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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불편을 느끼는 것은 관계를 잘하고 싶다는 심리가 일정 반영되어 있는 것이리라. 이번에 읽은 책은 배르벨 바르테츠키의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잘하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론상으로야 관계는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몸과 마음에 가득한 상처로 고통스럽거나 살얼음판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잘못된 관계는 왜 생길까? 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혹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부모(혹은 가족)라는 이유, 사랑한다는 이유, 상사라는 이유, 나이가 많다는 이유, 돈이 많다는 이유로 관계의 우선권을 가질 순 없다. 관계엔 우선권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타인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적 인간, 나르시시트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만(지나치게 자기애가 놓은 사람들은 예외로 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자기 방어 혹은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인해 자라지 않는 내면의 아이를 가진 어른들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정적인 과거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관계의 잘못을 모두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관계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태도 또한 바람직하진 않다. 연인, 가족, 사회관계 등 사람들은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떤 관계는 친밀하고 어떤 관계는 불편하다. 어떤 관계는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어떤 관계는 싫어도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주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의 나는 특수상황을 제외하곤 불편한 관계의 사람들하곤 관계를 끊어 왔다. 진심을 보일 수 없는데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시간의 낭비, 감정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모두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게도 많은 잘못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자존감이 상해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의 내담자들처럼 그들에게 부모나 의사 역할을 맡기며(혹은 내가 부모나 의사 역할을 하며)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는 많은 내담자들의 사례가 실려 있다. 그들의 사례에 ‘나’를 대입시켜본다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에서 ‘함께 하는 삶의 중요한 전제는 자신의 경계를 잃지 않는 통일된 개성’이라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나’와 ‘너’로 구성된 ‘우리’는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가 소멸된, ‘너’가 소멸된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웠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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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너는 그저 내 자신일 뿐이로구나. 내 자신의 모습이 나를 속여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자신을 사랑한 나르시스가 넋을 잃고 물(투영된 자신)만 바라보면서 한탄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내용이다. 자신을 사랑한 나르시스에 관한 우화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왜 죄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이 없겠지만 나르시스가 주는 메시지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데 우화의 중요성이 있다. 나르시스의 자기사랑이 과연 스스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현이었을까? 자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르시시즘에 빠져 인생을 망치곤 한다. 자기애에 충실한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버린다. 뭔가 단단히 모순을 갖고 있는 현상이다.
나르시스는 수많은 님프의 사랑고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세상에 알리기에 바빴을 것이다.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질투와 시기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결국 비탄에 잠겨 죽고 만다.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은 나르시스가 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는 나르시스가 겪었던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나르시스의 감정은 님프인 어머니에 의해 좌우되었고 그녀는 자식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자신의 도피처로 나르시스를 선택한다. 나르시스가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린 채 부족한 자신의 자아를 회복시켜줄 외모에 치중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나르시스는 스스로 선택할 기회와 조건을 가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관계에서 소외되어 모두를 죽게 하고 자신마저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우린 나르시스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르시스적 특성은 극한 자기애라는 나르시시즘의 원형이 되었는데 나르시시스트들은 놀랍게도 자신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늘 자신에게 낯선 자로 머문다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미지며 모습일 뿐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모습에서 나르시시즘이 선택한 것은 결국 껍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현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또한 같은 점은 무엇일까?
세상이 무척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몸은 조금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예전에 비해 한결 무거운 한걸음을 옮기고 있는 듯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을 찾기 어려우며 일은 물론이고 사랑에서 조차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제외하면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행위를 사전에 알지 못한다면 다시 고통을 받아야하기에 세상 밖으로의 도피처를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를 짓누른다.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의 전형이랄 수 있는 자아도취 혹은 자기애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사회가 나르시시즘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소원해지는 현대인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일상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어떻게 나르시시즘과 연관이 되어있는지를 심리학적으로 추정해보는 책이다. 심리학적인 내용들에 대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들 내면에 숨겨진 자아의 발견과 자기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린 나르시시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린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건강한 자존감과 자기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라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상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가치에 대한 믿음, 능력에 대한 믿음 등을 가지고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생활의 행복함과 안정감을 추구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균형을 원하고 있다. 자아에 대한 상실감 역시 균형감을 요구하는데 나르시시즘적 항상성은 우리의 자존감이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시켜준다. 즉, 칭찬이나 배려, 인정, 애정 등을 받게 되면 자존감이 회복되고 균형 잡힌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반면에 자존감이 파괴된다면 나르시시즘은 전형적인 파괴본능이나 방어본능이 발생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관계의 어려움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도 지나친 자기애에 빠진 사람이 상대에게 주는 좋지 않은 과정과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극한 이분법적인 생각이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없애고 나와 너라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면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때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나르시시즘을 작동해야겠지만 지나친 나르시시즘은 결국 아무런 관계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시적인 표현과 현실에 대한 차가운 비판,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한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이보다 더한 절규가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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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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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모른채 이 책을 처음 접해 읽어내려갔을때... 아이러니한 점이 너무 많아 내가 이해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누구나 자기애는 가지고 있을터이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느냐..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주느냐.. 누구나 사회적 권력과 자존감에 대한 이상향을 있을터인데.. 그것이 항상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아이러니...
