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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故 김 남 주
달빛은
쓰러진 전사의 이마에서 빛나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무엇일까 하고
별 하나 외로이
서산 마루 위에서 빛나고
바람이 와서
내 귓가에 속삭인다
싸우는 일이라고
푸르고 푸른 조국의 하늘 아래서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싸우다가 죽는 일이라고
-[이 좋은 세상에], 54
아! 김남주
김남주를 읽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예전 그의 시의 꼬챙이가 내 양심을 찌르는 것 같아 불편했고, 지금의 평전을 읽으면서도 '거룩한 분노'를 조직적으로 표출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불편하다. 아! 김남주...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그러나, 김남주...
불편하게 하면서도 담뱃갑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애린 슬픔, 그의 평전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울컥했다. 눈물이 핑 돌때 담배를 태우며 방울이 눈밖으로 나오지 않게 했다. 과장이나 왜곡이 아닌 사실인 글을 눈에 박으메 눈물 방울은 왜 이리 눈가를 위협하는지. 그것은 처.절.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줌의 관념이나 감상이 아닌 글이 이토록 나의 눈물을 돌게 한 적이 있던가. 아! 김남주
혁명의 전사, 철저한 계급을 인식한 민중시인 김남주
그는 현실의 모순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온몸과 정신으로 한 올 한 올 밀고 나갔던 시인이다. 그에게 있어 시는 무기였다. 사랑의 무기, 압제를 향한 분노의 무기로 60년대 김수영, 70년대 김지하가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독재를 향해 거침없는 화살을 날린다. "현실의 변혁을 위한 무기로써 시는 촌철살인의 풍자이어야 하고 백병전의 단도이며 치고 달리는 게릴라전이오."(250쪽) 김남주에게 시는 '백병전의 단도', 너무 급진적인 표현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의 시는 계급 타파를 위해 창끝처럼 늘 뾰족한 첨탑을 세우고 있었다. 김남주는 "시인은 해방전사와 동의어다"(263쪽)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절망도 광기도 자학도 없는 대한민국의 예술지상주의자들을 조롱하고 통탄한다. "대한민국의 순수파들 절망도 없이 / 광기도 자학도 없이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사상의 거처="">
예전 김남주의 시집만을 읽었을때, 나는 그의 분노, 그의 계급의식, 그것을 아우르는 혁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꼭 그렇게 급진적으로, 전복적으로 사회를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제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듯 하다. [김남주 평전] 1부는 그 어떤 전기보다 내 가슴을 울음으로 멍들게 했으며, 2부는 그 멍듦의 이유를 철학적 어투로 저자 강대석은 설명하고 있다. 약간은 교조주의적 설명이 들어있기도 하고, 저자 자신의 생각을 김남주라는 시인에 너무 투사시킨 점도 없지는 않다.
문학을 통한 김남주의 저항과 분노는 "무엇보다도 문학하는 사람은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209쪽)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역사와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김남주는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세계를 몸으로 실천해 보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실천이 없는 관념은 독일 철학자들에게 엿보이는 관념의 과잉이다. 실천적인 면에서 보자면 랭보의 '삶을 변혁'이란 관념이 덜 추상적이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唯物論을 '관념'이란 딱지로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유럽의 觀念(보고 생각하는)이라도 독일과 프랑스의 관념은 혁명의 실천에 있어서 층위를 달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김남주의 문학은 실천을 통한 피의 혁명!, 그것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계급 투쟁의 결실로 보여진다.
시는 노래로써 불려질 때 생각없는 '대중'까지 포섭할 수 있다. 김남주는 주체로서의 '인민'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중은 그야말로 주체로서의 삶이 아닌 자본주의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객체의 사람들이다. '인민'은 시 한 구절에도 '세계의 변혁'을 꿈꾸고 또 몸으로서 실천하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달콤함에 젖어 있는 '대중'은 좀 더 쉽게 다가서야 한다. 이미 객체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노예근성에서 뛰쳐 나올 어떤 탈출구를 줄 필요도 있다. 시가 원래 음악성을 가지고 있지만, 좀 더 철저하게 멜로디를 입히고 대중속으로 파고 들기에는 대중음악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치환은 김남주 시의 '대중화'의 깃발을 든 사람이다. <자유>, <함께 가지="" 우리="" 이길을="">, <저 창살에="" 햇살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가을에="" 나는=""> 등의 시를 [안치환 Remember]에 수록했다.
