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이전 독서록을 뒤적이다보니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작가의 대부분의 책을 읽어보려고 했던 시절. 무작정 읽기만 했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한걸지도. 문득 눈앞으로 떠오르는 이름. 「A.까뮈」 (알베르 카뮈)
▷ 1992년. 그저 읽다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시절의 독서록.
알베르 카뮈 살림 지식총서 - 051 이 책은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으로서 알제리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동시대 문학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알베르 카뮈에 대한 충실한 입문서이다. 그의 삶에서 그가 왜 「이방인」 으로 남아야했었는지 그의 일생을 따라가며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작가의 일생을 세밀하게 다룬 평전은 아니다. 그의 일생을 살짝 들여다보며 그의 문학, 사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이방인」을 다 읽고 이해가 잘 간다고 말하는 독자는
거짓말쟁이이거나 좀 모자라는 사람일 것이다. 「이방인」은 이해해달라는 책이 아니라 의심해 달라는 책이다. 늘 익숙하던 세계가 돌연 나의 고향, 나의 왕국이 아니라는 느낌, 이 느낌을 획득하는 자가 바로 카뮈가 원하는 '부조리 인간', 즉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 이다. 삶과 죽음, 존재와 무에 질문을 던지는 자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이방인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걱정하지 말라. 「이방인」을 읽고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이방인」을 정독했다는 뜻일지니... p40
「이방인」 이라는 책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저자는 작가의 삶과 그 당시의 실존주의, 마르크스 주의 등 20세기를 장식한 거대담론을 엿보며 '부조리' 에 대하여 풀어놓았다. 그 덕분에 조금 준비된 기분으로 그 다음에 나오는 여러가지 시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하여 먼저 스토리를 요약해두고 미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의 다양한 시선으로 「이방인」 을 훑어본다.
새로운 번역으로 읽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20여년전 읽었던 낡은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카뮈에 대해, 그의 작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난 후에 읽는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지식에 얽매여 고정된 시선으로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살짝 밀어넣어두련다. 대신 지나온 내 삶의 궤적 속에 남겨진 경험들이 책 속에 담긴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길어올릴지 비교해보련다.
문학은 여러 가지 삶의 지침들에 대한 뼈대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살을 붙여서 피를 돌게 하고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속의 인물들을 통해 공감하며 결국 내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문자라는 납작한 평면을 입체로 세워서 내 삶과 같은 대칭 구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엄마 인문학, 김경집
지금은 블로그에 리뷰를 기록하고 있지만 손글씨로 써놓은 이전 독서록을 보면서 다시 노트에 독서록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필을 손에 들고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느낌은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
|
책내용보다 먼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먼저 얘기해야 겠다. 19세기 불문학 수업시간에 유기환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셨는데 내가 나서서 몇 가지를 대답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교수님은 교수님이 번역하신 살림출판사의 알베르 카뮈라는 책에 대해 설명하셨다. 교수님이 루르마랭에 들러 카뮈의 생가를 보고 귀국하신 뒤 바로 얼마 후에, 살림출판사에서 외국의 지식총서들처럼 지식을 집대성한 시리즈물을 갖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출판을 기획했는데, 마침 유 교수님의 이름이 카뮈학회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카뮈에 대한 글을 써주십사 부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교수님 당신 스스로도 이 무슨 기묘한 우연인가 하고 놀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단지 대답을 잘 했다는 이유만으로, 속표지에 내 이름이 적힌 이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생들의 부러움이 담긴 함성.... 이 책은 나에게도 기묘한 우연일 수 밖에 없다. 카뮈를 워낙 좋아하던 나에게, 교수님이 번역하신 책들 중에, 하필이면 카뮈에 관한 책을, 그것도 수업시간에 선물하셨다는 것은 그저 내겐 놀라운 일일 뿐이다.
