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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을 알게 되고 또한 읽게 되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매 장마다 새로 펼쳐지는 매춘 역사의 국면을 접할 때마다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독자인 내가 여자라서 그럴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무엇이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인 나를 흥분시켰는지를 규명해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우선 이 책은 ‘매춘’이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 섹슈얼리티 전반에 대한 이해와 해명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 과정을 저자 자신의 선험적 해석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한 자료 읽기와 재구성을 통해 펼쳐 보이고 있다. 나아가 여성 섹슈얼리티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고, 규정되었고, 억압되었는가를 최종적으로 규명하는 데 초점을 모은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전면적 ‘매춘 역사’ 탐색이 단지 매춘부들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춘 아닌 것들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매춘부’를 읽고자 책을 펼쳤는데 오히려 ‘인간’을 만난 격이랄까. 매춘을 통해 읽는 인간-인류의 역사, 흥미롭지 않은가? 분명, 커피로 읽는 역사, 빵으로 읽는 역사들이 제공하는 것과는 다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적어도 매춘의 역사는 커피와 빵의 역사가 주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긴장과 흥분을 담보한다. 그 긴장과 흥분이란? 음지에서 양지로, 매춘의 주소가 바뀌는 순간 발생하는 그 무엇이다.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권력(이라고 해두자)에 의해 감추어지고 은폐된 것들이 (처절한) 맨낯을 드러내는 순간은 어쩌면 긴장과 흥분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지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는 전직 매춘부 출신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매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잘 말할 수 있는 자는 바로 매춘부 당사자일 것이다. 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 적어도 매춘의 영역에 있어서는, 무시되어왔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매춘과 매춘부 관련 자료는 거의 모두 남성이 작성한 것이었다. 학문적 객관성을 주장하는 남성 학자 대부분이 창녀들의 고객층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매춘이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면 매춘에 관한 남성의 글쓰기는 아마도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직업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잉크가 발명된 이래 남성 작가들은 창녀에 천착해온 듯하다. 글쎄,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창녀는 흥미로운 여성들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가부장적 소유제를 거부한 최초의 여성들이었다.”
저자가 명명한 것처럼 매춘부를 “가부장적 소유제를 거부한 최초의 여성들”이라고 규정하는데 동의한다면, 매춘부는 계급 혁명을 넘어서는 위력적인 전위성을 가진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그 전위성이래야 실제 현실에서는 미약하기 그지없겠지만 매춘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그 위력은 가히 계급 혁명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넘어설 것이다. 일례로, 매춘 없는 시대가 있었던가. 또한 매춘 없는 시대가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매춘의 위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매춘의 상실 혹은 폐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군림해온 가부장제 역사의 상실 혹은 폐기를 반어적으로 의미한다. 매춘은 가부장제의 ‘잔여물’이기도 하지만 가부장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가부장제가 강력하고 유일한 제도로서 사회를 장악할 무렵 매춘이 어떻게 규정되었는가를 살펴본다면 이는 좀더 분명해진다. 남성에 의해 ‘선사’라 명명된 시기, 가부장제 이전의 모계 사회에서 여성은 ‘여신’으로 군림했었다. “여성은 현세에서 여신의 구현체로 여겨졌기 때문에 몇몇 여성은 공동체와 신 사이의 실질적인 연결 고리가 되었으며, 샤머니즘의 여성 사제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여성 사제들은 신성한 의식과 접신무(接神舞)를 통해 여신의 창조력을 물질세계에 전달했다.” 이때 신성한 의식은 ‘성적 의례’의 형식을 띠었고 샤머니즘의 여성 사제들이 그것을 집전했다.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이 의식에 참여해 생명력을 통한 무아경 속의 합일을 함께 경험했다.
그러나 호전적인 남성 중심의 유목민들이 기원전 3,000년경 모계 중심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결국 여신을 숭배하는 부족들을 정복하고 굴복시켰다.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에서 역사 시대 최초의 문명이 탄생하던 이 무렵의 사회는 모계 사회와 부계 사회의 혼합물로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꾸준히 남성 중심 사회로 변해갔고, 새로운 형태의 결혼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아이의 부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했다. 그러나 여신을 파괴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여신을 몰아내는 것은 수천 년이 걸려야 할 일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계속 여신 숭배 전통을 고수하고 매춘을 직업으로 선택함으로써 ‘남성’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을 분명히 나타난 창녀들, 그들의 도발적인 섹슈얼리티와 한 사람의 주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분명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매춘부와 그들의 일을 둘러싼 법률이 점점 더 억압적인 형태로 변해갔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매춘과 관계된 모든 법률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으며(그 실현성과는 상관없이) 호소력이 있다. 이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매춘부를 마치 세탁하고 교도해야만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그들이야말로 여성을 배반하는, 나아가 억압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을 따를 때, 이제 매춘의 영역은 뒷골목에서나 나뒹구는 쓰레기 같은 존재일 수 없다. 남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자신에 의해서도 은폐되고 왜곡되고 나아가 비하돼온 매춘 그리고 매춘 여성은 무엇보다 권력의 자장 안에서 그 역할과 의미를 새로이 부여받아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권력의 자장 너머로 탈출하기를!). 이 책은 그저 그런 미시사의 한 부류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금지와 함구의 영역을 들춘 이 책이 갖는 사료적 가치는 가히 작지 않다. 이 책과 같은 연구서가 시중에 열 권만 있다고 상상해보자. 열 사람만이라도 이 문제를 시시콜콜히 파고들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책은 어쨌든 ‘돌파’를 감행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객관적일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죄책감을 갖지 않는 창녀, 즉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여성의 편에 섰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나는 편견을 가졌다. 