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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어번... 혹은 더 많게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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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2일 리뷰--------------------------☆★☆★
'둘이 있어도 외롭지만, 그래도 함께 있고 싶은' 그런 마음은 어떤 걸까? 나는 결코 그 마음을 알지도, 견뎌내지도 못할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외로운데.. 외롭기 싫어서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갈망하는데.. 그런 이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면.. 그건 내게 감옥이다. 형벌과도 같다. 그럴바엔 차라리 혼자 외로운게 낫다. 혼자니까 외로운 거라는.. 그래도 조금은 고개를 끄덕거리게하는 변명거리가 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서로의 외도를 숨기는 사토시와 루리코! 참으로 용감무쌍하고, 참으로 어이없을 만큼.. 서로의 존재를 중요시 여긴다. 밖에서는 애인을, 집에서는 배우자를.. 하지만 그런 균형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깨진 그릇에 본드로 도배를 한다 해도, 무수한 금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 사이로 물은 새게 되어 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비워져버린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p.151 아침나절에 보았던 하루오의 부루퉁한 표정이 떠올린다. 상처 입은 마음이 부루퉁한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적어도 하루오는 솔직하다고 루리코는 생각한다. 비겁하리만치 솔직하다.
2010년 11월 7일 리뷰---------------------------☆★☆★
p.98 "You know what I miss? I miss the idea of him(내가 뭘 그리워하는지 알아?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단 느낌이야)."
p.140 "중요한 건,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고 봐." ...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어딜 나가더라도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는 거."
p.196 "왜 거짓말을 못하는지 알아?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p.227 '둘이 있어도 외롭지만, 그럼에도 둘이 있고 싶은 것.'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둘이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둘이 있고 싶은 그 느낌.. 그 느낌을 같이 나눌 그런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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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는 주로 자기 경영 개발서를 읽었던 나로서는
참 신선한 글! 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소견으로 소설을 멀리 하였던 이유는 , 소설이란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상상력의 산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도리어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사람과 그리고 사랑 제도에 대한 그림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글이 아닐까한다.
너무나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는 부부가 어느날 알게된 또다른 사랑을 통해 오히려 그 가정이 존속 될 수 있다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현실속에서 이루어 진다면....
사실, 여자는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진정으로 받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 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이루어 지지 않았던 이유는 몰까? 사랑해서 결혼 하는 건가 결혼 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도리어 이 책은 아기자기한 사랑에 포커를 맞췄다기 보단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포커스를 맞추고 아기자기한 어쩜 유치 할 수도있을 법한 스토리를 배제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가 아닐 까?
이 소설이 나의 주목을 끈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스토리와 구태의연한 사랑이야기 "사랑은 이래 그래서 책임 져야 만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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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은 묘해서 읽어야할 책이 많으면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도서관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업어온 에쿠니 가오리 신간. 일본 여성작가들의 소설이란 애초에 어려운 문장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은 몽롱해서 스토리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은데 에쿠니 가오리 소설은 그래도 담백하고 불필요한 문장은 없는 편이라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도 그렇고 이 책도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런 영화나 책을 접하고 나면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져 결혼이 무서워진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결혼 생활은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나도 개인적인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편안해하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떤 교류도 없이 그렇게 몸도 마음도 따로 지낼 거라면 왜 결혼을 하는지?? 그런 왜곡된 결혼 생활이 "달콤한 작은 거짓말"이 아닌 "씁쓸한 큰 거짓말"들을 서로에게 차곡차곡 쌓아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배우자와의 관계가 전적으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불륜을 저지르면서 배우자를 떠올리는 상황이 불행해보일 뿐이었다.