책의 내용은 내가 카뮈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대체로 공감했고, 또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더 잘 알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카뮈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할수 있는 <페스트>와 카뮈를 복권시켜준 <최초의 인간>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카뮈라는 작가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를 갖기에는 부족함이 없을것 같다. 특히, 사르트르와 당시 프랑스 문단의 분위기와 카뮈와의 관계에 대해서 에두르지 않고 단순명료하게 설명해주셔서, 이 점은 상당히 만족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벼운 책에 가벼운 가격으로 진지한 내용을 담아 지식을 보급할 수 있게 시리즈물을 기획한 의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사진자료나 기타 자료가 거의 없고 집필자의 견해만 실려 있어서 그 점이 좀 아쉽다. 부디 다른 필자분들도 건필하시어 우리도 시공디스커버리 못지 않은 시리즈물을 갖게 되기를.... [인상깊은구절] 평소에 카뮈는 "어린아이의 죽음보다 더 분노할 만한 것은 없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것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사망 이틀 후 루르마랭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묘지는 카뮈의 집에서 가까웠고, 비석은 극히 평범했다. 행렬의 선두에는 아내 프랑신, 형 뤼시엥, 오랜 친구이자 유명 시인인 르네 샤르가 섰다. 간명하고 단속적인 그의 문체처럼 카뮈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모순에 찬 카뮈, 하지만 사랑스런 카뮈.....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
|
깜짝 놀랄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궁금하긴 했었으나.. 이렇게 엄청난(?)선물을 보내올 줄이야. 그런데,생각보다 전자북과는 매우 친하지 않은 관계로,과연 크레마를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의 시간이 나름 깊어더랬다. 고민(?)의 시간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드디어 나만의 스타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누군가를 예고없이 기다려야 할 때 무심코 챙겨나간 책이 혹 재미가 없기라도 하면 낭패.. 그럴때 크레마는 지니의 요술램프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다양한 책이 담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일단 무겁지가 않고,눈이 피로하지 않다는 것. 다만,전자북 이란 이름과는 달리,아날로그적인 기능들이 불편함을 야기하나,애교로 넘겨줄 정도는 된다. 그래서 가급적 짧은 내용의 책들을 우선 선별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런점에서 살림지식 시리즈가 아주 유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사용기 시작으로 선택한 알베르 카뮈는 너무도 탁월(?)했다. 페스트와 이방인 그리고 시지프를 읽은 여운이 강렬하게 남아 있은 탓도 있겠다. 그렇지만 카뮈에 대한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 표피적이긴 하나,작가 카뮈를 알아가는 이해의 척도로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이미 읽은 책들에 대들에 대한 설명을 읽을때는 조금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앞으로 읽을 책들에 대해서는 가이드를 만난 듯한 인상이 들었으니까. 물론 조금은 복잡(?)한 실존주의 에 대한 설명이라든가,당시 시대적 지식인들의 이해관계등은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낼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동안 남들의 입을 통해 들은 말들을 내 생각인것처럼 말했던 것과,스스로 느껴지는 무엇인가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경험하게 해 준 책이였다. 카뮈에게 있어 태양과 바다(지중해) 그리고 사랑이 화두가 되어진 그 작품 세계를 이제는 하나 하나 만나볼 일만 남은 듯 하다. |
|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알베르 카뮈. 책의 첫 부분에 나온 그의 소설과도 같았던 급작스러웠던 죽음을 보며, 내가 떠올렸던 그의 모습은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평범하고 가정적인 아빠이자 남편의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가족과의 여행 후 가족들은 기차로 귀경시키고 나서 친구와 따로 자동차로 귀경하다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가정적인 남자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에 있어서는 얽매이기 보다는 자유롭길 바랐던 다분히 바람둥이 같았던 남자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자, 나중에는 그에게서 받았던 첫인상마저 달라지게 되었다. 아마 그가 정말 가정적인 남자였더라면 가족과 함께 한 여행에서 아무리 친구의 부탁이었다 하더라도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 가족과 따로 귀경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의 사랑관을 알고 나자 당연히 그에게 가졌던 호감도 역시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상황을 알게 되자 조금 측은지심이 생기기는 했다. 그의 대표작인 책<이방인>처럼 그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페인 어머니를 둔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았던 그. 이 책에서 “카뮈는 평생 스스로를 프랑스인인 동시에 알제인이라고 생각해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환영받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면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카뮈가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가혹한 ‘왕따’를 당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캐나다에서 만났던 이민1.5세대의 청년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예의에서 벗어난 무례한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그걸 잘 몰랐던 나는 한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청년이 “우리나라 사람들은...”이라는 말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너는 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말이다. 한국인 부모를 두었지만 캐나다 국적을 갖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녔던 그 청년은 애써 그 질문의 답을 피했었다. 나는 그저 궁금해서 물었던 질문이었지만, 그 청년은 그 질문 때문에 혼란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민자들이 많아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캐나다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민족별로 나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보며 이민자들은 자신이 캐나다의 국적을 갖고는 있지만, 자신의 뿌리는 각자 자신의 민족에서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카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프랑스에서 카뮈를 봤을 때 카뮈의 육체는 온전한 프랑스인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온 아랍인으로 보였고, 알제리에서 카뮈를 봤을 때 카뮈의 정신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이 아니라 서구사상을 가진 프랑스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카뮈는 이 두 가지 다 모두 자신이라 여겼지만, 사람들은 카뮈에게서 자신과의 같은 점을 찾기 보다는 다른 점만 찾으며 그를 밀어내기 바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듯 모든 곳에서 “카뮈를 배신자로 낙인” 찍으며 외면해버렸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책<이방인>을 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방인으로 있는 많은 이들이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카뮈, 아롤.... 