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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 오물처리와 같은 일을 혼자서 떠맡은 듯한 기분이 든다. 지독한 퇴폐가 진행되고 있고, 그 가운데에 풍요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균실 속에서 생물이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 지긋지긋하지만 멈추지 않는 붕괴는 한층 그 속도를 높여간다. 그리고 반동화와 퇴행은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
-류의 < 인 더 미소 수프 > 소설후기 中에서
* 이 소설은 살인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살인과 폭력. 읽어낼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기를 권한다.일단 시작하고 나면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놓지도 않게 되는 그런 두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비위가 안좋은 이들도 별로 안읽는것이 나을지도... 주인공 겐지는 신주쿠에서 외국인 관광객 가이드를 하고 있다. 주로 환락가 안내인데, 그곳에서 프랭크라는 외국인과 만난다. 그는 살인마인데 그는 겐지가 안내하는 곳들을 돌며 참혹한 살인과 폭력의 행진을 시작한다. 살인마의 마음 속 상처를 그려낸다던가 사건의 개요성이 어떻다던가 하는 것들과 상관없이 거침없이 폭력이 쏟아지고 사방에 피가 튀기는 소설이다. 실제로 그가 이 소설을 연재하던 중에 일본에서는 아주 참혹한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용의자로 14살짜리 소년이 체포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는 혼란에 빠지며, 일본이라는 사회의 붕괴를 절감하게 된다. 친구는 이 소설이 류의 소설 중 최고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이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매우 빼어난 소설이라고는 생각한다. 이런 폭력과 잔인함 말고는 사회의 평폐를 그려낼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저 부랑자와 나, 어느 쪽이 이 사회에 더 해가 될까?" "사회에 해가 되는 인간이 처음부터 있는 걸까?" "있어." 프랭크는 부랑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나 같은 인간은 확실히 해가 돼. 나는 바이러스와 비슷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실은 아주 극소수이고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그 역할은 한 마디로 말해 돌연변이로 생명의 다양성을 창조하는 거야.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책을 읽었지. 잠을 많이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이 많다는 거야. 만약 바이러스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야. 바이러스 가운데에서 우리 유전자 안에 들어가 직접 유전 정보를 변하게 하는 것도 있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가 장래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유전 정보가 될 수도 있는 거야. 나는 자각적으로 살인을 범하고, 다른 인간들에게 충격을 주어 생각에 빠지게 하지. 하지만 나는 이 세계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 그런데 저것은 달라." 그렇게 말하며 프랭크는 다시 부랑자를 보았다. 부랑자는 상자위에 앉은 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다리 위에도 사람이 꽤 늘었지만 부랑자 주위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녀석들은 살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것이 아냐. 다른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한 거야. 가난한 나라에는 난민은 있어도 부랑자는 없어. 실은 부랑자는 아주 편하게 살고 있는 거야. 사회생활을 거부한다면 어디 다른 곳으로 가야 할거야. 어떤 위험을 짊어져야 해.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해왔어. 그들은 범죄조차 저지를 수 없어. 퇴화되어 있지. 나는 그런 퇴화하는 인간들을 죽이려고 온 거야." - 본문 中에서
* 프랭크의 발언은 상당히 무시무시하고 또 위험하다. 류의 이야기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호한 발언 속에 위험과 문제제기를 반반 담고 있다고나 할까. 드러난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는 느낌. 류는 스스로 일본사회의 비판자를 자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역할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 바로 이 인더 미소 수프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그는 일본사회가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 붕괴된 사회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불어 일본이 어떤식으로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각자적 자의식이 좀 오버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가 계속해서 그런 소설을 쓰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은 알게다. 그가 말하는 사회의 문제와 공동체의 붕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류를 계속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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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를 읽고 싶었을 뿐이었다. 작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없이 많이 들어본 이름이고 해서, 그냥 무작정 제목만 보고 가볍게 읽고자 했는데...낚이고야 말았다. 모든 자극적인 요소들은 다 있는, 이런 소재의 글을 어떻게 남녀노소를 막론한 대중적인 신문에 연재했을까 싶으면서도(일본의 독특한 문화성에 의아해함), 일본의 다소 배타적인 민족성을 오랜 역사 속에서 되짚어보려는 자각적인 시도는 새로웠다.
온갖 엽기적인 살인의 행각과 퇴페적인 성적묘사가 짜증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의 살인 행동이 무엇에서 기원된 것인가를 알고 싶어 단숨에 읽어치웠다. 하지만,허탈감. 어렸을 때부터의 이상행동과 정신병적인 기질이 설명되어 있기는 했지만, 뚜렷한 무엇은 없었다. 내가 너무 분석적인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분석을 하지 못 한 것일까.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악의가 다분히 있다. (소설에서는 동굴이라 표현) 단지,그것을 어떻게 걸러내고 전달하고 승화하느냐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나뉘어질 뿐. 꾸욱꾹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표현하거나,다른 온전한 방법으로 발산시켜야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변화하는 요지경 속의 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부모로서의 입장에서 돌이켜보자면, 우리 아이들에게 지식의 습득보다는 이러한 건전한 자기발산의 방법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선일 듯 싶다.
머리 속이 지끈지끈,끈적끈적하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다 이런 것일까. 그나마 그의 소설 중 인간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한번 읽고 싶다. 하지만 이것도 좀 나중에. 맘이 넘 어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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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회면을 읽고 종편뉴스 모큐를 보겠다.“ ai가 도쿄의 도시공간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했는데 그런 것 같다. 한 편으로는 조직적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지극히 개인의 공간인 거대도시 도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역시 지극히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면서도 개인적이다. 2/3정도 읽다가 옛날에, 학생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났다. 같은 작품이었는지 다른 작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유에서 읽기를 멈췄다. 이번에도 읽다가 말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인데 이 시절 일본작가의 특징은 온갖 브랜드를 말하고 재즈를 말한다는 점이다. 그런 화려한 부분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확고한 라벨이 되어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읽어도 불편하다. 나는 이제 두 무라카미를 읽지 않는다. 패턴이 보이는 것을 개성이라고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매너리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