나는 안치환의 노래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때 나는 자유"라는 김남주의 시에 고무되었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囚人이다"라는 김남주의 육성을 들으며 '혁명'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것을 밀고 나갈 '개혁'의 밑자리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대중'이다. 그러나 노래를 듣는 순간순간 나는 자각한다. 저 푸른 하늘의 자유, 아니 노동의 자유, 그보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노래를 들으며 꿈꾼다. 나는 리얼리스트가 되기에는 아직 낭만의 껍데기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전봉준의 피로 물든 황토현이 발밑에 있음에도 나는 아직 문학이나 음악으로 혁명을 이루기에는 너무 우유부단하며 리버럴하다. 그래서 김남주의 이 말을 가슴에 새긴다. "용기있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오. 결단은 여럿 중에서 부차적인 것을 버리는 행위요. 버리지 않고는 인간은 한 발자욱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오."(94쪽)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글쟁이들의 역할을 너무나 과대평가해 왔습니다. ...지식인들의 나약성, 동요, 기회주의성, 소시민성, 자유주의적 작태 등을 비판하는 사람은 지식인들 자신이면서도 그들조차도 그 테두리를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옥중연서,145 재인용) - 287이>삼팔선은>저>함께>자유>사상의> |
| 인간의 인간에대한 착취... 뚜렷한 계급구조, 계급의식... 왜곡된 역사교육의 베일에가려진 '부자'들의 호의호식... 시인 김남주는 저 불합리한 현실을 뒤엎고 민중의 해방을 실현하기위해 시인이되었고 전사가되었고 혁명가가 되었던 인물이다. 흔히 시인이라하면 팔자좋게 사랑타령이나해가며 하늘과 바람, 나무와 꽃, 달과 별에 기대어 한가로운 말장난이나 일삼는 사람으로 생각하기쉽다. 그만큼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일여지가 다분한 문학장르가 바로 시다. 하지만 김남주에겐 그런거없다. 김남주의 시는 친일파와 친미파, 매판자본가와 위정자들의 자본주의논리에 묻혀있는 민족의 정체성을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하고, 멋스러워보이는 사대주의에 물들어 자신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마비된 의식에 ''단칼''을 들이미는 ''불호령''과같다. 어휘의 선택이 너무하다싶을정도로 직설적이어서 때론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엔 통쾌함과 설레임이 공존함도 사실이다.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납득하기힘든'' 사회여건상 일반인들이 접근조차 하지못한체 방관하고있는 상처를 까발리고 치유하여 있는그대로를 고발했던 시인... 그가 바로 김남주다.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사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두려움따윈 존재할 이유가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조작과 허위를 일삼을때 더 당당할 수 있는 국가였기에 그의 인생도 그리 순탄치만은 못했으니... 김남주의 일대기와 그가 걸어온 시대의 그림자, 그리고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적나라하게 소개되고있는책이 바로 본저서이다. 책속 전반을 지배하고있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사상''이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옳고 그름을 논하고있진않다. 그저 자본주의가 내포한 부작용들을 따져나가다보니 사회주의이념을 언급하게된것이고 사회주의이념을 따져나가다보니 매우 '인간적'이고 '그럴듯하게'보이는것뿐이다. 사상과 이념의 자유는 인간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것은 각자의 몫이며 의지이다. 다만 이책을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먹고 잘사는지만을 생각하는 수단으로 삼지말고 거시적이고 민족적인 안목으로 자본주의를 재통찰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하는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여기 소개되어있는 김남주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치밀어오른다는것은 당신이 아직은 이땅의 '애국자'임을 증명해주는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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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선생님께서 나의 시를 칭찬해 줄때,
시라고 하는 것은 항상 세상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한 것들로만 이루어 진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쓴 시들은 그렇게 쓰여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이 이 책을 검열에서 통과시킬지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망설였다.
'돈주고 사는건데 빼앗기면 어떻하나...'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부대로 가지고 들어갔는데 담당병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국방부 추천도서 사건이 발생하기 5년 전 일이다.
김남주가 누구냐고??
나는 혁명시인
나의 노래는 전투에의 나팔소리
전투적인 인간을 나는 찬양한다
나는 민중의 벗
나와 함께 가는 자 그는
무장이 잘되어 있어야 한다
굶주림과 추위 사나운 적과 만나야 한다 싸워야 한다
나는 해방전사
내가 아는 것은 다만
하나도 용감 둘도 용감 셋도 용감해야 한다는 것
투쟁 속에서 승리와 패배 속에서 그 속에서
자유의 맛 빵의 맛을 보고 싶다는 것 그 뿐이다.
- <나 자신을 노래한다>중에서...
그에게 문학이론을 연구한다는 것은
나에게 법학이론을 공부한다는 것과
같다
똑같다
근데 왜 법학과에 갔냐고...
난 세상이 온통 당연한 것들만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난 그게 "정의"이고 "진실"인 줄 알았다...
법이라!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
그래 지키기는 지키되 어디 한번 물어나 보자
땅을 일구어 봄에 씨앗 뿌리고
이마에 땀 흘려 태양 아래서
곡식을 키운 사람은 누구이고 가을이면
도둑고양이처럼 와서 알곡을 걷어간 놈은 누구냐
...
