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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해방하는 목적과 수단을 다시 생각한다
"삶을 해방하는 목적과 수단을 다시 생각한다" 내용보기
내 삶 속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1990년대 초반에 전위 운동의 후퇴와 대중운동의 약진 속에서 레닌의 를 읽었고, 1990년대 중반 군대의 직접적이 억압과 가족에의 속박으로부터 독립적 삶을 구성해 갈 때쯤 사회주의자의 삶을 고민하면서 체르니쉐프스키의 를 읽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시 를 읽게 되었다. 10년도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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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1990년대 초반에 전위 운동의 후퇴와 대중운동의 약진 속에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었고, 1990년대 중반 군대의 직접적이 억압과 가족에의 속박으로부터 독립적 삶을 구성해 갈 때쯤 사회주의자의 삶을 고민하면서 체르니쉐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게 되었다.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끓어오르고 온 몸이 닳아오른다. 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너무도 선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물음이면서도 바로 그 이유로 목적을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 자체만으로 해방의 목적을 담아내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실천에서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했던 이유는 해방의 목적을 긴급한 물음으로 제기하지 않고 희미하게 제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목적' 보다 '수단'이 더 절실했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1990년대 초반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의 목적은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였고 그 해답은 너무도 선명하고 분명하게도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는 나에게 애매하고 모호한 대상이기 보다는 당위였고, 얼마나 올바르고 과학적인 혁명정당을 건설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였다. 1990년대 중반도 자유롭지는 않다. 당시 물음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난 무엇을 할 것인가'였지만,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스스로의 해방'은 '나'를 경계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장의 실천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제기하는 물음이기는 하지만 '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나가지 못하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질문 방식이었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앞에 있어야 할 "왜"를 더 많이 묻는다. 그것이 해방의 목적을 탐구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이곳'으로 끌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해방을 상상하고 실천하기 보다는 삶을 억압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왜' 우리의 노력은 우리 스스로를 더 크게 억압하는 것들을 생산하는가?' '삶을 억압하는 것들을 생산하는 우리들에 맞서서 바로 그 우리들은 삶을 해방하는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1990년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목적을 상실했으면서도 실천상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제기했었다면, 요즘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왜’라는 그 목적에 더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하고, 실천상의 태도 이전에 실천상의 태도를 만드는 실천적 관계들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책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해방의 목적'과 '해방의 수단'을 분리하지 않고 동시에 생각할 것을 제기한다. '수단'이 '목적'을 억압하거나 '목적'이 '수단'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수단'은 '목적'을 예비해야 하고 '목적'은 '수단'을 창출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은 다중의 자율성이 나날이 갱신되며 창출하는 공통성의 두 양태라고 이 책은 들려준다. "여하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레닌의 위대한 질문은 오늘날 100년 전보다 훨씬 더 긴급하다. 그러나 그 질문은 순진한 질문이 아니다. 그 정식 (‘우리가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은 이미 도구적 접근을 암시한다. 그것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가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B 지점에 이르는 최상의 길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수반한다. 그것은 수단으로부터 목적을 분리시킨다. 그리고 수단을 목적에 종속시킨다. 공산주의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건 정당화된다. 그렇지만 이 개념화는 수단들을 목적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수단들로부터 그것들의 해방적 내용을 박탈한다. (해방은 혁명 이후에 오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해서 그 관계는 역전된다. 왜냐하면 목적은 수단들의 생산물 이상의 다른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목적(소련 공산주의)은 필연적으로 비해방적이다. 수단의 목적에의 외관상의 종속은 필연적으로 목적의 수단에의 종속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모두다 꺼져버려! 혹은 반란;그리고 어떻게 살아갈까? 혹은 혁명)의 두 요소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두 요소 사이의 관계를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으로 본다. 대안적 사회성의 발전은 혁명 이후에 오는 그 무엇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반란에서 혁명으로의 운동이다."(340쪽)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당신,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꺼져버려라! 우리가 가는 길에서 비켜라. 인간적 존엄의 상호인정에 기초한 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힘을 발전시키도록 내버려 두라.
h*****n 2004.02.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