그런데 왜 이런 순서인가? 사르트르는 자신이 메를로퐁티의 오른쪽, 카뮈의 왼쪽에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레몽 아롱이 우파 이론가들의 수장임은 그 당시 누구나 인정하던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이 순서는 곧 그들의 이념적 좌표였다.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네 대가의 이념은 곧 시대의 이념이었고, 그들의 우정은 곧 시대의 우정이었다. 그들의 입장의 비교는 카뮈의 주변성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네 대가의 사상적 위치를 다시 한번 정리해 준 사건은 바로 한국전쟁(1950~1952)이었다. 한국전쟁이 프랑스 지식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리전 양상을 띤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알베르 카뮈> p78 중에서 -
이제 어느 덧 서른을 훌쩍 넘기고 서른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나보다 훨씬 어린 서른이라는 나이에 프랑스의 대표 작가가 되었던 카뮈. 모르긴 몰라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카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이 된 카뮈이지만 어찌 보면 이방인이기에 어느 한 곳에만 생각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수일 것만 같은 그의 책<이방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정받는 것은 우리 사회에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그의 책<이방인>을 먼저 만났더라면 나는 그의 책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았던 카뮈의 삶에 대해 알게 되자, 그가 쓴 책 <이방인>이 많이 궁금해졌고 읽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 연필과 지우개 - |
|
내게 카뮈는 단순히 좋아하는 작가 그 이상이다. 왜일까? 사춘기를 보내던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세 남자는 국어선생님과 제임스 딘과 카뮈였다. 문학을 좋아하던 10대 소녀에게 이 세 남자는 그 당시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낸(상상 속에서) 인물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셋이 모두 닮아있다. 위의 담배 피우는 카뮈는 제임스 딘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내가 카뮈의 작품을 만났던 때는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오직 책에만 파묻혀 지냈던 시간, 그 시간을 함께 한 작품은 <이방인>이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 작품을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보니 7번을 읽었다. 그 뒤로 읽었던 카뮈의 또 다른 작품들,<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최초의 인간> 그리고 <전락>은 왜 내가 카뮈를 좋아하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뮈의 작품세계는 쉽지 않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이 책은 세 번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작품을 읽고, 그다음에는 작가를 읽고 그리고 자신을 읽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을 읽는 것도 버겁다. 작가를 읽어 볼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살림지식총서의 <알베르 카뮈>는 그런 나에게 작가를 읽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카뮈의 삶을 담은 책. 이 책은 우선 카뮈가 태어난 알제리의 태양과 바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카뮈가 평생 동안 이야기했던 주제인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카뮈의 삶을 다룬다. 카뮈는 그의 삶 자체가 '이방인'이었다. 아버지는 1913년 알제리의 소도시 몽도비에서 포도농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스페인 혈통의 하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평생 스스로를 프랑스인인 동시에 알제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방인'취급을 했다. 그런 그가 <이방인>을 썼고,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작가의 이런 해설은 카뮈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서늘한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해준다. <이방인>은 형식 면에서도 동시대 문단의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여전히 <이방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죽음마저도 부조리했던 카뮈의 삶과 작품은 이렇게 내게 또 가까이 한 걸음 다가왔다.
|
|
알베르 카뮈 | 유기환
“스톡홀름에서 행한 수상 연설에서 카뮈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을 정당화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진실과 자유를 위한 봉사. 진실은 신비스럽고 붙잡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포착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는 위험하고 실현하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구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카뮈는 자신의 예술관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하나의 작품이란 처음으로 가슴을 열었던 단순하고 위대한 두세 가지 이미지를 되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에 다름 아니다.” - <본문 86쪽>
저자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 바꾸어 말하면 파리의 이방인 알베르 카뮈에 대한 충실한 입문서로 쓰고자 했다. 시끌시끌한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지중해인 카뮈의 목소리는 늘 찬사와 소외를 동시에 불러왔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찬사와 소외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었다. 모쪼록 이 책이 카뮈의 문학, 사상, 인생의 이해와 어울러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20세기를 장식한 거대담론의 이해를 돕기를 바란다.’며 이 책을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외국어 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에밀 졸라의 소설에 대한 서사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에밀 졸라>, <노동소설, 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 등이 있다.