매춘부들의 목소리 덕분에 언제나 이 작업은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끔 사제, 교수 의사 등, 전문가들의 온갖 종류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묻히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를 완전히 잃은 적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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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한 영화 몬스터를 봤다. 주인공 '에일린'는 어릴 적 꿈 많고 조숙한 아이였으나, 불우한 가정 환경은 13살 때부터 거리의 창녀로 나서게 만든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동생들에게 쫓겨나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차를 세워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른다. 비를 피해 목을 축이러 들어간 바에서 그녀는 '셀비'를 만나고 순진한 사랑에 빠진다. 그 후 돈이 필요했던 에일린은 거리에서 한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는 가학적인 섹스를 벌이려고 한다. 온몸이 망가진 채 가까스로 풀려난 에일린은 남자를 총으로 살해하고, 셀비와 함께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면서 도피 행각을 벌인다. 창녀의 생활을 청산하려는 에일린.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회의 냉대와 모욕만이 남겨져 있었고, 결국 창녀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돈과 사랑과 양심으로 인해 계속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의 스토리들이 단지 슬프게만 느끼지 않고, 사회구조의 모순 때문이라는 점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역사 속의 매춘부들』 때문이었다. 창녀라는 낙인은 사회적 억압의 한 형식이라는 니키 로버츠의 주장은 매우 강렬하다. 전직 성 산업의 노동자로서의 그녀는,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사 속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더듬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여, 잘못 쓰여진 역사에 대항하여, 사람들의 편견에 대항하여 '편견 부수기'의 연구에 몰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저자가 역사 속에서 보는 매춘의 시각은 이러하다. 매춘은 가장 오래된 직업이지만, 매춘에 대한 시각은 남성의 시각에 맞게 편파적으로 변해 왔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고대 문명의 사원에서 시작한 매춘의 기원은 여신을 상징하는 여성 사제는 생명의 창조자로서가 아니라 '다산 숭배'라는 어색한 설명으로 폄훼 되어 왔다. 모계사회가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여성은 억압을 받기 시작했고, 여성은 '착한'여성과 '나쁜'여성의 이중적 잣대에 의해 착한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며 종속적인 노예와 같아야 하고, 자율적인 경제활동과 성적 관념을 가진 여성은 창녀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나쁜 여성으로 매도되면서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춘은 힘있는 자의 권위와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독점하기 위한 집권층의 희생물이 되어 왔던 것이다.
서양사회의 역사적 기록들은 매춘을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필요악이라는 단어로 치부할 만큼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도 무책임해 보인다. 여성의 성매매를 유인하는 요인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이 경제적 문제이며, 또 다른 요인이 여성을 억압적인 남성에게 의존하게 하는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남성 중심 매춘 역사에서 벗어난 여성의 시각, 창녀의 시각에서 바라본 매춘의 연구는 아마도 성 매매 관련 활동가나 연구자, 그리고 창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1992년 이 책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검증된 역사 자료와 객관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대단한 설득력을 지닌 책이라고 극찬되었던 이유도 바로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편협한 시각을 새로운 눈높이로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영화 『몬스터』를 보고 나서 이 책을 읽거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거나,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할 정도로 충분한 메시지가 가슴에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면 한 권의 책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성을 통해 전염되는 모든 질환의 감염 위험에서 최전선에 있는 매춘부는 에이즈가 확인되기 훨씬 전부터 '안전한 성행위'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때 이후 매춘부들은 자체적인 감시의 수위를 높여 왔다. 경찰의 무책임한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거리 성 노동자들조차 자체적인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
| 매춘부, 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녀들은 말과 행동이 자유로우며, 여성으로서 최고의 지적 자유를 누렸다. 고대의 신전창부들이나 중세의 코르티잔은 부유했고 또 강했다. 아름다움과 멋진 몸매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세상을 유혹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 그녀들을 도덕적으로만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각 장의 제목들을 보면 보통 여인네들과는 다른 덕목을 가진 매춘부들은 아름다운 여성 이상의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직업 부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쓰여있었다. 그들은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남자와 세상, 그리고 독자들을 유혹하는 매력의 여인이라는 걸 느꼈다. 나는 이 책의 모든 사실을 유혹적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 매춘부를 성을 생계로 여기는 창녀를 일컫는 말이다....별로 좋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녀들처럼 그녀들은 매우 총명했다. 예날에는 신전여사제가 성창을 주도햇다고 한다. 출신이 무엇이든 간에 귀족이든 시민이든 심지어 팔려온 노예였던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주어진 위치에 만족하고 기회와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고급창부이든 연극배우든 심지어 귀족출신의 왕의 정부이든 간에 그녀들은 시와 노래와 춤,문학부터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재담과 예술로써 남자들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다. 그녀들은 드물게 예술가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었던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 르네상스와 19세기에 문인들의 여인들이 고급창부가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그녀들이 직접 몸을 판 것은 그들개인의 일이라 말하고 싶다. 생계를 위해 할 수없이 또는 권력에 마지못해 응한 여인들도 있었을 것이다.사귀는 남자들에게 언젠간 버림받고 잊혀질 것이란 것을 그들도 일찍 깨닫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녀들이 매춘이 아닌 인성으로 역사에 남앗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