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의『안네의 일기』는 작년에 원주 대성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안네의 일기는 학창시절부터 여러 번 읽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입한 것은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애정과 함께 거의 새 책과 다름없는 양호한 상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안네의 일기』에 대한 나의 지식이 생각만큼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소녀 안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학창 시절에 각급 학교의 국어교과서에서 여러 번 만났고, 영어교과서에서 그 텍스트가 실린 적도 있었다. 교직에 나온 이후에도 교과서에서 여러 번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전편을 만난 적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일부분이 실려 있었을 뿐이다. 전편을 읽은 것은 20여 년 전이었던 듯하고,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았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치 처음 읽은 듯한 새로움을 느꼈다. 나는 『안네의 일기』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부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의 수도가 워싱톤인 것은 알지만,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둘째, 독일과 이스라엘이 부러웠다. 이 책을 통해 안네 프랑크의 생애와 함께 당시의 배경과 나치의 만행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안네의 가족이 고통을 당했으며, 가족의 일부 또는 전체가 죽어갔던가? 내가 부러웠다는 것은 그 고통이 아니라 그런 범죄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한 독일 지도자의 용기와 그런 사죄를 받을 수 있었던 이스라엘 국민의 행운이었다. 비록 아픈 역사는 있었지만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아직도 역사 왜곡과 과거 청산을 마무리 짓지 못한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니 독일과 이스라엘의 현실이 마냥 부러웠다.
셋째, 내가 만난 아름다운 책 중에 한 권이다. 이 책은 우리말 해석과 영어 원문이 함께 있으면서 이일선 화백의 아름다운 삽화가 풍부하게 실려 있었다. 칼라 삽화는 책의 권위를 더해 줄 만큼 적당한 품격이 있었다. 영어 원문의 경우에도 각 쪽마다 5~6개 씩의 낱말 풀이가 있어서 영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원서로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김소연 역자의 글도 마치 한국인이 쓴 듯 자연스러웠다.‘원문 + 우리말 + 삽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아름다운 책이란 이런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넷째,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분노하거나 동정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안네의 일기』를 읽을 때는 나치의 만행에 분노했고, 유대인의 처지를 동정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족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알고 있는 처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른 짓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행에 뒤지지 않는다. 비록 생체 실험 등을 통해 가스실에서 학살한 만행은 없다고 해도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치 치하의 유대인 이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처사는 나치 못지않게 악랄하며,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국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뒤지지 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 안네와 그 가족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의 나는 학창시절과는 달리 유대인에게서 피해자의 아픔과 함께 가해자의 만행도 함께 느끼고 있다.
1970년에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고, 1998년 헬무드 콜 총리가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묵념을 올리며 사죄했듯이, 먼 훗날 언젠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온 민족과 함께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끊임없이 사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안네의 비극에 몰입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어린 소녀의 진솔한 글이 아닌가? 중학생 이상의 독자들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이 나치 치하의 유대인처럼 되어서도 안 되지만,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오만한 악행을 일삼아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