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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낚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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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를 번역하여 들여올 때 그 제목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우리와 관점이 매우 다른 일본 사람들이, 그것도 ‘역사’에 관해 쓴 책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소설이나 에세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노르웨이의 숲’으로 알고 있는 일본 소설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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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서를 번역하여 들여올 때 그 제목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우리와 관점이 매우 다른 일본 사람들이, 그것도 ‘역사’에 관해 쓴 책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소설이나 에세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노르웨이의 숲’으로 알고 있는 일본 소설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히트를 친 예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학술서적의 색깔을 지닌 책 제목을 그 내용과도 맞지 않게 재구성하여 출간하였다면 그것은 정말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학술서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서 전 국민을 공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려는 기특한 생각이라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2. 원제목 ‘몽골이 만든 세계지도’를 왜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로 바꾸었는가?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올라 있는 이 책의 표지를 본 적이 있었다.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라…. 책 제목이 풍기는 냄새로 추측하건데 분명 조선의 원대한 세계관에 대한 찬양의 책으로 보였다. 게다가 이 책을 일본인이 썼다니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중반쯤 읽어가면서부터 든 생각은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일까 하는 것이다. 분명 글의 내용의 대부분은 대원 울루스가 어떤 배경과 경로로 이러한 세계지도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글의 중반을 넘어가서야 비로소 조선 태종 때 지리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과시하기 위해’ 중국의 지도와 일본의 최신 지도를 ‘합성’하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했고 그것이 ‘어떤 경로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 전해졌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 이후에 조선이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제작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가 일본에 도래한 후에 이 지도에서 빠진 위의 부분을 “가장 우수한 것을 선별하여 완벽하게 결합하고자 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350쪽 10행)”으로 일본인들이 보충하여 새로운 세계지도들을 제작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지식활동을 폄하하고 당시 일본의 약탈행위를 의도적으로 간과하며 일본인의 기질을 자의적으로 갖다 붙여 칭찬하는 비학문적 연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조선이 그린...’이라는 제목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도 풀리지 않은 ‘조선이 그린...’이라는 제목에 대한 물음을 풀기 위해 일본어로 써진 원제를,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히라가나 가타가나 표를 대조해가며 찾아본 결과 미야 노리코의 책은 당연하게도 대략『 몽골제국이 만든 세계지도』정도였고 부제가 「지도는 말한다」였다. 글의 후기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일본의 한 학회에서 ‘지도는 말한다’를 주제로 하는 여러 연구 중의 하나였고 애초에 조선 지도의 훌륭함을 언급하려는 목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 지도를 입수해서 지극정성으로 보관하고 새로운 지도로 업그레이드하여 제작하였으며 1900년대 초반부터 열렬히 연구한 일본 그들의 학문적 기질과 성과를 보여주려는 목적 정도로 보면 되겠다. 1700년대 겐타이의 예를 들면서 저자 자신과 생각과 그 당시 겐타이의 생각이 같았다는 점을 언급하고는 겐타이를 “명실상부한 조선 전문가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라며 은근히 자신을 ‘명실상부한 조선전문가’로 추켜세우고 있지 않은가?

3. 추리와 추측 일색

  하지만 고대사 연구의 한계인가?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앞에 놓고 시종일관 추리와 추측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는데 대표적으로 보자면 다음의 예들이 있다.

  저자의 논리가 다음과 같다. ‘권근의 발문이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앞서, 태조4년에 작성된 천문도의 비석에 권근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는데 그 발문을 베낀 것이 설장수의 동생인 설경수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동생 설명수도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등장하는데, 세종조에 한글창제를 시작으로 하는 문화 사업 면에서 활약한 것도 설경수의 아들 설순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천문도와 청준, 이택민의 두 장의 지도는 모두 설씨 가문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고도 명과의 교류는 많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명에서 들어온 인물이 조선에서 대대로 활동하였다는 것만으로 “지도”들이 그 집안에서 나왔다고 추측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해석 아닌가.

  또 화풍이라든가 구도, 채색, 지도의 형태 등에서 전혀 닮지 않은 일본의 지도들, 남만병풍과 세계도에서 단지 원형의 세계도가 공통적으로 우측 상단에 추가되었다는 증거를 들며 바로 그것이 두 지도가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는 부분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한 것은 한글에 대한 한 줄 언급이다.

3. 조선의 한글은 파스파 문자를 모방한 것?

  원의 방대한 자료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저자는 일본에서 귀중하게 취급된 백과사전인 사림광기를 언급하기도 하고 파스파 문자를 언급하기도 하면서 샛길로 자주 샌다. 그 중 쿠빌라이의 명에 의해 티베트 승이 만든 파스파 문자를 상세히 설명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한글도 이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훈민정음의 제자해에 한글의 창제원리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모음의 독립이라는 독창성 등 현대 활동하는 한국 연구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자칭 ‘조선전문가’라는 일본의 학자가 이런 저런 균형잡힌 반론을 싣지도 않은 채 짧은 저자의 소견만을 한줄로 써 놓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n*****u 2011.09.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