요 며칠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전에 나순장님께서 선물해주신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의 결혼과 배우자 부분을 읽어보았다. 고린도전서 7장을 중심으로,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과 결혼할 것, 2. 독신이든 결혼이든 배우자 선택이든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하나님 일에 좋은 영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큐티책을 펼쳐보니 공교롭게'하나님의 선물인 좋은 배우자'라는 제목의 본문이... 덴마크에서 뵌 에기디우스 교수님 부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가정상담가 딘 마틴 박사는 결혼한 여성들에게 "당신의 배우자는 좋은 남편인가?"를 물어보았다. 그 결과 결혼한 지 1년 이내의 아내들은 9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결혼 2년차에 들어서면 수치는 56%로 떨어지고, 결혼 10년차가 되자 6%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결혼 20년차 이상의 아내들은 95%가 자신의 남편이 좋은 배우자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남녀가 결혼해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기까지 20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결혼한 뒤에 점차 나타나는 갈등과 문제는 하나 되기 위한 과정 가운데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쉬운큐티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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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책 고등학교때 알기 시작했으니 벌써 8년째다 나보다 더일찍 안사람도 있고 더 많이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에쿠니 가오리 덕분에 일본에 더관심이 생겨 일본어를 전공하게 된것도 이분의 덕이 크다고 해야할까 신작나온다는 이야기 듣자 마자 샀다 역시나 에쿠니 가오리 스러움이 묻어나는 책이였다. 여느때 같으면 단숨에 읽어 나갔지만 이번엔 읽다가 잠시 텀을 두었다. 루리코의 마음을 좀더 느끼기 위해서였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는 루리코의 행동이 이해할듯 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에쿠니 가오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좀더 알기위해 조금더 생각하면서 읽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번역체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의역해야할 단어와 직역해야할 단어 일본어 발음그대로 번역해야할 단어의 기준이 제대로 안정해진 느낌이였다.그러다 보니 소설이 스무즈 하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쩌면 김난주식의 번역이 에쿠니가오리와 너무 잘맞아 떨어져 그 입맛에 길들여졌을지도 몰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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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베어 작가인 루리코와 회사원 사토시는 비행기에서 만나 결혼한 사이다. 사토시는 루리코의 넘치지도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로리코에게 적극 구애해 결혼을 했다. 로리코는 결혼 3년차로 일본에서 테디베어 작가로 활기찬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사토시는 반복되는 회사 생활로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일본 직장 남자의 전형을 보여 준다. 서로에게 신뢰는 있지만 애정이 없는 생활이 계속되던 중 두 사람 앞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루리코는 테디베어 전시회에서 만난 남자 하루오와 육체적인 열정을 나누게 되고, 사토시는 대학 후배와 만남을 통해 무기력한 일상을 벗어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불륜, 외도는 결혼 생활에 더욱 활기를 주고 싱싱한 활력을 준다. 외도의 대상에게 집착할수록 배우자에게 더욱 마음이 쓰이고,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외도의 대상인 젊고 아름다운 그들은 달콤한 말로 루리코와 사토시를 건조한 일상의 해방구가 된다. 반면 루리코와 사토시는 배우자에게 작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서로 무관심할지언정 거짓말로 기만하지는 않았던 서로였다. 자신에게 집착적으로 매달리는 하루오에게 루리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이는 사랑도 쟁취하고 싶고 가정도 지키고 싶은 그녀의 심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전작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던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전제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사랑과 외도에 대해 이토록 사실적인 것은 일본인들의 성(性) 관념이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적인 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일본인들을 보며 퇴폐적이니, 음흉하다느니 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적어도 문학 작품에서 성역 없는 문장을 보여 주는 일본인들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번역가인 신유희씨가 쓴 구절 한 꼭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나면 청혼했을 당시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는 까닭에.’(조안 헨리에타 콜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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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 책에 대해 씁쓸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이 소설은 씁쓸하다기보단 쌉싸름하다. 씁쓸함은 이야기가 주는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대해 부정하고 싶어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는데 반해, 쌉싸름함에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가슴 한켠을 서늘히 관통하며 만드는 이야기의 쾌감에 대해 긍정할 수 밖에 없다는 항복의 느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청아한 문투는 냉정함을 기저로 한다. 두 남녀의 마음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서늘한 눈으로 그들의 감정을 직조해 내는 작가의 문투는 내러티브의 상투성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갖히지 않는 것도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루리코가 하루오에게 단 한번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 또한 이 소설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는 '누구를(혹은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에 방점을 둔다.