책을 읽어가며 관계의 중요성. 미처 깨닿지 못한 상대의 심리적 상태. 이해하기 힘들었던 심리 상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누구나 한번쯤 껵을 수 있는 나르시스트들의 인물들을 보게 된다. 권력이나 직위를 이용해 당신만의 생각이 옳고 바르다고 주장하고 상대의 의견이나 이념들은 철저하게 무시해버리는. 최근 꼭 그런 사람이 있는데 이책을 읽으며 그사람의 생각이 자꾸 머리를 멤돌았다. 그 사람또한 과거의 어떠한 문제로 인해.. 나르시시즘적인 행동을 비추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이해심이 조금 생길까도 하지만. 나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참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을 이어나가는 것이 힘이든다. 처음에는 아주 괜찮은 젠틀한 사람으로 보였고 멀쩡해 보이는 인상과 함께 직급에서도 유능한가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의 유형이 나타나는게 아니던가. 상대를 짓밟고 위로 올라갈려는 더러운 근성. 자신의 나약함. 또는 무능력함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소통을 하기보다는 또는 이해를 받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그 생각을 따르게만 하려는 무의미한 행동에 질려버리게 한다. 얼핏 보면 정말 자기애가 강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보이지 않기위한 방어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사람은 뭔가 하고 나쁘게만 보였지만. 책을 읽으며 이런 점에서 이러한 행동양상을 보였구나 하는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나 또한 나르시시즘적인 행동양상을 갖고 있고 나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기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것같다. 상처받고 쓰라린 마음에 약이 되었다고 할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책을 보고 마음의 치유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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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학 관련 서적은 매력적이다. 읽고 있으면 이건 바로 내 이야기인데, 내가 이런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때때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뜻밖에(?) 이전에 정말 감명 읽게 읽은, 그러면서도 상당히 울적한 감정에 휩싸였던 책 <따귀 맞은 영혼>의 글쓴이였다. 글쓴이 약력에 무심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혹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얼렁뚱땅의 유형인가. 땍도 없는 소리를 주워섬긴다.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에서도 나는 공감과 당혹함을 금치 못한다. 끌리면서도 일면 멀리 하고 싶은, 손이 가다가 멈추는 책이 내게는 '심리학 서적'이다. 너에게 닿기를 나는 소망할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시스를 '읽으면' 나는 마치 내 이야기인 듯 몰입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고, 주위 반응도 썩 호감은 아닌 것을 보면 '나르시스'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인물인가 보다. 그래도 종종 나는 '나르시스'를 흉내낸다. 자아도취가 없다면, 물론 자존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자기 최면이라도 있어야 몰인정한 관계에서 버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가져 본다. 특정 상황에서 뿌리까지 휘청이는 '자신'을 경험할 때 멀리서 메아리가 울리는(이명일 뿐이지만) 듯, 뒤돌아본다. 메아리를 경험할 때마다 고개를 뒤로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를 기대하는 심리일지도, 그러나 허망하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렇다. 그냥 욕심일 뿐이다.
2.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눈치'에 대해서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고래로 사람은 사람이 있든 없든 늘 한결같은 행동, 몸가짐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데, 굳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야 있을까. 없는 곳에서는 그 공간에 마땅한 행동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즉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관계 심리를 다루고 있는데, 눈치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고, 어떤 행태로 인정받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안정적인 자존감을 지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관심과 인정을 긍정적으로 이용할 줄 알며 또 이를 즐긴다. 반면에 자존감이 약하거나 불안정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8/ 머리글)
이 책은 나르시시즘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열등하고 의기소침한 방식이나 허세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는데 '열등적인 나르시시즘'과 '허세적인 나르시시즘'이다. 극과 극은 상통하는가. 그러나 상극과 대면할 때 반응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유형에 내가 포함될 때에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당혹감을 경험하게 된다.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즘'이 어떤 형태를 띄는지에 대해서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는 자세히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쉽게 몰입된다.
