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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눈>
...... 모르는 사람과도 주고받던 인사말을 앗아갔다 느린 말씨도 순하디순한 말씨도 앗아갔다 말들이 빨라졌다 말들이 날섰다 가을 썬득썬득한 바람 속 사람들의 해맑은 눈빛들도 앗아갔다 차츰 사람뿐 아니라 소와 말의 눈도 자갈밭머리에서 충혈되어 사나웠다
대전역전 껌팔이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 하나를 죽도록 패대고 있었다 삥 둘러서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바람이 먼지를 일으켜세웠다
누구에게도 고향산천의 정든 얼굴 없었다
고은 시인의 대작 <만인보>연작 시집 16권에 수록된 시다. 요즘 애들은 말이 참 거칠다. 교사들과 자주 마찰을 빚는 주된 이유들 중에 하나가 말버릇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00야 일어나야지. 수업하자~." "그냥 좀 놔둬요. 깨우지 말고." "그래도 몇 자 공부해야지?" "됐다고요 씨발."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속된 말로 '야마가 돈다'. 그렇다고 이녀석이랑 맞대거리를 하자니 쪽팔리기도 하고 만약에 말빨(?)에서 밀리기라도 하면 그 이후로 수업은 끝이다. 나도 처음엔 쪼인트도 까보고 달래도 보고 여러모로 해봤는데 이 말을 들어넘기기가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서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이야기해 보면 사실 '씨발'이라는 욕의 어마어마한 원래 의미대로 사용했던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좀 점잖은 어른들이 하는 말로 바꿔보자면 '젠장'이나 '제길'정도랄까? 그나마도 절반은 본인이 욕을 했던 사실조차 기억을 하지 못했다.(개 중에 오리발 내미는 녀석도 물론 있었지만)
그러니까 요는 이거다. 이녀석들의 '씨발'을 액면 그대로 매번 '씨발'로 받아들이면 서로 무지하게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 위에 인용한 시를 다시 한 번 보자. 첫 행 ....는 원래 ....가 아니다. 원래의 시구는 '그 전쟁은'이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전쟁을 가리킨다. 이 전쟁 후에 거칠고 각박해져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의 언어행위라는 표상을 통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쟁은'이라는 시구를 말줄임표로 대체하고 난 나머지의 부분은 2014년의 지금에 적용해도 하등의 무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언어 현상은 결국 사회 현상의 하부구조로서의 변화를 겪는다고나 할까. 전쟁이라는 사회 현상이 사람들의 심성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언어의 변화까지 초래했듯이 아이들의 거친 언어는 그들의 심성이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부터, 그들 주변의 먼저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거친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들이 욕한다고, 말이 거칠다고 해서 고운말쓰기 캠페인을 하는 것은 속이 곪은 환자의 가슴에 빨간약을 바르는 것과 같은 엉뚱한 짓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욕질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는 언행을 못난 어른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그냥 못본척 하자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이 자식 말버릇이 그게 뭐야!' 대신에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어른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통감하며 좀 더 부드럽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녀석아 씨발이 뭐야 씨발이. 에이발, 비발도 있는데 왜 3단계부터 시작하냐고.' 이런 어이없는 드립에 픽 웃음이 터진다면 이미 갈등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자라니까 학생이고, 아프니까 선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