“카뮈는 창작생활 동안 세 개의 핵심주제를 삼중의 계획에 기반하여 형상화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부조리’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소설 <이방인>, 희곡 <오해>와 <칼리귈라>, 철학적 수필<시지프 신화>를 썼고, ‘반항’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소설<페스트>, 희곡<계엄령>과 <정의의 사람들>, 철학적 수필 <반항인>을 썼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최초의 인간>을 쓰던 중 불의의 사고로 죽음으로써 이 주제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았다.” - 본문 17쪽
저자는 ‘모순되는 두 대립항의 공존, 즉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를 소설 <이방인>의 배경인 ‘눈부신 지중해‘와 ’전쟁 속 절망의 파리‘를 대립시키고 있으며, 최초의 작품의 작품 <안과 겉> 그리고 최후의 작품 <적지와 왕국>의 서로 상반되는 작품의 제목, <결혼>과 <전락>등에서 하나의 말로 양극단을 전제하는 작품등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인간’은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란 뜻이지 결코 ’부조리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코기토(Cogito)’의 명제를 재정리한 카뮈는 ‘신에 대한 인간의 반항’을 ‘형이상학적 반항’으로, ‘주인에 대한 노예의 반항’인 ‘역사적 반항’으로 대별하여 설명한다. <시지프 신화>에서 바위를 산정에 올려놓는 벌을 받은 ‘시지프’는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반항’으로 자신의 고역에 대한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는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반항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카뮈는 <반항인>에서 ‘국가적 테러리즘’의 두 전형인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를 통해 ‘그 모두가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테러리즘으로 치달음으로써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인류의 파괴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인간이 태어났을 때 누구나 가지는 육체의 덩어리’인 ‘실존’이 ‘다른 사물의 덩어리와 구분해 주는 것인 ’본질‘보다 앞선다는 ’사르트르‘에 비해 카뮈는 본질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고민을 갖고 있었다. 또 ’혁명‘을 ‘극단적 반항’으로 보는 카뮈와 ‘반항’은 ‘한계 있는 혁명’이라는 사르트에게는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다른 실존주의자들과는 달리 메시아사상으로 간주하여 비판한다. 이런 일들과 더불어 학연을 중요시 하는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에서 ‘식민지’ 대학 출신의 카뮈가 소위 ‘왕따’ 취급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전후 최고의 소설’이자 1957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그러나 작품 속 주인공처럼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카뮈의 내면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다지 쉽지 않다. ‘카뮈에 대한 충실한 입문서로 쓰고자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햇빛 가득한 지중해 어느 해변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카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카뮈의 ‘부조리’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
|
표지의 사진을 보면, 그가 소설뿐만 아니라 연극 연출과 배우 생활까지 했다는 사실을 이해 할 수 있을정도로 뭔가 매력있게 생겼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에덴의 동쪽> 영화의 반항아 였던 제임스딘 느낌이 좀 난다고 해야하나? 카뮈가 먼저이겠지만, 약간은 그런 반항기와 바람기까지 보인다. 그러면서도 꽤 고독해 보이는 느낌마져 가지고 있다. 흔한말로 마초라고 해야하나?
얼마전 <이방인> 번역 관련 책을 읽고, <이방인>을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에 관련된 책이 얇지만 살림지식총서에도 있다는 사실에 룰루랄라 거리며 책을 뽑았던 것 같다. 이렇게 연결되는 책 읽기를 한게 얼마만이었던가!
엊그제 그 소설의 느낌이 사라질 틈도 없이 까뮈를 만나고 그 속의 뫼르소를 만나니 <이방인>을 재독하지 않았지만 뭔가 간만에 뫼르소를 만나서 회포를 푼 느낌이다. 물론, 오롯이 그 느낌 전체를 전달받기 위해선 조만간 다시 책을 들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삶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던 그가 참 부조리(?)하게 마흔초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그에대해 읽어보고 알게됐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겠거니 했더니, 읽어 갈 수록 아닐세.
21살의 어린나이에 첫번째 결혼을 하고, 두번째 결혼에서조차도 정착을 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 참말로 어찌보면 자유분방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틀은 크게 벗지 못한 느낌의 사나이.
웃긴건 아내는 아내로서 (그러니까 아이들의 엄마로서) 곁에 두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또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애인으로 두고..... 뭐 이리 자기 입맛대로인가?! 아내는 그로인해 자살시도까지 할 정돈데......
그가 놓아주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아내가 떠나가길 거부한 것일까?
만약 둘 다 사랑을 했다면, 너무도 이기적이었던 카뮈가 아닌가 싶다.