에끼 순 날강도 놈들
학식과 덕망의 똥통에 대갈통 처박고
만세삼창 부르다가 급살맞아
사지를 쭉쭉 뻗고 뒈질 양반놈들아
- <아나 법> 중에서...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고 가리키는 상법이 무슨 법이냐?
순환출자로 가문의 영광을 유지시켜주는 회사법이 무슨 법이냐?
노동자를 근로자로 부르면서 자기는 노동부장관이라 부르는 노동법이 무슨 법이냐?
좀 살아보겠다고 망루에 올라 선 세입자들 불질러 죽이는 형법이 무슨 법이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면서 국민들의 주장은 쌩까는 헌법이 무슨 법이냐?
안치환의 노래가 가슴을 쿵쿵 때리는 것은
멜로디가 아니었다
김남주의 시였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
- <자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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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을 건낸다.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 얘기만큼은 정말 행복하게 말한다.
꺼지지 않는 담배불과 사라지지 않는 그 미소가 내게 계속 말한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 <조국은 하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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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을 생각하면 가슴 떨림에서 시작하여 가슴 떨림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그 시인을 처음 접한 건 88년도 고 2 때였다. 당시-87년 6월 항쟁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가 고등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문예반에서의 시 읽기 역시 신동엽이니, 김수영이니, 김지하니, 문병란이니 하니, 현실 인식의 기반 위에서 시를 썼던 시인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불온한 시란 딱지를 달고 있던 시인들,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던 어린 문예반 친구들.
그러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돌기 시작했다. 요즘 말로 하면 "떴다"인데, 그 시기의 뜸은 언더에서 언더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왔는데, 시 한편 한편이 전율 그 자체였다. 불온한 시들에 익숙해져 있음에도 김남주의 시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짙푸른 청색 표지의 "진혼가"...붉은 표지가 아닌데도 난, 그 시집이 망자의 피처럼 붉게 붉게 내 가슴을 물들였다. 김남주의 시는 과연 그랬다. 망자의 혼은 가라앉혈을 망정, 산 나의 혼은 산산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게 어디 나 뿐만이었을까.
그런 김남주 시인이 돌아가시 지가 벌써 10년이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가? 변했다고!? 과연? "지상의 모든 부/쌀이며 옷이며 집이며/이 모든 것의 생산자여// 그대는 충분히 먹고 있는가/그대는 충분히 입고 있는가/그대는 충분히 쉬고 있는가/(- 민중 중에서)" 과연?!
"김남주 평전"을 읽으며, 그 시인의 열정적인 시 낭송이 더욱 간절해지는 건 아직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고독과 위험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
-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 중에서 [인상깊은구절] 이런 의미에서 그를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한국인'' 혹은 ''한국의 체 게바라''라 불러도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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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 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창살에 햇살이)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깡총깡총 토끼춤을 추면서/ 아이들이 하늘나라 별나라를 노래한다/ 그러면 어느 별은/ 별 하나에 나 하나/ 돌이의 별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 어느 별은/ 별 하나에 나 하나/ 순이의 별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러면서도 하늘나라의 별은/ 꼭 돌이의 별이 아니어도 좋은// 모든 아이들의 눈에서 빛나는/ 너와 나와 우리의 별 희망이 된다// 아 얼마나 좋으랴 (별 하나에 나 하나)
참으로 주옥같은 시가 아닌가. 내가 알던 김남주의 시는 뼛속으로 들어오는 시였다. 그의 시는 힘이 있고 강했다. 그의 시는 주체가 있고 살아 있었다. 옥중에서 칫솔을 갈아 우윳곽 안쪽에 새긴 시들이 『김남주 평전』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우리나라 민중문학에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이가 셋이 있다. 70년대에 김지하가 있었고, 80년대에 황석영이 있었으며, 뒤를 이어 김남주가 나타났다. 그러나 김지하가 출옥 이후 약화된 투쟁을 보였다가 증산교에 심취했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외치던 황석영 또한 종교적 이상에 눈을 돌린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은 어쩌면 철저한 세계관과 역사관이 결여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왜일까? 그것은 철학 논쟁에 있다.
철학을 둘로 나눠 보면 관념론과 유물론이 있다. 유물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모두 무신론자 이지만, 무신론자가 다 유물론자는 아니다. 또한 참다운 과학자는 유물론자일 수밖에 없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의 법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종교인이 될 수 있어도 과학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제시해 주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 진리에 매달리거나 철학의 핵심문제를 비켜 가는 사람이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올바른 철학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것은 관념이 있고 나서 존재가 있다는 것이지만,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제한다는 것이 김남주의 사상이다.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투쟁해 온 혁명시인 김남주. 문학도, 학문도, 투쟁도 모두가 철저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며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고 온 몸으로 노래한 혁명시인 김남주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상깊은구절]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치적 평등이나 법적 평등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형식적으로(명목상으로) 그러한 평등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인간의 평등이란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