이 소설이 아픈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우리들의 실제생활과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명제를 실제 결혼생활을 통해서야 뼈아프게 자각하는 모든 부부들에게 이 소설은 아프다. 그 부부와 100프로 비슷하지는 않더라도 '소통의 힘겨움'에 대해 그리고 그 낯설고 이상한 외로움 - 소위 같이 있으면서 더 외로워지는 - 에 대해 느껴보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들뜨고 맥없는 대화, 낯선 소통, 일상에 대한 천연덕스럽고 의무적인 보고, 마음의 부재, 그러면서도 부부라는 공통분모를 깨지 않고 싶지 않아 하는 이중성과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정. 마치 살아있는 생선을 죽지 않게끔 세심하게 저며 회를 뜬 듯 생생하고 사실적인 인물의 감정묘사와 이야기 전개는 차가운 겨울공기처럼 시원하면서도 따갑게 마음의 피부를 찔러댄다.
이 부부, 루리코와 사토시는 그 둘이 가진 본질적인 이중성때문에 불륜생활을 영위해야만 비로소 충만해지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이 이중성은 두사람의 공통분모인 '솔직성의 부재' 즉, 자기자신을 투명하게 내보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 기인한다. 서랍의 안쪽이 얼마나 뒤죽박죽이건, 두사람에게 중요한 건 서랍 밖이 항상 깨끗히 닦여서 반짝반짝해 보이는 것이기에, 둘 다 엉망이 된 안쪽에 대해 외로움(루리코)과 갑갑함(사토시)을 느끼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결혼을 이상적이라고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늘 강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이라는 이성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다라는 느낌의 다분히 자족적인 실존감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모두 내면의 부족함에 항상 허기를 느끼며 실존성을 채워줄 그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두사람의 불륜, 즉 '사랑'인데, 불행히도 두사람 모두 대부분 사람들처럼 이 부분을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뭉뚱그려 무언가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적인'이라고 사필귀정화시켜 버림으로써 문제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포기해 버린다.
먼저 루리코를 살펴보자. 그녀는 테디베어작가로서 정갈하고 청결한 생활, 즉 절제된 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이며 자신을 좀처럼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슷한 부류인 사토시에게 끌리게 되며 그가 자신의 영역을 존중해주고 그녀의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때문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따라서 루리코는 그녀가 원했던 생활의 리듬을 사토시와 계속 만들어 낼 수는 있게 되지만, 마치 같은 극의 자석끼리는 서로 계속 밀쳐내는 것처럼 그로 인해 그녀의 내부적 공동(空洞)은 더욱더 심화된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인정하고 싶진 않은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외부세계, 즉 솔직하고 야생적인 하루오에게 끌리며, 자신을 여성으로서 갈망하는 그와 함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안온함을 느낀다.
한편, 평범하며 소극적인 사토시는 루리코를 한 때 사랑했었고 결혼까지 이르렀지만 그녀가 가진 절제되고 결벽적인 생활태도에 질식을 느끼며 자신의 세계를 달팽이처럼 계속 영위해 나가려고 한다. 루리코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 전 언제나 관심을 받고 있는 걸 느낌으로써 실존감을 느끼고 결혼 후에도 그것이 지속되리라 기대한다. 이와는 반대로 남성들은 정복하고 싶은, 그들을 남성으로 느끼게 만들어주는 여성으로 인해 실존성을 느끼게 되는데 현대의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는 그들의 그런 실존성을 지키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첫째, 결혼 제도는 상호 신비감을 모두 소진되어 버림으로써 연애 시절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낭만과 환상을 철저히 붕괴시켜 버리고, 둘째, 공동 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존 생활의 틀을 한차례 붕괴시켜 버려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은 연애할 때 견고히 지킬 수 있었던 자존심의 벽이 결혼 후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그럼으로 인해 결혼 전 맹렬히 정복하고 싶었던(실존성을 부여하는)'여성'들이 이제는 본인들을 제한하며 규정된 틀에 가두려고 하는 제 3의 성, '부인'의 위치로 바뀌어져 버리며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쌉싸름한 이유는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통속적인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그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평행선적인 관계에 대해 너무나 적나라하고 실존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 루리코와 사토시 모두 그들의 불륜이 현재의 결혼생활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비로소 그 달콤함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시크릿을 알고 있다. 연애의 달콤함은 현실의 매움과 씁쓸함이 거세되었을 때 비로소 안온하게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두사람 모두 깊이 간파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들은 사랑의 '진정성'에 쓸데없이 목매달기보다는 현재 자신들을 가장 편안하고 달콤하게 해주는 이중생활의 평행봉 위에서 양다리를 넓게 벌린 채 위태롭게 혹은 스릴넘치게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표면적으로 루리코보다 사토시에게 좀 더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가가 여성이라는 선입관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정보의 불평등한 축적은 독자로 하여금 두사람에 대한 도덕적 객관성을 확립하기 어렵게 - 어쩌면 이 또한 작가의 의도일지는 몰라도 -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에서 루리코가 동반자살에 대해 언급하며 결벽적이며 순수한 양 자기고결성을 확립하고 싶어할 때 그녀의 모습이 더 자기기만적이며 이중적으로 비춰지는 것일 것이다.