그가 샤르트르와 깊은 우애를 나눴다는 사실은 새롭다. 전혀 매치 되지 않는 둘이었기에 그렇고, 그들이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도 사실은 전혀 몰랐으니까.... 단지 어쩌면 <구토>속 주인공과 <이방인>의 뫼르소가 약간은 닮지 않았었나?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사회 부조리속에서 죽어간 뫼르소와 부적응 속에서 구토를 하는 주인공.
개인적으로 샤르트르의 주인공은 이해 불가였고, 매력 없었지만, 뫼르소는 사람을 끌어 당기는 뭔가가 있고 안될 듯 하면서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는 인물이다. 둘 중 한사람을 고르라면 뫼르소 승.
그러나, 역시 그 둘도 이념적 차이로 멀어지게 된다. 샤르트르와 카뮈. 그 둘의 조합 나름 괜찮은데 아쉽네.
부조리 속의 조화를 꿈꾸는 카뮈지만, 결국 그도 부조리에 맞서는 사람이었다는 거, 그리고 자신이 외치지 않아도 어느틈엔가 그들속에서 또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방인> 뫼르소와 알베르 카뮈 삶 자체를 떨어트려 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짧고 강렬했지만 그래서 우리들 뇌리속에 큰 물줄기를 숨어놓고 간 카뮈.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글에 의미를 부여하며 태양과 빛과 지중해를 찾아 헤매는 지도......
비록 비석은 초라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만큼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새삼 더 느낀다. 그의 또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
|
『이방인』. 고전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이다. 쉽사리 손에 가지 않았다. 아니, 아예 읽어볼 시도조차 없었다.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 때문이다. 자연스레 저자인 알베르 까뮈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베르 까뮈』. 우리나라의 대표문고 <살림지식총서> 51번째 책이다.
까뮈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쭉 기술하지 않았다. 그 점이 좋았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곧바로 나오는 지식이 아니었다. 프랑스문학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유기환 교수(한국외대 프랑스어과)는 까뮈를 재구성한 것이다. 즉, 여러 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해 까뮈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키워드는 이렇다.
알제리, 부조리, 이방인의 탄생, 레지스탕스와 신문기자 카뮈, 지중해 사상과 아웃사이더 카뮈 등
<알제리:태양, 바다, 침묵>에서는 까뮈의 삶을 짧게 기술했다. 카뮈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전사한다.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어둡고 말도 더듬었다고 한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카뮈는 어떤 꿈을 키울 수 있었을까? 다행히 그는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독서의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 때 폐결핵을 앓는다. 일찍 한 결혼도 실패한다. 까뮈의 삶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카뮈는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9쪽) 지중해는 카뮈의 고향이자 카뮈의 사상이었다. (13쪽)
이런 그의 삶이 대표작 『이방인』을 만든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저자는 『이방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중성적 글쓰기, 카메라와도 같은 객관적 시선의 묘사, 주인공 성격의 애매성, 파란곡절이란 찾아볼 수 없는 줄거리, 연결사 사용의 절제 등은 소설의 20세기적 현대성, 바로 그것을 특징짓는다. (34~35쪽)
까뮈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조리’일 것. 『이방인』을 비롯해 철학적 수필 『시지프 신화』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까뮈는 ‘반항’과 ‘사랑’에 대한 작품도 썼다. 또 다른 대표작 『페스트』가 반항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사랑’에 대한 작품은 『최초의 인간』인데, 까뮈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으로써 미완성으로 남았다.
40대에 요절한 까뮈. 그는 삶을 통해 ‘부조리’를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까뮈』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까뮈를 이해할 수 있었다. 100여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살림지식총서>의 덕이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이방인』을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을 읽어 보고 싶다. 부조리한 세상을 그렸던 그의 작품, 지금 역시 유효할 것이다.
진실은 신비스럽고 붙잡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포착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는 위험하고 실현하기 힘든 것이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것을 구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86쪽) |
|
한줄요약 : 아웃사이더 알베르 카뮈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실존주의를 맛볼 수 있는 얇은 책이다. 부조리한 삶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대책으로서 '자살' '희망' '반항' 세 가지를 예시하면서, 그중 마지막의 것을 참된 해결책으로 꼽는다. 부조리는 합리성을 열망하는 인간의 의식과 비합리성으로 가득 찬 세계 사이의 대립에서 발생한다. 자살이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한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희망, 즉 종교가 해결책이 못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희망, 종교가 해결책이 못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과 종교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회피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존귀한 진실은 의식의 끊임없는 유지라는 것인데, 반항이란 바로 세계의 모순을 살아 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며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p24- 이 책을 선택한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문구이다. 이 말이 너무 깊게 와 닿았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반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 카뮈 리뷰 더보기 http://someno.tistory.com/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