3.
늘 꿈을 꾼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저변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 '나'일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과연 있을까.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실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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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서 심리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원봉사현장에 다니다보면 많은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대물림을 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왜 내 인생은 막히는 것일까?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행복하기위해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그는 내 마음을 모르고 거부할까? 나는 아무잘못도 없는데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서 막연히 알던 나르시슴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한 옛날 어릴적에 나 자신을 너무 좋아하여 내가 내자신을 사랑했다는 나르시슴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자존심과 자존감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내 자신에게 던져졌습니다. 나르시스트... 과연 ... 막연히 알던 용어속에서 안개가 걷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와 내 속에 있던 또다른 나자신 또한 나와 상대와의 관계속에서의 관계의 또 다른 점 상대와의 관계속에서의 심리적인 관계의 중요성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조금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정독을 하다보면 관계속에서의 심리를 알게되었습니다. 내 자신의 어렸을때의 부모님과 형제 또다른 관계속에서 접하여 일어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방법등을 통하여 왜 그들이 이렇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했는가하는 아쉬움과 애처로움을 느끼게한 책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저는 노숙자담당을 하고 있는데 예산을 내려주고 현장에 나가면서 밥을 푸면서 그들이 왜 이 생활에 만족을 하고 안주하고 있는가 생각을 하면서 어릴때의 부모님의 교육을 통하여 내면의 자아가 잘못형성이 되어 일하기 싫고 남에게 싫은 소리 즉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점, 또한 황제처럼 대접을 받다가 남을 대접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삶, 일하기 싫고 놀기만 좋아하는 삶등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책을 통하여서 그들에게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형성이 되어 있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방법이 내면의 자아에 잘못형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면의 자아을 치료받고 진정한 성공을 향한 한발을 내 딛는 도약의 방법을 이 책을 통해서 엿볼수 있었습니다. 내가 집착하는 애착이 무엇인지 잘못된 애착은 끊어버리는 연습을 하고 잘 된 애착은 자꾸 연습을 하여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야 겠습니다. 진정한 나르시스트의 나르시슴은 내 자신을 사랑하되 현명하고 자립하며 섬기는 삶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복잡해 지는 이 사회에서는 관계형성문화를 잘하기위해서는 심리학을 알고 관계문화를 해 나가야 할것입니다. 점점 더 심리학에 대하여 연구의필요성을 느끼고 심리학을 통하여 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상대방을 알아나가면서 이해와 공감을 통하여 남은 인생을 성공할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수 있도록 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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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오는 나르시시즘은 내가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과는 좀 많이 달랐다. 물론 그전에 난 나르시시즘이 아닌 나르시즘으로 알고 있었는니.. 뭐 모르는 것이 당연할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나르시시스트하면 그전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나르시시스트 경향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난 자기애가 없는 사람이 아니므로 내 자신을 사랑한다. 그저 내 머릿속의 그런 나르시시즘이 아닐뿐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인지 책을 읽어보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다 나르시시즘의 개념과 분류법은 정확히 안것을 처음일뿐더러... 내가 나르시시즘경향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허세적 나르시즘... 물론 내가 사는 곳이 강릉이라는 꽤 시골이기는 하지만 거기다 중학생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 성적은 좋은편이었다. 그래서 꽤 사람들에게 우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있다. 우대를 받은 것... 평등이라 말하지만 솔직히 공부 잘하고 수업태도도 좋은 편이면 선생님들도 당연히 잘 대해주신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중심이기를 바랬다. 물론 나와 정말 친한친구 혹은 나보다 확연히 더 나은 친구가 아닌 이상 내가 중심이 되어야 만족하는 성격이 생겨버렸다. 거기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깍아내리기도하고. 특히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이 정말 싫어한다. 나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때도! 내가 생각해도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런데 어떡하는가? 그 사람들이 날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주는데, 어쩌면 이런 감정들은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고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힘들것같다. 이렇게 허세적인 면이 있는 모습이 나의 일부분이니깐... 물론 완화시키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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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치유한다고 표현한다. 치료가 아닌 치유라는 단어를 쓴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없이 살기란 불가능하다. 여러사람들과의 얽히고 섥힌 관계속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또 치유하며 살아간다.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는 이 치유의 과정을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심리학 책을 여러권 읽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나르시시즘' 즉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사람은 상처를 받고 치유하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 상처의 근본은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심리상태의 차이 때문이다.
