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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체시 한 보따리>
- 고은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등극하였다 조마조마하였다
1610년 명나라 가는 종사관이 되었다 자유분방 허균
한양에서 평양까지 가는 동안 근체시 4백편을 썼다 누가 감히 혀나 내둘러볼 일이던가 괴괴하여라
그 시보따리 스승 이달에게 행편으로 보냈다 스승의 강평이 여행중 행편으로 돌아왔다
순전히 무르익었건만 아직 성당(盛唐)의 품격을 섭렵치 못하였도다 스승에게 반박을 보냈다
스승께서 틀리셨습니다 변화를 모르십니다 지붕 아래에 또 지붕을 세웠으니 어찌 귀하다 하겠습니까
근체시가 비록 당에 가깝지 않으나 제 나름으로 이루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당에 가깝다 송에 가깝다 할까보아 사뭇 걱정입니다 사람들이 제 시를 보고 이것은 허균의 시다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는 공자 맹자 다음 허균이라 허자라 자칭한 오만 황홀하였다 과연 당나라 시인 흉내가 아니라 자신의 시를 쓰는 시인의 꿈
좋다
요즘은 수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수업의 방식과 동기유발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문학이야 뭐 원래 내용이 다들 좋은 내용이니까 어째보면 내용 자체를 고민하기보다 그 내용을 제시하는 방식이나 향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에 가깝겠지만, 사실 강의식 수업의 수월함,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해 수업을 하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힘든 부분이 생길 때가 많았다.
수업 즉,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은 어찌되었든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에 올해 역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을 한 장 덜렁 띄워놓고 비평을(그래봐야 인상 말하기지만) 한다든가, 책으로 엮여 나온 또래들의 시(詩) 작품을 놓고 모방시를 써보면서 표현하기 연습을 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중에 가장 호응이 큰 것이 모방시 쓰기다. 서울의 어느 공고 아이들이 엮은 시집인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라는 책에서 몇 편의 시를 골라 시의 구조와 의미를 설명해주고 아이들에게 모방시를 쓰게 한다.(자세한 내용은 해당 시집의 리뷰에서.)
주로 행과 연이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반복되는 시를 골라주고 아이들에게는 문장의 주요 성분만 자신의 경우에 맞게 바꾸도록 지도한다. 그러다보면 깜짝 놀랄만한 표현이 나오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기발함에 함께 웃기도 한다. 강의식 수업을 할 땐 눈꺼풀에 졸음이 한그득 매달고 있던 녀석들이 시를 쓰고는 서로 발표해보겠다며 손을 들기도 하는 모습에 한시간 수업을 하고 나면 두시간 일할 힘을 얻어서 교실을 나오게 되곤 한다. 언젠가 주제만 하나 툭 던져주어도 시를 턱하니 나름대로 써 낼 녀석들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옛사람들이 시를 짓는 모습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옛날부터 정해져 내려오는 틀에 글자만 바꾸고, 내용만 바꾸어서 붕어빵 찍듯이 왕창 찍어내는 방식. 사륙변려문이 어떻고 시조가 어떻고 한시가 어떻고 간에 결국 같은 그릇에 내용물만 살짝 달리한 모방시의 범주에서 얼마나 더 나갔느냐는 말이다. 그릇을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은 스스로의 필요를 위해 그 그릇을 만들었겠으나 후대에도 반드시 그 그릇을 사용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을텐데 후대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 그릇에 가두고 거기서 벗어난 자들을 사문난적이라고 욕할 때. 바로 그러한 시절에.
허균. 허균이 나타났다. 오히려 당에 가깝다 할까보아, 송에 가깝다 할까보아 허균의 시는 허균의 시라고 불러주길 바라며 근체시 4백편을 써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류승룡이 연기했던 그 얼굴. 그 얼굴에서 다소간 험악한 눈빛을 빼면 허균이라는 남자의 혁명성을 그다지도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정치의 영역 뿐만 아니라 문학의 영역 - 물론 당시는 문(文)이 정치의 영역이었지만 - 에서도 그의 혁명적인 생각이 십분 발휘되었던 것 같다. 당나라 시인 흉내가 아니라 자신의 시를 쓰는 꿈을 꾸던 그. 그는 비록 목이 잘린채 혁명을 내려놓고 지하로 꺼지고 말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남의 흉내가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 자기의 시를 쓸 수 있게 되게끔 어린 허균들로 커줬으면 좋겠다.
아! 상상만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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