이 세상 누구도 상처받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결혼이란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점차 합쳐지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그릇, 혹은 그 세계들을 넓혀나가는 과정이다. 그런 까닯에 그릇이 깨지는 과정, 즉 서로 다른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상처와 아픔, 그리고 갈등들 또한 더 큰 세계를 만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피한 채 자신의 그릇만을 고수하고 울타리의 안온함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결국은 소설처럼 실존성의 우물을 '한시적으로' 채워주는 이중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탱해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우물이 언젠가 말라버릴 때 결국 그들이 얼마나 무기력해지고 무방비해질런지, 문제는 그것이다.
2011.1 필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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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사랑이 필요한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어. 단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야. 어쩌면, 불필요해서 없는지도 모르지. 당신이랑 있으면 가끔 너무 외롭단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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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분명,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연애가 그저 입고 있던 옷을 양파 껍질 벗기 듯 하나하나 벗겨내는 것이라면 결혼은, 발가벗은 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지기 마련이고 같은 공간, 같은 공기, 같은 현실에 놓여지게 되면 서로에 대한 종말을 보게 된다.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 아닌, 좀 더 치열하고 각박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을 사람들은 참으로 의연하게 모른체하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자 혹은 남자들이 결혼을 꿈꾸는 이유는 스스로가 품은 결혼에 대한 환상, 스스로가 만든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그려놓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바래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걸까. 결단코 결혼은 사랑 하나로 일축될 수 없음은 명백한데도 그것을 왜 꿈이라 치부하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두 번째, 결혼에 대한 장편소설 「달콤한 작은 거짓말」. 난처하다 못해 우습기까지 하다. 이런 것도 소설이라고,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감히 얘기나 할 수 있겠나 싶다, 정말. 그래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난,
에쿠니 가오리가, 어지간히 좋은가 보다. 딱히 이번 작품에 큰 기대를 건 것도 아니고 「반짝반짝 빛나는」이나 「낙하하는 저녁」에서 보여 준 그녀만의 유약하고도 강한 문체를 보고자함도 아니었다. 다만 「빨간 장화」보다는 나은 작품이기를 소박하게나마 바랬던 것 뿐인데, 내가 에쿠니 가오리를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에쿠니 가오리도 안되나 보다, 싶다. 연애 결혼을 한 루리코와 사토시가 주인공이다. 사토시의 적극적인 애정공세로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연애 시절 만큼의 열정과 사랑이 녹아들지 않는 결혼 생활에 루리코는 물론 사토시마저 사랑이라고는 전혀 결여되지 않은 사막과도 같은 메마른 길을 걷게 된다. 집에서 테디 베어를 만드는 루리코와 평범한 비즈니스인인 사토시. 여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루리코와, 저녁 식사를 마치면 제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TV와 컴퓨터게임에 열중하는 사토시. 남자가, 연애 시절 칠십프로의 애정을 공세했다 한 들 결혼하여 나머지 삼십프로를 모두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칠십프로는 커녕, 수치가 낮아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불멸과도 같은 진리겠지만, 어떤게 먼저랄것없이 사랑과 사람이 변하는 시간과 속도는 같다.
