 다소 폄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고생苦生과 락생樂生이 섞인 비빔밥이지만, 우리는 저마다 락생樂生을 꿈꾼다 고생은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은 유명하지만, 그 또한 어쩌면 그저 '젊음'이 있어 감수할 수 있을 뿐, 고생을 자처하는 경우는 봉사활동과 같은 특별히 의미있는(?) 경우가 아니고서 흔하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고생의 가치를 논한다. 단순히 고생을 경험하면 넓은 그릇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아니다.먼저 보릿고개를 겪은 작가의 부모님연배들 제 1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인 제 2세대들,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부르고 듣는 내 또래인 제 3세대들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들의 시대사회적인 배경과 그를 바탕으로 한 생활상을 들어, 고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또 고생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태도를 이야기했다.
편한 것이 반드시 이롭지 않고 便而不利, 편하지 않지만 이로울 수 있다 不便而利 작가는 1세대들이 겪은 고생이 보릿고개 걱정 없는 풍요로운 지금을 만들었고 2세대가 겪은 고생이 독재의 막을 내리고 자유의 시간을 가져왔으며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아 온 3세대들에게 고생도 일종의 스펙이라 충고하면서, 고생이 장래에 갖는 의미를 말한다.
나는 싫은 것을 표현하길 두려워했다. 이제는 울며 겨자먹기로 고생길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고생을 마주하며 어느 철학자와 같은 행복한 인생을 꾸려가고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從吾所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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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과를 전공한 저자의 글은 재미있기도 하고 동양철학을 쉽게 풀이해 주어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부터가 참 특이하다. 행복한 고생학이라니...고생은 고생일진대 행복하다니.. 역설적인 제목에 더욱 호기심을 가졌다. 게다가 남편과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온 사실이 더욱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부터 지금 중년을 향해가는 혹은 이미 인생의 중반을 달리는 우리 세대, 그리고 지금의 대학생 세대, 한창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생 이상인 우리 자식 세대들의 고생들은 어떤 것인지 읽다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고진감래. 고생(괴로움)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군대도 끝이 있기 때문에 그 고생을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면 88세대니 이태백이니 태반이 백수가 되는 시대만 기다리고 있다면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그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농촌에서 보릿고개를 견디며 없이 살았던 시대였다. 그들이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세대는 과연 1박 2일이나 남자의 자격과 같은 리얼 프로그램에서 나름대로 고생을 하며 그 고생을 뒤로 하고 성공을 이루었을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과연 우리 인생은 이렇게 방송처럼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고생학을 통해서 고생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하고 깨달음을 주는 동양의 고전들의 경구를 소개해 주고 있다. 논어라든가 도덕경같은 구절은 동양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와닿게 잘 풀이해 주고 있다.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고생의 이야기들은 어느새 위안이 되고 돌파구가 되어 준다. 역시 독서만이 나의 절대 위안이라는 생각을 또 한 번 들게 해 주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