이 책은 나르시시즘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다. 심리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입장 뿐만아니라 심리치료를 해주는 치료자의 입장까지 서술된 것이 이전의 다른 심리학책과 차별화된 점이라고 볼수 있다. 치료자들 역시 끊임없이 심리적인 도전을 겪는다는 것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으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자라서 심리학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버림받은 아이나 부모의 과한 관심으로 버릇없이 길러진 아이 모두 각각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가니 이전에 겪은 크고작은 분쟁들은 당시의 심리적인 상태를 한단계한단계 극복해나갈때. 비로서 내가 좀더 현실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법을 깨달아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내가 행복한 상태임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책에서...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몫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볼 필요가 있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각자 자신이 책임져야할 부분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패턴을 발견해야 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과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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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들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닿는다는 표현은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의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더구나 소망하는 닿음이라...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인 마음의 거리까지 닿아서 상대방 - 서로의 배우자 혹은 파트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음 한다.
프롤로그에 프랑스 야수파 화가 키스 반 동겐(네덜란드 태생이란다)의 그림 <대천사의 탱고>란 그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림속의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감싸안은채 두 사람 사이엔 1mm조차의 공간도 없이 밀착한 상태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각자의 감정에만 충실한듯~오직 상대방은 춤을 추기위해서 필요한듯~자신에게만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려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있어야 한다. 그 어떤 백마디의 글보다 키스 반 동겐의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저자는 이미 이 책의 요점을 말하고 있다.
너무나도 도도하여 공허하기만 한 사랑. 마치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처럼... 맞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핵심 키워드는 나르시시즘과 트라우마(내면의 상처받은 자아, 확장된 자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다시한번 공감한다. 유아기 혹은 유년시절 무심코 부모님에 의해 수동적으로 가지게 된 트라우마의 영향이 얼마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 - 나의 부족한 점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 파트너, 배우자의 선택에는 희망과 결부되어 있다. 상대방을 통해서 어떤 발전 가능성이 생겨나거나 상대방이 도움으로 자기 삶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뭐 갠적으로 난 요런 심리가 꼭 나쁜건만은 아니다라고 보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간 친구들을 보면 죄다 신랑들의 나이가 띠 한 바퀴를 훌쩍 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는 배우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노력한다. 최소한은 말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간혹 능동적 혹은 허세적 나르시시즘으로 나타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다...)
이 책에서 나르시즘을 아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 자기애와 자존감으로서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나르시시즘 - 긍정적 자아을 위한 자존감에 대한 규제로서의 나르시시즘 - 자기 자신에로의 퇴각을 의미하는 나르시시즘(상처받은 자존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행위로 보호 기제로서의 나르시시즘)
나르시스트는 불안정한 자존감을 지녔기에 배우자를 독립적인 개체로 지각하지 않고 자신의 '나르시즘적 객체' 또는 자기 자아의 확장, 그리고 자신의 자아를 채우고 보충하고 치장하기 위한 대상으로 여긴다. 우히는 흔히 나르시스트하면 자기만 잘났다고, 자기만 최고라 여기는 안하무인의 네가지가 부족한 인간쯤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네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였다. 그네들은 항상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기에 가여운 것이다. 불행한것이다. 독일의 정신분석가 한스 위르겐 비르트는 나르시즘과 권력은 샴 쌍둥이와 같다고 말하는데 나르시스트들은 동등한 관계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제는 어떠하든지간에 일단 타인의 눈에 비교되는 대상보다 자신이 높아보여야 하고 잘나 보여야 한다. 물론, 이런 나르시즘(물론, 적당할 경우...그리고 그 적당함을 찾기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발란스를 맞추기 힘들다ㅠㅠ)은 동기부여가 되어 성과지향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르시스트들은 혼자 있음을 견뎌하지 못한다. 왜? 타인과의 비교속에서 자신이 우위함을 인정받아야 하기에..그래서 혼자있음, 단절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책을 읽다보니 나스스로가 이러한 점이 많은데...심히 의심스러워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본문중에 아주 재밌는 말이 있어 옮겨본다.(지금 이 책과 함께 읽기를 진행중인 '페이스 쇼퍼'와도 연관이 있는 말이기도 해서...)
"남자에게 신의 역할이 허락된다면 우리 여자들은 모두 바비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