그나마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 있다면, 루리코와 사토시의 욕구불만성 대리만족이다. 루리코는 자신의 테디 베어를 양도했던 하루오와, 그리고 사토시는 대학 시절 자신을 좋아해주었던 시호와 바람 혹은 외도 혹은 불륜 혹은 비밀 아니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인 달콤한 거짓말을 저지른다. 애정 표현이라고는 고작 '잘 잤어요?', '어서 와요.' 따위의 인사 나부랭이들이다. 몸의 교류조차 없으니 무엇이 통하겠는가. 이쯤되면 루리코와 사토시의 결혼 생활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함께 지키고자 하는, 돌아 올 곳을 지키고자 하는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혼 한 사람들의 외도, 어느 정도선에서는 참작할 수 있다. 물론, 적당한 선을 지켜만준다면 한 낱 스치우는 바람으로도 치부 할 수 있다. 살아 온 날 보다 더 많은 날을 어찌, 한 사람만을 품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솔직히 나는 그닥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루리코와 사토시처럼 맞바람이라면 더욱이나 마음 편히 다른 사랑을 품어 볼 수도 있지 않나, 싶은거다. 루리코의 말 처럼, 중요한 건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가는데 있고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어딜 나가더라도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는 것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쿨하게 얘기한 것 같은데 사실, 내 눈 앞에 막상 닥치는 일이라면 또 모를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비밀은 꼭꼭 숨겨둔 채 그이의 비밀만을 파헤치고 분해시키고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일은 무서우리만치 간단하다. 루리코가 염두에 두는 감자 싹의 솔라닌이라는 극약만큼이나, 시누이가 알려준 바꽃의 독을 품은 나물 비빔밥이나, 별반 다를 거 없다. 루리코와 사토시가 지키고자하는 것은, 서로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더불어 서로가 속해있는 집이라는 한 공간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늘 곁에 머무를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동반자살이라고 얘기하는 루리코의 마음은 결국 그 또한 사랑의 극단적인 종말이자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늘 그랬듯, 에쿠니의 작품은 어느 시점부터는 치미는 지루함과 가벼움을 참지 못해 중간 지점에서 항상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지만 앞으로의 작품들 또한 무한한 애정으로 지켜 볼 생각이다. 별 볼 일 없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에쿠니의 작품 세계에서 발을 딛은 이상 빠져나 올 수 없을만큼의 문학의 가벼움의 매력을 쉽사리 떨쳐 낼 수는 없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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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작은 거짓말
- 에쿠니 가오리 - 신유희 옮김 - 2010년 11월 15일. 초판 1쇄. - (주)태일소담. 소담출판사
참 간결하다. 참 담백하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슬픔이 들어있지도 않다. 그런데 긴장하게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달콤한 작은 거짓말은 그렇게 책을 꼭 쥐게 한다.
- 줄거리 -
서른 살 테디 베어 작가인 루리코와 스물여덟 자동차보험 계약 처리 담당 사원인 사토시는 결혼 3년 차 부부이다. 사토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루리코는 자신의 일과를 하나하나 보고하고, 사토시 역시 루리코에게는 무엇이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시시콜콜한 일들을 전하지만, 둘은 전혀 대화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사토시와 둘이 꼭 붙어 지낼 수 없다면 솔라닌으로 동반 자살 하겠다고 다짐해온 루리코. 그러던 어느 날, 루리코는 여자 친구를 위해 자신이 만든 베어 ‘나나’를 찾아다니는 남자 하루오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사토시 역시 대학 스키부 동문회에서 만난 후배 시호와 사적인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늘어나는 두 사람의 비밀과 거짓말. 과연 이들의 결혼 생활은 루리코가 ‘솔라닌’을 택하는 일 없이 지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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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방에 쳐박혀 게임만 한다. 루리코는 어떻게든 남편과 대화하려고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시큰둥하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인형에게 마치 자아를 부여하는 듯한 부인을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자기만의 카테고리가 있다고 믿고, 자신도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만든다. 그렇게 둘은 멀어진다.
소설의 시작은 아슬아슬했다. '아~ 이러다가도 둘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겠지?' 라는 기대를 하기도 한다.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지만 점점 더 둘의 관계는 멀어져만 간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그러지 말라고, 눈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자주 되뇌이는 말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노력이다. 처음에 가졌던 호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은 자꾸 저 멀리로 가 버린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후회를 하게 되고...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참 간결한 소설이었다. 감정을 듬뿍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체가 담백해서 오히려 균형감각이 생기는 소설이다.
<< 11월 15일(월) 원주 MBC. '행복한 6시-행복을 만나는 책방'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며 퀴즈를 통해 책 선물을 드립니다. >>
<< 11월 15일(월) ~ 11월 21일(일). 원주 MBC '김동혁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서 참여자에게 책 선물을 드립니다. >> << 원주 MBC '김동혁의 별이 빛나는 밤에' 바로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